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90년대 외국 다국적 기업에서 해외영업을 담당했다. 그 회사는 매우 큰 회사라 일년에 몇 번씩 세미나, 컨퍼런스, 리더쉽 트레이닝 등 여러 행사를 가졌다. 거기서 한국 ,중국, 일본 등 아시아 10 여개 나라 직원들이 모여 서로를 소개하고 지식 정보를 나누곤 했다.
나는 국제 인맥을 쌓겠다는 생각으로, 먼저 다가가서 인사하고 명함주고 대화를 시도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나는 몇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90년대 초에는 <Japan As Number One> 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일본의 기세가 상당했다. 나는 일본어를 조금 할 수 있어 일본애들과 얘기를 나누어 보았지만 이들의 반응은 그저 그랬다. 아마 한국에 대한 역사적 경제적으로 부정적 인식이 있어서인지, 일본이 잘나가서 그랬는지, 별로 관심 없다는 소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그 당시 한국은 군사독재정권 시절이고, 매일 데모가 나서 최류탄이 날러 다니던 시절이고, 경제적 으로도 후진국 수준이었고.... 그래서 인지 일본 얘들 뿐 아니라 필리핀, 파키스탄, 태국 등.... 우리보다 못하다고 생각되는 나라에서 온 얘들도 한국/한국인에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한국에 대해 거의 모르거나 대체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간 세상이란 내가 잘 살지 못하거나 권력이 없으면 아무도 아는 척하지 않는다는 상식을 새삼 알게 되었다.
92년인가 3년인가 한중 수교가 이루어졌다. 한국에서 중국 붐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당시 < 중국은 대국 > < 중국하면 공자 삼국지 제갈량 > < 중국인은 대국기질>.. 이런 인식이 일반적 이었다. <중국이 앞으로 클거다, 중국어를 배워야한다 > 이런 분위기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나도 중국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나는 우선 한글/영어 명함을 한자/영어 명함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출장으로 대만 싱가폴 홍콩 뿐 아니라 중국에 갈때면 한자 이름을 보여주고 어려운 한자를 써보이며 공자가 어떻고 하며 아는 척을 하고 친해지려 했다. (나는 한자 약 3000자 정도는 알고있다)
그런데 중국인들을 여러번 수십명을 만나면서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 이들은 내가 한자를 알고 있는 것을 약간 신기하게 생각했지만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 당시 중국인들은 공산당 교육을 받어서 대체로 무식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한국에 대한 지식도 전무하거나, <한국은 중국의 속국이었다> 거나 < 한국은 미국의 지배를 받는 나라 > 이런 정도의 인상 밖에 없었던 것 같다. 한자 지식이나 한자 이름이 이들과의 인맥쌓기나 교류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오히려 부정적인 작용을 한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이들이 감탄을 하고 부러워하고 나에게 친절을 베풀기 시작했던 계기는 한자도 아니고 공자맹자도 아니고 모택동도 아니고 ...
바로 영어였다. 그것도 미국식 발음의 영어였다. < 당신은 미국식 영어를 한다, 어디서 배웠냐,,,, > 면서 부러워했다. - 참고로 나는 미국에서 학교를 몇년 다녔다. -
나는 그 이후로 명함을 한글/영어로 바꾸었다. 한자도 일체 사용하지 않는다. 중국인을 만나거나 중국회사를 방문하면 나는 먼저 <미국식 오리지날 빠다 영어>를 2-3 분간 퍼붓는다. 워터(water) 달라고 안한다. " 워~어러 " 달라고 한다. 그러면 만사 오케이다. 항복한다. 얼굴에 웃음이 가득찬다. 여직원이 쳐다본다. 나한테 한마디 하고 싶어하는 표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