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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신록-전라,충청인의 조상은 여진,중국인
이름 : 조선왕조신록
2007-01-24
이래서 전라도 들이 다른 한국사람들과 얼굴이 다르게 생겻고, 정치성향도 좌파가 많군 전라도 들은 지하철에서 봐도 바로 구별되지 충청도들고 어중간한 이유가 여기 잇엇군 여진족,한족이라니 이래서 전라,충청인들이 중국본토인들을 좋아하는군 고향이라서 --조선왕조 신록 역본-- 여진족들의 귀화 실태 ---------- <사간원이 비밀보고를 올렸다. "귀화한 오랑캐들이 해서(海西)로부터 경기, 호남(전라), 호서(충청)의 해변에 이르기까지 없는 곳이 없으며 그중에도 호남과 호서에 더욱 많습니다. 이들은 고기잡이로 생업을 삼으면서 나무를 베어 배를 만드는 자가 날로 불어나 4도에 뿌리박고 있는 배가 200여 척에 이릅니다. 이들은 해로(海路)에 익숙해 배 부리기를 말 부리듯 하여 우리나라 사람이 미치지 못할 지경입니다."> 광해군 6년 7월 25일 실록을 보면 우리 백성들이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귀화한 오랑캐의 마을에 들어가 사는 사례까지 발생했다. 숙종 26년(1700) 10월 12일 고창 선비 유신우가 "향화인도 우리 백성과 똑같기 때문에 세금과 요역을 부과해야 한다"는 상소문을 올린 사실이 발견됐다. <"향화인은 옛날 중국 사람으로서 표류하여 우리 백성이 된 자입니다. 우리 백성 된 지가 몇백 년이 되었는데 늘 향화인이라 일컬으며 어업을 하는 자나 농사를 짓는 자 모두 신역(身役)이 없습니다. 거주지 관원이 호적을 정리하여 갯가에 거주하는 자는 수군에, 육지 거주자는 육군으로 입대시키면 수만 명의 정예 병사를 얻게 될 것입니다."> 향화인 출신으로 수만 명의 정병을 얻을 수 있다면 전체 향화인 수는 수십 만을 넘었다는 계산이 성립된다. ------- 조선왕조실록에는 동남아, 이슬람교도뿐만 아니라 중국인이나 왜인, 야인(野人:만주지역에 흩어져 살던 여진족의 여러 종족) 중에서 조선에 귀화하여 정착해 살아가는 향화인(向化人)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야인들이 언제부터 우리 땅에 와서 정착하기 시작했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중종 30년(1535) 10월 9일의 기록에 의하면 "북청의 무해대에는 삼국시대부터 귀화인이 많이 살고 있었다"는 대목이 보인다. 실록에 야인들이 조선에 귀화를 요청하고 정착하기 시작한 사연은 태조 4년(1395) 12월 14일 실록에서 발견된다. 이 날 실록은 오랑합, 소오, 적개 등 네 명의 야인이 투항해 온 사건과 함께 북방 거주 야인들의 실태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삼국 말기에 평양 이북은 모두 야인들의 사냥터가 되었다. 고려 때 남방 백성들을 옮겨 살게 하고 의주에서 양덕까지 장성을 쌓아 국경을 지켰으나 삶이 불안하여 자주 반란을 일으켜 군사를 동원해 토벌까지 했다. 의주의 토호 장(張)씨가 조정 명령을 듣지 않고, 남쪽에는 왜구들이 약탈해 성곽이 불타고 해골이 들판에 깔려 있었다. 안변 이북은 여진이 점령하여 국가의 정령(政令)이 미치지 못했다. 임금(태조)이 즉위한 후 성스런 교화가 서북면 백성들에까지 미쳐 편안하게 살게 되고 밭과 들이 날로 개간되어 인구가 날로 번성했다. 그 결과 의주에서 여연에 이르는 천 리에 고을을 설치하고 수령을 두어 압록강으로 국경을 삼았다. 섬의 왜인들도 얼굴을 고치고 무역을 하게 되어 남도 백성들이 안심하고 살 곳을 정해 호구가 불어나고 바닷가의 땅과 멀리 떨어진 섬까지 개간하여 전쟁을 모르고 날마다 마시고 먹을 뿐이다. 동북면은 왕업(王業)을 처음 일으킨 땅으로서 위엄을 두려워하고 은덕을 생각한 지 오래되어 야인 추장이 먼 데서 와서 태조를 섬겼다. 그들은 언제나 활과 칼을 차고 잠저(임금이 되기 전에 살았던 집)에 들어와 좌우에서 가까이 모셨고, 정벌 때도 따라가지 않은 적이 없었다…. 임금이 즉위한 뒤 만호(萬戶:1만 명을 다스리는 지휘관이라는 원나라 관제. 조선에서는 종4품 무관직)와 천호(千戶) 벼슬을 주고, 여진의 머리를 풀어헤치는 풍습 대신 관대를 띠게 하고, 가축과 짐승 같은 행동을 고쳐 예의의 교화를 익히게 했다. 우리나라 사람과 혼인시키고 각종 역에 대한 부담을 줄여주었다. 야인 추장에게 부림 받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 모두 조선의 국민 되기를 원했다. 그리하여 공주에서 갑산에 이르기까지 읍을 설치하고 진을 두어 백성을 다스리고 군사를 훈련하며, 학교를 세워 경서를 가르치게 하니 문무(文武)의 정치가 잘되었고 천 리 땅이 다 조선의 판도에 들어와 두만강을 국경으로 삼았다. 압록강과 두만강 밖은 풍습이 다르나 풍문을 듣고 조정을 찾아오기도 하고, 혹은 자제들을 보내 볼모로 시위(임금을 호위하고 궁성을 수비하는 일)하기도 하고, 혹은 조정의 벼슬 받기를 원하고 혹은 내지로 옮겨오고 토산물을 바치는 자들이 길에 잇닿았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압록강과 두만강 밖에 거주하던 여진 종족은 여진, 올량합, 혐진 올적합, 남돌 올적합, 활아간 올적합 등이 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좋은 말이 새끼를 낳으면 다투어 조선에 바쳤고, 흉년이 들어 농사를 망치면 조선에 곡식을 빌리러 오기도 했다고 전하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여진족들은 조선에 귀화를 요청하여 정착생활을 시작했으니, 다음은 세종 15년(1433) 6월 4일의 실록. <임금이 말하기를 "파저강에서 온 김자환(金自還)은 귀화한 지가 겨우 2년 됐는데 생활이 어렵고 무재(武才)로 공을 세웠으니 상을 넉넉히 주는 것이 어떠냐" 하여 옷과 안장 얹은 말, 노비를 주었다. 김자환의 원래 이름은 소소(小所)인데 강계가 고향으로서 야인 임합라(林哈剌)에게 사로잡혀 여러 해 동안 살다가 아내를 데리고 강계로 도망 왔다. 임금이 스스로 온 것을 기쁘게 여겨 자환이라 이름을 지어준 것이다.> 추장 아들 볼모로 서울 보내 야인들이 조선에 와서 정착한 사례를 분석해 보면 야인 추장들이 자기 가족 중 유능한 인재를 볼모로 서울에 보낸 사실이 발견된다. 이 무렵 조선의 동북쪽 국경선 지역에서는 조선과 세력이 강한 여진 부족 간에 무력 충돌이 잦았는데 조선 조정은 이들을 달래기 위해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여진족 추장 가족들 중 신체 건강하고 무예가 뛰어난 인물을 볼모로 서울에 보내도록 협약을 맺었다. 조정에서는 야인 추장의 자제가 서울에 오면 임금의 곁에서 호위하고 왕실 수비를 담당하는 시위대에 배치했다. 요즘 용어로 말하면 청와대 경호실에 소속시켜 대통령 경호 임무를 맡긴 것이다. 여진족 입장에선 조선에서의 시위 생활은 장래가 촉망되는 인재를 문명국 조선에 보내 선진 문물을 습득하는 유학의 기회였다. 조선 입장에서는 말썽 많은 여진족들과 무력충돌을 방지하고 유사시 볼모로 삼을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따라서 조선에 시위를 살러 오는 여진족들은 활을 잘 쏘고 무예가 뛰어나며 말을 잘 타는 용맹한 전사(戰士)들이 대부분이었다. <임금이 말하기를 "야인들은 우리나라와 접경한 지가 오래되었고 국경 안에 사는 자도 있지만 의식(衣食)에 욕심이 있을 뿐이다. 우리 태조께서는 잠저 때부터 개국에 이르도록 야인들을 어루만져 여진, 올량합, 올적합 등의 무리 중 시위를 삼은 자가 자못 많았다. 우리도 성질이 순량하고 무술 재주가 뛰어나며 그 친족이 국경 안에 사는 자이면 시위를 삼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북방 사람이 와서 벼슬을 살고 양식을 주어 편안히 살게 하면 북쪽 변방이 걱정이 없게 되니 비록 1000석을 쓰더라도 무엇이 아깝겠느냐.">(세종 9년 9월 18일) 이처럼 야인들에게 시위를 살게 하는 이유는 '변방지역의 안정과 평화'가 목적이었던 것이다. 조선 정부가 시위를 사는 야인에게 벼슬과 양식을 제공하고 융숭한 대접을 해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진족 부락에서는 너도나도 서울로 몰려오기 시작했다. 오늘날 중국에 거주하는 조선족들의 '한국행' 붐과 사정이 비슷했을 것이다. 야인들이 무리를 지어 국경을 넘어오자 세종 8년 2월3일 관련부서에서는 다음과 같은 보고를 올렸다. <"자원하여 시위를 살고 있는 올적합, 알타리, 올량합의 여진인 중에는 늙었거나 재간이 없거나 생활이 곤란해 떠돌아다니다 시위를 살러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성심으로 귀의하는 사람을 제외한 그 밖의 잡종들은 경성과 경원의 절제사가 신분과 재능을 조사하여 마땅한 사람만 증명을 주어 서울로 올라오게 하소서."> 말하자면 출입국 심사를 강화하여 유자격자에게만 비자를 발급한 셈이다. 이처럼 입국심사를 강화하여 무예가 출중하고 특별한 기술이 있는 자, 글을 아는 자들은 입국시킨 반면 자질이 불량한 자나 사회에 물의를 일으킨 자, 범죄자들은 가차없이 송환하기 시작했다. 다음은 여진족들이 조선에 얼마나 많이 와서 살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기록이다. <"귀화 야인의 수가 너무 많아 녹봉을 받아먹고 하는 일이 없어 떼를 지어 술 마시는 것으로 일을 삼고, 술 취해 서로 다투어 사람을 상해하는 일까지 있습니다. 이들은 우리 민족이 아니기 때문에 국법을 두려워하지 않고 어두운 밤에 모여 마시고 방종하기를 꺼리지 않으니 걱정됩니다. 부득이한 관계가 있는 사람을 제외한 불필요한 잡류들은 정부와 의논하여 본토로 돌려보내소서."> 광해군 1년(1609) 4월 10일 실록은 '귀화 오랑캐들이 없는 곳이 없을 정도'라고 기록하고 있다. <사간원이 비밀보고를 올렸다. "귀화한 오랑캐들이 해서(海西)로부터 경기, 호남, 호서의 해변에 이르기까지 없는 곳이 없으며 그중에도 호남과 호서에 더욱 많습니다. 이들은 고기잡이로 생업을 삼으면서 나무를 베어 배를 만드는 자가 날로 불어나 4도에 뿌리박고 있는 배가 200여 척에 이릅니다. 이들은 해로(海路)에 익숙해 배 부리기를 말 부리듯 하여 우리나라 사람이 미치지 못할 지경입니다."> 광해군 6년 7월 25일 실록을 보면 우리 백성들이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귀화한 오랑캐의 마을에 들어가 사는 사례까지 발생했다. 숙종 26년(1700) 10월 12일 고창 선비 유신우가 "향화인도 우리 백성과 똑같기 때문에 세금과 요역을 부과해야 한다"는 상소문을 올린 사실이 발견됐다. <"향화인은 옛날 중국 사람으로서 표류하여 우리 백성이 된 자입니다. 우리 백성 된 지가 몇백 년이 되었는데 늘 향화인이라 일컬으며 어업을 하는 자나 농사를 짓는 자 모두 신역(身役)이 없습니다. 거주지 관원이 호적을 정리하여 갯가에 거주하는 자는 수군에, 육지 거주자는 육군으로 입대시키면 수만 명의 정예 병사를 얻게 될 것입니다."> 향화인 출신으로 수만 명의 정병을 얻을 수 있다면 전체 향화인 수는 수십 만을 넘었다는 계산이 성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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