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대략 기원전 2300년부터 1500년 사이에 크레테섬의 미노아는 고도의 문명을 이룬 도시국가였다. 특히 최후 2백년 미노스 왕조 때에 정점에 달하였다.
당시 미노스는 에게해의 영웅이라고 불렸는데 아테네에게는 위협적인 존재였고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3대주의 선진국과 연계되어 있었다.
미노스왕조는 지리적 우월성을 이용하여 조선업을 발전시키는 한편 강력한 함대를 만들어 세계에서 최초로 해군을 보유했다.
일대를 풍미하던 미노스 함대 덕분에 미노스왕조는 이집트, 바빌론, 소아시아 등 과 무역왕래를 하며 해상의 패권을 차지하였다. 에게 해의 각국은 잇달아 미노스에게 속국이 되기를 자청하였고, 아테네 역시 그에게 공물을 바쳤다.
그런데 기원전 1500년 전후 그레테섬에 있는 모든 도시국가는 돌연 하루아침에 지구상에서 영원히 소실되고 말았다.
1967 미국 고고학자가 크레테섬 이북 130km 지점에서 기원전 1500년 전후 산토리니(Santorini)화산 대폭발 때 묻혀버린 번창했던 고대도시를 발굴했다.
당시 분출한 화산재는 62.6㎢에 달하는 면적을 일시에 덮어버림으로써 섬 위의 도시를 일순간에 두꺼운 화산재 아래로 파묻었으며 또한 폭발은 해일로 이어져 50m가 넘는 파도를 일으키며 지중해 연안의 여러 섬까지 그 영향을 미쳤다.
기록에 의하면 당시 이집트의 상공에도 3일간 검은 덩어리가 출현했다고 하니 그 거대함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1900년 영국고고학자 에반스는 크레테섬의 크노소스(Knossos)에서 수백 채의 가옥과 함께 약 2헥타르를 점유한 복잡한 구조의 왕궁터를 발굴하였다.
왕궁 벽에는 화려한 벽화가 새겨져 있었고 창고에는 대량의 양식, 올리브유, 술, 전차와 병기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었다.
또한 아연으로 둘러싸인 작은 건물에는 국왕의 무수한 보석, 황금과 인장이 나왔다. 그리고 이곳에서 발견된 쌍도끼 표시로보아 이 궁은 미노스왕국의 쌍도끼 궁전이라는 것이 학자들의 일치된 견해이다.
가장 가치 있는 것은 수만장에 달하는 문자가 기록된 진흙판인데 그곳에는 아테네가 여자 7명 남녀 어린이 각 1명씩을 공물로 바쳤다는 놀랄만한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이것을 증명하듯 신전이 발굴되었는데 제사용 도구와 유물과 유골들의 모습으로 보아 산 사람을 제물로 제사를 지내던 중 화산이 덮쳐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제사장과 조수 등이 모두 함께 파묻힌 것으로 판명되었다.
고고학자들의 발굴을 통해 재앙이 닥치기 전 미노아문명은 산 사람을 제물로 제사지내는 등 인명경시와 도덕이 파괴되었음을 볼 수 있다.
[ⓒ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soundofhope.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