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그리스 로마 시대 인류는 세계 최고의 건축물로 7개를 선정하였다.
그러나 현재 세기의 불가사의로 칭송받던 건축물들은 세월과 함께 거의 소실되었고 이집트의 대 피라미드만이 유유히 당시 문화의 휘황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집트 피라미드는 높이가 146미터 바닥의 한 면 길이는 230미터이며 52,900 m2를 점유하고 있고 총 230만개의 석재가 사용됐으며 무게가 거의 7백 만 톤에 달한다.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에 참여했던 수학자 몽즈는 대 피라미드의 체적이 2백60만m3나 되며 이것만 갖고도 프랑스의 국경을 3m의 높이에 0.3m의 폭으로 둘러 쌀 수 있다고 계산했다.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대 피라미드 건축 시기는 기원전 2,000여 년으로 제4왕조 쿠푸(Khufu)왕 시대로 알려져 있으나 이는 다만 그리스 철학자 헤르도투스의 기록에 의한 것일 뿐이다.
일반적으로 이집트인들은 문자나 그림 등으로 대부분의 기록을 남겨놓았다. 그러나 신기의 건축 대 피라미드에 대해서만은 남아 있는 기록이 전혀 없다.
이로 인해 역사가들은 전설의 실마리를 가지고 추론하고 있으나 이 거대한 건축물의 과정과 목적 등 그 문화의 지혜는 아직도 불가사의로 남아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결코 파라오의 무덤이 아니다
사학자들은 일반적으로 피라미드가 시체를 빨리 탈수하여 미라를 가속하는 능력 때문에 파라오의 묘지와 관계가 있다고 여기고 있다.
그러나 서기 820년 카이로 회교 총독 칼리프 알 아문(Caliph Al-Ma'mun)이 처음으로 통로를 뚫어 피라미드로 들어갔을 때 안은 꾸밈이 없는 수수한 방뿐이었다.
일명 왕의 석실 이라고 불리는 방 에도 매끈한 벽면에 단지 뚜껑 없는 석함 하나가 빈 채로 놓여 있을 뿐이다.
일부 사학자들은 이런 상황을 도굴당한 것으로 결론지었으나 현실적인 면으로 추측해 볼 때 도굴자가 들어 올 수 있는 다른 통로가 없고 설혹 도굴 가능성을 놓고 보더라도 부스러기 하나 남기지 않고 훔쳐 갈 수는 없으며 더욱 결정적인 것은 벽면에 장식이나 문자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대피라미드가 쿠푸 파라오의 분묘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할 것이다.
건축의 정밀도
1880년대 말 근대 이집트학의 대가로 일컬어지는 피트리(William Flinders Petrie)는 피라미드의 가장 놀라운 점의 하나는 방위에 있다고 말했다.
각 방위의 모서리 선은 정확히 동서남북을 가리키며 각 방위의 오차는 5분(1도는 60분) 이내로 초 정밀도를 유지하고 있다.
건축의 수평의 정확도 또한 그 오차가 3.8cm에 불과해 현대적인 건축기술로는 그것을 따를 수 없다.
일반적 상식으로 대 피라미드를 건설할 수 있을 정도의 높은 기술수준에 도달하려면 적어도 수 천 년의 발전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생각이다. 그러나 이집트 역사 기록을 다 뒤져보아도 이런 기술의 발전 과정을 찾아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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