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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 당(黨)문화] 제7장 생활 속의 당문화(4)

편집부  |  2021-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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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SOH 자료실]


목차


4. 부부는 혁명 동지로 여자는 남자와 차이가 없다


1) 산아제한


2) 부부는 혁명 동지


3) 남녀는 차이가 없고 세상의 절반은 여자


***********


4. 부부는 혁명 동지로 여자는 남자와 차이가 없다


도처에 존재하는 당문화의 구체적인 표현은 정치, 경제 등 공공 영역을 완전히 점령한 것 외에도 백성들의 개인적인 영역 내지는 사적인 범주에 해당하는 가정생활에까지 전면적으로 개입한다는 것이다. 결혼을 할지 여부, 한다면 누구와 할지, 아이는 언제 몇 명을 낳을지에 대해서도 당은 모조리 관할하려 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모든 폭력기구를 이용한다.


부부란 본래 인연으로 이뤄진 것으로, 연애와 혼인은 낭만적 색채를 지닌 인류의 영원한 화제이다. 더욱이 가정이란 인생이란 항로 중에 쉬어가는 항구이다. 화목한 가정과 부부간의 사랑, 그것은 사람들이 기대하는 행복이다. 그러나 공산당은 도리어 계급투쟁의 전쟁터를 직접적으로 모든 가정에 옮겨놓았다. 부부는 입장이 분명한 “혁명동지”로 변했고, 정치 투쟁은 직장에서부터 퇴근 후의 주방과 침실에까지 뻗어 나갔으며, 가정 관계의 변이를 조성했다.


하늘이 사람을 만들 때 남녀(男女)를 구분한 것은 그들이 음양을 서로 보완하며 강한 것과 부드러움이 조화를 이루게 하기 위함이다. 때문에 남녀 쌍방은 사람의 특성과 신체 능력상 각기 특장이 있다. 하지만 공산당은 여자를 남자로 만들어 남녀는 다 똑같으며 부녀자도 절반의 하늘을 떠받칠 수 있다고 고취했다. 이것은 단순히 여자들이 구직, 취학과 정치적 지위가 상승하지 못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반대로 중국 여인의 온유하고 현숙함을 거의 다 말살해 버려 중국 특유의 음성양쇠(陰盛陽衰)란 열악한 결과를 조성했다.


1) 산아제한


중공에는 “계획 출산”이라고 하는 한 가지 기본적인 “국가정책(사실은 “당의 정책”)이 있는데 국제 사회에서는 그것을 “한 자녀 정책”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부녀와 아동의 권리와 관련해 세계적으로 아주 논쟁이 있는 문제이다. 일단 이 문제의 시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기로 하고 단지 이런 정책이 출현한 자체가 바로 신명(神明)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하늘도 땅도 두려워하지 않고 무슨 짓이든 하고 싶은 대로 맘대로 할 수 있는 중공의 뿌리 깊은 당(黨)문화 요소임을 지적하고자 한다.


중국의 전통 왕조 사회거나 나치 파쇼와 같은 극권(極權)주의 국가거나 막론하고 정부에서 주류 민중들의 사생활을 간섭한 적은 없었다. 특히 출산과 같은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공산당은 달랐다.


1956년, 중공 제8차 당 대표대회 정치 보고에서 산아제한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것은 모든 것을 공산당이 통제하는 “계획경제” 체제의 직접적인 연장으로, 무엇이나 다 계획 속에 집어넣으려는 것이다. 1957년 2월 27일 마오쩌둥은 최고 국무회의에서 말했다. “공장 생산에 대해서는, 천을 짜고 책걸상을 만들고 강철을 생산하는데 모두 계획이 있지만 인류 자신을 생산하는 것에 대해서는 계획이 없으니 이것이 바로 무정부주의다. 인류는 자신을 통제해야 하며 계획적으로 성장해야 한다.


어떤 때는 조금 증가시키고 어떤 때는 정지시켜야 한다.” 유물론에서 내원한 이런 사상에 따라 아이의 출산을 강철을 제련하고 천을 짜는 것과 함께 논할 수 있는 것은 중공이 보기에는 모두 “생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계획경제하에서는 공산당이 각종 물품의 생산량을 통제하기에 공산당이 인구를 통제하는 것 역시 이상한 일이 아니다.


1957년 대약진이란 “식량 위성(糧食衛星)”이 하늘에 오른 후 마오쩌둥과 중공은 견해를 바꾸어 “사람이 많은 것은 좋은 일”이라는 것이 주류 사상이 되었다. “사람이 많아야 힘이 강해진다.”, “사람은 입뿐만 아니라 또 한 쌍의 손이 있기에 세계를 창조할 수 있다.”라고 하면서 중국 여성들에게 아이를 많이 낳을수록 영광스럽다고 고무했을 뿐만 아니라 열 명의 자식을 낳은 여성에게 “영광스런 어머니”란 칭호를 주었다. 당시의 북경대학 총장인 마인추(馬寅初)가 쓴 인구를 억제해야 한다는 『신(新)인구론』은 “자산계급의 황당한 논리”, “우파의 창궐한 공격”으로 치부되어 “철저한 적발과 비판”을 당했다.


중공의 인구 정책은 6,70년대 중국 인구의 급격한 증가를 초래했다. 1981년 3월 6일 중공은 계획출산위원회(計劃生育委員會)를 만들고 아이를 적게 낳을 것을 강요했다. 따라서 이후 “계획출산”은 중공의 기본 국가시책이 되었다.


중공의 “계획출산”은 외국의 “가족계획(Family planning)”과 본질적인 구별이 있다. “가족계획”은 보통 정부의 보조, 서비스와 관련된 자문을 통해 민중들이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중공의 “계획출산”은 헌법이 규정한 공민의 의무로서 늦게 결혼하고 늦게 출산하며 한 쌍의 부부가 하나의 아이만 낳을 것(소수의 예외는 제외)을 제창(아주 많은 직장에서는 강제적)한다. 가임여성은 생육 지표가 있어야만 임신할 수 있다.


“계획출산”은 극단적인 강제조치를 통해 집행되었다. 태아가 태어나지 않았을 때, 혹은 유산시킬 수 있을 때는 계획출산위원회 “집행원”이 계획되지 않은 임산부를 강제로 병원에 보내 유산을 시킨다. 만약 태아가 출생한 후에 발견되면 계획출산위원회는 “법에 따라” 그 가정에 고액의 벌금을 물린다. 실제로 집행하는 과정 중에 공산당은 늘 폭력을 써 왔고 인권이란 아예 고려하지도 않았다. “계획출산”은 집행 범위가 넓고 시간이 길며 또 태아의 생명에 관련되기 때문에 그 과정은 몹시 잔혹하다.


특히 “초과 출생”한 농민에 대해 중공은 더욱 제멋대로 괴롭힌다. 기본적으로 산달이 가까운 아이라도 만약 허가증이 없으면 낳지 못하게 한다. 설령 낳았다 해도 의사와 간호사는 반드시 갓 태어난 무고한 생명을 산 채로 죽여야 한다. 추정에 의하면 “계획출산”이 시작된 이후 적어도 4천만 명의 태아 혹은 영아들이 중공에 의해 살해되었다.


대륙 농촌에 나붙은 구호와 표어에서 살기등등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집이 망할지언정 나라를 망하게 할 수는 없다.”, “약을 먹으려 하면 병을 빼앗지 말고 목을 매려 하면 밧줄을 주어라.” “한 사람이 초과되면 온 마을이 불임수술을 해야 한다.”, “첫째는 낳고 둘째는 불임수술 하며 셋째와 넷째는 긁어내라! 긁어내라! 긁어내라! 첫째는 괜찮지만 둘째는 수술하고 셋째, 넷째는 죽여야 한다!”, “피로 강을 이룰지언정 하나도 더 낳을 수 없다.”, “묘지를 10개 늘릴지언정 한 사람도 더 낳지 말아야 한다.” 이렇듯 잔인한 구호는 중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구호에만 그친 것이 아니다. 집을 수색하고 집을 허물며, 사람을 잡아 감금하고 아기를 죽이는 등은 중국에서는 이미 대수롭지 않은 일이 되어버렸다.


2006년 중국 대륙의 어느 매체에서 다음과 같은 일을 보도한 적이 있다. 우한(武漢)시 황포(黃陂)구 차이뎬(蔡店)촌 촌민 황추성(?求生)은 집이 너무 가난해 예물을 살 형편도 못 되었다. 계획출생반원이 그의 집에 뛰어들어 임신 9개월째 되는 그의 아내를 사무실로 끌고 가 낙태 주사를 놓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황 씨의 아내는 아기를 낳았고 낙태 주사가 태아를 죽이지 못했다. 계획출생반원은 황 씨를 핍박해 아직 살아 있는 아기를 버리게 했다. 오후 5시쯤 류 씨 성을 가진 할머니가 거리에서 향 정부 뒤편 화장실에서 아기의 울음소리가 난다는 말을 들었다. 전직 의사인 류 할머니가 울음소리를 따라가 보니 과연 남자 화장실 변기통 속에 남자 아기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기는 머리만 밖에 나왔을 뿐 온몸은 전부 변기통 속에 잠겨 있었다. 할머니는 다급히 아기를 건진 후 대충 씻은 다음 즉각 진료소로 안고 가 탯줄을 끊고 주사를 놓아주었다.


모든 일을 잘 처리한 후 류 할머니는 아기를 포대기에 싼 후 문 앞에 앉아 아기에게 물을 먹였다. 바로 그때 향 계획출생반원 다섯 명이 할머니 앞에 나타났고 그 중 하나가 다짜고짜 할머니의 품에서 아기를 빼앗아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아기는 너무 아파 사지를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러고도 성이 차지 않았는지 아기를 발로 걷어찼다. 그 다음 그들이 아기를 데려갔다. 아주 멀리 갈 때까지도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결국 계획출생반원이 아기를 논에 던져 익사시켰다. 중국에서는 이런 사례들이 결코 드문 현상이 아니다.


“계획출산” 정책은 중공 무신론 교육의 구체적인 표현이다. 설령 큰 천재지변이나 전쟁이 발생했다 할지라도 영아를 살해하는 것은 모두 중대한 반(反)인류범죄이다. 그러나 중공 “무신론”의 교육 아래 각급 관원들은 중공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서 “사람의 명은 하늘에 달렸다”는 기본적인 도덕관념마저 없이 영아 살해에 대해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못한다.


서양에는 위험한 때를 만나면 언제나 어린이와 여자에게 우선적으로 생존기회를 주는 전통이 있다. 약자의 권리를 존중할 줄 아는 민족만이 모든 사람의 권리를 존중할 줄 안다. 중공의 영아 인권에 대한 멸시는 곧바로 중공이 모든 사람의 인권을 전혀 존중하지 않음을 폭로하는 것이다. 농민에 대한 중공의 억압, 탄광 재난에 대한 무관심, 상방(上訪)인원에 대한 무정한 박해, 심지어 영아에 대한 살해, 이 모든 것은 “약육강식”의 가치관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 결과는 바로 중공 인권 기록의 지속적인 악화이다.


사람들은 아마 각종 이유를 찾아 강제적인 통제가 아니라고 설명할 것이다. 중국 인구가 팽창하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러나 이것은 다만 문제의 표면 현상일 뿐 중공이 정책을 결정하는 당문화 요소야말로 문제의 실질이다. 공산당은 일시적인 충동에 의해 인구가 많은 것을 원하고 출산을 장려하다가도 인구가 많아 먹여 살리기 어려워지면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태아를 살해하여 어린 영혼들은 갈 곳이 없게 되었다.


다산(多産)과 소산(小産)은 겉으로 보기에 양극단인 것 같지만 사실 모두 무슨 짓이든 제멋대로 하는 중공 망나니의 패도(覇道) 습성의 표현이다. 지금 중국의 인구는 30년 전에 비해 훨씬 많아졌지만 최근 몇 년, 중공이 경제 영역에서 느슨히 하고 간섭을 줄이자 사람들이 먹고 살기가 이전보다 더욱 편해지지 않았는가? 여기에서 볼 수 있다시피 문제의 핵심은 인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중공 자체에 있는 것이다.


인구 문제는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모두 당면한 문제이다. 하지만 지금 세계적으로 정부에서 강제로 계획 출산을 실시하는 나라는 중국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 여기에서 우리는 인구 문제 해결을 반대하자는 것이 아니라 신명(神明)을 존중하지 않고 제멋대로 행하는 것을 반대할 뿐이며 특히 살인으로 생명을 해치는 방법을 반대할 뿐이다.


중공의 산아제한은 심각한 결과를 초래했다. 그 구체적인 표현은 인구 구조의 신속한 노령화로 인해 은퇴 인구는 끊임없이 증가하는 반면 경제 활동 인구는 날로 줄어들어 연금이 고갈될 위험에 직면하게 되었다. 오늘날 한 쌍의 부부가 4명의 노인과 아이 하나를 부양해야 한다. 그렇다고 아이가 인재로 자라날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아이가 인재로 성장하지 못하면 부모들은 늙어 의지할 곳이 없어진다. 그렇지만 중국에는 이들을 또 도와줄 메커니즘이 없다. 중국 농촌에서 딸이 태어나면 자식을 더 낳을 수 없는데다가 그 딸이 성장해서 시집가고 나면 농사를 지을 사람도 없어지고 결국 살아갈 방도가 없다.


계획 출산은 또한 현재 중국 성비의 심각한 불균형을 야기했다. 전에는 딸을 낳아도 아들을 낳을 때까지 계속 낳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오직 하나의 아이밖에는 낳을 수 없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낙태라는 방법으로 자녀의 성별을 선택한다. 대를 잇고 조상을 모시기 위해 딸을 유산시켜 아들만 낳는다. 결국 남여 성비에 심각한 불균형을 초래했고 현재 남자와 여자의 비율은 120:100에 달한다. 이렇게 되면 20년 후에 약 6분의 1이 남성(약 4000만 명)이 배우자를 찾을 수 없을 것이며 이것은 사회적으로 아주 커다란 불안정 요소가 될 것이다.


산아제한은 또한 도시의 젊은 세대들에게 형제자매가 극히 드물게 만들어 외아들, 외딸을 양산했다. 이들은 저마다 가족들의 사랑을 독차지한 소황제(小皇帝)가 되었고, “거만하고 응석”이 심해 이기적이고 제멋대로일 뿐만 아니라 책임감과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부족하다. 이 아이들이 사회의 중견으로 될 때면 그들의 성격 특징이 중국사회 전체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사실, 바로 자연계에 법칙이 존재하는 것처럼 인구 역시 스스로를 조절하는 메커니즘이 존재한다. 바로 『시경』에서 말한 것처럼 “하늘이 백성을 낳으시고 사물에 법칙이 있도록 하셨다(天生烝民,有物有則).” 정상적인 정부에서도 인구를 조절하는 방식은 아주 많다. 인구학과 유엔 통계자료에서는 모두 사회보장제도가 잘 갖춰져 있고 국민들의 교육수준이 높은 지역은 출산율이 저절로 내려간다고 한다. 중국의 통계수치에서도 여자가 중학교 교육만 받아도 출산율이 2.13으로 내려갈 수 있어 인구 균형을 이룰 수 있다. 고등학교와 대학 교육을 받은 여자의 출산율은 더 내려가 각각 1.82와 1.11에 불과하다(이상은 1986년 통계자료에 의한 것이며 지금은 이보다 더 낮을 것이다).


그러나 살육과 강제 정책에 습관이 된 중공은 낙태에 대해서는 흥미가 있지만 더욱 근본적 작용을 일으키는 교육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 교육에 대한 낮은 투자는 말문이 막힐 정도이다(중국의 교육비는 GDP의 4%가 안 되어 세계 최저수준이며 아프리카 우간다보다도 낮다). 중공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6년 전국의 의무 교육 비용은 약 2260억 위안인데 반해 중공이 공금으로 먹고 마신 금액은 2004년에만 3700억 위안에 달했다. 바꿔 말해 중공이 공금으로 먹고 마시는 것만 중단해도 전국의 취학연령 어린이들이 의무교육을 받을 수 있다. 또한 교육 수준의 제고는 인구 성장 압력을 완화시켜 줄 수 있다.


지금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가족계획 방법을 채용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인도에서는 21살 법정 혼인연령을 넘어 결혼하는 사람을 장려하고, 아이 둘을 낳은 후 자발적으로 불임 수술을 하는 부부에게는 복지와 의료 보험 등 방면에서 혜택을 더 주는 등이다. 하지만 강제적인 조치는 없었다. 멕시코, 터키, 인도네시아 등의 나라에서도 가족계획을 위한 법률을 제정했지만 이들 나라의 법률에는 모두 부모가 자식의 숫자나 간격을 자유롭게 결정할 권한이 있다고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서양 국가들은 저 출산율 문제에 직면하여 경제적인 보조금을 지급하거나 세금을 감면하는 등의 방식으로 격려해 주며, 정부에서도 강제적인 수단으로 출산을 통제하진 못한다. 사실 그 어떤 정부도 각 가정의 출산문제를 상관하지 않으며 폭력적인 기구로 출산 정책의 실시를 보장하는 나라는 더욱 없다. 오직 중공 통치하의 중국만이 인위적인 산아제한을 채용했으며 이로 인해 야기된 사회 문제 역시 역사상 전례가 없는 일이다.


2) 부부는 혁명 동지




▲ [사진=SOH 자료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통 문화는 모두 “가정”을 중심으로 한다. 공업화가 제일 발달한 미국에서도 “가정 관념”은 여전히 중요한 미덕이다. 사람에게 가정은 편안한 곳이다. 부부 사이에는 은혜와 믿음이 있고 알뜰살뜰한 보살핌이 있다. 부부 사이에 흉금을 털어놓는 것은 심리적인 압력을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방식이며 또한 정신건강을 유지하고 이를 통해 생리적인 건강을 보장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이다.


『시경』에서는 “아내와 화목하면 거문고와 비파를 타는 것 같노라(妻子好合,如鼓琴瑟)”라고 했다. 전통 가정에서는 남자는 바깥일을 하고 여자가 집안일을 돌본다. 남자는 강직하면서도 자상하여 처자식을 위한 보호막 역할을 하며 여인은 온유하고 현숙하며 가정 일을 도맡아 남편의 현명한 내조자였다. 부부는 마치 거문고와 비파처럼 서로 조화를 잘 이루며 서로 즐겁다. 아름답고 원만한 혼인에서 중요한 것은 서로 너그럽고 상대방을 양해해 줄 수 있으며 서로 존중해 주는 바로 이런 모습이다.


중공 당문화는 사람들의 혼인 예의를 변이시켰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출산을 통제하는 동시에 부부 관계를 새로 규정했다. 중공은 전통 문화를 비평하고 전통적인 인륜 관계를 낙후한 봉건 찌꺼기라고 비판했으며, 가정의 따뜻한 정과 인성을 소자산 계급의 인성으로 폄하했고 당성과 혁명성이 부족한 표현이라고 여겼다. 이로 말미암아 부부 사이의 인륜 관계는 허공에 뜨고 말았다.


인성을 뽑아버린 후 중공은 또 당성을 주입하여 부부는 “혁명동지”라고 떠들어대면서 부부간의 감정과 윤리를 승인하지 않았다. 부부는 “한마음”이 아니며 당과 한마음이 되어야 하고 “동지”도 당과 한 뜻이 되어야 한다. 부부 사이의 신임은 당에 대한 신임을 초월해서는 안 되며, 부부간의 은혜도 절대 당에 대한 충성심보다 높아서는 안 된다.


가정생활은 혼인의 목적이지만 중공은 정반대이다. 중공에게는 남녀의 결합이 가정을 조직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당을 위한 것이며, 당의 한 부품이 되어 당이 혁명하는 수단과 도구로 만드는 것이다. 그리하여 부부는 “혁명동지”가 되었다. 당이 승인한 “여자 혁명가” 중 한 사람인 타오주(陶鑄)의 부인 쩡즈(曾志)는 그녀의 회고록 『운 좋은 혁명의 생존자』중에 자신의 혼인관을 피력했다. “공산당원에 대해 말한다면 부부 생활은 부차적인 것이며 중요한 것은 정치 생명이다.”


『공산당 선언』에서는 “가정을 소멸”해야 한다고 명확히 표시했다. “우리는 사회 교육으로 가정교육을 대신해야 하며 사람들의 가장 친밀한 관계를 소멸해야 한다.” 그러나 가정, 육친에 대한 정과 인륜은 불변의 진리이며 부부, 자녀, 부모, 친구,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상적인 교제는 인류 사회를 구성한다. 인류 역시 부부라는 이런 가정 형식이 있었기에 이성과 도의의 단속 아래에서 비로소 번영하고 발전해 온 것이다. 하지만 공산당은 “혁명동지” 간의 이익 관계로 부부의 인륜 관계를 대신했으니 근본적으로 말해 인류사회의 기본적인 조직형식을 변이시켰다.


바로 본서 제6장『습관화된 당의 언어』에서 분석한 것처럼 부부 사이에 “동지”라고 불러 부부가 일상생활에서 시시각각 자신이 공산악당의 신도임을 잊지 않게 하여 중공 사교(邪敎)의 어두운 그림자를 가정에 씌웠다. “동지”가 먼저이고 부부는 나중이다. 만일 부부 한쪽이 중공의 적이 되면 곧 “동지”에 속하지 않게 되며 그러면 반드시 경계선을 명확히 구분해야 하며, 배우자를 포기하고 당 조직에 다가서야 한다.


부부가 “혁명동지”로 된다면 부부 사이의 전통적인 친밀한 정이 깨지고 부부 사이의 은혜와 신뢰가 타파되어 사람들은 부부간에도 믿을 수 없게 된다. 일단 “혁명동지”의 관계가 타파되면 부부간의 윤리 역시 작용을 일으키지 못하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문화대혁명 기간과 역대 정치운동 중에서 나타난 것처럼 부부가 서로 적발하고 고발하게 되며 인성이라곤 전혀 없게 된다.


대개 사람에게 가장 큰 상처를 줄 수 있는 것은 가장 가까운 사람이다. 왜냐하면 상대방은 당신의 일체 장단점을 거의 속속들이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가장 믿었던 사람에게 상처를 받게 되면 아마 세상 어디에도 몸 둘 곳이 없는 것 같고 세상에 더는 믿을 만한 사람이 없다고 느껴지며 때문에 모든 것을 의심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공산당이 원하는 것이다.


“문화대혁명”이 끝난 후 혁명의 요소는 점차 옅어졌고 이런 “혁명동지”의 관계는 생활 속의 “동지관계”로 변했다. 오로지 구체적인 목적과 이익을 위해 가정을 유지할 뿐 부부 사이의 감정 교류와 서로간의 보살핌은 아주 부족하여 가정생활이 단조롭고 침울해졌다. 심지어 많은 가정에서는 아이들이 성장한 후에는 부부가 장차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3) 남녀는 차이가 없고 세상의 절반은 여자


속담에 남녀 사이에는 구별이 있다고 하지만 오랫동안 당문화 영향을 받아 여자를 말하기만 하면 아주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시대가 달라졌고, 남녀는 차이가 없다.”, “여자는 절반의 하늘을 떠받칠 수 있다.”는 따위의 말을 한다. 하지만 남자와 여자는 본래 같지 않다.


중국 전통문화는 음양평형을 중시한다. 사실 음양이란 만사만물이 서로 협조하는 법칙을 말한 것으로 그 속에는 남녀도 포함한다. 남자는 양이고 여자는 음이기에 남자의 특성은 강직하고, 여자의 특성은 부드럽다. 강한 것과 부드러운 두 가지 수단이 조화를 이루어 공생하는 것으로 힘을 믿고 약한 자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다. 수천 년 동안 중국의 윤리 도덕에서 제창한 것은 부부 사이에 사랑과 은혜를 중히 여기며 남자는 바깥일을 하고 가정에 대해 책임져야 하며 가족들을 먹여 살리고 자신의 아내를 사랑할 줄 알며 평생 그녀를 책임져야 한다. 여자는 집안일을 하면서 시부모를 공경하고 자식을 가르치며 남편을 잘 섬겨야 한다.


가정은 사회의 기본 단위이다. 고대 중국 사회에서 가정과 가족은 지금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옛 사람들의 인생 이상은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였다. 사실 이것은 서로 똑같은 이치인데 “세상을 다스리는 것(平天下)”은 “집안을 다스리는(齊家)” 이치를 더 큰 범위로 확충한데 불과하다. 가정 관계에서 “부부”관계는 또 가장 중요한 한 방면이다.


『중용』에 이런 말이 있다. “군자의 도는 부부에서 비롯되지만 그 지극함에 이르러서는 천지를 관찰할 수 있다(君子之道,造端乎夫婦。及其至也,察乎天地.)” 중공은 “남녀는 매 한가지”라고 고취하여 직접적으로 가정의 평형과 조화를 파괴했고 이것은 중공이 전통 사회질서를 전복하는데에서 중요한 과정이었다.


전통사회에서 여성은 비록 정치, 경제, 과학, 군사 등 방면에서 뛰어난 성적을 내진 못했지만 자식을 교육하고 도덕과 정상적인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방면에서 대체할 수 없는 작용을 일으켰다. 특히 모친의 자애로움은 아이들의 여린 마음에 뿌리를 내려 아이가 성장해 성인이 된 후에는 이런 사랑을 사회에 전해주게 된다. 마치 “맹모삼천지교”와 “악비(岳飛)의 모친이 악비의 등에 글자를 새긴” 이야기와 같은데 이것은 거의 모든 중국인들이 잘 알고 있는 내용이다. 만약 대의(大義)를 깊이 아는 악비 모친의 가르침이 없었다면 어쩌면 “충성을 다해 나라에 보답한” 악비의 장거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중공은 “남녀는 차이가 없고 세상의 절반은 여자”라는 것을 고취하여 전통적인 현모양처의 모습을 억지로 개변시켰고, 여자들을 남자와 같이 용감히 싸우게 하여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하게 했다. 다른 한편 노인을 보살피고 자식을 교육하는 부담은 대신할 사람이 없거나 감당할 방법이 없어져 아이들에 대한 교육은 완전히 조부모나 혹은 학교와 사회로 떠넘겼다. 이 때문에 복잡하고 해결하기 어려운 사회 문제를 조성하게 되었다.


“남녀는 차이가 없고 세상의 절반은 여자”를 고취하는 것은 중공이 전민(全民) 투쟁을 진행하기 위한 필요에서 비롯된 것이다. 왜냐하면 전통적인 여성은 사회 활동에 아주 적게 개입했는데 이렇게 되면 중공이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 절반이나 줄어들게 된다. 중공은 자신이 여자를 “해방”시켰다고 선전하는데 실질적으로는 여성들을 선동하여 이른바 혁명 활동에 참가하게 하려던 것이다. 이전의 온유하고 현숙하며 문밖으로 나가지 않았던 여성들을 “강철 여인 부대”와 “홍색 낭자군”으로 조직해 전 사회를 중공의 반란 운동 속으로 휘말리게 했다.


“남녀는 차이가 없다”는 말이 겉보기에 여성의 지위를 제고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이런 관념이 당문화에 대한 인정을 기초로 건립되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여성의 생리적인 차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녀들에게 힘에 부치는 일을 하도록 강요하고 남자의 표준을 여인에게 요구하는 이런 것은 사실 여인에 대해 공평하지 못한 것이며, 당문화 아래에서 여성을 진정한 노예로 만든 것이다.


공자는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 하여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면서도 자신의 입장을 지킨다고 했다. 바로 사람마다 각기 다양한 특징이 있기 때문에 다채로운 사회를 구성하는 것이다. 사람마다 제각기 자신의 장기를 갖고 있으므로 서로 존중하고 평등하게 대해야 한다. 그런데 중공은 “사상을 통일”해야 하며 사회를 일원화된 사회로 변하게 만들었다. 남녀 사이의 선천적인 차이에 대해 중공은 “약육강식”의 정글의 법칙을 주입하여 여자들에게 만약 남자보다 약하면 희생당하거나 압박받을 수 있다고 느끼게 만들었다. 때문에 여인들이 자신을 보호하려면 반드시 사나워져야 했다.


여자가 부드러움(柔)을 버리고 강(剛)을 따르는 것은 자신의 장점을 버리는 것과 같으며 자신의 단점으로 남자의 장점과 다투는 것이다. 때문에 원래 있던 아주 많은 자신의 본색(本色)을 잃는다. 여자들은 공부하고 일을 하는 외에 현모양처가 되어야 하며 또 자식을 낳고 길러야 하기에 자신이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몸부림쳐야 한다. 여자들은 또 남자로 되어 힘겨운 싸움을 치러 관문을 돌파해야 하며 동시에 여자로서 전통적인 역할도 해야 한다. 중국 여인 스스로도 이런 압력을 느끼며 여자 노릇하기가 정말 힘들다고 느낀다.


“남녀는 차이가 없다”는 관념은 중국에 음성양쇠(陰盛陽衰) 현상을 초래했다. 이런 종류의 당문화가 만들어낸 여성상이란 바로 류후란(劉胡蘭), 리톄메이(李鐵梅), 장누이(江姐), 아칭 아줌마(阿慶嫂) 등이다. 그녀들은 저마다 눈을 부릅뜨고 바람이 일 정도로 힘차게 걸으며 말을 할 때는 기세가 높고 목소리가 크다. 중국 고대 여인들의 온정(溫情)적인 면은 인위적으로 버려졌다. 이 점에 대해서는 많은 여성들도 스스로 책, 신문, 영화, 텔레비전에서 발견한다.


일본, 한국, 대만 여인들은 중국 여자들보다 더 꾸밀 줄 알며 더욱 여성스럽다. 당문화의 지도하에서 여자가 남성화되는 과정에 따뜻하고 부드러운 특성을 잃었으며 난폭하고 무지막지하게 변했으며 여성이 삶의 가치를 실현하는 핵심은 바로 남자와 싸워 이기는 것이라는 과격한 관념이 강조되었다. 이리하여 오늘날 여성으로서 특징을 잃어버린 수많은 여자들이 만들어졌고, 남녀 사이 악성(惡性) 경쟁, 결혼과 가정 관계의 긴장을 조성하였다.


당문화에 의해 변이된 혼인으로 이룬 가정에서 사람들이 정신적인 귀속감을 느끼기란 매우 어렵다. 여자들이 세상의 절반을 떠받치기 위해 남자가 할 일을 하다 보니 남자처럼 사납게 변하지 않을 수 없다. 집에서 서로 지지 않으려 하고 서로 아귀다툼을 하여 가정은 따스한 온기를 잃어버렸다. 남자는 여자가 전혀 여자답지 않다고 탓하고 여자들도 자신의 남편이 강하지 못하며 칠칠치 못함을 한스러워한다.


여자들에게 눌린 남자들은 사내대장부의 존엄을 지니지 못하며 공처가로 되어버린다. 많은 남자들은 집에서 남자의 존엄을 실현할 수 없기에 곧 밖에 나가 남자를 존중하고 순종하는 여자를 찾는다. 이것은 결국 더욱 많은 모순을 조성하게 되며 사람들은 결혼의 책임에 대해 더욱 냉담해졌다. 현재 중국의 높은 이혼율과 각종 혼외정사의 범람은 가정이 당문화에 의해 파괴당한 것과 아주 깊은 관련이 있다.


“남녀는 차이가 없다”는 것은 또한 여성의 옷차림에서도 나타난다. 마오쩌둥은 일찍이 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옷단장을 즐기기 않고 무장(武裝)을 즐기네.” 사실,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것은 사람의 천성이며 여자는 더욱 그렇다. 중국 여자들이 도대체 무엇을 즐기는가 하는 문제를 어찌 공산당의 남성 두목이 결정할 수 있겠는가? 지난 몇십 년 동안, 중국 여인들은 단지 세 가지 색깔의 옷만 입을 수 있었는데 바로 파란 색, 검은 색, 회색이었다.


옷 모양도 레닌 식 복장, 녹색 군복 등 몇 가지에 불과했다. 누가 만약 무늬가 있는 옷을 입기만 하면 가벼운 경우는 비평을 받았고 심한 경우는 비판을 받았다. 공산당은 일찍이 사람들을 파견해 여자들의 하이힐 굽을 잘라버렸고, 좋은 천으로 만든 바지를 가위로 잘라버렸다. 외국인들이 중국에 와서 중국 여자들의 옷차림을 보고는 깜짝 놀란다. 그들은 중국이 가난하다 못해 여인들이 치마도 입을 수 없어 남편의 옷을 입고 거리에 나온 것으로 여겼다 .


지금은 중국 사람들의 옷이 이전보다 비록 다양해지긴 했지만 당문화가 주입한 관념은 여전히 완고하게 작용을 발휘하고 있다. 다른 나라 사람들과 비교해 보면 중국 여인들의 옷차림은 그다지 어울리지 않으며 말투가 거칠고 이해심이 부족하고 행동이 무례하다. 부드럽고 우아하며 단정하고 세심하며 살뜰한 여성미의 체현은 공산당의 파괴로 인해 거의 다 사라져버렸다. (계속) / 에포크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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