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지난 6년간 연변통신을 통해 바라본 중국동포와 한국인간의 토론 분위기는 어떠했나?
홍건영: 인터넷상에서는 익명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할말 안 할말 다 하는 곳이다. 딴지걸기를 일삼는 네티즌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속에서도 수많은 진지한 논쟁들이 있었다.
기자: 논쟁 성격은 어떠한가?
홍건영: 연변통신을 만든 취지는 중국동포와 한국인의 이해의 장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50여 년 세월을 서로 다른 체제와 문화에서 살아왔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가령 게시판에서 최근의 여수화재사건이나 방문취업제에 대한 발언들을 보면 같은 민족이지만 현실 집단으로서 입장 차이가 상당히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동포와 한국인이 서로 깊이 이해하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기까지는 앞으로 시간이 꽤 더 필요할 것 같다.
기자: 연변통신의 독자층은 어떻게 되나?
홍건영: 자주 방문하는 네티즌은 중국동포의 경우 30대가 주 연령층이지만, 20대와 40대도 꽤 된다. 이들은 한국에 대한 관심과 정체성 고민 때문에 토론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인은 주로 3-40대에 걸쳐 있지만 50대 이상의 네티즌도 많다. 한국인 독자끼리는 동포의 정체성 확인과 포용을 놓고 세대간에 입장 차이가 있는 편이다.
기자: 인터넷사이트에서 <토론게시판>을 활성화시킨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홍건영: 돈과는 거리가 먼 일이지만 나름대로 꾸준히 해온 것은 민족간의 화합을 위해서는 서로를 알아가는 이런 공간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연변통신과 비슷한 <토론게시판>을 꾸린 사이트가 전에 더러 있었지만, 대개 다 시들해지거나 문을 닫았다. 원래 한중간에, 또 고국과 동포사회 간에 미묘하거나 첨예한 이슈가 많다보니 토론방은 자칫 감정적인 대결과 편가름의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빠져들어 헤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연변통신도 어려운 고비가 많았지만, 많은 현명한 독자들의 도움으로 이제는 어느 정도 자정능력도 있는 성숙한 대화의 장으로 자리 잡았다고 자부한다.
그리고 연변통신이 계속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독자모임 힘도 크다. 연변통신을 즐겨 찾는 네티즌들의 자발적인 모임이다. 서울, 북경, 연길 등지에서 정기적으로 독자모임이 열린다.
기자: 앞으로 계획은 어떤가?
홍건영: 나는 동포 운동가라는 말은 듣고 싶지 않다. 같은 민족이며 언어가 통하는 중국동포와 고국인이 넓고 크게 소통하는 장을 만들어 내고 싶을 뿐이다. 코투마로 개편한 배경도 그런 의지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그리고 코투마 사이트를 운영하는 데 그리 큰 액수는 아니지만 좀 부담이 되는 비용이 든다. 이 비용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나름대로 수익창출을 위한 시도도 하고자 한다.
기자: 결혼도 한 걸로 알고 있는데 개인 생활은 어떻게 하나?
홍건영: 결혼은 좀 늦게 한 편인데, 일년 전에 아내와 함께 북경에 가서 지냈다. 아내는 지금도 북경에서 공부하고 있고, 나는 사이트 개편을 위해 한달 전에 들어왔다. 난 직업이 코투마 운영과 관리다. 코투마가 제자리 잡을 때까지는 한 동안 여기에 몰두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