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살면서 기름값이 비싸다는 걸 별로 느끼지 못했으나 요즘은 피부로 와 닿는다.
기름값이 올라도 별로 기름과 관계가 없어서 몰랐는데 기름값이 이렇게 오르니 당장 순회공연 갈 때
비행기값도 오르고 현지 공연시에도 버스비등 많은 것이 오르는 것 같다.
이렇게 기름값이 올라 어려운 시기에 바닥에서 1%로 존재하는 이 구질구질한 나그네의 생활은
그야말로 밑바닥에서 쫙 엎드리지 않으면 길이 없을 것 같아 가장 가까운것 부터 실행에 옮겼다.
그동안 5개월 가까이 수북이 자라 머리도 무겁고 머리감기도 귀찮고 해서 15년 전에 사서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바리깡을 찾아 1.3cm짜리 프라스틱을 끼우고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스스로 거울을 보고 시원하게 밀어버렸다.
여의도로 중학교를 다니던 시절에 몇 번 거울을 보고 스스로 바리깡으로 깎은 후 근 30년 만의 일이다.
머리 얘기중에 지금도 잊혀지지 않고 뇌리에 남는 슬픈 얘기가 있다.
몇 년 전에 미얀마 북쪽 기온이 선선한 도시로 구질구질한 모습을 하고 홀로 공연을 간 적이 있다.
시장에서 조금 벗어난 길을 걸어가는데 아이들이 목욕도 하는 우물가도 있고 근처에 작은 이발소도 있어서
머리나 깎고 우물가에서 비누없이 대충 머리를 감으면 되겠다 싶어 이발소로 향했다.
의자가 1개뿐이고 오래된 거울이 있는 소박하고 허름한 이발소에 들어가서
당시에는 얼마냐는 현지어도 안되고 “하우 마치” 하면 완전히 외국인으로 보일 거 같아
주인 남자에게 다가가 머리 깎는데 얼마냐는 표시로 두 손으로 지폐를 세는 흉내를 내었다.
그러면 “웰컴투 동막골” 이라는 영화에서 서당 선생이 외국인에게 “하우 아 유” 하고 물으면
외국인은 당연히 “파인 탱큐 앤 유” 로 대답한다고 하듯이
나는 당연히 주인쪽에서 호주머니에서 이발 비용만큼 지폐를 꺼내 보여줄 줄 알았는데
손님으로 찾아온 나를 주인은 손짓으로 가라고 해서 나온 적이 있다.
그 주인은 내가 모습이 구질구질하고 옷도 오래되고 허름해서 돈을 달라고
이발소에 들어 온 줄 알고 가라고 한 것 같다.
지금은 비록 가방줄은 짧아도 현지어로 얼마냐와 숫자 정도는 알게 되어서
그런 일이야 없겠지만 구질구질하게 다니니 별의별 일을 다 겪게 된다.
혹시 장사하는 분 중에 자기 가게에 찾아 온 구질구질한 외국인이 한국말은 모르고
손짓으로 돈을 세는 흉네를 내면 돈 달라고 하는 줄 알고 내쫒지 말고 주머니에서 돈을 보여주거나
종이에 숫자를 써가면서 계속 영업하길 바란다.
그럼 지난 번에 이어 동남아 순회공연 진도 나간다.
아침 일찍 일어나 숙소에 열쇠를 반납하고 배낭을 가지고 약속 장소인 경찰서 앞으로 갔다.
15분을 기다려도 안 와서 그가 묵고 있는 숙소로 갔더니 주인 여자가 아침 일찍 집으로 갔다고 한다.
저녁 시간도 아니고 이렇게 아침 시간에 약속이 어긋나니 다시 숙소로 가기도 그렇다.
그래서 여행자들이 잘 안 가는 북쪽의 작은 도시 몇 군데나 돌아 볼려고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작은 미니 버스를 타고 15분쯤 가니 검문소가 나오고 권총을 찬 경찰 1명이 올라 타서 10여명
가까운 승객중에 가장 구질구질하고 어리버리하게 보였던지 큰소리로 가방 가지고 내리란다.
처음에 여권을 보여 달라고 해 보여주면서 “까울리”라고 한국인이라고 하니 한국인으로 안보였던지
배낭을 달라고 하면서 안에 있는 물건을 책상 위에 엎고서 1명은 지켜보고 2명이서 10여분간 뒤졌다.
전 날 은행에서 바꾼 태국돈을 하늘에 비쳐보고 가슴을 더듬는등 외국인에게 무례할 정도로 짐을
샅샅이 뒤졌다. 여자 짭쎄가 구석구석 더듬으면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미니버스는 길가에 서 있고 시간 맞쳐 가야 하는 50대의 운전수는 시간이 길어지자 차에서 내려
담배를 피면서 외국인에게 저렇게 심하게 할 필요가 있냐는 불만 섞인 얼굴 표정으로 우리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지금까지 20여년간 돌아 다니면서 일본 야마구치현 하기(萩) 경찰서에서 숙박시설도 없는 작은
섬(相島)에 가서 동네 순찰을 하고 어느 처마밑 의자에서 노숙을 하고 북조선인처럼 생겼다는 이유로
주민이 신고했는지 난생 처음으로 경찰서 조사실에 가서 조사를 받은 이후 가장 심하게 검사를 당한 경우라
이후로는 이런 국경쪽으로 다닐때에는 공항으로 입국때와 마찬가지로 별로 내키지는 않고 불편하지만
메이커 티를 입고 머리도 감고 항상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세이코 시계도 차게 되었다.
2군데 더 검문소가 나왔지만 미리 연락을 받았는지 그냥 통과하고 굽이굽이 산길을 돌아 터미널에 도착했다.
이곳에서는 에어컨이 있는 이스즈,니싼,볼보,벤스등 고속버스가 여러도시로 연결이 되었다.
먼저 방콕 숙소에서 일하는 젊은이가 권유한 아름다운 호수가 있고 여자들이 무척이나 흔하다는
작은 도시에 해가 떨어질때 쯤 호숫가옆을 돌아 터미널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자 한 오토바이 운전사가 다가와서 싼 숙소로 가기로 하고 근처 시내로 향했다.
역시 여자가 흔해서인지 가면서 계속 여자 얘기를 하면서 10000원 정도라 한다.
아침 일찍 떠나서 12시간 가까이 버스를 타 피곤하고 고정하고 노실해서 한 귀로 흘러보내고
시장 근처의 화장실은 있지만 별로 깨끗하지 않는 3000원짜리의 숙소에 일단 짐을 풀었다.
짐을 풀고 호숫가 쪽으로 걸어가니 호숫가 옆 공터에서 노래도 하고 야시장도 열리고 있었다.
외국인도 없는 이런 작은 도시에 오면 마음도 편하고 내가 제대로 공연을 하는구나라는 생각도 든다.
노래를 부르는 무대 앞에는 많은 테이블이 놓여 있고 짧은 검은 치마를 몸에 짝 붙게 입은
쌕시한 차림의 여대생들이 생맥주등을 주문받고 있었다.
잠시 기다려 그 중 반반한 여학생을 불러 3잔 정도 정도 나오는 3000원하는 피쳐 하나를 주문했다.
주문하지도 않은 얼음을 프락스틱통에 담아 피쳐랑 같이 가져왔다.
근처에서 500원 정도 하는 튀김 안주를 사서 생맥주을 마시면서 알아듣지 못하는 노래와 춤을 감상했다.
원래 병맥주나 캔으로 마시는데 이곳 공연장은 노래와 춤을 서비스로 하는 대신에 약간 비싼 가격인
생맥주를 피쳐로 팔고 있었다. 피쳐 하나를 마시고 자리를 뜨기도 뭐해 손을 흔들어 다시 반반한
아가씨를 불러 하나 더 시키고 주변에서 파는 안주 거리를 사와서 남은 생맥주를 마신 뒤에
한국의 소박한 5일장 같은 야시장을 쉬엄쉬엄 한 바퀴 둘러보고 근처 호숫가로 걸어갔다.
어두워져서 호수를 자세히 볼 수 없어서 잠시 보고 10여분 거리인 숙소쪽으로 향했다.
숙소에 다다르니 밤에만 장사하는 쌀국수 구루마를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700원 정도 하는
따끈따끈한 쌀국수를 하나 때리고 구질구질한 숙소로 들어갔다.
저녁에 맥주를 한 경우에는 간단하게 쌀국수나 덥밥등을 하는게 몸에 도움이 되는거 같다.
아침 일찍 일어나 밖에 나가 보니 바로 옆이 시장이라 길가 노점에서 문방구보다 싼 수첩도 2개 사고
내가 좋아하는 동그란 주먹만한 찹쌀 튀긴것에 깨가 묻혀있는 것이 있어 3개에 150원을 주고 사서
바로 1개는 입에 달고 시장안과 밖을 순찰을 돌았다.
길가의 작은 찐 옥수수도 5개 묶음에 300원 정도라 이것도 한 묶음 사서 아직 문을 열지 않은
금은방앞 계단에 앉아 장보러 시장에 온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옥수수와 찹쌀 튀긴걸로 아침을 때웠다.
그리고 걸어서 시내를 순찰하다가 호텔이라고 써 있는 꽤 깨끗한 건물의 숙소가 있어 들어가 보니
여기도 같은 3000원이라고 해 여권을 보여주고 방값 3000원 줘서 예약하고 숙소를 옮겼다.
한 번 숙소를 정하면 어지간하면 잘 안 옮기는데 전 날 밤에 얻은 방이 너무 누추해서 옮겼다.
낮에는 시내 순찰과 어제밤에 자세히 못 본 호숫가 좀 보고 더워서 시원한 쇼핑센터에서 시간 좀
보내다 저녁에는 다시 호숫가에 가서 야시장에서 500원 정도치 쏘세지 튀긴것을 사고
근처 구멍가게에서 1200원짜리 병맥주를 사서 컵과 얼음은 그냥 얻어 호숫가 돌담에 홀로 앉아
근처에서 공연하는 노래 소리를 들으면서 맥주를 마셨다.
화장실이 있는 숙소가 3000원으로 싸고 호수도 있었으나 그리 땡기는 곳이 아니라
다음날 버스터미널로 걸어 가서 라오스 국경쪽으로 가는 에어컨이 나오는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이 도시로 가는 건 몇 년전 네팔 룸비니에서 만난 태국.이탈리아 커플중에 30대 초반의 상냥한
태국여자가 나의 구질구질한 행색과 순회공연 수타일을 보고 내가 그곳에 가면 좋아할거라고 하면서
특별히 권유한 도시다.
아마 라오스랑 가까운 이쪽 지방과 몇 일후에 간 미얀마 국경쪽에 머리를 기르고 속세를 떠난
도인들이 산다는 한국의 청학동마을 같은 곳이 태국에서 가장 인적 드문 오지가 아닌가 싶다.
창가에 앉아 숲이 우거진 아름다운 산촌과 드문드문 있는 허름하고 소박한 나무집들을 감상했다.
오후 시간에 목적지인 작은 도시에 도착을 하는데 생각과는 달리 도시도 크고 내려서 숙소로
가는 짧은 거리인데도 차비를 다른 곳보다 2배는 받고 숙소에 가보니 주인이 서양 남자에 화장실을
공동으로 쓰는데도 5000원 정도라 버스를 타고 이곳까지 오는 경치는 아름다웠지만 도시는 별로
땡기지 않아 바로 북쪽 미얀마 국경쪽에서 장사하는 아는 분을 만나러 버스터미널쪽로 걸어갔다.
터미널로 걸어가는 중에 허름한 노점 비슷한 식당에서 쏘세지를 숯불에 굽고 양배추,고추등
여러 야채를 주는 곳에서 양배추에 쏘세지.고추등을 싸고 매운 핫소스를 뿌려 먹으면서 한 끼를 때웠다.
역시 바베큐등 요리에는 요즘 편리한 가스나 전기보다는 불편한 나무 숯불로 하는게 최고인거 같다.
북쪽으로 향하는 버스는 완전 로컬버스로 에어컨이 없어 창문은 열고 작은 마을마다 멈추었다.
이런 오지의 길에는 창문을 열고 다니는 요금도 저렴한 오래된 구질구질한 버스가 제격이다.
버스가 서는 곳에는 어김없이 숯불위에 닭다리가 연기를 내며 익어가고 길쭉한 찹쌀밥도 팔았다.
보통 닭다리 1개에 600원 정도고 찹쌀밥은 지방이라 150원치를 사면 혼자 먹기에 충분했다.
버스가 도착한 곳은 전에 여러 번 왔었고 모텔 비슷한 곳을 한달 렌트한 적도 있는 익숙한 도시다.
당시 TV 가 있고 깨끗한 모텔 같은 곳을 월 7만 5000원 정도에 묵었었다.
전기세는 포함이 안되고 한달치 방값을 보증금으로 내야하고 그 흔한 베게와 이불은 포함이 안되었다.
한 달 머물면서 베게와 이불을 사기도 그렇게 해서 아는 집에서 침낭을 빌렸는데 빌려준 분은
이곳에서 젊은 태국 여자와 결혼해서 현지인을 상대로 조그만 장사를 하면서 지내고 있었다.
이 번에 불시에 다시 가보니 장사가 잘 되어서인지 차도 구입하고 근처에 고급 주택 단지에
집도 마련했다고하니 날씨도 덥고 벌기 힘든 동남아에서 드물게 자리잡아가고 있었다.
이 도시에서도 터미널에서 걸어서 10분거리인 현지인이 하는 숙소에 3000원을 주고 묵었다.
숙소에 들어가니 사람도 없고 한참 기다리니 주인 여자가 나오더니 나보고 현지 태국인으로 알았단다.
가격은 저렴했으나 화장실과 방에 모기가 많아 여러군데 모기향을 짤라 피우고 지냈다.
전에는 이 도시가 장기 공연지로 괜찮구나 생각했는데 이번에 가보니 생각보다 덥고 도시도 커서
어지간 곳은 차를 타야 하고 좀 알려진 곳이라 관광객들이 많고 특히 서양인들이 꽤 많았다.
이 구질구질한 나그네는 개인적으로 장기 공연지로는 오래 지내야 하므로 몇 가지 보는 것이 있다.
3000원 정도의 숙소가 있어야 하고 도시 규모가 크지 않고 적당해서 대부분 걸어다녀야 하며
외국인도 적어야 하고 근처에 서민 냄새가 물씬 풍기는 시장이 있어서 수수한 서민들 생활도 볼겸
하루 3끼 식사비를 2000원에서 해결 할 수 있어야 하고 가끔 소식도 전할 수 있는 2,3시간에
1000원 정도 하는 한글을 사용할 수 있는 인터넷방이 있으면 좋다.
여기에 덧붙여 가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아담한 도서실이나 에어컨이 나오는 싸구려 극장
그리고 가끔 이쁜 언니들이 있는 시원하고 소박한 백화점이 있으면 더할나위 없다.
1주일 정도 북쪽의 작은 도시 몇 군데서 공연을 하고 다시 전에 있던 미얀마 국경쪽으로 향했다.
내려오면서 태국에서 가장 미인들이 많다는 작은 도시에 잠시 들러 터미널 옆 식당에서 점심으로
돼지고기 덮밥을 먹고 쉬고 있는데 소문데로 다른 도시와 다르게 미인들이 꽤 있었다.
이 곳은 전에 부터 와서 몇 일간 공연을 할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인연도 없었고
저렴한 숙소가 없어서 항상 아쉽게도 그냥 지나치던 곳이었다.
언제 기회가 되면 미인들이 많다는 이곳에 와서 항상 구질구질한 것만 보여줘서 미안했던
나의 눈에게 아름다운 미인들좀 실컷 보여줄 생각이다.
국경쪽으로 향하는데 몇 군데 검문소에서는 국경에서 시내로 나올 때 보다는 검문이 좀 느슨했다.
다시 국경마을로 와서 숙소에 가니 머리가 허리까지 기른 구질구질한 일본인이 있었다.
차고를 개조해 꾸민 방을 한달 렌트해서 9만원을 내고 지낸다고 한다.
방안에는 장기적으로 있을려고 가스렌지와 가스통을 구입하고 차갑게 맥주를 마실려고
아이스박스와 그안에는 얼음과 맥주가 잠겨줘 있었다.
이 구질질한 나그네는 저녁 시간 이외에는 거의 맥주를 안마시지만
이 젊은 일본인은 몇 년전에 이곳에서 만난 미얀마 친구가 매일 찾아와서 아침부터 맥주로 시작하였다.
아에 이곳에서 몇 달간 지낼거 같은데 일본인들은 비자가 1달 무비자라 1달 지나고 강 건너 미얀마로
2번 1달씩 연장하고 다음엔 2달짜리 비자를 받을려고 먼 말레시아까지 갔다가 온다고 한다.
이 친구도 이런데서 한달 방값 9만원에 나머지 20여만원 해서 한달에 30만원 정도로 지내는 것 같다.
일본인 특유의 검소함과 정보도 많아서 밤 8시 이후에 근처 큰 수퍼에 가서 장을 본다고 한다.
이 큰 수퍼는 저녁 8시경이면 그날 팔아야 하는 많은 먹거리에 새로 할인된 가격표를 붙이는데
할인폭이 커서 상당히 저렴하게 팔고 있었다.
이 숙소 정문에는 트레킹 광고가 붙여 있었는데 드문드문 그룹으로 백인들이 이용하였다.
3박4일 정도 되는 코스로 이 구질구질한 나그네가 따라가기에는 좀 부담되지만
무엇보다 순회공연은 그룹이 아니라 홀로 가는걸 선호해서 혼자 물어물어 가기로 했다.
그룹으로 가는 이 백인들은 대절한 4륜구동차에 가이드가 포함이 되고 일단 4시간을 달려 근처 마을에
도착해서 도보로 깊은 산 안에 있는 폭포들과 전기도 안들어 오는 오지마을을 보고 마지막으로 한국의
청학동에 사는 사람들처럼 깊은 오지에 머리를 기르는 도인들이 산다는 마을을 가는 코스다.
흑백 광고 사진을 보았을때 그동안 많이 보아 온 폭포나 오지마을은 별로 안 땡겼으나
마지막 깊은 오지에서 머리를 기르는 도인들 사진이 예사롭지 않게 보였다.
나이든 머리 긴 도인이 가운데 앉아있고 양옆으로 머리긴 젊은 두명이 서있는데 그 옆으로
상당히 큰 짐승뼈가 활처럼 서 있는게 상당히 보기드문 모습이었다.
가이드도 없이 혼자 찾아가는게 상당히 어려웠지만 근처 작은 마을만 알고 시도해 보기로 했다.
일본 가이드 북을 보면서 준비를 하는데 몇 일전에 난민촌을 가기로 하고 빵구를 낸 게이가 있었던
난민촌이 근처 같은 방향에 있었다.
이참에 머리 긴 도인들이 산다는 곳도 찾아 보고 근처에 있는 난민촌도 들려 볼 예정이다.
준비라고 해봐야 필림 카메라에 사용할 필림 몇 통과 도인들과 같이 사진 찍을때 필요한
튼튼한 작은 삼각대 그리고 뿌리는 모기약 정도 준비를 하고 순회공연을 떠나기로 했다.
지금은 무사히 다녀와서 아름다운 추억거리지만 당시에는 본의 아니게
불법으로 국경을 넘어서 들어간 경우라 지금 생각을 해도 아찔하고 위험한 순회공연이었다.
P.S 위에 사진은 태국과 미얀마의 국경으로 태국쪽 지역이다.
국경지대에만 서로 왔다 갔다 하는데 그 안쪽으로는 갈 수가 없고 출입국 사무소가 없는
국경지대라 외국인과 태국인은 여권이 있다고 해도 미얀마 안쪽 깊숙이 들어갈 수 없는 지역이다.
미얀마쪽은 미얀마 정부군이 아니라 카렌 반군이 장악한 지역이다.
아래 사진은 미얀마 국경지역에서 태국쪽으로 찍은 사진인데 이 곳에 들어가는 것도
미리 태국쪽 군인에게 가서 안쪽은 안들어가고 국경지대만 있다가 나오겠다는 허락을 받고 들어갔다.
사진을 찍을려니 태국 군인이 와서 안된다고 해서 1장만 찍겠다고 해서 겨우 찍은 사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