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그러진 차이나드림] Ⅲ-2. 이젠 더 못 버틴다
[경향신문 2007-01-28 20:48]
베이징 근교에 있는 한인기업 ‘그린 아트’의 자동화된 쾌적한 공장에서 중국인 근로자들이 일하고 있다. 중국 당국이 최근 환경과 노동 등 규제를 강화함에 따라 임금을 적게 주는 노동집약형 외국인 기업들은 설자리를 잃고 있다. 베이징/박민규기자
최근 중국 베이징(北京) 근교 마을에 염색 공장을 세운 김모 사장(45)은 걱정이 태산이다. 일부 마을 주민들이 환경을 오염시키는 공장이 들어서는 것에 반대한다며 들고 일어났기 때문이다. 현지 공무원들이 “환경영향 평가는 받지 않아도 된다”고 한 구두 약속만 믿고 공장을 지어 시험가동을 하다가 ‘암초’에 부딪친 것이다.
중국 현행법상 환경영향평가는 반드시 받도록 되어 있으며, 공장 입주때에는 마을 주민 전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일이 시끄러워지자 공무원들은 “괜찮은 줄 알았는데…”라며 뒤로 빠진 상태다. 김사장은 500여명이나 되는 주민들을 일일이 찾아 동의를 받는 일도 난감할뿐더러, 입주 반대 운동을 하는 주민들의 요구사항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도 분명치 않아 발만 굴리는 형편이다.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의 한 피혁 가공업체는 시 당국이 환경기준을 까다롭게 하면서 폐수처리 자동화 설비를 새로 설치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청결생산 검사비 명목의 납부 통지서를 받아 없는 살림에 5만위안(약 600만원)이나 물어야 했다.
중국의 경영환경이 급변하면서 현지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이 긴장하고 있다. 중국의 초고속 경제성장으로 근로자 임금은 크게 뛰고 있고, 일부 공장은 인력난마저 겪고 있다는 게 중국에 진출한 중소기업인들의 지적이다. 이와 함께 세금우대 축소와 환경규제 강화 등 중국 정부가 선별적인 외자유치 정책으로 전환하는 데 따른 추가 부담도 우리 기업들이 우려하는 대목이다.
우리 기업들의 수익성도 크게 악화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가 지난해말 중국에 진출한 180개 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26.4%(대규모 적자 1.1% 포함)가 중국에서 적자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조사 대상 기업의 33.6%가 최근 들어 중국의 경영환경이 악화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주중대사관 중소기업 상담창구를 찾는 우리 기업인들도 하루 평균 10여명에 달한다. 이전에는 상담창구에서 중소기업들이 주로 중국의 법률, 제도와 사업 승인 절차 등에 대해 문의했다. 하지만 요즘은 중국 투자 환경이 어떻게 변했고,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문의가 부쩍 늘었다고 중기 상담창구의 서창배 박사는 전했다.
허베이(河北)성 옌자오(燕郊) 공단은 베이징(北京)시와 경계에 있다. 이곳엔 현대자동차에 납품하는 한국 자동차 부품업체 10여개사가 입주해 영업중이다. 옌자오 공단 분양가는 지난해만 해도 200평(660㎡)에 8만위안(약 960만원)이었으나 지금은 공단측이 아예 가격조차 확정하지 않고 있어 입주를 희망하는 기업가들의 애를 태우게 만들고 있다. 땅을 사러온 우리 중소기업들은 하는 수 없이 발길을 돌려야 했다. 2004년 입주해 자동차 부품 공장을 운영중인 송모 사장(50)은 “공단측이 얼마나 더 오른 값에 부지를 내놓을지 현재로서는 알 수가 없다”고 전했다.
농민들의 토지를 지방정부가 헐값에 사들여 이를 다시 기업에 비싸게 파는 방식에 대해 농민들의 원성이 높아지자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의 마구잡이식 토지 운영에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공장 부지 공급이 부족해지자 기존에 조성된 공단 분양가는 치솟고 있다.
중소기업들이 인건비 부담에 시달리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인건비 오름세가 갈수록 더해지는 데다 사람도 구하기가 예전같지 않다고 중소기업인들은 하소연한다.
산둥성 칭다오 교외에서 의류 부자재 공장을 운영하는 안모 사장(52)은 해마다 연말이면 나오는 최저임금 발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해 칭다오의 최저임금은 월 540위안에서 올해는 610위안으로 올랐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야근 수당과 근로자들에게 제공해야 하는 5대 보험〈양로(국민연금)·실업·공상(산재)·의료·생육(출산) 보험〉 부담이 그만큼 늘어나게 된다.
칭다오에서 액세서리 공장을 운영하는 정모 사장(56)은 요즘 근로자들을 보면 옛날이 그립다며 한숨을 쉬고 있다. 시골에서 올라온 근로자들 상당수가 1년 정도 한국 기업이 운영하는 공장에 다니다가 적응 기간이 끝나면 공장을 떠나 식당 등 서비스 업종으로 옮기기 때문이다. 우리 기업들의 공장을 마치 ‘정거장’처럼 이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상당수 공장은 근로자를 구하지 못해 공장 가동률이 60~70%에 그치고 있다. 기숙사를 제공한다고 해도 근로자들은 시큰둥하다.
지만수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베이징 사무소장은 “중국 정부가 기존에 외자유치를 위해 베풀었던 혜택을 없앤 데다 중국 시장 경쟁이 한층 치열해지면서 우리 중소기업들이 경영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분석하면서 “기업 차원에서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유일한 대책”이라고 말했다.
〈베이징|홍인표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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