글/ 이덕부(李德孚 중의사)
[SOH] 안나는 비행기 사고로 세 아이와 남편을 모두 잃었다. 몹시 힘들어 하던 그녀는 유명한 정신과 의사의 치료를 받다가 나를 찾아왔다. 그녀의 주치의는 내게 “안나는 비행기 사고가 일어난 시간만 되면 발작합니다. 그녀를 어떻게 치료해야 할지 모르겠어요”라며 더 이상 치료할 능력이 없음을 인정하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비행기가 공중에서 위아래로 흔들리며 요동치다 추락했을 텐데 세 살에서 여덟 살 밖에 안 되는 안나의 세 아이가 모두 “엄마!”를 부르짖으며 공포에 떨었을 것을 상상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안나는 매일 비행기 사고가 난 시각이 되면 아이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린다며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며 고통스러워했다. 주치의는 안나의 치료가 차도가 없자 포기를 했다. 고심하던 그녀의 주치의는 누군가 한방치료를 소개하자 시험 삼아 안나를 내게 보낸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 병이 발작하는 시간에 오도록 했다. 처음 진료 하는 날 문진(問診)을 하는 도중 갑자기 그녀가 숨이 차도록 울음을 터트린 후 어지러워 앉지도 못했다. 몸은 싸늘하게 식었고 경련도 일어났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고 설질(舌質)은 담백(淡白)했다. 설태가 희고 두터웠으며 맥(脈)은 현활(弦滑)했다.
의사들은 이 증상을 비행기 사고로 가족을 잃은 충격 때문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현상을 생체시계가 심장에 왔을 때 발생한 것으로 보았다.
오시(午時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 사이)에는 우리 몸의 기혈(氣血)이 심경(心經)으로 흐른다. ‘황제내경(黃帝內經)’에는 ‘오장으로는 폐(肺)가 되고, 소리에서는 곡(哭)이 되며, 정서(志)는 우울하다’, ‘사기(邪氣)가 폐에 오면 슬퍼한다’, ‘폐병은 한낮에 심하다’라고 적혀 있다.
심(心)의 화(火)가 왕성하면 폐의 금(金)을 태우므로 폐가 손상되고 정서와 연관을 지으면 곡(哭)이 된다.
면담을 하면서 그녀에게는 가족을 잃은 슬픔 외에 그녀를 짓누르는 또 다른 스트레스가 있었다. 의사도 해결하지 못하고 자신도 통제할 수 없는 이런 압박감이 그녀를 아주 힘들게 했다.
나는 머리 위에 있는 백회(百會), 가슴 한가운데 위치한 전중(膻中), 아랫배에 있는 기해(氣海)에 침과 뜸을 이용해 사기(邪氣)를 없앴다. 우선 백회에 침을 찌른 후 두피를 따라서 침을 차입(刺入)했다. 전중혈을 자침할 때는 사법(瀉法)을 써서 중간 정도 자입한 후 약간 침을 돌렸고, 기해혈에서는 보법(補法)을 사용했다. 침을 놓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녀의 증상은 호전됐다.
나는 근본적인 치료를 위해 등에 있는 심수(心俞), 폐수(肺俞)와 손목 근처에 있는 신문(神門), 내관(內關)에 보사(補瀉)를 사용하지 않고 30분간 두었다. 그러자 환자가 잠이 들었다. 중의에서 정신을 안정시켜 주는 대표적인 처방인 온담탕(溫膽湯) 가감방을 사용하자, 그녀의 증상은 점차 누그러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모든 증상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 온담탕(溫膽湯) : 심 •담이 허(虛)하여 자주 놀라고 겁이 많으며, 꿈을 자주 꾸고 속이 허전하면서 답답하고 불면증일 때 쓰는 한의학 처방이다. 신경증으로 피로하고 위장장애가 있을 때도 좋다. 가감방이란 의서의 기본처방에서 약재의 양과 조합을 다르게 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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