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강하며 개인의 시각으로 사회를 평가하죠.
공산주의는 집단성이 강하고 개인이 아닌 단체혹은 사회집단의 시각으로
사회를 평가합니다.
공산주의 혹은 좌파들은 그래서 늘 국민 혹은 노동자 농민의 이름을
달고 살지만 결코 공산주의 혹은 좌파들이 노동자 농민 혹은 국민을
대변하진 못합니다...
그들의 말은 완전한 합법적인 사기에 해당하는데 노동자 농민을 잘살게 해주겠다.
국민의 이름으로 처단한다.물론 이런 사기는 정치인도 늘상 저지르는 것이죠.
전 농사를 지으며 18년을 살았으나 단 한번도 그들의 말을 믿어 본적은
없습니다...왜냐하면 세상은 남보다 좋은 기술이 있을 때 잘 살수 있지
정부에서 주장하는데로 모든 농민이 선진기술을 익혀 잘 살게 하겠다는
것은 감언이설에 불과 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죠.
백명의 농민중 상위 5%의 기술을 가진자는 차별화된 농산물로 좋은 가격을 받지만
그 백명이 전부 같은 기술을 가지면 더 이상의 차별은 없으며 남과 나는
다르지 않기에 균일한 가격을 받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기술향상 만큼 늘어난
생산량으로인해 가격은 하락하며 제한된 시장에서의 나눠 먹기식으로 경쟁해야
해서 더 치열해지고 어려워지죠.
삼성전자가 하나 있으니 다행이지 100개면 한국이 더 잘 살까요.아니죠
무너지죠.세상은 남과는 다르게 차별화된 기술과 경쟁력을 지니고 불굴의 의지가
뛰어난 자가 성공하는 것이지 노동자 농민이 전부 성공할순 없는 것입니다.
성공하려면 남과 같은 기술이 아닌 남보다 더 좋은 기술과 노력이 필요하죠.
그런데 단체 좋아하는 사람들은 노동자 농민이 못 사는건 착취 때문이라 하죠.
사실은 자신들이 권력 잡으면 더 착취하면서 말입니다.
민주주의에선 차별화만이 살길이란 사실을 알기에 그 차별화가 수많은 다양성을
낳았고 그래서 성공하고 발전한 것이 사실인데 오히려 다양성과는
거리가 먼 공산주의 혹은 좌파들이 다양성을 강조합니다.
똑같은 인민복의 바느질 솜씨가 다른지...북한 참 다채롭게 보이나요.
자본주의 민주주의 사회를 획일화된 사회로 규정짓고 다양성을 요구하는
그들은 오히려 자신들의 사상을 이 사회에 뿌리내리게 하기 위해
자신들의 공간을 마련하려는 의도로 다양성을 주장하고 그것을
숨기기 위해 다민족 다원화를 지나치게 강조할 뿐입니다.
다민족 다원화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그들의 근본 의도를 말하는 것이며
획일화된 사회에선 발전할수 없는 발전을 이룬 민주주의 사회를 획일화
된 사회라 주장하니까 거기에 대한 반박을 할 뿐이죠.
노동자 농민이 성공하려면 열심히 노력하고 차별화된 기술로 노력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을 해야 하는데 그런 모든 희망은 차단시킨 채 비관적 현실만
강조해서 부자 혹은 기득권층에 대한 적개심만 생기게 하는 생명력 잃은
사상만 강조해서 폭력행위를 정당화 하는 이론으로 순수한 사람들의 머리를
오염시키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죠.
세상은 부자가 되기도 하고 가난한 자가 되기도 하는 겁니다.돈이 많고 적음을
떠나 사람들이 옳바른 의식속에서 편견없이 서로가 서로를 받아들이는
사회가 되어야 하는데 사람들은 엉뚱한 곳에서 희망을 찾습니다...
돈에서 찾고 권력에서 찾고 차별화된 내 자신의 성공에서 그 가치를 찾기에
세상이 좋아질수가 있나요...없죠.
많은 위선자들이 오늘도 합법적 사기를 치며 순수한 사람들을 미혹하고
바르지 못한 사상과 길이 아닌 방향에 희망을 부여하며 구라스러운 짓을
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