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京大虐殺의 慘狀입니다 日本人들은 왜 이렇게 良心이 없을까
日本人들은 이런짓을 저지르고도 良心의 呵責을 못느낄까
1937年 12月 13日부터 1938年 初 몇 달 동안 중국의 난징에서 저질러진 日本人들의 엄청난 양민대학살을 난징대학살이라 한다.
난징을 점령한 日本 軍人은 世界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잔학한 만행을 벌이기 시작했다 .수천, 수만 명의 젊은 남성들은 마치 가축처럼 묶여져 도시 외곽으로 끌려가 기관총 세례를 받았고, 총검 훈련의 연습물이 되었으며, 가솔린 세례를 받은 후 산 채로 태워지기도 했다. 그로부터 몇 달 동안 이 도시의 거리는 시체로 산을 이루었고 썩어가는 살 냄새로 악취를 풍겼다.
몇 년 후 극동군사재판(IMTFE)의 전문가들은 1937년부터 1938년까지 난징에서 26만 명 이상의 민간인들이 일본 군인들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밝혔고, 또 다른 조사에서는 당시 사망자가 35만 명을 넘어선다고 밝히기도 했다.
어떤 역사학자는 그 당시 난징의 사망자들이 손을 잡는다면 난징에서 항저우까지, 약 322km나 이어질 것이라고 표현했다. 또 사망자들이 흘린 피의 양은 1,200t에 이르고, 그 시체는 2,500량짜리 기차를 가득 채울 것이며 시체를 포개놓는다면 74층 빌딩 높이에 달할 것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난징대학살은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미국 교과서 대부분에 빠져 있으며, 제2차 세계대전과 관련한 미국 저작물 가운데에서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많은 일본 정치가들과 학자들, 산업 각 분야 지도자들은 명백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난징에서 대학살이 벌어졌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한다. 교사들이 역사 시간에 유대한 학살에 대해 가르치지 않으면 불법으로 간주되는 독일과 달리 일본은 수십 년 간 조직적으로 난징대학살에 대한 언급을 교과서에서 지워왔다. 박물관에서 난징대학살에 관한 사진을 떼어내고 원래의 기록들에 나타난 끔찍한 사실들을 교묘히 위장했으며 대중 문화와 관련해 이 학살과 관련한 모든 언급을 삭제했다. <천황의 이름으로>라는 다큐멘터리를 보면 다음과 같이 말하며 난징대학살을 전면 부정하는 학자도 등장한다. "만약 20∼30명이 살해되었다고 해도 일본에겐 엄청난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때까지 일본 군대는 아주 모범적이었다."
이러한 역사에 대한 왜곡은 난징에서 참혹하게 죽음을 당한 사람들에 대한 모독이며, 대학살을 잊는 것은 두번째 살인을 저지르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과거를 되풀이한다."
1937년 여름 루거우차오(盧溝橋)사건으로 중일전쟁의 단추를 연 일본 군은 파죽의 기세로 텐진(天津), 베이징(北京) 등을 거쳐 11월 상하이(上海)를 점령했다. 그들의 다음목표는 장제스(裝介石)국민당정부가 수도로 삼고 있던 난징(南京)이었다. 9만명의 일본군이 양쯔(陽子)강 남한의 이 도시를 3면으로 포위해 들어가자 총통 장제스는 성 함락 5일전 정부 를 이끌고 충칭(重慶)으로 퇴각했다. 잔류해 있던 약 70만명의 난징 시민과 군인들은 12월 13일 새벽 성벽을 타고 넘어온 일본군들을 앉아서 맞았다.
난징 점령 초기 6주일간 일본군은 무기력속에 빠진 중국군과 민간인들을 상대로 잔혹을 극한 살육행위를 저질렀다. 백기를 든 군 포로들은 물론이고 수천, 수만명의 젊은이들을 총검술훈련 혹은 '목베기 시합'의 대상물 로 삼아 무자비하게 희생시켰다. 어린 소녀, 노파 할 것 없이 여자들은 무차별로 강간한 뒤 살해해 버렸다. 사람을 산채로 파묻고 배를 가르거나 사지를 자르는가 하면 연료를 쏟아부은 뒤 불태워 죽이기도 했다. 한 생존 자는 훗날 "마치 하늘에서 비 아닌 피가 쏟아져 내린 듯했다"고 끔찍했던 참살현장을 되새기고 있다.
이렇게 희생된 사람이 당시 난징 잔류인구의 절반 가까운 약 30만명에 이르렀다. 미국 새너제이머큐리지는 "사망자들이 손을 잡으면 난징~항저우 (抗州)의 3백 22㎞를 이을 수 있고 흘린 피의 양은 1천 2백톤, 시체는 기차 2천 5백량을 가득 채울 수 있을 것"이라는 추정치를 싣기도 했다.
전쟁의 한 가운데서 야만과 잔혹성의 극치를 보였던 일본은 그러나 전후 그런 사실을 철저히 숨겼다. 뿐만 아니라 난징 대학살 자체를 부인하고자 했다. 지금 도쿄 도지사로 있는 작가 이시하라(右原愼太郞)가 "일본이 난징에서 대학살을 저질렀다는 이야기는 중국인들이 꾸며낸 거짓 말"이라고 한 건 그런 태도를 대표하는 예이다.
최근 일본의 우익단체들이 오사카에서 대대적인 집회를 열고 "난징 대학살은 20세기 최대의 거짓말" 이라며 사실 자체를 아예 부인하고 나서 내외로 큰 파문이 일고 있다. 그들은 "증거가 없지 않느냐" 고 큰소리로 되묻고 있지만 이건 과거를 의도적으로 왜곡하는 이시하라의 신념과 인식을 다시 확인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어쩌면 우익들의 이러 강변은 향후 일본이 나라를 들고 디뎌갈 위험한 행보를 예고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래저래 요즈음은 군사대국화를 겨냥한 일본 우익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판이다. 중국과 일본 당사국끼리 따질 일이라고 해서 우리가 손을 놓은 채 바라만 보고 있을 계제는 아닌 듯 하다.
[자료인용: 중앙일보(2000.1.28)]
*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06-07 1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