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2007년 4월 한국의 한 대학에서 외국 출신 학생이 미국 버지니아공대 참사와 같은 사건을 벌였다면, 한국 사회는 어떤 반응을 했을까?
이런 가상의 질문에 지난해 귀화한 중앙아시아 출신 아셀라 쥬말리바(30·여·가명)씨는 “미국은 다민족 사회지만, 한국인들은 스스로를 단일 민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차별이 훨씬 심할 것”이라고 말했다. 몽골에서 온 잉케수레(36·여·가명)씨의 답변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의 답변은 평소 겪고 있는 눈물나는 차별에 근거를 두고 있다.
#1 쥬말리바씨는 지난 20일 기자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의 충혈된 눈에는 억울함과 분노가 교차했다. 그를 요즘 가장 괴롭히는 것은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이 학교에서 겪는 차별이었다. 그는 “생긴 것이 다르다고 4·5학년 아이들도 와서 아이를 때리는데, 학교에 하소연을 해도 문제 해결이 안 돼요”라고 호소했다. 이 때문에 최근 이사를 했지만, 새로 다니는 학교에서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그는 “아이가 학교 가기를 무서워해요”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2 몽골에서 2003년 한국으로 온 잉케수레씨도 지난해 한국 국적을 취득했지만, 변한 것은 거의 없었다. “가게나 식당에 들어가면 사람들이 처음에는 존댓말을 써요. 그러다가 몇 마디 하면서 제 발음을 듣고는 별안간 말을 놓아버려요.” 그는 곧 이름을 한국식으로 바꿀 계획이다. 다섯살짜리 아들 민수(가명)가 초등학교에 가서 기록에 나온 엄마 이름 때문에 차별을 받을 것 같아서다. 요즘도 어린이집에서 민수 친구들이 선생님들에게 “민수는 한국 사람 아니에요?”라고 묻기도 한다.
이런 현실 탓에, 한국계 이민자가 저지른 버지니아 참사를 계기로 귀화자나 이주노동자 등 우리 안의 외국인을 대하는 태도를 돌아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민 1.5세대 미국 변호사로 국내에서 활동 중인 김윤재씨는 “한국 사람들 상당수가 그 일을 미국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사건이라고 보기보다는 당장 ‘우리’가 창피하고 죄스러운 일이라고 보는 경향을 보였다”며 “그렇다면 귀화한 한국인에게도 마찬가지 태도로 단죄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법적으로 완전히 한국인이 된 귀화자들마저 차별의 덫을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에서, 외국인 신분인 이주노동자나 나아가 불법체류자 등이 겪는 차별과 편견은 더더욱 클 수밖에 없다. 이철승 경남외국인노동자상담소 소장은 “이주노동자가 조승희씨와 비슷한 범행을 저지른다면 우리는 그를 해당 민족이나 인종의 이름으로 바라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의 이정원 선전차장도 “귀화자들이 겪는 문화적·일상적 차별이 이 정도인데, 그 밖의 이주노동자들이 겪는 제도적·일상적 차별은 훨씬 더 크다”고 말했다.
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 참사 피해자들이 충분한 정신과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나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법무부의 후속 대책 등은 그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주여성 긴급전화’의 강성혜 센터장은 “이런 현상은 궁극적으로 다른 인종이나 외국인에 대한 민족적인 폐쇄성에서 비롯된다”며 “이를 풀자면 순혈주의를 뛰어넘는 새로운 공동체상을 모색하고, 이를 학교에서 가르치고 사회적으로 공유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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