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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일 가까이 지냈던 이 도시는 항상 봄날씨라 반바지와 반팔 차림으로 지내는 것이 가능했다.
아침 저녁은 기온이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상쾌했고 한낮에는 햇빛 있는 곳에서만
조금 더운 느낌이 들어 그늘진 곳으로 가면 더운 줄 모르고 지낼 수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이 곳에 머물면서 주로 입장료가 없는 곳인 노점이 있는 길거리, 오전부터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
모이는 공원, 과일과 고기를 파는 시장, 깨끗한 차림의 반반한 아가씨들이 오는 백화점,
전철과 케이블카를 타고 가는 서민들이 사는 산동네등으로 동남아에서 입던 검은색 반바지에
몇 년간 입은 반팔 그리고 군데군데 공업용 미싱으로 기운 자국이 있는 20여년된 이스트팍 가방을
어깨에 둘러메고 구질구질하고 어리버리한 모습으로 순회공연을 하였다.
처음 도착해 한 동안은 조금은 안전한 골목에 9불 정도의 이 구질구질한 나그네에겐 비싼 곳에 묵었다.
넓은 방에 2개 채널에서 동물의 왕국도 나오는 테레비에 더운물 샤워 그리고 매일 시트도 갈아주고
청소도 해주고 특히 복도를 걸을때는 떡치는 비명소리도 덤으로 들을 수 있는 과분한 곳이었다.
지내다 보니 9불 숙소가 비싸게 느껴졌고 토요일날 손님 물건들을 허락도 없이 1층 카운터로
옮기고 해서 좀 위험하고 지저분한 다음 골목에 조금 저렴한 7.5불 정도하는 숙소로 옮겼다.
방은 좀 작고 명함에 있는 광고와 달리 더운물이 안나왔으나 상당히 깨끗하고 무엇보다도
이 구질구질한 나그네가 좋아하는 밖을 내다 볼 수 있는 작은 발코니가 있었다.
벽에 걸린 21인치 소니 테레비에선 2개 체널에서 9불짜리 숙소와 같이 24시간 동물의 왕국이 나와서 심심치 않게 지낼 수 있었다.
일본 캡슐호텔에서 묵을때는 동물의 왕국에 오래전엔 없던 쓸데없는 무슨 모자이크 처리를 하는데
이 남미에선 모자이크 처리도 없거니와 심지어는 진짜 동물의 왕국도 볼 수 있었다.
개좆 빤다는 얘기는 들었어도 실제 개좆 빠는 모습이 여과 없이 나와 이렇게 복도 많은 개는 처음 보고
구질구질하게 순회공연을 다니는 만물의 영장인 이 나그네는 개만도 못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숙소에 묵으면서 1층 맥주바에서 새벽까지 라틴 음악이 나와서 방에서 무료로 즐기 수가 있었다.
2시 이전엔 잠 들기 어려서 카운터 앞 의자에서 들락거리는 손님들 구경하고 2명씩 2교대로
근무하는 여직원과 손짓 발짓으로 대화를 하거나 1층 맥주바에 가서 750원 정도 하는 차가운
작은 병맥주를 마시면서 스피커에서 나오는 애절한 삐뻬 부에노의 음악을 감상하곤 했다.
새벽 2시까지 음악이 나오고 해서 늦게 일어나면 씨엔엔의 그림과 동물의 왕국을 좀 보고
충혈된 눈으로 숙소를 나와 건너 상점에서 100원에 파는 봉지물 2개를 사서 플라스틱통에 담고
큰 길가 모서리 빵집에서 직접 만들어 개당 100원씩 파는 눈물의 도나츠를 몇 개 사서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 꾸역꾸역 모이는 공원으로 향한다.
빵집 바로 가기 전 길 양쪽에는 이 구질구질한 나그네의 동료들인 허름한 차림의 준노숙자들이
식사를 하는 식당 2군데가 마주 보고 있는데 이곳을 지날 때 항상 가던 길을 멈추고
허름하고 구질구질한 식당안을 들여다 보곤 한다.
2,3평 정도인 아주 작은 이름이 없는 노네이무 식당에서 지저분한 벽을 바라보고
반찬도 없는 소박한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보니 남의일 같지 않고 가슴이 찡하다.
식당 밖에서 구질구질한 모습으로 식당안을 들려다 보니 식사중인 준노숙자의 모습의 동료들이
개만도 못한 허름한 차림의 충혈된 눈의 이 구질구질한 나그네를 보고 안으로 들어와서 식사를
하라고 부른다.
동료들이 먹는 음식을 밖에서 유심히 들려다 보니 닭의 가장 하찮은 부분인 닭발과 닭목가지등을
푹 삼은 고깃국을 싸구려 프라스틱 그릇에 주는 음식을 먹고 있어서 가격이나 알아볼려고
꽌또 에스 라고 물어보니 맥주바에서 마시는 작은 뱡맥주값과 같은 750원이란다.
20년된 작은 배낭에 도나츠 2개를 쑤셔 넣고 공원 구석진 벤치에 가서 100원짜리 달달한 커피를 시켜서
300원으로 아침을 해결할려는 이 구질구질한 나그네의 순회공연 수타일과 살림살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자꾸 안으로 들어와서 한그릇 찌끄리라는 준노숙자의 동료들의 성화가 한편으로 야속하다.
가슴 찡한 준노숙자 식당을 뒤로 하고 공원쪽으로 가다보면 상가 안에 1평 정도 크기의 여러 이발소들이 자리잡고 있다. 가던 걸음을 멈추고 답이 안나오게 생긴 게이가 이쁜 표정을 짓더니
이발소를 충혈된 눈으로 물끄럼이 쳐다보니 이 구질구질한 나그네를 느끼하게 쳐다보면서
머리를 깎으라고 해서 가격을 물어보니 1불 50을 불러 1불에 합의를 보고 나중에 와서 깎는다는 하였다.
상가를 지나 좀 더 걸어가면 동상과 분수가 있는 공원이 나와 나무 그늘이 있는 구석진 벤치에 자리를 잡고 마후병에 커피를 담아 유모차 위에 넣고 다니는 행상을 불러 소주잔보다 조금 큰 작은 프라스틱잔에 100원 하는 따뜻한 커피 1잔을 시켜서 빵집에서 사온 사탕가루가 골고루 뿌려진 눈물의 도나츠와 함께 찌끄렸다.
보통 도나츠 2개와 커피 한잔 해서 300원으로 늦은 아침을 찌끄리는데 하루는 중년의 남자가
카우보이 모자와 안경을 씌운 인형을 개에다 태우고 보기드문 뚜엣 유료 순회공연을 하고 있었다.
아침에 이 구질구질한 나그네보다 복도 많은 개를 테레비로 보고 카우보이 인형을 태우고 싸구려 길거리 순회공연을 하는 이 개를 보니 구질구질하게 순회공연을 다니는 이 나그네가 보기에도 완전 개팔자로 보였다. 손님들이 사진을 찍으면 중년 남자가 동전을 쥔 손으로 찰랑찰랑 소리를 내며
공연비를 걷었는데 섭섭하게도 무료 순회공연중인 개털이자 준노숙자이고 복도 없는 이 구질구질한 나그네에게도 사진 촬영비를 요구하였다.
공원에서는 주로 지나가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구경하고 기억을 되살려 전날 밀린 수첩정리를 하였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벤치에 앉아있는 충혈된 눈의 구질구질한 모습의 이 나그네를 보면서
자기들끼리 치노(Chino)라고 하는데 하루에도 수 십번 듣는 말이다.
여기서 우연히 만난 어떤 한국 젊은이는 자기에게 치노(중국인) 라고 부르면 비록 치노가 중국인이라는 뜻이지만 동양인을 깔보는 표현이라면서 화를 낸다고 한다.
이 구질구질한 나그네도 어떨때는 치노하고 부르는 것이 강아지 부르는 것처럼 느껴질때가 있다.
이 공원에서 눈물의 도나츠 2개와 따뜻한 커피로 간소하게 아침을 해결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2,3시간을 보낸 후 다른 공원이 있는 전철역쪽으로 간다.
역 계단 앞에는 항상 카우보이 모자를 쓴 현지인이 기타를 치며 흥겨운 라틴 노래를 부르며
공연을 하고 있고 어떤 날은 누구를 믿으라고 옛날 도시락만한 책을 들고 홀로 공연을 하는 사람도 있다.
계단에 앉아서 이곳에서도 1잔에 100원 하는 달달한 커피를 시켜 마시고 1시간여 동안 계단 아래에서
하는 공연을 구경하고 옆쪽에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공원으로 자리를 옮긴다.
집구석에 있을때는 1년에 손가락 꼽을 정도로 거의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가끔 비오는날에 마시는데
이 곳에 와서는 길거리 커피가 1잔에 100원으로 저렴하고 물 대용으로 자주 마시게 된다.
이 공원은 뚱뚱한 모습의 동상들이 많은 곳으로 여러가지 모습을 한 사람들이 많이 지나가서
벤치에 앉아 사람 구경만 해도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지낼 수 있는 곳이다.
여러 동상중에 남녀 거시기가 보이는 뚱뚱한 동상이 마주 보고 서있는데 남자 거시기는 뇨자들이
하도 만져서 동상 본연의 색이 하얗게 바래지기까지 하였다.
단체로 온 여고생 정도의 학생들은 거시기를 보이고 서 있는 뚱뚱한 남자 동상과 함께 사진 찍을때
짧은 가운데 다리를 잡고 찍거나 심지어 어떤 여학생은 물건을 잡고 빠는 흉내를 내면서 사진을 찍는 모습을 먼 벤치에 앉아 달달한 커피를 찌끄리면서 충혈된 눈으로 바라보니 아침에 동물의 왕국을
보고 나와서 그런지 하얀 거시기를 보이고 서 있는 사람 동상이 꼭 서있는 복 많은 개처럼 보였다.
사진사, 봉지물 장사, 커피장사, 담배장사,사탕장사등 여러 장사하는 사람들과 작은 배낭에
싸구려 위스키를 가지고 와서 구석진 벤치에서 작은 잔에 마시는 사람도 있고 공원에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 심지어는 힘자랑하는 차력사도 있었다.
공원 옆에는 박물관이 있는데 입장료를 내는 곳이고 이 구질구질한 나그네도 안구질구질한 사람과
같은 요금이라 물론 안들어갔다.
동상이 있는 이 공원에서 주로 7시 정도까지 있다가 숙소로 가기 전에 길건너에 자그마한 현지시장을
보러 간다. 입구에 있는 노점에서 순대를 500원치 사서 배낭 깊숙히 넣고 과일 가게들이 몰려 있는 곳을 지나가면 길 끝나는 부근에 1개 250원 하는 구루마 망고 장사가 있어 1개를 구입하고 망고를 파는 젊은이에게 맛 있으면 내일 다시 오겠다고 약속도 한다.
옆 길로 시장을 돌아 나오면 왼쪽으로는 노점 식당들이 있고 오른쪽으로는 자그마한 맥주바들이
줄지어 있어 흥겨운 라틴 음악이 흘러나와 흥청거린다.
가던 길을 멈추고 안을 들려다 보면 아름다운 콜롬비아 여인이 서빙을 하고 의자 사이의 좁은 통로에서
음악에 맞쳐 남녀가 하나가 되어 춤을 추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큰 길가로 나와서 숙소로 향하다 보면 길가에 통닭들이 어지럽게 돌아가고 옆에 손님이 살려고 기다려서
이 구질구질한 나그네도 옆에 가서 통닭을 보면서 손님에게 가격을 물어보니 5달러 정도라고 하고
바라또 라면서 아주 싸다고 한다.
저녁거리로 순대와 망고를 사서 그냥 지나쳐서 오는데 상점 앞에 한 남자가 맥주 1병 포함해서 2000원에 쇼를 한다고 광고를 한다. 맥주포함 2000원 정도면 물가가 싼 동남아에 비해도 저렴한 요금이라 지하로 내려가서 어두운 실내를 보니 무대에서 몸매 좋은 콜롬비아 여인이 완전 누드로 춤을 추고 있었다.
어두운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고 2000원을 내니 차가운 병맥주를 갖다 준다.
나체로 춤추는걸 감상하니 그동안 돌아다니면서 풀렸던 충혈된 눈이 다시 충혈되어 가는 것 같았다.
철봉같은 기둥을 잡고 요염하게 몇 분간의 춤을 춘 여인들이 내려와서 테이블을 돌기 시작하였다.
동남아에선 테이블을 돌면서 음료수를 사줄 수 있냐고 묻는것 같던데 이곳에서는 테이블을 돌면서
수금을 하더니 급기야 구석에 자리 잡은 준노숙자이자 개털인 이 구질구질한 나그네에게도 왔다.
근처 테이블에서 지폐를 주는걸 보아 수금하는걸 알았지만 혹시 그냥 지나갈줄 알고
어리버리한 표정과 충혈된 눈으로 옆에 야하게 서 있는 아가씨의 가슴을 보면서 더듬거리는 말로
노 스페니쉬 라고 스페인어를 모른다고 했다.
쇼를 끝내고 수금하러 온 야한 차림의 아가씨는 수금하고 스페인어를 모르는것 하고 아무 연관이 없다는듯이 손에 지폐를 보이기 시작했다. 아가씨가 거쳐온 테이블을 구석에서 보니 손님들이
돈을 주길래 안 주기도 뭐해 500원 정도의 지폐를 주었다.
야한 아가씨가 지나가고 무대에서 쇼을 마친 다른 아가씨가 피곤하게도 다시 테이블을 돌기 시작하였다.
또 구질구질한 나그네가 있는 테이블에 와서 울며 겨자먹기로 다시 500원을 주면서 곰곰히 생각해 보니 이렇게 줘야 될 상황이면 먼 구석 자리로 찌그러져서 테이블을 잡을게 아니라 도끼자국등이 자세히 보이는 춤추는 무대 바로 앞에 자리를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숙소 주변 몇 군데만 공연을 다녀도 하루하루가 금방 지나갔다.
오전에 근처 공원을 안가면 버스를 타고 외곽에 큰수퍼마켓과 붙은 백화점이나 전철과 케이블카를 타고
센트로에서 찌그러져 사는 따뜻한 서민들의 고향인 아름다운 산동네로 구질구질하게 순회 공연을 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