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그럭저럭 사용하던 3년 전에 20만원 주고 산 중고 콤퓨타가 1달 전 쯤에 완전히 다운이 되었다.
아는 집에 수리가 가능한지 알아보러 갔으나 아에 사는게 낫다고 해 중고를 알아 볼려니
신문이나 보고 인터넷 서핑이나 하는 정도의 구질구질한 물건이 안 나와 찾는데 1달이나 걸렸다.
다운 되기 전 콤퓨타는 완전이 맛이 간 상태였다. 느린 건 둘째 치고 클릭을 해도 여러 번 해야 하고
10여분 마다 다운 되었다. 이런 상태로 오래 사용하다 보니 이게 불편한 것인 줄 모르고 사용했다.
3년 전에 산 20만원짜리 본체엔 씨디와 굽는 것도 있었으나 이번에 7만 5000원 주고 산 본체에는
씨디만 있다. 집에 와서 연결해 보니 팬에서 듣기 안 좋은 소리가 나서 귀마개를 하고 사용한다.
소리 나는거 이외에는 신문이나 보고 인터넷 서핑이나 사용하는데는 이 정도면 모자람이 없다.
무엇보다 다운이 안되고 여러 번 클릭하지 않아도 되고 전에 비해 속도도 빨라서 쓸만하다.
7만 5000원 정도의 콤퓨타로 인터넷 하기에 이렇게 상태가 좋을 줄 알았으면 미리 살 것 그랬다.
전에 산 20만원짜리는 구입한 기간은 3년이지만 순회공연을 다녀서 사용 기간은 1년 반 정도 된다.
이번에 산 7만 5000원짜리도 한 1,2년 정도 사용하면 될 것 같다.
다운되기 얼마 전에는 모르고 “내 사진” 을 삭제해서 스캔해 저장했던 수 천장의 사진이 지워졌다.
필림 있는 건 수고스럽지만 다시 시간을 내 스캔하면 되지만 다운 받은 것등 다른 건 다 날라간 것 같다.
꼭 순회 공연가서 털린 기분이다. 사진 같은 것은 별도로 저장해야 할 것 같다.
처음 산 콤퓨타는 10여년 전으로 1달 아르바이트를 해 120만원 정도 줘서 주변의 학생이 조립을 해줬다.
다음은 연변에서 쓸려고 40만원 하는 중고 노트북을 구입했고 그 다음은 지난 번에 다운이 된
중고 20만원짜리 콤퓨터다. 그리고 이번에 구입한 중고 7만 5000원짜리가 4번째다.
120만원, 40만원, 20만원, 7만 5000원….10여년 전 보다 콤퓨타 가격이 떨어졌지만
점점 가격이 떨어지는 걸 사는게 나의 구질구질한 인생길을 보는 것 같다.
이대로 인생이 굴러간다면 다음 콤퓨타는 아마 중고 3만원짜리 정도를 구입 할 것 같다.
요즘 “대한민국 밑에서 1%로 사는 사람들” 이란 말이 있는데 내가 그 1%안에 들지 않나 생각해 본다.
한국에서 바닥에서 1%의 사람들은 주로 고시원이나 쪽방 등지에서 잠을 해결하는데
이 구질구질한 나그네는 여럿이 사용하는 고시원은 아니지만 쪽방과 비슷한 창문도 없고 햇빛도
안 들어오는 1.5평 정도의 아는 집 반 지하방에 그냥 묻어 지낸다.
순회공연을 나가면 하루에 먹고 자고 움직이고 10불 정도 쓰지만 반 지하 집 구석에 오면
별로 안 움직여서 하루에 2끼 밥해 미소국이랑 먹고 해서 그런지 1달에 10만원 정도 쓰면서 지낸다.
20여년 전 강원도 번지 수도 없는 깊은 오지의 30만원(재료비 20만원) 주고 지은 오두막집에서
1년에 50만원으로 지낸거에 비해 지금은 따불이다.
지금도 연변 변두리에 가면 1년에 50만원이면 지낼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강원도 오지에서
방값을 안 내고 지낸다 해도 1년에 100만원이면 비싼 물가로 인해 아주 극한 생활이 될거 같다.
현재 반 지하 집 구석에서는 1년에 100만원 정도면 지낼 수 있어서 비록 가진 물건 없고 통장에
동그라미가 6개 정도의 1003000원이 전부지만 밑바닥에서 더 이상 내려 갈 것이 없어 마음만은 편하다.
외국 순회 공연 일정만 없다면 1년에 아르바이트 1달만 해도 1년은 구질구질하게 지낼 수 있다.
1년에 2달 정도 아르바이트를 하면 동남아나 중국으로 6개월 정도 구질구질한 순회공연을 떠날 수가 있다.
순회 공연 중에는 머리도 1000원 정도로 1달에 1번 정도 깎던 것을 집 구석으로 돌아오면
현재는 4달 가까이 되지만 보통 2,3달에 한 번 깎고 마음 같아서는 바리깡으로 확 밀고 싶지만
그래도 1달에 1,2번 밖에 볼 일이 있어 밀지는 못 하고....공연중에는 매끼마다 외식을 했지만 집 구석에서는
하루에 2끼 직접 작은 밥솥에 밥하고 해서 외식을 모르고 지낸다.
이렇게 집 구석에서 월 10만원 정도로 바닥에 쫘악 엎드리고 있다가 순회 공연에 필요한 종이가 되면
주로 남들 안 움직이는 비수기철에 구질구질하게 입고 주머니에 오래된 세이코 시계를 넣고
머리엔 뚜껑 하나 올리고 순회 공연을 나간다.
그럼 계속해서 시리즈로 나가는 순회 공연 진도 나간다.
이 국경 마을에서 공연을 할 때에는 주로 시내에 있는 작은 시장이나 절등을 보거나 국경으로 가
강가 풍경을 보곤 했다. 시내에 있는 시장은 국경 지대라 그런지 저녁 6시면 일찍 문을 닫았다.
자주 시장을 가다 보니 시장 옆에 내 또래 미얀마인이 하는 작은 음식점을 알게 되었다.
300원 정도 하는 값이 싼 쌀국수와 차도 팔고 맥주등 술도 파는 집으로 항상 미얀마인들이 모였고
미얀마 가수들이 부르는 VCD를 틀어 주고 있어서 태국에 있으면서 꼭 미얀마에 있는 느낌이다.
이 가게에는 저녁을 해결 할려고 주로 6시경에 갔었는데 간소한 안주에 맥주 1병을 마시고
쌀국수를 먹으면 2000원 정도 나왔다.
내 또래 주인은 구질구질한 난민촌에 오랜 기간 있다가 그곳에서 만난 20대의 여자와 재혼하고
시내에 작은 가게를 열고 조만간에 적은 난민에게만 주어지는 서방 국가로의 이주를 기둘리고 있었다.
1,2달 있으면 다른 나라로 이주 한다고 들었는데 지금쯤 이주를 했는지 궁금하다.
보기드문 꾀죄죄하고 구질구질한 한국인이 손님으로 와서 그런지 주인과 주인과 알고 지내는
한 게이를 합석시켜 이곳의 미얀마인들의 생활과 주변 난민촌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35세의 게이도 차로 5시간 정도 떨어진 난민촌에서 생활하다가 잠시 시내에서 방을 얻어 지내고
난민촌에서 어린이들에게 미국말을 무료로 가르치고 자기도 곧 서방국가로의 이주를 기다린다면서
처음 보는 이 구질구질한 나그네에게 자기가 사는 난민촌에 같이 가자고 권유했다.
이 식당은 저녁 이른 시간인 8시면 문을 닫는데 주인과 게이랑 얘기하다 보니 시계는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게이랑 다음날 아침 8시에 경찰서 앞에서 만나 난민촌에 가기로 하고 나오는데 주인과 게이가 걸어서
10분거리인 내 숙소까지 오토바이와 자전거로 데려다 주겠다는걸 사양하니 주인이 늦은 이 시간에
나이트 마켓에서 저녁을 사겠다고 하는걸 다시 사양을 하고 걸어서 숙소로 향했다.
국경지대의 11시가 넘은 시간이라 길가 군데군데 경찰 비스무리한 무전기를 든 젊은 방범들이 있었다.
쓰레빠를 끌고 구질구질하게 숙소로 가는데 한 방범이 멈추라고 해서 잘 안 쓰는 미국말로
“아임 코리언” 이라고 하고 좀 더 걸어가니 또 다른 방범이 나를 가로 막고 좀 전에 만난 방범이 무전기를 들고
오토바이 타고 와서 이번에는 잘 안쓰는 미국말 “아임 코리언”으로는 안 될거 같아 반 바지 주머니에 있는
여권을 보여 줄려고 핀침을 풀려고 하니 됐다고 하면서 그냥 가라고 한다.
3500원 정도 하는 숙소로 가는 길에는 불법으로 넘어 온 미얀마인들을 잠시 가둬 둔 구치소 같은 곳을 지나게 된다. 이곳을 지날 때 마다 찹찹한 마음이 들어 잠시 발길을 멈추고 안을 들여다 보곤 한다.
밖에서 안을 휜히 들여다 볼 수 있고 하루 1시간씩 3번 정도 면회도 있고 미얀마에서는 2000달러나 하는
이 구질구질한 나그네도 평생 가져 보지 못한 핸드폰을 이 안에 있는 많은 이들은 태국에서 싸게 구입한
핸드폰을 구치소 안에서 사용하고 있었다.
구치소안에서 핸드폰은 다음날 본국으로 추방되는 이들에게는 아는이들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아주 유용한 도구였다. 구치소지만 안에서 자유롭게 핸드폰도 사용하고 하루에 3번 면회시간도 있고
이 시간에는 안으로 음식이나 담배등도 들어가고 아에 이곳에서 터를 잡고 과자, 담배, 국수등을 파는
장사하는 이들도 있을 정도로 아주 자유스러운 곳이다.
하루를 이 곳에서 보낸 이들은 다음 날 아침 닭장차로 미얀마로 돌려 보내지는데 남녀노소가
말 그대로 서서 움직이지 못 할 정도로 사람을 가득 태운 상태로 보내진다.
국경에 가면 본국으로 가는 닭장차들을 볼 수 있는데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큰 다리로 보내는게 아니라
북쪽 외곽으로 조금 벗어난 허름한 다리로 보내진다고 한다.
본국으로 추방되기 전에 구치소 안에서도 돈을 미리 쓰면 풀려난다고 한다.
어느 여자가 길거리에서 태국 경찰에 잡혀 6만원 정도 내고서 한 동안 울었다고 한다.
6만원이 얼마 안될거 같지만 이들에게는 적은 돈이 아니다. 이 곳 상점에서 일하면 한 달에 9만원 정도
받으니 6만원이면 20일 정도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이다.
이 구치소를 11시가 지난 늦은 시간에 잠시 둘러 보고 근처의 3600원짜리 구질구질한 숙소로 간다.
담아 놓은 찬물을 작은 프라스틱 바가지로 구석구석 씻고 모기향도 피우고 벽에 붙은 선풍기를 밤새 틀고
잠자리에 들게 된다. 밤새 선풍기를 트는것은 더워서이기도 하지만 모기 방지에도 도움이 된다.
다음날은 처음 만난 게이랑 아침 8시에 만나서 그가 사는 난민촌으로 공연을 가는 날이다.
오늘 난민촌까지 진도를 나갈려고 했는데 맛이 간 콤퓨타 이야기가 길어져서 여기에서 줄여야겠다.
P.S 위에 사진은 불법으로 넘어온 사람들을 가둬 두는 구치소로 밖에 사람들이 있는걸로 봐서 면회시간이다.
바닥은 시멘트로 무슨 동물원 우리 같이 시설도 열악하고 어린아이를 데리고 나온 젊은 엄마들도 많아서
보기에 찹찹하다. 사진찍는 걸 경찰들이 안 좋아해 담장 밖에서 급히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