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휴가도 끝나가지만 여기 호주도 경제가 별로다.
다들 돈을 쓰지 않을려고하고 금융권에서는 감원바람이 심하게 불고있다.
부동산경기도 얼어붙고있다.
한국이나 중국등 다른나라 유학생들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그나저나 다른 어떤나라보다도 이번 금융위기의 발단지인 미국과 전적으로 전세계로 수출에 의지하던 중국이 더 심하게 경제적인 몸살을 앓고있는것 같다.
그동안 중국은 수출에 목을 매달고 있었으니 그럴수밖에 없겠지만 그 바람에 중국과 무역하던 모든 나라들도 같이 힘들어 하고있는것 같다.
그동안 그렇게 설명을 해주고 비난을 해도 꿈쩍도 않하던 중국이었는데 이제 호되게 당하는것 같다.
그렇다고 이말이 중국만 당한다고 해서 하는말이 아니다.
어차피 다들 같은 배에 타고있는데 어느한쪽이 안좋아 지면 다 같이 안좋아지는게 세계경제니까말이다.
하지만 중국은 독불장군처럼 혼자서 지난 수십년간 지멋대로 행동했기에 더 당한다는 말을 하고싶은거다.
이번 기회에 정말 중국은 혼자만이 사는 나라가 아니란것을 깨달았으면 한다.
남의나라 물건만을 생산해 주거나 짝퉁만을 만들어서 돈을 버는것은 한계가 있는데...그동안 그렇게 옆나라들이 충고해주었는데...앞으로 몇년간이 아니 당장 2009년 6월까지가 어떻게 전개될지 옆에 있는 다른나라들은 다들 궁금해 또는 불안해한다.,
‘천하대란’의 조짐이 보인다는 건가…
[미주한국일보] 2009년 01월 13일(화) 오전 03:20 가 가| 이메일| 프린트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신고를 했을 때였던가. 북경은 일종의 승리감에 휩싸였다고 한다. ‘그렇게 마구 돈을 써대더니 결국은…’ 하는 경멸감도 내비치면서. 그리고 재차 음미한 것이 골드만삭스의 경제 전망이었다는 것이다.
2027년께 중국 경제는 미국 경제보다 더 커진다는 게 골드만삭스의 전망이다. 어쩌면 그보다 더 빠른 시일 내에 중국은 미국을 추월할 수도 있지 않을까. 뭐 이런 희망적 생각에 들떠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불과 몇 개월도 못 가 상황은 일변했다. 불길한 징후들이 여기저기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공장들이 문을 닫았다. 실직 노동자들은 거리로 나섰고, 경찰차가 불타는 등 시위는 난동으로 변하면서 일파만파 전국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1년 전만 해도 2008년은 아마도 중국 세기의 원년(元年)이 될 것이라는 게 북경의 생각이었다. 여러 면에서 사실이지 그런 느낌도 들었다.
북경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휩쓸었다. 세 번째로 유인 우주선을 띄웠다. 개혁개방 정책 30주년 행사를 성대히 치렀다. 그리고 명(明)왕조 이후 처음으로 해군함정을 멀리 인도양까지 파견해 소말리아 해적 소탕에 들어갔다.
2008년은 중국으로서는 정녕 ‘영광의 해’로 ‘강한성당’(强漢盛唐)의 기치를 그 어느 때보다 드높게 휘날린 한 해였다.
2008년은 그러나 재앙의 해이기도 했다. 하여튼 정초부터 조짐이 심상치 않았다. 엄청난 눈보라로 전통적 설인 춘절(春節)도 얼어붙었다. 대지진이 발생해 사망자만 8만8000여명을 냈다. 그 대부분은 어린 학생들이다. 불량공사의 희생자들이다.
거기다가 오염된 우유로 30만의 영아가 건강을 해쳤다. 멜라민 파동은 급기야 전 세계적로 확산됐다. 천재(天災)에 인재(人災)가 덮친 격이다.
티베트 사태가 발생했고 그 불똥은 사방으로 튀어 위구르 회교 소수민족 자치구도 소요의 소용돌이에 빠졌다. 저항운동은 보통 사람들, 그러니까 절대다수를 형성하고 있는 한족(漢族) 시민들에게까지 번져 거리시위는 전국으로 확산됐다.
후반기에 상황은 더 격렬해졌고 16만건 이상의 소요사태가 발생했다는 비공식 보도다.
문화혁명 이후 성장만 거듭해 왔다. 그 중국 경제가 금융위기와 함께 급격히 동력을 상실하면서 경착륙 공습경보를 발하고 있는 것이다.
늘기만 하던 것이 중국의 수출이다. 그 수출이 감소하더니 급기야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섰다. 수입도 급감했다. 내수시장도 무너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중국의 노동시장에는 매년 700만 이상의 새 인력이 쏟아져 나온다. 이를 흡수하기 위해서는 최소 8% 이상의 경제성장은 지상과제다. 올해 성장은 그러나 5%선에 머물 것이라는 게 대부분 경제연구소의 전망이다.
수출급감, 경기급랭, 부동산폭락, 실업대란이 사회불안으로 이어지면서 개혁개방 30년래 중국의 집권 공산당은 최대 정치적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북경 당국이 특히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 ‘농민공’(農民工)으로 불리는 유랑노동자 집단이다. 가난한 농촌에서 도시로 와 막노동에 종사하는 이들 농민공 인구는 1억3000만을 헤아린다.
이들은 어쩌면 전환기마다 낡은 왕조를 링되構?새 왕조를 세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유리(遊離)하는 중국의 농민, 다시 말해 유맹(流氓)의 후예일 수도 있다.
이 유맹의 무리를 모택동은 일찍이 혁명의 전위로 찬양하면서 진(秦)왕조의 진승(陳勝)과 오광(吳廣)에서, 송(宋)왕조의 송강(宋江), 방랍(方臘), 원(元)왕조의 주원장(朱元璋), 그리고 청(淸)왕조의 태평천국에 이르기까지 수백 회에 걸친 봉기는 농민반항 운동이라고 지적했다.
이 농민공들은 설을 앞두고 귀향길에 나섰다. 민족 대이동이다. 춘운(春運)으로 불리는 올해의 민족 대이동은 그러나 예전과 다르다. 즐거운 귀향이 아닌 것이다. 분노와 좌절의 귀향이다. 실업의 한파가 이들을 가난한 농촌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설을 쇠고 일터로 되돌아오는 시기는 2월이다. 그 2월이 그런데 문제다. 수천만의 농민공들은 되돌아와도 일자리가 없다. 대학을 갓 졸업한 수백만 사회 초년생들도 마찬가지상황에 직면해 있다.
“공산주의가 붕괴할 때 중국은 건재했다. 자본주의가 고장 나자 중국은 휘청거린다.” 사회주의에 자본주의를 접붙임 한 중국 시스템이 지닌 모순을 지적한 말이다.
“이 중국에 있어 2009년은 천안문 사태 이후 아마도 가장 격동적인 한 해가 될 것이다.” 많은 관측통들의 하나같은 전망이다. 천하대란의 조짐이라도 엿보인다는 건가.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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