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나서서 만들어놓고… 2년만에 “고구려연구재단 해산”
“모든 사업 동북아역사재단으로 통합” 정부 방침, 정작 동북아재단은 1년 넘게 조직조차 구성안돼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우리측 대응전략에 큰 구멍이 뚫린 건 아닌가. 고구려연구재단(이사장 김정배)이 신설 동북아역사재단에 흡수 통합된다는 정부 방침에 따라 간판을 내리기로 결정한 반면, 막상 동북아역사재단은 이사장 선출과 조직 구성, 예산조차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중국이 고구려에 이어 고조선·부여·발해사까지 왜곡의 수위를 높여 가고 있는 상황에서 자칫 역사 문제의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고구려연구재단, 2년 만에 간판 내려
김정배(金貞培) 고구려연구재단 이사장은 7일 “지난 1일 열린 이사회에서 이달 말까지 재단을 해산시키기로 결의했다”며 “고구려연구재단의 인력·재산·사업은 모두 동북아역사재단이 승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지난 2004년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하기 위해 교육부 산하에 설립된 역사연구기관인 고구려연구재단은 2년 만에 간판을 내리게 됐다. 김 이사장은 이보다 앞서 본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1년 전부터 정부로부터 계속 흡수 통합의 압력을 받았다”며 “이제야 비로소 북방사(北方史) 연구가 본 궤도에 올랐는데 해산하게 돼 아쉽다”고 말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1년 반째 ‘오리무중’
흡수·통합을 둘러싼 문제의 발단은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서 시작됐다. 노무현 대통령은 작년 3월 일본과의 독도 문제가 불거지자 “역사 왜곡과 독도 문제를 장기적·체계적으로 전담할 기관을 설치하라”고 지시했고, 김병준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을 단장으로 하는 ‘동북아 평화를 위한 바른역사정립기획단’이 출범해 동북아역사재단 설립을 준비했다. 당초 외교부 산하에 두려고 했으나 교육부 산하로 바뀌었고, 지난 5월 2일 국회에서 법률안이 통과됐다.
하지만 바른역사정립기획단이 출범한 뒤 1년 반이 지나도록 동북아역사재단의 실체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원래 1년 예산이 300~400억원이 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올해 예산은 50~60억 원 정도로 대폭 줄어들 전망이다. 조직은 이사장과 상근이사 밑에 전략기획실·대외협력실·총무국 등과, 연구를 전담할 한일관계실, 한중관계실, 독도·해양법실 등 6개 부서가 들어설 것으로 알려졌으나 아직 아무것도 확정된 것은 없다고 관계자들은 말하고 있다. “김병준 전 교육부총리의 진퇴 문제가 계속돼 왔기 때문에 보고조차 할 데가 없었다”는 것이다. 오는 22일로 잡혀 있던 동북아역사재단의 출범식조차 불확실한 상황이다.
◆정책과 연구, 동시에 할 수 있을까?
이달 안에 동북아역사재단이 정식 출범한다고 해도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동북아역사재단은 한 기관에서 ‘연구’와 ‘정책’을 모두 맡는 것으로 명시돼 있어서 자칫 학문적인 연구가 국가 정책에 의해 좌우될 우려를 낳기 때문이다. 신형식 상명대 석좌교수는 “정책개발 중심의 기관이 될 경우 기존 고구려연구재단의 방대한 연구 성과가 얼마나 계승될지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이사장을 제외한 고구려연구재단의 기존 연구직은 지난달 말 모두 동북아역사재단 직원으로 내정됐지만 채용계획 공고에 ‘정원 초과 인력이 있을 경우엔 결원이 발생할 때까지 임용을 연기할 수 있다’고 밝혀 사실상 인원 감축의 길을 열어놓은 것도 향후 문제가 될 수 있다. 한 학자는 이에 대해 “분명한 것은, 중국의 역사왜곡에 대응하기 위한 우리측 ‘본부’가 2006년 8월 현재 없어진 상태라는 사실”이라고 우려했다.
(유석재기자 [ karm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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