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회사의 조선족 한족 연수생 전에는 불법체류자들 그밖에 필리핀, 파키스탄등 각종 인종의 짬뽕인 시절이 있었다.
난 필리핀이나 파키스탄직원들하고는 직접 같이 일을 안해바서 잘 모르지만 흑룡강성의 조선족불체자들이 있었을때부터 같이 근무를 했다.
벌써 5년전인데 이들은 불체경력이 길고 일도 잘하고 월급도 한국인직원들 똑같이 탄다.
그런데 이들은 과외수입이 있었다.
일요일이면 다른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물론 회사에서 알지만 묵인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한가지 카드를 쳐서 부수입을 올린다.
카드뒷면에 몰래 표시해놓고 친다. 그래서 다 딴다.
직원들이 알고 있지만 그것조차도 이해를 하는데 돈을 따면 꼭 교미하러 역전으로 간다고 한다..
회사에서 불법체류자들을 모두 내보내고 산업연수생을 받기로 결정하고 그들은 대구의 공장으로 모두 보냈다.
그리고 산업연수생들 7명이 왔다. 그중 2명 한광화하고 김상근이다. 정말 잘해줄려고 내돈으로 서울구경까지 시켜주고 연통모임에까지 데리고 오고 그날밤 다시 고속도로를 달려 새벽4시에 공장에 데려다 준적도 있고 가까이 잘해줄려고 무진장 애를 쎴지만 구제불능인 인간들이었다.
그나마 김상근이는 자기는 중국에서 짐승처럼 살아서 고국분들 앞에서 정말 부끄럽다고 고백을 했지만 한광하는 내앞에서 대들어서 내가 몇십년만에 주먹싸움까지 했다.
그놈 얼굴을 피투성이로 만들어 놓았지만 내마음은 더 괴로웠다.
구제불능으로 3년간 무사히 일하고 돌아갔다.
다른 한족들도 참 한심하긴 마찬가지지만 개인간의 차이는 심할 정도다.
일잘하는 연수생도 있고 못하는 연수생도 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새로운 연수생들은 모두 6명이지만 전보다는 양호하다.
그런데 연변시골출신 농사꾼 노총각 용남이는 38살인데 할아버지 형상을 하고있다.
학교 문턱에도 못가보고 겨우 글만 깨우친정도고 조금 모자른 사람이다.
다른 조선족연수생 2명은 똑똑하다.
벌써 지게차를 몰고 호이스트로 균형맞추어서 상차하고 일잘한다.
새까만 얼굴에 주름살이 저글저글한 용남이 얼굴에서 정말 한숨이 나올정도다.
나한테 하는 얘기가 "김부장님 저는 한국에서 너무 너무 리해가 안되는 것이 많고 제 자신이가 너무 답답해요" "저좀 방조해주세요"
정말 가슴이 아프다. 오른쪽 왼쪽도 구별할 줄 모르는 조선족농사꾼 용남이가 "저도 사람 맞지요? 사람답게 살고파요 전 중국에서 살아서 아무것도 몰라요" 한국분들 너무 존경스러워요" 문명하게 살고파요" 라고 고백을 한다.
좀 지능이 떨어지기 때문에 다른 조선족연수생들까지 힘들어 할정도고 셈도 제대로 못한다.
그역시 인민폐 9만원이란 거금을 뜯기고 한국에 연수생으로 온것이고 부산에 있는 금형공장에서 적응못해서 잘려서 대기하다가 우리공장으로 온것이다.
바보니 아무것도 시킬 수없으니 우리회사에서도 골치거리다.
그대를 어찌하면 좋은가?
나도 답답하다..
조선족으로 태어나서 농사꾼이기 때문에 장가도 못가고 40이 다되도록 그의 형제들은 모두 장가를 못갔기에 일가친척들에게 거금을 빌려서 한국에 산업연수생으로 왔지만 일을 할만한 능력이 없는 그가 할일은 사실 없는 것이다.
처음에 우리회사에서 용남이가 사실 노인이 나이를 속여서 온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어서 다들 조선족을 통해서 확인을 하니 나이는 맞는 나이였다.
할아버지얼굴에 웃으면 주름때문에 못바줄 정도다.
조선족 허군과 김군은 눈치도 빠르고 일도 잘하기 때문에 회사에서 아주 만족하고 있을 정도지만 너무 차이가 나는 용남이는 정말 갑갑한 일이다.
조선족산업연수생제도가 갖는 의미는 실로 크다.
그러나 조선족들이 한국사회에서 적응은 또 다른 문제이고 과제인것이다.
조선족때문에 가슴아파하는 것 자체도 내겐 숙명인가 하는 생각이 들정도다.
조선족문제는 정말 풀기 힘든 난제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