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오래 근무하다보니 산업연수생들을 많이 격어보았다.
지난늦가을에 귀국한 연수생들은 모두 7명이었다.
한족 5명 조선족 2명이고 조선족은 도문석현출신의 김상근(44)과 화룡출신의 다운증후근 닮은 한광화 (약 30살)정도되는 젊은친구였다.
우리회사는 산업연수생도 급여가 140만원까지 주었다. 그렇지만 먹고 자고 싸고 술까지 제공하기 때문에 동한푼 안쓰고 모두들 3년동안 5,000만원정도 모은것이다.
한족연수생들은 어느정도 절약 정신이 투철했냐고 하면 시내까지 8km정도 걸리는 길을 걸어서 갔다고 걸어서 올정도다. 시장구경하는데 왕복 4시간을 걸어서 걸은 것이다.
끼니는 기숙사 식다에서 감자하고 고구마를 삶아서 지참하고 중간중간에 먹으면서 구경다니는 것이었다.
그리고 처음에 올때 한족이 빨간팬티를 세탁한것을 보았는데 특이해서 인상에 남았는데
그런데 3년후에 갈때가 되어서 보니 아직도 그팬티가 있는것을 보았다.
대단한 절약정신이다.
물론 대부분은 서울 구경도 못하고 공장에서 벗어난적없이 일만하다가 돌아갔다.
그래도 조선족들은 내가 서울구경을 시켜주었다.
우리회사 정말 편하고 일과가 점심먹고는 1시간씩 낮잠을 잔다. 6시에 근무마치고 매일 저녁 회사에서 제공한 술과 고기로 지들끼지 음식만들어서 잘 해먹는다.
점심은 주방아주머니가 해주지만 저녁을 중국식으로 지들끼리 해먹는다. 중국조미료하고 중국술 반찬까지 회사에서 제공했다.
이들이 돌아갈때는 회사에서 구두하고 양복까지 모두 해주고 인천공항까지 배웅을 갔다.
조선족직원들은 음으로 양으로 더 많이 혜택을더 받았다.
내가 김상근한테 공장장이나 사장님께 싸구려중국차라고 한봉지 선물하라고 권하자 연수생들이 무슨 돈이 있는가 내 중국에 돌아가면 인차 그동안 잘 대해주었으니 감사함으로 편지도 하고 전화도 하고 연변의 특산물을 선물 보내겠다고 장담을 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아무 소식도 없다............
한족연수생들은 돌아가기 직전에 국제전화를 50만원어치나 기숙사에서 쳐댄것이다.
그리고 핸드폰을 돌아다니면서 다 가입해서 그 비싼 핸드폰을 가져갔다.
중국에서는 공짜로 주는 핸드폰이 없고 요금도 선불로 내야하지만 한국에서는 공짜라고 선동해서 들고 간것이다.
한국은 신용사회지만 참 어처구니가 없다.
그리고 핸드폰전화요금 하나도 안물고 연체해서 가서 지금 회사로 신용정보회사에서 매일 독촉장 날아오고 있다.
한광화 얼굴은 다운증후근처럼 생겨서 젊은놈이 왜들 이런지 모르겠다.
연수생들이 돌아가고 나서 여기저기에서 독촉장 날아오고 황당할 뿐이다.
있는동안 도둑질 한것도 밝혀지기 시작했다.
주방에 있는 쌀까지 팔아먹고 다닌것이다.
다른공장한족들중에 공장밖에서 자취하는 놈들한테 팔아먹고 계란이나 고기까지 팔아먹은 것이다.
연수생 모두가 그런것은 아니지만 절반이 이짓을 했다.
사람이 신용을 지키고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고 해야할 짓과 하지 말아야 할짓이 있는것이다.
김상근, 한광화 정말 실망이다.
니들의 복잡한 심정은 나도 잘 이해한다.
중국에서 짐승처럼 살았다고 고백하기도 했고 가끔 분노하고 중국에서 태어난것이 죄인가라고 묻고 조선족은 안된다고 떠들고 하루를 중국공산당 만세를 외치기고 했다.
그러다 나중에는 전 중국에 돌아가기 싫다고 하고 한국에 또 오갔다고 하더니 마누라를 한국에 시집보낼 수 없는가 하고 묻기도 했다.
한광화는 조선족이 메냐고 조선족이 왜 한국사람하고 동포냐고 소리를 질러대고 발광을 하고 중국공민이라고 소리치고 하루는 나한테 대들다가 떡이되도록 맞기도 했다.
한국은 그대들을 동포로 대해주는데 조선족이 한국하고 무슨상관이냐고 소리를 버럭지르던 모습들이 생각난다.
사람은 가고 난 자리가 깨끗해야 한다.
전화자주하고 또 오겠으니 초청해달라고 하더니 아직까지 깜깜무소식이다.
그런데 귀국 6개월이 지난 시점에서는 전화가 올것이다. 초청장 보내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