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2월 17일 (일) 19:38 국민일보
[택시기사 본 2006 연말] “정치얘기 옛말,욕하기도 지친게지…”
올해로 37년째 줄곧 서울에서 택시운전을 하고 있는 정진원(62)씨.
3공화국 때인 1970년 처음 운전대를 잡았으니,강산은 4번째 변할 차례이고 대통령은 7명째다.
그는 택시 말고는 다른 일을 해본 적이 없다. 운전대를 아예 놓고 얼마간 집에서 쉰 적도 없다. ‘1평 대합실’ 택시에서 37년동안 수많은 승객과 만났다. 그의 눈에 비친 2006년 세밑의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일까.
지난 11일 낮 12시. 정씨가 기자와의 약속 장소인 지하철 5호선 신정역 출구에 택시를 세웠다. 기자가 조수석에 타고 뒷좌석에는 합승 손님을 태우기로 한 뒤 화곡동쪽으로 향했다.
요새 승객들이 어떤 얘기를 하는지부터 물었다.
“아무래도 먹고 살기 힘들다는 얘기가 많아. 손님들 얼굴을 보면 그늘진 사람들이 많아. 희망이 없어서 그런거 같아. 원래 택시 타면 정치 얘기 많이 하는데 작년까지만 해도 손님들이 정치 얘기를 꽤 했어. 대통령이나 정치인들 욕 많이 했는데 요샌 정치 얘기 하는 사람도 확 줄었어.”
그냥 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다. 많은 승객들이 정치 얘기가 나오면 짜증을 낸단다. 그래서 그 전에는 가끔 승객들에게 이런저런 분위기를 전하면서 자연스럽게 정치 얘기도 해봤지만,지금은 전혀 그러지 않는다고 했다. 분위기만 썰렁해기기 때문이다.
“지친 거야. 생각하기도 싫은 거지. 라디오에서 정치 뉴스 나와도 요즘은 별 반응이 없어. 작년엔 뉴스 듣다가 나랑 한참 토론도 하고 그랬거든. 얼마 전엔 어떤 손님한테 정치 얘기 꺼냈더니 화를 내면서 그냥 딱 눈 감고 자던데 뭐.”
“내년 대통령 선거 얘기도 하나요?”
“손님들이 대선 얘기는 가끔씩 하기는 해. 누가 돼야 한다,누군 안된다 이런 의견도 있지만 그냥 빨리 선거 치렀으면 좋겠다는 얘기가 많아. 누가 되든 지금보다는 상황이 나아질 거라는 생각이 큰 거 같아.”
97년 말 외환위기 때와 지금을 비교해 달라고 했다.
“내 경험으론 경기가 나아질 기미가 전혀 없어 거의 자포자기 상태가 되면 승객들 말수가 적어져. 그게 요즘이랑 그 때랑 비슷한 건데,IMF 위기 때도 충격이 워낙 커서 그런지 손님들 말수가 많이 줄었었어. 그래도 그때는 정치 하는 사람들이 잘못을 인정하기라도 했으니 다행이었다는거야. 요즘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니까 아무리 말해봐야 뭐하나 하는 생각에 입을 닫는거 같아. 그게 다른 점이지.”
서민 경제로 화제를 돌렸다. 대답은 간단했다. 빈부 격차가 너무 커졌다는 것을 실감한다는 것이다.
“택시를 오래 하다 보면 서민들 생활이 어떤지 알게 되는데 빈부격차가 너무 커졌어. 택시란 게 원래 중산층이 이용해야 하는 교통수단이잖아. 그런데 빈익빈 부익부가 심해지면서 잘 사는 사람들은 승용차 있으니까 택시 탈 일 없고,자가용 몰던 중산층은 기름값까지 많이 오르면서 지하철이나 버스로 바꿨지. 택시 몬 지 40년 가까이 되는데 요즘이 가장 살기 힘든 거 같아.”
살기가 팍팍해지면서 마음의 여유도 점점 메말라 간다고 했다. “택시가 교차로 같은 데서 조금이라도 정체하면 ‘왜 차 막히는 길로 왔느냐’고 버럭 소리치는 손님이 늘었어. 그러면서 지하철 타고 가겠다고 중간에 내리는 사람도 많아.” 휴대전화 통화하면서도 쉽게 흥분하고 짜증내는 사람이 많아진 것도 요즘 자주 보는 풍경이라고 한다.
오후 6시쯤 강남역 사거리에서 그와 헤어졌다. 이때까지 합승은 한 건도 없었다.
닷새 뒤인 15일 오후 4시. 그가 일을 시작하는 시간에 맞춰 신월동 차고지로 찾아갔다. 정씨는 딸 유학자금을 대기 위해 개인택시를 팔고 2000년부터 회사택시를 하고 있다. 퇴근길 승객을 태우기 위해 명동쪽으로 향했다.
“택시도 많이 달라졌죠?”
“지금은 택시를 시민의 발이라고 하는데 1970년대 초에는 아무나 택시 못 탔어. 일반 시민이 설렁탕 값보다 비싼 택시(기본요금 60원)를 타긴 힘들었지. 하루 사납금이 600원이었는데,사납금 내고 남은 돈을 악착같이 모으면 한달 수입이 3000∼4000원 정도 됐지.”
지금까지 택시기사로서 가장 좋았던 시절이 언제냐고 물었다. “박정희 대통령 때는 생활물가가 워낙 쌌기 때문에 승객이 좀 적어도 택시 하면서 그럭저럭 먹고 살았지. 그러다가 전두환 정부 시절 들어 강남 개발이 본격화되고 서울 외곽이 커지면서 택시 운행 거리가 많이 늘었어. 그 때 기본요금이 450원까지 올랐으니까. 5공 때부터 택시가 많이 대중화됐지. 택시기사한테는 전두환 때가 제일 좋았던 거 같아. 잘 될 때는 서너시간만에(하루 12시간 근무) 사납금 다 채웠거든. 노태우 정부 들어서도 기본요금이 600원으로 올랐고,6공 말기에는 900원까지 됐지. 5·6공 때는 전반적인 경기가 좋아서 손님도 많이 늘었어.”
동대문 운동장과 한양대,잠실 등을 돈 뒤 밤 11시쯤 종로에 도착했다. 분당이나 일산 등 장거리 손님을 기다리기 위해서라고 했다. 기자와 헤어지면서 정씨는 “몇 년 전만 해도 금방 손님이 탔는데 20분이 넘어가도 아무도 없잖아”라며 커피 자동판매기로 향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손님들이 모두 힘들게 살고 있는 것 같지만,결국 어떻게든 이겨냈거나,이겨내겠다는 얘기들을 많이 하지. 그걸 들으면 항상 희망은 있는거 같아”. 자신도 사랑하는 손자 손녀들을 위해 75살까지 운전을 계속하겠다고 한다.
이용훈 기자 coo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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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당시 월남전이 한국경제를 발전시켰죠. 2차대전후 패망하기 직전 일본이 한국전쟁덕분에 경제대국으로 다시 성장할수 있었던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박통이 경제성장을 이룬게 아니라 enfldid님 생각 | 2006.12.17 | 그당시 월남전이 한국경제를 발전시켰죠. 2차대전후 패망하기 직전 일본이 한국전쟁덕분에 경제대국으로 다시 성장할수 있었던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역사를 찾고 올바른 민족주의를 찾아야 하지요. Caramellboy님 생각 | 2006.12.17 | 역사가 잘못됀것을 바로잡고, 미국제국주의에 막아야죠..
그런데 말이죠. 제가 지금 죽을 지경입니다. 전두환시절에는 욕할 힘 있었는데
지금은 기력이 없어서 걍 죽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