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왕궁에 발해 석비...中 “내놔라” [경향신문 2006-05-28 18:51]
일왕이 살고있는 도쿄 왕궁에 발해의 석비(石碑·왼쪽 사진)가 보관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북한은 2004년 함북 화대군 금성리에서 발견된 발해시대 고분벽화와 벼루 등 출토유물 사진을 공개했다.
이 가운데 석비는 발해를 자국 역사로 기술하고 있는 중국이 한국과의 역사논쟁에서 우위에 설 수 있는 물증으로 간주, 일본에 반환을 요청하고 있어 주목된다.
아사히 신문은 28일 “일본 왕궁내 정원인 후키아게교엔(吹上御苑)에 높이 1.8m, 폭 3m의 홍려정비(鴻●井碑)라는 석비가 보관돼 있으며, 현재 중국이 반환을 요청하고 있다”고 전했다. 석비에는 서기 713년 당나라가 발해 국왕에게 발해군왕(君王)의 지위를 부여하며 발해국과 군신관계를 맺었던 사실이 기록돼 있다고 아사히는 전했다.
일본 방위연구소 도서관에 보관돼 있는 ‘메이지 37~38년(1905~06년) 전리품 목록’에 따르면 홍려정비는 옛 일본군이 러일전쟁 격전지였던 중국 랴오닝성 뤼순(旅順)에서 갖고 와 1908년 일왕에게 전리품으로 헌상했다. 홍려정비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중국에서는 랴오닝성을 중심으로 석비 반환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랴오닝성 다롄(大連)시 정치협상회의는 지난 1월 홍려정비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으며 댜롄신문은 3월 특집기사를 통해 “국보의 반환을 위해서는 단결이 중요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중국의 이같은 움직임은 발해 이전 이 지역에 있던 고구려 역사를 둘러싼 한국과의 논쟁에서 우위에 서겠다는 전략적 차원에서 이뤄진 것으로 풀이된다. 아사히도 중국의 입장에서 볼 때 이 석비는 “발해는 당의 지방정부로 중국 역사에 속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유력한 물증이 된다고 분석했다.
일본 왕궁을 관할하는 궁내청은 아사히의 취재에 대해 홍려정비는 현재 일본 국유재산으로 분류된 채 보관돼 있으며 출입 규제와 함께 공개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측의 반환 움직임에 대해서도 “그같은 보도는 접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발해복식 연구자인 김민지씨(미국 거주)가 ‘내나라’에 게재된 발해고분 자료를 발견, 27일 국내 언론에 공개한 사진은 흰 각반을 차고 검은 신발을 신은 사람의 다리가 그려진 벽화(오른쪽), 연꽃 위에 서있는 신선 그림, 벼루와 금동연꽃무늬장식판 등이다.
북한에서 발해 고분으로는 처음 발견된 이 고분은 발해복식사 등 발해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될 전망이다.
〈도쿄|박용채특파원·도재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