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마르세 동굴에서 발견된 석판 중 모자를 쓰고 넓은 외투를 입고 목에는 장식품을 달고 있는 이 그림은 자세히 보아야 작가의 의도를 알 수 있다.
르워프는 처음 이 그림을 춤을 추고 있는 바이올린 연주자라고 판독했다.
그러나 대퇴부에 총 같은 것이 달려있어 므루제(Jiri Mruzek)가 그림의 각도를 달리해 머리의 윤곽부분을 다시 그려보니 그것은 한 손에는 방망이를 치켜들고 다른 한 손은 허벅지의 총에 대고 마치 무법자에게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경고 하는 있는 경찰 혹은 군인의 모습이었다.
르워프는 펭가드와 함께 1941년에 열린 프랑스 사전(史前)학회에서 마르세의 발견을 발표할 때 발굴한 지점을 강조하지 않았다.
그로인해 그들은 학회로부터 “마르세의 석판화와 알타미라 암벽동굴의 그림은 같은 모양이고 모두 현대인의 그림이다”라며 강대한 여론의 공격을 받았다.
사실상 마르세 문명의 발견은 석기시대에 대한 기성적 견해를 타파한 것으로 예를 들면 당시 사람들은 이미 과장된 수법으로 인물소묘를 했다.
대다수 남성인물은 수염이 날리고 구레나룻에 유별나게 튀어난 염소수염 혹은 짧은 수염을 했다. 의복은 품위가 있으며 투구를 쓰고 구두는 뒤축이 있는 것으로 현대인에 뒤지지 않는 복장이었다.
이런 고대문화에 대한 부정적인 예는 단지 한 두 차례에 그치지 않는다.
일찍이 1880년 리스본 사전문명대회에서 어떤 전문가들은 사전벽화의 발표자 사우투올라(Sautuola)를 맹렬히 공격했다. 그러나 불과 몇 년 후, 학계에서는 알타미라의 동굴벽화가 일만 육천 년 전의 인류가 그린 것이라고 인정했다.
그로 인해 마르세 문명의 발견에 대해서는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러다 2002년 독일의 뮤니히 대학 라판글룩 (Michael Rappenglueck) 박사는 석판의 그림을 다시 감정한 결과 사전인류가 제작한 것임을 확신하고 연구를 진일보하고 있다.
남아프리카의 림포포지방의 고원지대에는 세계에서 가장 풍부한 사전 벽화장식으로 불리는 보고가 있다.
1937년 로우어(Van Riet Lowe)에 의해 발견된 이 동굴에서는 약 이십오만 년 전의 철기시대, 석기시대, 구석기시대의 유물이 나왔다. 그 뿐만이 아니라 남아프리카에는 정묘한 명암과 복잡한 구도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석각예술 장소가 일만 오천 곳이나 있다고 하는데 실제 숫자는 이것의 두 배는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석각예술에는 벽화와 조각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벽화는 산구(山區)의 바람을 피할 수 있는 산의 바위에 그려져 있으며 피 또는 달걀 흰자위 같은 것들이 섞여 있는 혼합염료로서 접착제이다.
회화의 형상은 정교하고 치밀하며 내용은 풍부하다.
조각은 주로는 남아프리카 내륙 평원의 암석위에서 발견되었다.
조각의 기교에는 톡톡 찍은 것, 절단과 긁은 것 등이며, 비교적 긁은 방법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에 이르기까지 선인들이 어떤 공구로 창작을 진행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또한 예술작품 중에는 유기물질이 함유되어 있지 않아 연대를 측정하기도 어렵다.
고고학자 웬트(Eric Wendt)는 나미비아 남부의 아폴로11호 동굴에서 출토된 석각을 측정하였는데 그 연대는 대략 27,000년 전이었다. 이것은 이 석각이 적어도 프랑스 고대 거석예술과 비슷한 시대의 것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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