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4. 대규모 숙청 과정을 거쳐 제정된 당 언어
1) 당 언어의 유래
2) 당 언어의 형성과 변천
(1) 1919-1937,당 언어 창립단계
(2) 1938-1949,중국적인 외투를 걸친 시기
(3) 1949-1966,언어 패권을 틀어잡은 시기
(4) 1966-1976,당 언어의 대량 폭발시기
(5) 1976-1989,당 언어를 혼용한 변이(變異) 시기
(6) 1989-현재, 쇠퇴와 부패 시기
3) 계단성 당 언어와 제도성 당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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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규모 숙청 과정을 거쳐 제정된 당 언어
언어의 형성과 발전은 자연적인 과정이다. 한어(漢語) 글자 체계의 고도의 안정성은 중국 문명의 안정과 통일을 유지하는 데 중대한 작용을 일으켰다. 중국과 같이 유구한 역사와 오랜 전통을 가진 국가에서 언어의 행위규범이 신중하고 적절한가는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나 중공이 정책을 제정하는 출발점은 정통(正統)문화의 완전하고 순수함을 유지하는 데 두지 않았다. 오히려 정반대로 독재 통치를 건립하는 데 방해가 되는 모든 것을 제거하기 위해, 중공은 전통 문화에 대한 부정을 신속히 완성할 필요가 있었고 아울러 사람들에게 무신론, 진화론, 투쟁 철학 등 삿된 설을 주입했다. 중공은 국가 정권을 동원해 초대규모로 언어 숙청을 진행했다. 국가 기구는 모든 수단을 이용해 당 언어를 전국에 보급했는데 이는 당 언어 체계 건립의 근본 특징이다.
1) 당 언어의 유래
개괄적으로 말하면 당 언어는 주로 6가지 내원이 있다. 대량의 번역, 당 두목의 제작, 조직과 함께 탄생한 것, 체계적인 편찬, 어용 문인, 대중 합작 등이다.
마르크스-레닌주의는 일종의 외래학설이기에 최초의 당 언어는 번역 서적을 매개체로 해야만 했다. 1897년 출판된 옌푸(嚴復) 번역의 『천연론(天演論)』은 처음으로 사회적 다윈주의를 중국에 들여온 것으로 마르크스주의 전파를 위한 기초를 닦았다. 1919년, 『신청년』 잡지에 최초의 『공산당 선언』 완역본이 게재되었고 당 언어는 비로소 중국에서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중공이 건립된 후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스탈린의 저작과 소련 공산당 문건을 번역하는 것이 기본적인 임무의 일부였고 전문적으로 “편역실(編譯室)”, 과 “편역국(編譯局)” 등의 부서를 설립했다. 옌안에서 피살된 왕스웨이(王實味)는 “중공중앙마르크스레닌학교 편역실”에서 일했었다. “공산주의”, “무산계급”, “유물사관”, “계급투쟁” 등 중공 이데올로기의 기본 단어들은 이런 번역과정에서 나왔다.
중공 당 두목은 당 언어의 또 하나의 주요 제작자이다. 마오쩌둥은 “마르크스주의의 보편 진리를 중국 혁명의 실천과 상호 결합시켜야 한다.”고 주장했고 1930년대 중반부터 의식적으로 자신의 분명한 특색이 있는 당 언어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 후의 당 두목들도 이를 모방해 “새로운 말”로 자신의 이론 권위의 지위를 만들어 당내 투쟁 중에서 패배하지 않는 위치에 서고자 했다. “마르크스주의의 중국화”, “무산계급 전정(專政) 조건하에서 계속적인 혁명”, “자본주의 길로 나아가는 집권파”, “네 가지 견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자산계급 자유화 반대”, “삼강(三講)”, “3개 대표”, “조화 사회(和諧社會)”, “8영8치” 등은 모두 이렇게 만들어진 새로운 말이다.
여기서 반드시 지적해야 할 것은 중공은 전체적인 수요에 따라 자신을 위해 합법적인 근거를 날조했고 중공 지도자도 자신을 위해 합법적인 근거를 날조했다. 중공 지도자는 매 차례 피의 빚을 졌기에 후임자는 전임자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중공이 사전에 설정해 놓은 최대 한계를 돌파할 수 없었다. 화궈펑(華國鋒)은 이 두 가지 관계와 마오쩌둥과 관계를 깨끗이 처리하지 못하고 “두 가지 무릇”을 제기하는 바람에 얼마 지나지 않아 퇴진 당했다.
중공은 조직 기율이 엄격한 레닌주의 정당이다. “조직과 함께 탄생”한 당 언어는 중공의 조직형식과 일상적인 활동에 따라 생겨난 것들이다. 이런 어휘들은 일부는 중공이 만들어낸 것이고 일부는 한어(漢語) 어휘이거나 혹은 독일어, 러시아어, 일어에서 차용한 단어들이다. 하지만 중공이 장기적으로 사용한 결과 모두 강렬한 당문화의 분위기에 물들어버렸다.
이런 단어들은 중공의 조직 활동과 함께 하기에 중공 조직 내부에서 전달되는 문건의 단단한 핵심이 되었다. 그러므로 가장 은폐되어 있으면서도 가장 강력한 당 언어가 되었다. 앞부분에서 중점적으로 분석한 “선전, 관철, 투쟁, 노동모범, 대표, 회의정신, 노선, 인식, 영도, 상급, 호소, 분투, 위원회, 사상회보, 자아검사, 비평과 자아비평” 등이 이런 유에 속하는 당 언어이다.
체계적인 편찬. 중공은 모든 선전기구, 문화교육 부분, 과학 연구기관을 통제하고 있기에 오직 중공 당 두목이나 혹은 “당 중앙”에서 소위 “노선, 방침, 정책”을 결정하기만 하면 이들 기관에서는 전력을 다해 그럴듯하게 논증한다. 중국 대륙에서 출판한 “마르크스주의 ××학”, “마오쩌둥의 ××사상”,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건설 이론” 등 많은 책들은 바로 어느 문제에 대한 “혁명 지도자”의 한두 마디 말을 수집한 후 “치켜세우고”, “아첨하는” 어용학자들이 두꺼운 저작으로 가공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도 대량의 당 언어들이 탄생했다.
어용 문인들의 아첨, 대중 합작도 당 언어의 내원이다. 사악한 당 문인들은 아첨하여 출세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중공에 협조해 쓰레기 당문화를 만들었다. 중국 민중들은 일당 독재 하에서 생활하고 있기에 중공에 순종하거나 혹은 어쩔 수 없이 당 언어를 만드는 일에 참여했다.
예를 들면 중공 문인들이 만들어낸 “전통문화는 현대화를 방해한다”는 논조가 바로 “어용문인들이 아첨”한 사례이다. 또 중공 자신이 외친 “공산당이 없으면 신중국은 없다”는 것에 대해 최근 중국 백성들 스스로 “공산당이 없으면 중국은 어떻게 되겠는가?”하고 말하는데 이것이 바로 “대중들이 합작”한 범주에 속한다.
2) 당 언어의 형성과 변천
당문화를 투시하자면 그 속의 변화와 불변에 주의해야 한다. 공산당의 이상이란 큰 깃발은 변하고 있고 방침, 정책도 변하고 있으며 공격 대상도 변해 가고 있다. 그러나 전제독재는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며 사교(邪敎) 속성과 깡패 수단 역시 영원히 변치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각기 다른 단계의 당 언어와 중공의 정치 운동이 긴밀히 관련되어 서로 다른 특징을 나타내고 있긴 하지만 그 속에는 견고한 핵심이 들어 있다. 그것이 바로 중공의 본질적 특성을 잘 대표하는 것이다.
중공의 당 언어는 대략 다음과 같은 몇 개 시기를 거쳐 발전했다.
(1) 1919-1937,당 언어 창립단계
1919년 『공산당 선언』 완역본이 출판되었다. 중공은 성립초기 공산주의 인터내셔널 극동 지부에 속해 있었기에 이론 기초에서 조직 형식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인터내셔널의 마르크스만 우러러 모셨고 번역어 외엔 특색이 있는 당 언어가 없었다. 이 시기 중공 무장부문을 “홍군(紅軍)”이라 불렀고 근거지에서는 “소비에트 지역”이라 했으며 지역에 할거한 공산 정권을 “소비에트”라고 했다. 완전히 소련 공산당의 복사판이었다.
(2) 1938-1949,중국적인 외투를 걸친 시기
옌안으로 도망친 후, 마오쩌둥은 당내 투쟁의 필요에 따라 마르크스주의의 해석권을 독점하기에 급급했다. 1938년 중공 제6기 6중 전회에서 마오는 처음으로 “마르크스주의의 중국화”란 개념을 제기했다. 나중에 옌안 정풍을 통해 마오는 한편으로는 자신이 새로 발견한 당 언어로 정적들을 공격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당원 간부들을 세뇌했다.
“당팔고(黨八股)”를 반대하면서도 다른 한편 자신의 밀수품을 표준적인 문풍(文風)으로 고정시켰다. 당원 간부들은 핍박에 의해 중공 지도자의 말을 외워야 했는데 중공 집단의 초기 언어 모형이 형성되었다.
(3) 1949-1966,언어 패권을 틀어잡은 시기
중공은 중국 대륙의 정권을 빼앗은 동시에 이 땅위에 존재하는 언어까지 독점했다. 소위 말하는 표준말을 만드는 기구인 출판, 신문, 학술, 교육은 모두 관방에서 점령했다. 아울러 중공 특유의 중앙선전부 이하 선전 계통, 간부 훈련과 조직생활계통, 중앙과 각급 당교(黨校) 등 사상교육 기구들을 갖추었다. 이리하여 당 언어를 각 업종, 각 계층에 걸쳐 방방곡곡 모든 사람들에게 강제로 보급하였다. 당 언어는 합법화된 유일한 언어가 되었다. 중공은 당 언어를 이용해 전통문화에 대한 전면적인 소탕에 들어갔다.
(4) 1966-1976,당 언어의 대량 폭발시기
문화대혁명 10년 동안 당 언어는 대량으로 폭발했으며 크게 검열하고 크게 시위했다. 천지를 뒤덮는 대자보, 격렬하고 날카로운 변론, 격문, 조서(詔書 최고지시) …. 언어의 폭력은 극에 달했고 사람들은 두려워 벌벌 떨면서 언어의 훼멸적인 힘을 목격했다. 당 언어는 사람의 말을 전면적으로 대체하였고 중국인들은 정상인의 말을 할 수 없었다.
(5) 1976-1989,당 언어를 혼용한 변이(變異) 시기
“개혁개방” 이후 중공은 경제와 문화 영역에서 사람들에게 제한된 자유권을 일부 허용하면서 정상인의 말을 조금씩 사용하게 했다. 예를 들면 80년대 초 “인도주의”에 대한 토론을 진행한 적이 있다. 그러나 중공이 집권 후 30년 동안 강력히 주입했고 또 정치 영역에서는 절대 느슨히 하지 않았기에 당 언어는 중국인의 언어 계통에서 여전히 지배적인 지위를 차지하였다. 사람들은 당 언어에 대한 식별 능력과 면역 능력을 상실했다.
(6) 1989-현재, 쇠퇴와 부패 시기
장쩌민 시기, 중국 사회의 화려한 표면에는 여러 가지 모순들이 숨겨져 있었다. 생활은 무의미했고 도덕이 타락하고 사상이 고갈되었으며 개혁은 후퇴하여 사회는 만신창이가 되었다. 당 언어는 더욱 내용이 부실해져 “세 가지 대표로 우리의 도살 사업을 지도한다” ——[구이저우(貴州) 퉁런(銅仁)의 모 도살장의 표어]는 표어까지 등장하기에 이른다.
이는 붉은 왕조 중공의 쇠퇴와 몰락을 나타내는 것이다. 당 언어는 말기에 이르러 서양의 용어, 과학기술 용어(××공정)와 일부 전통문화 용어(덕치)들을 끌어들여 자신들의 패망할 운명을 만회하고자 시도하였다. 당 언어는 민요, 정치적인 농담과 함께 특이한 공생현상을 이루면서 사회의 전면적인 부패와 절망 속에서 자조(自嘲)하는 민중들의 심리를 나타내고 있다.
3) 계단성 당 언어와 제도성 당언어
어떤 용어가 중공 발전의 각 단계를 관통하여 사용되었는가 하는 여부에 따라 당 언어를 “계단성 당 언어”와 “제도성 당 언어”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계단성 당 언어란 중공이 역대 정치 운동 중에서 임시로 만들어 사용한 것으로 금세 사라진다. 제도성 당 언어는 중공이 건립된 후 각 시기를 관통하는 가장 핵심적이고 중요하며 중공의 본질적 속성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이다. 계단성 당 언어가 중공의 “변화”를 나타낸다면 제도성 당 언어는 중공의 불변(不變)을 나타낸다.
만약 계단성 당 언어를 유동하는 모래에 비유한다면 제도성 당 언어는 견고한 강바닥과 같다. 중공의 기만성은 사람들의 주의력을 계단성 당 언어로 끌어들여 정치운동이 끝날 때마다 계단성 당 언어를 신속히 도태시키고 간판만 바꾸는 가상을 만든다는 점이다. “중공은 변했다”, “지금의 중공은 과거의 중공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바로 당 언어의 계단성과 제도성의 관계를 똑똑히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끊임없는 정치 운동은 대량의 신조어를 만들었다. 제도성 당 언어에는 당의 활동에 따라 만들어진(조직과 함께 탄생) 일부 단어들이 있다. 예를 들면 “선전, 관철, 집행, 투쟁, 노동모범, 대표, 회의정신, 노선, 인식, 영도, 상급, 호소, 분투, 위원회, 사상회보, 자아검사, 비평과 자아비평” 등이 있다. 이런 단어는 직접 “당”의 강권지위, 조직구조, 사상통제, 통치수단, 인민 군중들의 관계 등을 규정하는 중공의 사교 속성을 가장 잘 나타내는 당 언어이다. (계속) / 에포크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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