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그인
    • 회원가입
    • 사이트맵
    • 04.02(수)
페이스북 바로가기 트위터 바로가기
  • 중국

  • 국제/국내

  • 특집

  • 기획

  • 연재

  • 미디어/방송

  • 션윈예술단

  • 참여마당

  • 전체기사

검색어 입력

[해체 당(黨)문화] 제6장 습관화된 당의 언어(1)

편집부  |  2021-05-09
인쇄하기-새창



▲ [사진=SOH 자료실]


목 차


들어가는 말 : 언어는 민족의 영혼이자 기억


1.”동지”라는 호칭 


**********


들어가는 말 : 언어는 민족의 영혼이자 기억 


언어는 인류가 기억을 저장하고 정보를 교환하며 경험을 전달하고 후대를 교화(敎化)하는 도구이다. 한 민족의 영혼과 기억으로서 언어는 한 민족의 궁극적인 관심, 가치관, 역사적 지혜, 사유방식, 심미(審美) 취미, 사회 풍속들을 응집하고 있으며 그 민족과 우주의 관계, 그 민족이 세계 속에서 차지하는 위치, 전체적인 생존방식 및 발전 방향을 반영한다. 언어는 문화의 일부분이며 또한 문화의 매개체이기도 하다. 언어는 문화라는 대(大)체계 중에서 가장 중요한 소(小)체계이다.


『주역 계사하』의 기재에 의하면 고대에 복희(伏羲)씨가 천하를 다스릴 때, 고개를 들어 하늘의 일월과 별들을 관찰했다. 몸을 굽혀 지상의 산천하류 등의 변화 법칙을 관찰하고 들짐승과 날짐승들의 화려한 색채와 지상에서 생장하기에 적합한 식물들을 관찰했다. 가까이는 사람의 몸에서 본떴으며 멀기로는 각종 물질의 상(象)에서 본떴다. 이리하여 팔괘를 처음으로 만들었는데, 이것으로 신명(神明)의 덕성(德性)과 서로 관통시켰고 만사만물의 상황을 나타내고자 했다.(古者包犧氏之王天下也,仰則觀象於天,俯則觀法於地,觀鳥獸之文與地之宜,近取諸身,遠取諸物,於是始作八卦,以通神明之德,以類萬物之情).


이 단락의 말은 비록 팔괘의 기원을 이야기했지만 우리는 거의 그것을 중국 언어의 기원을 개괄하는 데도 적용할 수 있다. 선인들은 자연계와 인류 자신의 형상을 추출하여 반은 추상적이고 반은 구체적인 부호를 만들어 천지만물을 나타내고자 했으며 아울러 신명(神明)과 소통하고자 했는데 이것이 바로 한어(漢語)의 내원(來源)이다. 우리는 한어의 기원을 통해 한어의 자형(字形)과 발음이 우주와 아주 교묘한 연대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언어는 천지인(天地人) 3자를 소통하는 교량이 되었다.


언어는 한 민족의 독특한 정신 풍모를 빚어낸다. 인류의 모든 정신과 물질 활동은 모두 언어의 중개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한 문화의 형태는 바로 그 민족 언어의 형태라고도 할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 볼 때, 문화의 창조는 바로 일종 독특한 언어를 창조하는 것이며 문화를 훼멸하는 것은 바로 이런 문화를 싣는 언어를 훼멸하는 것이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언어(言)는 마음의 소리(心聲)이며 문장(文)은 도를 표현한다.” 라고 했다. 옛사람들은 경건한 마음으로 하늘이 그들에게 준 언어 문자를 소중히 여겼다. 우리는 후세에 남아있는 전적(典籍)을 통해 선인(先人)들의 언어 풍모와 정신 풍모를 보아낼 수 있다. 심오하고 정밀한 『주역』에서부터 간명하고 투철한 『노자』에 이르기까지, 온유하고 돈후(敦厚)한『시경(詩經)』에서부터 아름답고 고결한『이소(離騷)』에 이르기까지, 미묘한 말로 대의를 표현한『춘추』에서부터 웅장하면서도 고아한 『사기(史記)』에 이르기까지, 소박하면서도 글이 적은 한문 불경(佛經)에서부터 웅대하고 화려한 당시(唐詩), 아름답고 함축적인 송사(宋詞), 호방하고 힘 있는 원곡(元曲)에 이르기까지 한어는 중화민족의 고도의 지혜, 넓고 큰 내심 세계와 꾸준한 정신 추구를 기록해 왔다.


자신을 존중하는 민족이라면 반드시 자신의 언어를 존중할 것이고, 자신을 사랑하는 민족이라면 반드시 자신의 언어를 애호할 것이며, 스스로 굳세고 쉬지 않는 민족이라면 반드시 자신의 언어를 능숙하게 잘 사용할 것이다.


그러나 근대 중국에서는 문명이 발전하는 중에 각종 내우외환의 굴욕을 당했다. 매 차례 군사와 외교적인 실패는 많은 사람들에게 오랜 문명에 대한 자신감을 잃게 했고, 중국의 언어에 대한 자신감도 잃게 했다. 백화문(白話文)운동, 세계어 운동, 한자 폐지, 변소에 책 버리기 등. 지식인들은 갈수록 더 급진적인 방안을 제출했다. 위기의식이 깊은 중국 민중들은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었고 일부 방안은 이리하여 사회적으로 상당한 찬성을 받았으며 한어의 순수성도 서서히 침식되기 시작했다. 비록 이러했지만 언어 문자에 대한 이런 국부적인 피해와 변이가 정권의 대규모 개입은 없었기 때문에 언어에 대한 치명적인 타격이 되진 않았다.


중공은 정권을 탈취한 후, 정통 중화문화를 그것의 독재 통치에 대한 최대의 장애로 보았다. 인구가 매우 많은 중화 고국(古國)을 마주하고 중공은 전통적인 것을 완전히 던져버리고 또 다른 별개의 것을 할 수는 없었다. 그러므로 그것은 내부에서부터 민족문화를 훼멸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한어에 대한 그것의 태도도 뿌리째 뽑아버리는 것이 아니라 표면형식을 계승하고 당문화(黨文化)의 내용을 주입하여 당문화의 독소로 하여금 민족 언어의 몸 위에 달라붙게 했다.


이러한 방법은 중공을 놓고 말할 때, “최소 비용에 최대 수익”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중공은 자신들이 장악한 선전 부서, 교육 부서, 신문, 방송, 영화, 텔레비전, 문예 단체, 끝없는 회의, 산더미 같은 문서, 끊임없는 광적인 정치 운동을 이용해 거대한 양의 당문화 단어와 특수한 표현 방식을 새로 만들었고, 또 자전, 사전, 각종 공구서적, 교재, 언어 기획 부서의 서류들로 그것을 고정시켰다.


간자체의 시행은 젊은 세대로 하여금 고적(古籍)을 읽을 수 없게 했다. 중공의 어용 문인들이 그 당두목이 새로운 언어 규범과 미학 표준을 창조했다고 허풍을 치는 바람에 대학교, 중고등학교, 초등학교에서 여태껏 실시해 온 당문화 교육은 학생들로 하여금 사악하고 경직되며 추악하고 허위적인 당의 언어를 당연한 이치로 받아들이게 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동지(同志), 선전, 관철, 집행, 투쟁, 노동모범, 대표, 회의정신, 노선, 인식, 지도자, 상급, 호소, 분투, 위원회, 사상회보, 자아검토, 비평과 자아비평 등 당팔고(黨八股)의 단어(詞)들이 문서, 신문과 간행물, 서적과 사람들의 일상생활 속에 가득 차 있으며 천지를 뒤덮을 듯한 당 언어가 중국인들의 언어 현실로 되었다. 사람들은 시시각각 중공이 고심 끝에 만들어낸 언어 공간 속에서 생활하지만 전혀 느끼지 못하며 현재 사용하고 있는 언어가 민족 언어의 자연스런 발전결과로 여기고 세상의 모든 정상적인 사람들이 모두 이렇게 말하고 있다고 여긴다. 중국인들은 당팔고(黨八股) 를 떠나서는 정말이지 어떻게 말을 해야 하는지 모를 지경이 되었다.


중공은 국가 정권을 도용하여 민족 문화와 언어를 손상시켰는데 이는 지금까지 그 누구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언어는 사유의 도구이다. 당문화에 의해 심각하게 오염된 언어는 사람들이 중공을 되돌아보고 당 문화를 되돌아보고 민족의 미래를 구상할 능력을 심하게 손상시켰다. 많은 사람들이 한 가지 이상한 현상을 발견하였다. 즉, 사람들은 중공이 만든 언어로 중공을 비판하며 분노하여 중공을 성토하는 글에서도 여전히 중공 정권의 수립을 “해방”이라고 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중공을 탈당하는 성명”에서도 여전히 “나는 “신중국(新中國)에서 태어나 붉은 기 아래”에서 자랐다.”라고 한다. 그야말로 도대체 중공을 미워하고 싫어하는 것인지 아니면 중공에게 감격하는 것인지 분별하기 어렵다. 중공 정권이 무너져 가고 있고 인민들이 시급히 정상적인 인류문화로 되돌아갈 것을 갈망하고 있는 오늘날, 민족 언어에 달라붙어 있는 당 언어를 똑똑히 인식하고, 그것을 제거하는 것은 잠시도 늦출 수 없는 임무가 되었다.


1.’동지’라는 호칭




▲ 매국노의 아들로 태어나 열사의 고아를 사칭하고 아첨과 모략, 6.4 대학살로 총서기의 직위에 오른 후 영토마저 팔아먹은 장쩌민. [사진=에포크타임스]


중국인들이 가장 익숙한 당 언어는 아마 “동지(同志)”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장(張) 동지, 왕(王) 동지, 노(老) 동지, 어린 동지, 남자 동지, 여자 동지, 좋은 동지, 새 동지, 가장(家長) 동지, 지도자 동지, 운전사 동지, 국장 동지, 심지어 주석 동지라고도 한다. 더욱이 영화나 TV 작품 중에서 나오는 대사와 생활 중의 습관 용어에서는 다음과 같이 사용한다. “동지, 저는 당신을 찾고야 말았습니다!”, “동지들, 돌격!”, “같은 전선의 혁명 동지”, “같은 참호 안의 혁명 동지”, “모모 동지를 따라 배우자”, “모모 동지에게 경애를 드린다.”, “동지들 수고했습니다.” 등이다. “동지”라는 이 단어의 사용은 이렇게 보편적이며 심지어 사람들은 그것이 공산당의 단어라는 것도 느끼지 못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어떤 사람이 중국 고적(古籍)이나 혹은 고사성어 중에서 “동지”라는 흔적을 약간 찾아내긴 했지만 공산당에 의해 유행된 “동지”라는 이 단어는 중국 옛적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외래어라고 할 수 있다. 고증해 보면 “동지”라는 말은 영어 Comrade에서 왔으며 19세기 사회주의자들 사이에 자주 사용되었다. 일본 사람들이 먼저 Comrade를 “동지”라고 번역했는데 나중에 중국으로 전해 들어와 뜻과 목표가 일치하는 사람(특히 정치 방면을 가리킴)들을 부르는 데 사용하였다. 


19세기 말, 청나라 광서(光緖)황제가 “무술변법(戊戌變法)”을 정할 때, 변법파 대신들에 대해 “동지”란 이 호칭을 쓴 적이 있다. 동맹회(同盟會)와 이를 기초로 창립된 국민당 내에서도 “동지”란 단어를 이미 보편적으로 사용했다. 그러나 “동지”는 국민당 내에서 사용할 때, 일종의 보통 명사로 사용했지 호칭으로는 사용하지 않았다. 호칭을 쓸 때는, 여전히 “선생”, “여사”, “아가씨” 등을 썼다. 예를 들면 “장 선생은 우리의 충실하고 믿음직한 동지이다.”


1920년, 마오쩌둥(毛澤東), 뤄쉐짠(羅學瓚) 등 사람들이 서신을 왕래할 때, “동지” 라는 이 단어를 인용했다. 1921년, 중국 공산당 “1차 대표대회” 당 강령 중에서, “무릇 본 당의 강령과 정책을 승인하며 참된 당원으로 되고자 하는 자는 당원 한 명의 소개를 거쳐 성별, 국적과 상관없이 모두 당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며 우리의 동지로 될 수 있다.”라고 정했다. 이것은 중국 공산당이 정식 문건 중에서 “동지”라는 이 단어를 사용한 최초이자 아울러 그것에 새로운 함의를 부여했다. 1923년 이후, 중공 내부와 외국 공산당과 노동자 조직 사이에서 서로 “동지”란 말을 많이 사용하였다.


중공이 정권을 탈취한 후, “동지”라는 이 단어는 중국 대륙에서 사회 각계각층 구석구석까지 보급되었다. 중공 두목이 1959년 특별히 사람들에게 서로 “동지”라 부르라고 지시한 적이 있다. 1965년 12월 14일, 중공 중앙은 특별히 통지를 발표해 당내에서는 일률적으로 “동지”라고 부를 것을 요구했다. 


실제적으로 동지의 외연은 일찍이 확대되어 이 호칭이 당내에서만 사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국민들 사이에도 일반적인 호칭으로 되어버렸다. 아울러 이 칭호를 상대방 이름 뒤에 붙이고 심지어 직책 뒤에 붙여 가장 자주 쓰는 칭호로 만들어버렸다. 예를 들면 “장 동지는 충실하고 믿음직하다.”, “부장 동지”, “노동자 동지”, “여성 동지” 등이다.


중국 전통 사회에서 유전되어 내려온 사람이 왕래할 때의 칭호는 소실되고 모두 “동지”로 대체되어 버렸다. “같다(同)”는 것은 당의 “뜻(志)”과 같다는 것이다. “동지”는 사람의 자연 속성을 떼어내어 사람에게 “집단”, “당파”, “파벌”의 성질을 부여했다. 이 호칭은 선명하게 선택의 의미가 있고 중공의 이데올로기를 인정하고 중공의 “혁명 목표”를 따르고 당의 지도에 복종하는 것이 동지라고 하지만 배후에 숨겨져 있는 것은 바로 모든 사람들의 자유에 대한 박탈이었다. 


서로 간에 “동지”라고 부르는 것이 “혁명 대오” 중의 평등과 친절함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사람들은 순진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정반대로 “동지”는 사람들에게 자유 의지를 잃게 하여 당의 순종 도구가 되게 했는데 이 단어 표면에 있는 평등의 배후에는 삼엄한 등급차별이 있는 것이다. “마오쩌둥 동지”가 반영한 것은 절대적인 권위이고 “덩샤오핑 동지”가 표현한 것은 일체를 지도하는 지위이며 “장쩌민 동지”가 나타내는 것은 음모가의 급속한 승진이다. 지금까지 중공 간부들이 백성을 평등한 “동지”로 본 적이 언제 있었는가?


중국은 예부터 호칭을 중요시했다. 『논어 안연(顔淵)』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제(齊)나라 경공(景公)이 공자에게 정치를 하는 방법을 물었을 때 공자는 “군주는 군주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부모는 부모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君君, 臣臣, 父父, 子子).”라고 대답했다. 


『논어 자로(子路)』에는, 한 번은 자로가 공자에게 “만약 위나라 군주가 선생님께 나라를 다스리라고 하신다면 어디서부터 시작하시겠습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반드시 “명분을 바로 잡는 일(正名)”부터 해야 한다!” “만약 명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순하지 못하고, 말이 순하지 못하면 일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일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예(禮)와 악(樂)이 일어나지 못하고, 예와 악이 일어나지 못하면 형벌도 알맞지 못하고, 형벌이 알맞지 못하면 백성들이 손발을 둘 곳이 없어진다(名不正,則言不順;言不順,則事不成;事不成,則禮樂不興;禮樂不興,則刑罰不中;刑罰不中,則民無所措手足).”


전통관념 중에서 적합한 명명[命名]을 만들어 사용하는 것은 “나라와 사회를 다스리는” 출발점이었다. 적합한 호칭(오륜: 군신, 부자, 형제, 부부, 친구)은 사람을 자연적으로 형성된 사회의 관계망 속에 처하게 하여 사람의 행동에 의지할 바가 있게 한다.


언어는 단지 사상의 외투일 뿐만 아니라 언어는 또한 물질 현실을 창조할 수도 있다. 중공은 바로 이렇게 전통 사회에서 천연의 윤리를 기초로 한 호칭 체계를 폐지하는 동시에 전통 종법제도를 폐지해 사회에서 원래 정해져 있던 질서정연한 사람을 무질서한 파벌 교파의 구성원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풍부한 호칭을 단순히 “동지”로 만들었는데 사실 이것은 공산당 투쟁 철학의 필요에 의한 것이다. “동지”라는 이 단어는 확실히 폭력 혁명을 하는 공산당 국가에서만 주류 호칭이 되었다. 사회적으로 이 호칭이 갖고 있는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개체의 독립성이 부족하다.

(2) 군체(群體)의 폐쇄성이 강하다.

(3) 사회적인 포용성이 부족하다.

(4) 비교적 높은 불안전감이 있다.


중공 자전 중에는 “동지” 아니면 “적”이 되는데 그 의미는 공산당과는 다른 부류이며 “인민민주 전제(專制)”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중공이 발행한 마오쩌둥 선집 첫 시작 부분에 “누가 우리의 친구이고 누가 우리의 적인가 하는 이 문제는 혁명의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라고 썼다. 중공이 만든 몇 개 큰 “민주당파”인사들은 중공 정치에서 “친밀한 친구”이며 중공 역시 그들을 “동지”라고 부른다. “동지에 대해서는 봄처럼 따뜻해야 하고 적에 대해서는 엄동설한처럼 냉혹해야 한다.” “동지”라는 이 호칭이 갖고 있는 싸늘한 살기에 사람들은 일찍부터 습관이 되어 버렸다. 


무릇 중국에서 생활해 본 사람이라면 중공이 규정한 적이 어떤 상황이라는 것을 모두 알 것이다. 20세기 중반에 만약 당신이 “성분이 높다”든가(“지주”, “부농”, 혹은 “자본가” 가정에서 출생한 사람) 혹은 역사적으로 문제가 좀 있는데, 장기간 당신을 멸시했던 사람이 당신을 “동지”라고 부른다면 당신은 아마 격동되어 몸을 부들부들 떨 것이다.


정치 투쟁에서 실패한 측은 아마 “동지” 자격을 상실할 위험에 직면할 것이다. 만약 승리한 측이 상대방이 단지 착오를 범했을 뿐이라고 인정하거나 비록 엄중한 착오를 범했을지라도 실패한 측은 아마 여전히 당적(黨籍)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관방의 문건에 나타날 기회가 아주 적겠지만 불가피한 상황 하에서 [예를 들면 부고(訃告)] 관방 문건에서는 여전히 그들을 “동지”라고 부른다. 


만약 승리한 측이 상대방의 착오가 더욱 엄중하다고 여길 때면, 실패한 측은 보통 “반혁명”으로 몰려 당적을 박탈당하며 이후 관방의 문건에서도 더는 “동지”라고 부르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공산당이 국제 정치에서 “동지”라는 이 호칭을 사용하는가 하는 것도 두 나라가 같은 진영에 속하는가를 반영한 것이다.


전형적인 “동지”는 개체 의식도 없고 사회 공민(公民) 의식도 없어 정상적인 사회에서 공민이 마땅히 부담해야 할 책임을 감당할 수 없으며 남은 것이란 단지 상급 조직인 중공에 대한 복종일 뿐이다. 매우 많은 “동지”들은 정상적인 사회를 구성할 수 없으며 다만 단체와 종교를 구성할 수 있을 뿐이다. 이 단체는 통제 방식을 채용해 인심을 묶어 놓고 아울러 국가 정권을 장악하여 사회를 사이비 종교 식 봉폐된 체계로 변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왜 중공 역사상 수많은 사람들이 “동지”라는 대열로 비집고 들어가는 동시에 타인을 적으로 몰아 사람마다 적이 되게 하는데 이르렀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호칭은 천백만 차례 “호칭?응답” 의 실천을 통해 강렬한 암시와 유도 작용을 지니게 되었고 사람들에게 중공 집단에 대해 인정하는 마음을 심화시켰다.『9평 공산당』은 중공의 본질이 사람을 해치는 사이비 종교임을 명시했고 “동지”란 칭호는 바로 이 사이비 종교 단체에서 신도들을 소환하고 통제하기 위한 것이다. 당신이 “동지”란 호칭에 대해 개의치 않고 응답을 하기만 하면 바로 당신이 현재 중공이란 사이비 종교의 신도임을 승인하는 것이다. 이는 사악한 영(靈)이 당신을 통제하는 무형의 유대를 강화시킨다.


“개혁개방” 이후, 비록 당, 정, 군 내부의 정식 회의와 문건 중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기존 방식에 따라 “동지”란 호칭을 사용하고 있지만 사회적으로 사용하는 면은 줄어들기 시작했다. 일반인들은 정식 장소에서 정치적 의의가 아주 짙은 이 단어를 더는 사용하지 않고 대신 “선생”, “여사”, “아가씨” 혹은 인정미 넘치는 “사부” 등의 단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생활 중에서 농담 식으로 “동지”라고 부르는 상황도 여전히 비일비재하다. 어머니가 말을 듣지 않는 딸더러 “꼬마 동지, 들으세요.” 라고 하는가 하면, 친구들 모임 때, “자, 동지들, 건배!”라고 하는가 하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할 때, “우리 모두 혁명 동지가 아닙니까?”라고 말한다.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이런 말들은 당 언어가 인민 생활에 대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영향을 끼치는 가장 깊은 판본이 되었다. 오로지 사람들이 “동지” 란 말을 즐겨 사용하기만 하면 의식하든 못하든 간에 사람들은 공산당과 뜻을 함께 하는 것이고 공산당의 언어 시스템을 견지하는 것이며 공산당의 독재를 수호하는 것이다. (계속) / 에포크타임스



편집부
(ⓒ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soundofhope.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목록  
글쓰기
번호
제목 이름 날짜
32 [해체 당(黨)문화] 제6장 습관화된 당의 언어(6)
편집부
21-07-04
31 [해체 당(黨)문화] 제6장 습관화된 당의 언어(5)
편집부
21-06-27
30 [해체 당(黨)문화] 제6장 습관화된 당의 언어(4)-하
편집부
21-06-19
29 [해체 당(黨)문화] 제6장 습관화된 당의 언어(4)-상
편집부
21-06-13
28 [해체 당(黨)문화] 제6장 습관화된 당의 언어(3)-하
편집부
21-06-05
27 [해체 당(黨)문화] 제6장 습관화된 당의 언어(3)-상
편집부
21-05-29
26 [해체 당(黨)문화] 제6장 습관화된 당의 언어(2)
편집부
21-05-22
25 [해체 당(黨)문화] 제6장 습관화된 당의 언어(1)
편집부
21-05-09
24 [해체 당(黨)문화] 제5장 선전 중에서 흔히 보는 당문화....
편집부
21-05-01
23 [해체 당(黨)문화] 제5장 선전 중에서 흔히 보는 당문화....
편집부
21-04-24
12345
글쓰기

특별보도

더보기

핫이슈

더보기

많이 본 기사

더보기

SOH TV

더보기

포토여행

더보기

포토영상

더보기

END CCP

더보기

이슈 TV

더보기

꿀古典

더보기
44,551,255

9평 공산당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