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연변 변두리 사진이지만 연길 시내 사진이 몇 장 있어서 같은 제목에 올려 보았다.
연변으로 순회 공연을 가면 시내 모습 보다는 초가집, 장터 모습등 주로 변두리의 모습을 주로 찍게 된다.
변두리 사진을 찍는 것은 그곳을 비하 하려는 것이 아니고 시내 보다는 따뜻한 정감이 있고 시간이 지나면
안타깝게도 사라지는 모습들이기 때문이다.
햇빛도 안드는 반 지하에 꾀죄죄하게 사는 이 구질구질한 나그네는 그 어떤것도 비하 할 처지도 못된다.
라지오도 재산 목록에 들어갈 정도인데 누구를 비하 한단 말인가........
연변에서 개나 소나 다 가지고 있는 그 흔한 삐삐나 따그다도 평생 가져본 적도 없다.
얼마 전에는 구질구질한 방에 있는 별 쓸모 없는 집전화도 없애 버렸다.
1년에 몇 달은 공연하러 나가고 달달이 나가는 것도 줄여야 할 것 같아서 중지시켰다.
사실 전화가 없으니 벨 소리도 안나고 쓸데 없이 전화 할 일도 없고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물건이었다.
이제는 달달이 나가는 것을 최소한으로 줄였고 바닥에서 더 이상 내려갈데가 없는 사람이다.
24시간이 온전히 나의 것이며 배고프면 밥 먹고 피곤하면 쉬고 무료하면 근처 숲으로 가서 1시간 정도 걷는다.
연변의 소박하고 아름다운 초가집들도 시간이 지나면 붉은 벽돌집이나 층집등으로 바뀔것이다.
그때가 되면 초가집을 볼려고 용정 가는길에 있는 국무민속촌에 입장료를 내고 가야 할것이다.
가 본 사람은 알겠지만 썰렁한 모습이다.
시내에 있는 화려한 백화보다는 35선 미니버스를 타고 변두리에 있는 흥안 장날을 찾는 것이 더 즐거웠다.
1백화니 2백화니 하는 백화점은 한 두번 가면 질리는데 이런 장날은 오히려 장날이 기다려졌다.
시내에서 쉽게 살 수 있는 소소한 치약이나 손톱깎이 같은 것도 장날을 기다려 서민들이 파는 매대를 이용했다.
시내 모습은 중국,한국,일본, 미국등 어느나라를 가도 다들 비슷하다.
중국에서는 북방의 홍콩이라는 대련보다는 구질구질한 연변 변두리 지역을
한국에서는 중구가 고향인 서울보다는 강원도의 구멍 가게도 없는 화전민촌을
일본에서는 덴덴타운이 있는 오사카보다는 긴 다리 건너에 있는 시꼬쿠(四國)를
미국에서는 복잡한 뉴요쿠보다는 잔 덴버가 노래한 "테이크 미 호무 칸추리 로드" 의 무대인
웨스트 버지니아를 선호하였다.
위에 사진은 연길 중심부의 사진으로 연길 최고의 번화가의 모습이다.
사진 찍은 곳이 4거리로 앞에 쭉 뻗은 길이 행정기관들이 몰려있는 인민로(人民路)이다.
이 길 오른쪽면으로 서시장, 시대광장과 구질구질한 나그네가 좋아하는 복무대 냉면집이 차례대로 나온다.
이곳에는 냉면이라고 안하고 국수라고 부르는 이 냉면이 당시에 6원, 8원, 15원짜리가 있었는데
난 주로 중간 가격인 8원짜리를 먹은 기억이 난다.
당시에 1주일에 한 번 정도 먹었는데 지금도 더운 여름철에 가끔 생각이 나는 음식이다.
평양에 가서 유명한 냉면을 먹어 본 사람들도 이 곳 냉면이 재료들이 좋아서 오히려 평양의 것 보다 낫다고 한다.
연길에도 북한 식당에서 냉면을 하는 곳이 있는데 내 입맛에는 오히려 복무대 냉면이 난 것 같다.
한국에는 국물이 없는 비빔냉면도 많이들 먹는데 이 유명한 냉면집은 빙초산을 사용한 물냉면뿐이다.
이 연길에는 몇 군데 유명한 냉면집이 있어서 잘 한다는 냉면집등을 다 가 볼 기회가 있었다.
많은 이들은 진달래집 냉면이 낫다고 하는데 이 구질구질한 나그네는 시대광장 건너의 이 집 냉면이
입맛에 맞아서 혼자 가끔 가곤 했었다.
이 인민로 왼쪽면으로는 두만강 빈관, 백화점 그리고 신화서점들이 나온다.
두만강 빈관은 좀 비싼 숙소로 식당에 가면 위대한 조국에서 온 북한여성들이 근무를 한다.
전에 어느 한국인이 이 식당에서 북한에 대한 안 좋은 얘기를 한다고 갑자기 서빙을 하는
북한 여성 복무원들의 무술이 나왔다는 얘기가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오는 식당이다.
그리고 좀 더 내려가서 길 건너에 신화서점이 나오는데 연길에서 제일 큰 서점이다.
이곳에는 위대한 조국에서 온 북한 서적들도 많고 조선족들을 이해할 수 있는 책 중에 최고중의 하나인
지금은 작고하신 정판룡님의 "고향 떠나 50년" 이라는 책도 구입할 수 있다.
민족 출판사에서 나온책으로 당시 23원 정도에 구입했다.
이 책은 조선족에 대해 알고 싶은 한국인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이 곳에 가면 일본에 사는 조선족 형제가 한국인에 대해 쓴 책이 있는데 조선족들이 한국인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적나라하게 적혀있다.
한마디로 말해 조선족들은 한국인들을 개조ㅈ으로도 보지 않는다.
연길역을 나와 오른쪽으로 여관들이 몇 개 있는데 대부분 한국에서 몇 년간 벌어서 여관을 하는 사람들이다.
한국에 가서 돈번 사람들도 여러 만났는데 한국에 대해 좋게 얘기하는 조선족을 몇 년간 있으면서
딱 1명만 보았을 정도로 한국과 한국인에 대해 무슨 불만들이 그리 많은지 알다 가다 모를 일이다.
신화 서점 있는 곳이 인민로와 상업지구인 광명로(光明路)가 만나는 지점에 있다.
이 인민로와 광명로 만나는 지점이 항상 사람들로 붐비는 연길 최고의 번화가이다. 서울의 명동이다.
신화 서점 대각선 건너가 시대 광장으로 광장 옆에 큰 수퍼가 있으며 서시장 쪽으로 길이 이어진다.
이 시대광장 지하쪽으로 지하 상가들이 있었던 걸로 기억이 난다.
가장 번화한 이곳에서 가끔 사형수와 범죄인들을 트럭에 태우고 와서 공판대회를 한다.
어느 비오는 날 지나가는데 차를 막고 해서 사람들을 따라가 보니 이 4거리에서 공판대회를 하고 있었다.
당시 가방에 카메라가 있었는데 찍을 분위기도 아니고 해서 찍지 못했다.
교도소에서 조용히 사형시키면 되지 딴따라 연애인도 아닌 사람들을 사람들 많은데 데리고 나와서
잠시 후에 죽을건데 무엇을 박탈한다고 마이크로 한족말과 조선말로 한 뒤에 마지막 시내 공연을 시키고
변두리로 총살하러 가는 건 아마 세계에서 사람 값어치가 없는 중국이 아니면 보기 드물 것이다.
사형수들은 공판대회가 끝나면 연길 변두리로 가서 총살 당하는데 택시를 대절해서 따라 가서
구경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형수들이 탄 트럭과 총알값도 남아 있는 사형수의 가족들이 낸다는데 참으로 중국스럽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비 오는날 공판 대회때 트럭에 탄 한족 사형수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인민로와 광명로 만나는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전자성이 나오고 좀더 가면 시공안국이 나온다.
이 전자성에 가면 컴퓨터와 핸드폰 가게등이 있고 불법 씨디등도 많이 팔고 있었다.
공안국에는 비자 연장등 일이 있으면 가게 되는데 별 친절하지 않아서 이들과 부딪치지 않는것이 좋다.
월급들이 적어서 그런지 돈 되는 일에만 달려들고 돈이 안되는 일은 먼 산 보듯이 하는 이들이다.
사진의 오른쪽에 짤린 파란 미니 버스가 보이는데 이 방향으로 가면 청년호와 근처에 도서관이 나오고
길건너에 주요 호텔인 백산호텔과 건너편에 주은래 수상이 묵었다는 연변빈관이 있다.
백산 호텔 코피숍은 위대한 조국에서 오는 골동품을 찾는 한국 사장님들의 아지트이다.
이 청년호는 옆에 14층 청년 호텔이 있고 중국 냄새가 물씬 풍기는 청년호는 겨울엔 스케이트장으로 변한다.
근처에 있는 도서관은 시설은 별로였지만 돈을 조금 맞기면 책 대출도 가능한 것 같다.
그리고 북한에서 온 책들과 노동 신문등도 있고 북한에서 출판한 임수경에 대한 책도 본 기억이 난다.
이 청년호에서 외곽으로 빠지는 하남으로 건너 가는 다리가 있다.
아래 사진이 청년호에서 저녁에 후래쉬를 이용하여 하남 다리 야경을 찍은 것이다.
이 청년호에 있을 때 급한 볼 일이 생길때에는 저 다리 밑으로 가면 된다.
전작 뿐 아니라 후작도 다 가능한 곳이다.
하남 다리를 건너자 마자 왼쪽에 송기 호텔이 있고 옆에 작은 무료 미술관이 있는데
소련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사실적인 유화 그림들이 많다.
이 길을 좀 내려가면 장백로(長白路)와 만나게 되고 오른쪽으로 가면 동북아 호텔옆에 버스터미널이 나오고
왼쪽으로 가면 개발구와 소나무가 유명하다는 소하룡(小河龍)으로 가게 된다.
이 곳 버스터니널에서 어지간 곳은 다 간다. 서울의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인 셈이다.
개인적으로 백두산 갈 때도 이 곳에서 버스를 타야 한다.
국경 넘어 러시아로 가는 버스도 이곳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동북아 호텔은 아침 7시부터 9시까지 15원으로 아침 부페를 먹을 수 있는 곳이다.
이 버스터미널을 조금 더가면 4거리가 나오고 왼쪽으로 가면 연길역이 나오는데 이 곳에서
도문, 장춘, 대련, 심양, 북경등으로 갈 수 있다.
연길역 앞으로 나오면 근처로 가는 미니 버스들도 있다.
장춘은 10시간, 심양은 15시간, 대련은 24시간, 북경까지는 30시간 정도 걸린다.
이 4거리에서 직진을 하게 되면 공항으로 가는 길이다.
위에 사진 찍은 위치 왼쪽으로 조금 가다가 오른쪽에 한국인 입맛에 맞는 유명한 전주 비빕밥집이 있다.
이 집은 한국에서 일하다 온 조선족이 주인인 것 같은데 돌솥 비빕밥이 유명하고 고등어 조림과 조기 튀김도
맛있어서 연길에서 추천하고 싶은 음식점이다.
옆에 짝퉁 비빕밥집이 있는데 먼저 나오는 집이 짝퉁이고 몇 발자국 더 가서 손님이 많은 집이 오리지날이다.
점심 시간에 가면 그리 크지 않은 이 식당엔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현지인들로 붐빈다.
3명 정도가 가서 돌솥 비빕밥 하나씩에 한 접시 나오는 조기 튀김, 무가 들어간 고등어 조림과 BC맥주 좀
곁드리면 100원 정도 나온다. 식당이 작고 메뉴도 몇 가지 안되는데 음식이 상당히 괜찮은 집이다.
사진 찍은 뒤로 짧은 다리를 건너면 공원로(公園路)로 오른쪽으로 인민공원이 있고 좀 더가서
연변 대학이 나오고 왼쪽면으론 백화점이 있다.
이 인민공원은 이 구질구질한 나그네가 위대한 조국에서 온 북녀와 데이트를 했던 유서 깊은 장소이기도하다.
오래 전 일이라 안아 보았는데 안 안아 보았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이 공원을 따라 가면 연변 대학이 나오고 점심 시간에 학교 길 건너 길가에 3원짜리 부페 곽밥을 파는
리어커들이 있다. 이 구질구질한 나그네도 어린 학생들 틈에 끼여서 3원짜리 곽밥을 여러번 먹었다.
도라지 무침을 무척이나 많이 먹었다.
양념이 맞지 않아 도라지를 사온 경우에는 설탕과 식초를 넣어서 먹곤했다.
연변 대학 옆에는 진찰비 1원이라는 가기 미안한 복지 병원이 있다.
특진이 2원인가 하는데 이 구질구질한 나그네는 너무나 미안해서 특진을 이용하였다.
당시 특진에는 한국에서 온 분도 진찰을 하였는데 얼마 안되는 월급 보고 일하는 것 같진 않았다.
이렇게 뒤에서 알게 모르게 봉사하는 이들도 있는데 왜들 한국과 한국인에 대해 무슨 불만들이
그리 많은지 알다 가다 모를 일이다.
이 구질구질한 나그네는 이 곳에 갈 때에는 머리도 감고 그래도 내 딴에는 단정하게 입고 간다.
그런데 이 곳 사람들은 무슨 변두리 장마당에 호미 자루 사러가는 차림으로 오는 사람들도 많았다.
넝닝구 비슷한 차림에 구질구질한 쓰레빠를 질질 끌고 오는 사람들도 보았다.
구멍이 나고 누런 낭닝구 차림에 양말도 안 신은 구질구질한 쓰레빠........ 여기까지는 좋다.
형편이 안되어서 이런 차림으로 올 수는 있다. 나도 꾀죄죄하고 구질구질해서 여기까지는 이해가 된다.
but 바트 그러나 안에서 옷 벗고 누워서 진찰 받는 동안에 여러 사람들이 노쿠도 없이 수시로 들어온다.
여기가 무슨 시내에 50전짜리 1미터 칸막이 공공 똥투간인가........
노쿠는 세계인의 무언의 약속이다. 왜 이런 기본적인 약속을 안 지키는가.......
사람이 민하고 차하고 수평이 낮아도 이렇게 낮을 수가 있는가........
사람이 1근에 8원짜리 소고기와 5원짜리 개탕만 먹는다고 다 사람이 아니다.
손으로 노쿠를 하면서 " 안에 머리 감고 온 구질구질한 이 아직도 있쑴둥 " 이래야 수평이 있는 사람이다.
연길은 그리 큰 도시가 아니라 대부분 걸어다니거나 사진에 나와 있는 1원짜리 파란 미니 버스를 타면
다닐 수 있고 택시를 타도 연길시내에서는 5원이면 다닐 수 있었다.
특히 겨울철에 눈이 내린후에는 도시 전체가 스케이트장으로 변해서 이럴땐 소형 택시보다는
미니버스나 큰 버스등을 이용하는게 안전하다.
연길의 진짜 모습은 백두산을 찾아가는 여름철이 아니라 영하 30도 가까이 떨어지는 겨울철에 있다고 생각한다.
1월 중순 경에는 낮 기온도 영하 10도로 떨어진다.
이런 추운 날씨에 석탄을 땐 뜨끈뜨끈한 온돌방이 있는 변두리 허름하고 구질구질한 식당에서
훈둔이나 세치네탕(?)을 먹는게 추운 겨울 연길의 멋이 아니겠는가.............
연길을 가는 방법은 바로 연길로 가는 비행기도 있지만 이 구질구질한 나그네는 주로 장춘으로
비행기 안에서 사과도 나눠 주는 싼 북방항공으로 가서 그 곳에서 기차를 타고 연길로 들어가곤 했다.
장춘 비행장에서 나오면 오른쪽에 버스들이 서 있는데 장춘역에 가냐고 물어본면 된다.
1원짜리 버스인데 말이 안되면 종이에 한자로 장춘역(長春驛) 이라고 쓰면 통한다.
한자가 안 되는 사람들은 역은 빼고 한국말로 장춘 칙칙폭폭정도만 해도 다 알아듣는다.
장춘역에 도착해서 연길 가는 기차표를 종이에 한자를 적어서 산 뒤에 기차역을 나오면 여관들이 있는데
이곳에서 잠시 몇 시간 쉬는 비용을 내고 쉬면서 기차 시간을 기다리면 된다.
장춘을 떠난 기차는 구태, 길림, 교하, 돈화 그리고 안도를 거쳐 연길에 도착한다.
기차가 서는 이 지역 대부분에 조선족들이 살고 있다. 종점은 연길에서 1시간 더 간 도문이다.
밋밋한 경치가 계속 되다가 돈화를 지나고 부터는 낮은 산들도 보이고 볼만한 경치가 나온다.
비행기가 아닌 방법은 인천에서 대련으로 배를 타고 가서 그곳에서 기차를 타고 연길로 가는 방법이 있다.
시간이 널널하거나 좀 싸게 갈려는 분들은 이 방법을 택하면 된다.
대련역에서 연길까지는 24시간 가까이 걸린다.
이 정도로 대략 간단하게 연길 시내에 대해 적어보았다.
조선족에 대해 알고 싶으면 각자 직접 들어가서 체험하기 바란다.
비록 수업료를 내더라도 인생에 크나 큰 도움이 될것이다.
이 구질구질한 나그네가 보기에 한국인에게 인생 공부의 최고의 도시가 연길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