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노버’가 미국 스파이?
1만6000대 구매한 미 국무부
“안보위험” 기밀부서 배치안해
"미 정치권의 냉전적 사고가 롄샹을 `국가 스파이`로 만들었다." 지난 주말 중국의 주요언론들이 이 같은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세계적 컴퓨터 제조업체인 중국 롄샹(聯想, 브랜드명 `레노버')와 구매계약을 체결한 미국 국무부가 `국가안보 위협론'을 제기하며 해당 컴퓨터를 기밀 취급부서에 배치하지 않기로 결정한데 대한 반응이었다.
졸지에 간첩으로 몰린 레노버측은 양위안칭(楊元慶) 회장이 직접 나서 대대적 반론을 폈고, 중국 언론들은 일제히 특집기사를 내보냈다. 컴퓨터 한 대 더 팔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이 최근 군사안보위협론을 펴면서 중국을 자극한데 이어 이번엔 IT안보위협론으로 심기를 불편하게 한 것이다. 미 정부를 향한 롄샹의 전쟁이 어떻게 전개되고 결말을 맞을지 관심이 쏠린다.
◇전말=미국 국무부는 지난해 가을 중국의 세계 최대 컴퓨터 제조업체 레노버와 1만6000대의 컴퓨터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시가 약 1300만달러(약 130억원) 어치로 기종은 `씽크 센터 M51'. 이를 위해 CDW 가번먼트(CDW-G)라는 미국의 업체와도 손을 잡았다. CDW-G는 오랫동안 미 정부와 교육계 등에 관련 사업을 해온 업체다.
하지만 이런 사실이 공개되면서 미국 내 일각에서 중국으로의 기밀 유출 우려가 제기됐다. "기밀을 많이 다루는 국무부가 중국 업체의 컴퓨터를 사용하는 것은 보안상 위험하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중국 정부가 미국에 대해 스파이행위를 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심과 우려다.
먼저 미중경제안전조사위원회측이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미국 국무부에서 사용하는 레노버 컴퓨터가 미국 국가안전 문제에 위험요인을 제공하게 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위원회의 워쳐 위원장은 최근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만일 당신이 어떤 나라의 정보원이라고 가정해 보자. 미국 정부가 당신 나라로부터 1만6000대의 컴퓨터를 구입한다는데 그 기회를 그냥 흘려 보내겠느냐"고 노골적으로 중국의 간첩행위 가능성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어 위원회는 미 하원 예산결산위원회에 이 문제를 따질 것을 주문했다. 예결위의 프랭크 울프 위원장은 국무부에 보낸 서신에서 이렇게 썼다. "귀부가 중국 레노버 제품과 1만6000대의 컴퓨터 구매계약을 체결하고 이 가운데엔 900여대의 기밀부서 배치용 컴퓨터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겠죠. 우리는 정말 심각한 불안감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울프 위원장은 심지어 "이번 계약 건으로 인해 미국의 국가안전에 돌이킬 수 없는 재난적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음을 인식하시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공개입찰 과정에서 탈락한 미국의 컴퓨터 회사의 불만과 로비가 작용했다는 소문도 들렸다. 이중 삼중의 외부 압력에 몰린 국무부는 지난 18일 리처드 그리핀 차관보 명의로 의회에 서한을 보냈다. "IT업계의 환경이 꾸준히 변하고 있고 이런 변화에 대응해 미 국무부도 구매의 기준을 맞춰나가고 있다. 이번 구매 컴퓨터는 비 기밀부서에만 사용될 것이다"는 내용이다. 중국 정부가 레노버 지분의 일부를 소유하고 있어 이런 원칙을 적용한다고 국무부는 설명했다.
레노버는 지난해 5월 미국 IBM의 개인용 컴퓨터(PC) 부문을 인수, 지난해 델과 HP에 이어 세계 3위 컴퓨터 제조사로 올라선 업체다. 레노버의 IBM 인수 때부터 미국 정치권과 언론 일각에선 꾸준히 대중 안보위협론을 설파해 왔다.
◇사례=미국이 레노보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미국은 스파이 활동의 천국이다.
<#장면 /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지난 24일 중국계 여성정보원의 이중간첩 행위가 드러났다고 밝혔다. 이 여성은 FBI 요원과 20년 간 연인관계를 유지하면서 육체적 관계 등을 통해 미국의 기밀을 빼내왔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그녀의 이름은 중국계 미국인 `카트리나 륭'. 중국명으로 천원잉(陳文英)이다. 중국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대가로 지난 18년 간 FBI로부터 170만달러(약 17억원)나 받아챙겼고, 다시 중국쪽에 미국 정보를 넘겨주는 이중스파이 노릇을 했다고 한다. 카트리나는 자신과 오랜 기간 접촉해온 FBI 로스앤젤레스 지국 소속의 제임스 스미스 요원과 지난 20년 간 잠자리를 같이해 왔고, 이를 통해 미국 정부의 민감한 문건들이 중국측에 새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지난 2003년 체포됐으며 현재 법정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USA투데이 최근 보도에 따르면 미 국토안보부 산하 이민세관단속국(ICE)은 지난 한 해 동안 군수품과 첨단 기술을 해외로 불법 유출한 사례 2500건을 적발해 스파이 혐의로 101명을 구속하고 86명을 기소했다. 가장 활발히 스파이 활동을 벌이는 나라는 원래 러시아인데 최근엔 중국이 급부상하고 있다는 게 미 당국의 분석이다.
일례로 미국 플로리다주의 마이애미 검찰청은 지난 17일 중국인 빌 무(58)를 구속 기소했다. 무는 스파이로 알려졌는데, F-16 전투기와 블랙호크 헬기 엔진 70개,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사정거리 3680㎞의 AGM 129 크루즈 미사일을 구매하려 한 혐의다. 앞서 지난 1일 미 연방법원은 중국계 사업가 4명에 대해 레이더 교란 장치에 들어가는 기술을 중국으로 몰래 빼돌린 혐의로 유죄를 선고했다.
티머시 버레즈네이 연방수사국(FBI) 방첩담당 부국장은 "중국은 최근 미국의 방첩 활동을 가장 위협하는 나라로 떠올랐다"면서 "지난 2년 간 미국의 첨단 기술을 노린 중국계 스파이 25명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ICE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조사한 중국계 스파이 사건이 400여 건에 이른다고 했다.
FBI는 이에 따라 4개 주요방위산업체와 연락체계를 구축했고, 워싱턴과 뉴욕 뿐만 아니라 불법활동이 우려되는 모든 곳에 방첩팀원을 배치했다. FBI 동아시아 담당 책임자인 로널드 게린은 "미국의 기술이 마구 유출되면서 유사시에 우리 기술로 우리가 공격 당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며 "이는 미국의 국가안보를 크게 위협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허민특파원/minsk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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