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는 북한산 순수비를 발견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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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추사 김정희가 북한산 순수비를 발견했다고 배웁니다. 그렇다면 그 증거는 무엇인가요?
가장 결정적인 근거는 순수비의 탁본입니다. 당시 김정희는 북한산에 올라 순수비에 쓰여진 76자를 탁본하고 나중에 다시 올라 2자를 더 해석한 것으로 나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순수비의 뒤에 새겨놓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순수비의 내용은 판독이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어떻게 천 년을 넘게 견뎌온 글자가 단 몇 십년 만에 모두 마모되어 버렸는지, 과연 그것이 진짜 궁금합니다. 김정희가 탁본하였다는 글자만 현재 남았다고 합니다. 순수비라고 하는 것에 김정희가 올라와서 해석했다라고 새겨 놓았다는 것입니다.
이는 고고학에서는 금기시 되는 일입니다. 어떤 이유이던지 유물은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야 합니다. 후에 어떠한 방법으로 그 위에 새겨진 글자를 해독할 방법이 생길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유물을 마음대로 훼손하는 것은 인디아나 존스에서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당대의 대학자이자 선비인 김정희가 그러한 몰상식한 짓을 하였다는 말인가요? 과연 조선시대 선비는 그런 수준이었을까요? 아니면, 누군가가 김정희의 이름을 빌어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한 일이 아닐까요?
이러한 것이 궁금해 고고학개론 수업(서울대 이선복교수)을 들은 일이 있습니다. 당시 고고학교수라는 분이 하는 이야기가.
" ...요즘 우리 역사를 크게 해석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이들은 틀렸다. 왜냐면 지금부터 예를 들겠다. 옛날 공자가 임금을 모시고 행차를 하는데, 기러기 한 마리가 가슴에 돌화살을 달고서(맞고서)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이에 왕(王)이 희한하게 여겨 그것을 잡으라하여 보니, 이에 공자가 이르기를 이것은 예맥족(우리의 조상이다)의 화살이라 하였다. 그 이유를 물으니 예맥족은 활을 잘 쏘고 이러한 돌화살을 쏘니 그들의 것이 분명하다고 하였다. 그런데, 김정희가 함경도의 어느 동굴에서 돌화살(石弓)을 발견하고 이것이 그때의 것이라고 증명하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예맥족은 함경도 근방에 살았다는 것인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만주니, 대륙이니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이 이야기를 듣는 저는 참 어설프다고 생각했습니다. 우선 모스크바에서 초코파이껍질이 나오면, 후대에 이것을 보고 20세기 모스크바는 한국의 영토였다고 주장할 수가 있는가?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초코파이껍질은 어디에서도 나올수가 있는 것입니다. 놀러갔다가 미국에서 먹고 버리기도 하고, 아프리카에도 버리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즉, 고고학만으로는 진정한 역사해석이 이루워질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돌화살의 발견으로 이곳이 예맥족의 중심이 될 수가 있는가?
그것보다는 불변의 진리인 기러기의 생태에서 그 위치를 재고해 봐야 합니다. 기러기는 동서(東西)로 이동하는 철새가 아니라 남북으로 이동하는 철새인 것이다. 그렇다면 당시의 예맥족은 공자가 살고 있는 나라보다 북쪽에 있다는 설명으로 대륙에 존재했거나 적어도 북만주인 것이다. 이러한 진리를 무시하고 기러기가 동서로 이동한 것처럼 설명한다면 이 교수의 생물성적이 참 의심스럽다. 이처럼 설명의 예가 없으면서도 굳이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 반론은 전혀 인정하려 들지 않는가?
아니면, 그들의 고고학의 이러한 해석방법이 너무나도 완벽한데 제가 이해를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까?
*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06-01 14: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