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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 당(黨)문화] 제5장 선전 중에서 흔히 보는 당문화(4)

편집부  |  2021-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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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SOH 자료실]


목차


4. 당이 하라고 하면 무엇이든 한다


1) “당”이 하라고 하는 것

2) “순종 도구”는 어떤 목적을 위함인가

3) “당이 하라고 하면 무엇이든 한다”의 현재 표현

4) 반드시 감당하지 않을 수 없는 결과


**********


4. 당이 하라고 하면 무엇이든 한다


정상인의 행위는 자신의 판단에 근거하여 나아간다. 이러한 판단은 정확한 정보와 세상의 도덕표준을 기초로 한다. 사람이 기계와 다른 점은 바로 사람의 자주행위와 판단능력 때문이다. 그러나 중공의 선전 속에서는 오히려 “당이 하라고 하면 무엇이든 한다.”는 것을 수시로 내세우고 있으며 또한 이를 “당성이 강하고”, “높은 각성”과 “조직 규율성이 강하다”는 표현으로 삼는다.


3,4십년 전의 미친 듯한 연대에 수많은 사람들은 격정에 겨워 “혁명의 벽돌이 되길 원하며, 동서남북 당에 따라 움직이네.”, “당이 무엇을 하라고 하면 무엇이든 한다.”며 호응했다. “무엇이든 한다”는 중국어에는 일체 가능한 행위가 포함된다. 정상적인 사건이 포함될 수 있고 또 재물을 꾀하고 생명을 해하며 살인방화 등 하늘이 불허하고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도 포함될 수 있다.


“당이 무엇을 하라면 곧 무엇을 한다”란 한마디로 중국사회의 몇천 년에 걸친 하늘의 이치와 선악표준을 무너뜨리고 최고의 지휘권과 재판권을 깡그리 중공에게 바쳤다. 그때 사람들은 이것이 중공에 대한 맹목적인 순종과 미신이며 이것이 일종의 황당함과 비참함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며 오히려 무상의 영광으로 여겼다. “당이 무엇을 하라고 하면 곧 무엇을 한다”는 말을 듣고 믿은 사람들은 계급투쟁이 자신의 고향 사람들과 친척들, 회사동료들 친구들을 해치건 말건 그리고 하늘땅과 싸워 자연을 파괴하건 말건 혹은 검거하여 밀고하든지 모두 앞장섰으며 중공의 앞잡이 노릇을 했다. 당이 어디를 가리키면 어디로 쳐들어갔다.


여기에 이르러 중공은 중국 인민들에 대한 ‘은혜’(공산당이 없으면 곧 신중국이 없다)와 중국 인민들에 대한 ‘정’(엄마아빠가 친근하다 해도 당만은 못하다)을 선전하면서 사람들에게 말을 듣도록(당의 말을 듣고 당을 따라간다) 요구하던 데에서 사람들에게 완전히 자신의 대뇌를 포기하고 자신의 일체를 중공에게 넘겨 주재하게 하고 완전히 중공 수중의 도구로 전락할 것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중공이 최근 몇 년간 진행한 ‘보선(保先)’ 운동은 “당이 하라고 하면 곧 무엇이든 하도록”요구했을 뿐만 아니라 또 “당이 무엇을 하지 말라고 하면 곧 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역사상 그 어떤 정권도 중공처럼 이렇게 민중들에 대해 철저한 세뇌와 노역을 진행한 적은 없었다.


1) ‘당’이 하라고 하는 것




▲ [사진=에포크타임스]


1967년 여름, 다오저우(道州) 분지를 관통하는 소수하(瀟水河)에 수많은 시체들이 떠내려 왔다. 수면에는 한 층의 암적색 기름이 떠 있었다. ……. 도처에 “검은 4종류를 깡그리 멸하고 강산이 영원히 붉도록 보존하자”라는 구호가 있었고 도처에 “빈농과 중농의 최고법원”의 살인공고가 나붙었다. 전 다오현(道縣) 및 주변 지역은 완전히 적색테러에 잠겨 있었다.


이는 『후난(湖南) 다오현 농촌 대도살 다큐멘터리』란 책에 기술된 문화혁명 시기 후난성 다오현에서 벌어진 대도살의 처참한 상황이다.


후난성 다오현 농촌에서 발생한 이번의 대도살은 2개월 남짓한 시간 내에 소위 ‘4종류의 사람’과 그 가족 4천여 명을 살해했고 전 지역에서 살인한 숫자는 9천이 넘었다. 살해된 사람은 주로 4종류 사람과 그 자녀들로서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은 78세였고 가장 어린이는 태어난 지 10일밖에 되지 않았다.


19년 후 대도살의 주요 책임자 중 한 사람인 전 칭탕구(清塘區) 무장부 부장이자 ‘홍색연맹’(마오쩌둥 사상의 붉은 전사연합사령부) 영강(營江) 전선지휘부 총지휘관 관유즈(关有志)가 감옥에서 취재를 받을 때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나는 50년에 군에 입대했고 부대에서 입당했으며 간부로 승진했다. 58년 제대하여 도현으로 왔다…. 나는 어떠한 징벌을 받아본 적이 없고 늘 당이 무엇을 하라고 하면 무엇을 했다. 내가 매일 학습한 것은 바로 절대로 계급투쟁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며 들은 것은 모두 계급의 적들이 파괴를 일삼고 복권을 꿈꾸고 있다는 것으로 장제스(蒋介石)가 대륙을 역공한다는 것이다. 나는 총을 잡은 사람인데 어떻게 마음을 놓을 수 있겠는가? 문화대혁명 무력투쟁 때 반역파들은 무장부의 총을 빼앗았고 또 듣자하니 4종류의 사람들이 반역하려고 한다는데 이에 나는 자각적으로 ‘홍색연맹’ 쪽에 서게 되었다.”


관유즈처럼 중공의 역대 정치운동 중에서 살인, 구타, 투쟁, 타인을 때려 엎은 수많은 사람들은 나중에 후회하기는커녕 자신이 억울하다고 불평했다. 그들은 단지 “당이 무엇을 하라고 하면 무엇을 했을” 뿐이며 자신은 단지 당의 한 입자, 도구일 뿐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져서는 안 된다고 했다.


우리 한번 회고해 보자. 도대체 공산당이 사람들에게 무엇을 시켰는지를. 사실상, 정상적인 생산과 생활 활동에는 근본적으로 공산당이 사람들에게 무엇을 하라고 시킬 필요가 없었다. 임의의 정상적인 사회에서 사람들은 모두 일을 하고자 하고 일상생활을 하고자 하며 과학 예술 활동에 종사하려 하고 발명창조를 하려고 한다. 또 정신적인 추구를 하게 되고 인간적인 교제를 하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정상적인 인류활동은 공산당이 굳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라고 격려할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공산당이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부추기는 것에는 하나도 좋은 것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어느 하나도 사회의 안정과 인민들의 복지를 위한 것이 없으며 모두 공산당 일당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한 것이다.


이전에 중공은 오직 자신들만이 진정으로 항일(抗日)한다고 선전하여 수많은 열혈청년들을 속여 옌안으로 오게 했다. 그러나 올 수는 있어도 나갈 수는 없었다. 이런 사람들은 핍박에 못 이겨 세뇌되었고 심히 후회했으나 이미 늦었다. 사실 그때 일본군은 중국의 절반을 장악했으며 국민당 군이 간고하고 탁월한 저항을 진행했다. 정말로 항일하고 싶다면 근본적으로 옌안에 숨어있을 필요가 없었다. “전 중국을 해방시키자”는 것은 전면적으로 내전을 발동시켰고 합법적인 정부를 뒤엎었으며 공산당의 극단통치를 옌안에서부터 전 중국으로 밀어붙였다.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에서 수백만 명에 이르는 인명과 거액의 군사비를 지불했고 당시의 경제를 거의 무너뜨리면서 북한 김일성 정권의 목숨을 부지하게 했고 한국인들에게 심중한 재난을 가져다주었다. 대약진, 인민공사화, 공산주의로 달려 들어가자 등은 4천만 명이 굶어죽는 대기근을 초래했다. 문화대혁명은 전국적인 범위에서 큰 혼란을 조성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으며 국민경제는 거의 붕괴되었다. 우수한 인재들은 거의 소멸되었으며 전통문화는 깡그리 파괴되었다. “지식청년들은 농촌으로 가라”는 지령은 천만 지식청년들에게 학업의 기회를 잃게 만들었고 꽃다운 청춘을 농촌과 변방에서 썩게 했다.


중공이 선전하는 것은 무신론과 유물론이므로 “당이 무엇을 하라고 하면 무엇을 하라”라는 말은 더욱 두렵게 느껴진다. 사람들은 더는 천리(天理)를 믿지 않게 되었고 오로지 당의 환심을 살 수 있고 자신에게 이익을 가져올 수만 있다면 곧 어떠한 나쁜 일이든 다 하려 한다. 현재 가장 전형적인 예가 바로 파룬궁에 대한 박해이다. 수많은 경찰들은 박해정책을 구실로 삼고 위에서 시키니까 하는 것이라며 파룬궁 수련생들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했으며 심지어 사람을 고문하여 죽이기까지 했다. 또 검은 속을 가진 의사와 결탁하여 파룬궁 수련생들의 생체에서 장기를 적출하였다.


‘가족단위 책임제(包產到戶)’와 ‘향진기업(鄉鎮企業)’은 중국 농민을 위한 두 가지 큰 업적으로 불린다. 사실 모두 중공이 일정 정도 방임하고 관계하지 않은 결과이다. 백성들은 모두 어떻게 자신의 생활을 잘 관리할지 알고 있다. 중공이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가 바로 백성들이 가장 살기 좋은 때이다. 중공에게 무슨 움직임이 있기만 하면 필연코 인민들에게 재난을 가져다준다. 지난 50여 년의 역사가 곧 이토록 간단한 진리를 증명해 준다.


2) ‘순종 도구’는 어떤 목적을 위함인가




▲ [사진=에포크타임스]


중공은 단지 노골적으로 사람들에게 “당이 무엇을 하라고 하면 무엇을 하라”고 선전할 뿐만 아니라 선동으로 일으킨 정치적 광풍과 각종 밀폐식 세뇌를 이용하여 사람들에게 내심으로 자신의 우롱, 통제와 지휘를 받아들이게 했다. 동시에 중공은 또 늘 채용하는 기만수법을 통해 “큰 국면에 복종하고”, “인민의 이익을 위하여” 등등 그럴듯한 이유로 사람들에게 “당이 하라고 한 것”들은 결코 비열하고 사악한 일이 아니며 설사 살인방화, 자아학대를 통한 멸망이라 하더라도 역시 “당의 위대한 사업”을 위한 것이라고 믿게 했다.


중공의 ‘순종도구론’이 사람을 기만하는 점은 바로 중공이 또 동시에 대공무사(大公無私), 적극적인 노력, 자신을 잊고 공공이익을 위하는 것, 꾸준한 노력 등 질적인 문제를 긍정한다는 데 있다. 바로 이 한 점 때문에 어떤 사람이 중공이 전통도덕을 파괴하고 전국 인민들의 도덕성을 미끄럼질치게 했다고 지적할 때 많은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표시한 것이다. 중공도 마치 도덕건설을 매우 중시하는 것 같다. 또 “사회주의 도덕”, “공산주의 도덕”, “공산당원의 수양”, “8영8치(八荣八耻)” 등 시리즈의 이론을 가지고 나왔으며 “레이펑을 따라 배우자”, “자오위루(焦裕祿)를 따라 배우자”, “쿵판썬(孔繁森)을 따라 배우자” 등 수많은 명목의 운동을 일으켰는데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이해하겠는가라며 의심한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우리는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즉, 이러한 사유방식은 도덕의 목표와 일을 처리하는 태도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였다. 만약 한 사건 자체가 좋은 것이라면 행위자 자체의 근면, 충성, 이기심 제거 등 태도도 좋은 작용을 일으키게 된다. 반대로 만약 한 사건 자체가 사악한 것이면 마찬가지로 이러한 질적인 문제들은 악을 행하는 효율을 제고하게 된다. 분명히 부지런한 도적이 게으른 도적보다 더욱 무서우며 겸손하고 배우길 좋아하며 이로 인해 고도의 과학기술을 장악한 테러리스트들은 기술 수단이 평범한 테러리스트보다 더욱 무섭다. 전반 사회가 베일에 싸여 하나의 사악한 목표를 위해 가동될 때, 근면하게 말을 듣는 것은 소극적으로 적당히 일을 하는 것만 못하다.


중공은 ‘당의 이익’을 위해 당원들은 “조금도 주저하지 말고 개인의 이익을 희생하고 심지어 자신의 생명을 희생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이것이 바로 공산주의 도덕의 최고표현이며 바로 무산계급 정당원칙의 최고표현이며 바로 무산계급 의식순결의 최고표현이다.”라고 떠들어댄다. “당원은 당의 이익을 이탈한 독립적인 개인목표가 있어서는 안 된다.” 여기서 명확하게 보아낼 수 있듯이 중공이 선양하는 “도덕”, “영욕관” 등은 단지 표면적으로 전통이론과 비슷한 면이 있긴 하지만 사실상 중공을 수호하는 일당독재를 위해 봉사하는 것이다.


여러분들은 모두 “남쪽으로 가려는 사람이 북쪽으로 수레를 몬다(南辕北辙)”는 이야기를 잘 알 것이다. 한 사람이 초나라로 가려고 하는데 비록 그에게 천리마가 있고 충분한 여비에 능력이 좋은 마부가 있다한들 그가 만약 방향을 잘못 택했다면 영원히 초나라에 이를 수 없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상황 하에서 그의 말이 좋고 여비가 풍부하며 마부의 능력이 좋을수록 그는 초나라에서 더욱 멀리 떨어져나가게 된다. 사람들이 당의 말을 듣고 열심히 당을 위해 일할 때, 그리고 중공을 도와 백성들을 기만하고 백성들을 박해할 때, 중공을 위해 노래 부르고 분칠할 때 이것이 바로 적극적으로 중공을 도와 중국 사회를 만장의 깊은 나락으로 끌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3) “당이 하라고 하면 무엇이든 한다”의 현재 표현




▲ [사진=에포크타임스]


지금의 중국인들은 갈수록 현실을 중시하고 더는 공산주의를 믿지 않으며 더욱이 주의(主义) 혹은 신앙을 위해 희생하려 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중공은 “당이 무엇을 하라고 하면 무엇이든 한다”는 이 구호의 다른 측면을 중시하기 시작했다. 즉 당이 무엇을 하지 말라고 하면 하지 말라는 것이다. 당이 무엇을 하지 말라고 하면 곧 무엇을 하지 마라, 바로 당이 좋아하지 않는 것은 모두 해서는 안 된다. 백성들이 가장 많이 듣는 설법은 바로 “이 사건은 중앙에서도 성격을 규정했다. 하지 말라고 하면 안 하면 되지 않는가!”이다.


은연중에 감화시키는 중에서 중공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한계를 그어놓았다. 즉, ‘창업’, ‘돈벌이’, ‘하루아침에 부자 되기’, ‘주식투자’, ‘미식(美食)’, ‘소자산계급생활’, ‘시대풍조(时尚)’, ‘화이트칼라(白领)’, ‘엘리트’, ‘자동차’, ‘부동산’, ‘오락’, ‘나들이’, ‘채팅’, ‘에로영화’, ‘궤도이탈’, ‘색정유혹’ 등 물질적인 향수를 개방하여 당신 마음대로 욕망을 풀어놓아 먹고 마시고 놀며 도박을 하고 술집을 찾는 등 마음대로 하게 한다. 지금 중국 사회는 이 방면에서 매우 ‘자유’롭다. 수많은 중공 간부들도 “시대에 따르고” 있으며 “몸소 시범을 보이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은 아마 무엇 때문에 “부패를 반대하면 할수록 부패가 더욱 심한”지 의아할 것이다.


사실 엄격한 의미에서 말할 때 부패는 바로 “당이 무엇을 하라고 하면 무엇을 하라”의 범위 내에 있는 것이며 당이 만약 정말로 부패를 허락하지 않고 당원과 간부들에게 좋은 점과 특권을 주지 않는다면 또 누가 공산당을 위해 목숨을 팔겠는가? 중공 자체는 유지할 방법이 없게 되었다. 그러나 한 가지, 제 마음대로 할 수는 있지만 당이 무엇을 하지 말라고 하면 해서는 안 된다. 당에 의견을 제출해서는 안 되며 정치개혁을 이야기할 때 근본을 흔들면 안 되며 사회문제를 엄숙히 다루어서는 안 되며 당의 통치에 대해 다른 견해를 갖고 있으면 더욱 안 된다. 만약 탈당하거나 혹은 다른 사람에게 탈당하라고 한다면 당은 더욱 허락하지 않는다.


공산진영이 붕괴되고 있고 사람들이 분분히 공산주의를 질타하고 있는 오늘날, 중공은 자신의 통치를 유지하기 위해 여전히 공산당의 깃발을 내걸고 독재를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통치 하에서 사회문제는 끊임없이 터져 나오고 있다. 심각한 빈부격차, 높은 치료비, 높은 입학비용, 집값 폭등, 취업난, 사회보장 부족, 부정부패 성행, 도덕 부패, 환경오염, 비민주, 백성들은 말할 권리가 없고 치안상태가 최악이며, 음란물과 도박 및 마약밀매가 성행하고 법을 지키기 않으며 공민의 청원권을 “가로막는” 등등 문제가 끝이 없다.


이러한 문제들을 중공이 말할 수는 있으나 개인들은 소일거리로 이야기해도 안 된다. “국가기밀을 유출하고 나라 안전에 해로우며” “법률, 행정법규에서 금지하는 기타내용”을 “제작, 열람, 발표, 전파”하지 못하게 한다. 만약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거나 혹은 불법적인 대우를 받을 때 자신의 기본권을 수호한다면 그것은 바로 당이 하지 말라는 것에 속한다.


4) 반드시 감당하지 않을 수 없는 결과




▲ [사진=에포크타임스]


중공은 부정기적으로 각종 정치운동을 발동한다. 매번의 운동은 모두 거대한 재난이다. 이러한 운동들을 발동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사람들이 자신의 판단을 포기하고 “당이 무엇을 하라고 하면 무엇을 한다”는 사유방식을 사용하는 것과 갈라놓을 수 없다. “당이 무엇을 하라고 하면 곧 무엇을 한다”는 것은 죽으나 사나 중공의 투쟁철학을 뒤따르는 것이며 이는 아주 큰 정도로 중공이 천지인(天地人)과 투쟁하는 에너지를 강화해 주었고 중공의 각종 통치목적을 이룰 수 있게 했다.


사람들은 중공을 따라 살인을 했으며 그리하여 몇 백만의 ‘지주’, ‘자본가’, ‘지식인’의 목이 떨어졌으며, 사람들이 중공을 따라 대약진을 일으키자 몇 천만의 사람들이 굶어 죽었으며, 사람들이 중공을 따라 문화대혁명을 일으키자 중국 사회는 이로써 전례 없는 문화파괴와 인성의 마변(魔變)을 겪었으며, 사람들이 덩달아 파룬궁 금지에 참여하자 중화 민족은 역사상 있어본 적이 없는 참담한 신앙박해를 연출하게 되었다.


지주와 그 자녀들을 학살하고 심장을 파내 인육을 먹으며, 장즈신(张志新)의 기관을 절단 내고, 국가주석 류사오치를 아무런 법적 절차도 없이 감금하고 박해하여 살해한 것 등에서부터 파룬궁 수련생들에게서 산 채로 장기를 적출하는 데에 이르기까지 또 얼마나 많은 교훈이 있어야 사람들은 중공의 “당이 무엇을 하라고 하면 무엇을 한다”는 세뇌와 노역에서 걸어 나와 더는 중공을 따라 악을 행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당이 무엇을 하라고 하면 무엇을 한다”는 노역(奴役) 중에서 중국 사회의 사람들은 모두 피해자가 되었으며 중공을 더욱 바싹 따랐던 그러한 사람들이 받은 피해는 더욱 컸다.


중공은 빈곤지역을 일컬어 ‘노(老), 소(少), 변(邊), 궁(窮)’이라고 한다. 노(老)라는 것은 바로 중공이 일찍이 건립했던 적이 있는 소위 ‘농촌혁명 근거지’를 가리킨다. 중공이 정권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농민들이 사람을 내고 돈을 내고 양식을 내고 목숨을 내건 것들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천이(陈毅)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화하(華夏) 전역의 승리는 인민 군중들이 작은 차로 밀어내어 얻어온 것이다.” 중공이 정권을 건립한 후 현지 농민을 도와 부유하게 함으로써 은혜를 갚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농민에 대해 과도한 비용 징수를 한시도 늦춘 적이 없었다.


호적제도로 농민을 토지에 묶어놓았을 뿐만 아니라 현재는 또 조상들의 소유인 토지를 강제로 징수해 다시 고가로 부동산 업자들에게 팔아넘기고 있다. 현재의 중국은 대부분 빈곤지역이 일찍이 “혁명근거지”였다. 몇십 년이 지났지만 이러한 지역은 중공이 창립되기 이전보다 더욱 가난해졌다.


산베이(陝北)는 중공의 ‘혁명근거지’이다. 산베이의 밀이 중국 공산당을 먹여 살렸다. 중공 중앙은 산베이에서 18년 동안이나 거주하면서 나무를 깡그리 베어버렸고 풀뿌리마저 뽑아버렸고 쌀은 다 먹어치웠고 사람들도 모두 사용했기에 산베이 백성들은 중공을 위해 거대한 희생을 치렀다. “개혁개방”이후 산베이에서 대량의 에너지 저장고가 발견되자 중공은 ‘국가개발’이란 미명하에 대규모 개발에 들어갔다. 자원은 뽑아서 다른 곳으로 옮겼으며 에너지를 팔아서 번 돈은 모두 중앙기업에 돌아갔다. 이리하여 산베이는 계속 중공의 착취를 받게 되었다.


중공은 자칭 노동자계급의 선봉대라고 하며 권력투쟁 시 노동자들을 이용해 노동자운동을 일으켜 무장투쟁을 진행했다. 우파에 반대할 때는 “노동자들에게 말을 하도록 허용”했으며 ‘반우파’의 단단한 후방이 되도록 했다. 문화대혁명 시 ‘공선대(工宣隊)’를 조직하여 노동자들에게 무장투쟁의 난잡한 상황을 수습하게 했고 ‘4.5운동’을 탄압하는 데는 노동자들이 조직한 ‘노동자 규찰대’에 의지했다. 1989년 학생운동 중에 또 노동자들을 끌어들여 노동자들로 하여금 밖에서 중공의 통치를 수호하게 했다.


중공이 정권을 수립한 후 노동자들이 당을 따라가게 했으며 투쟁도구로 삼고 당을 위해 노동하도록 하기 위해 중국 노동자들에게 ‘철밥통’을 주기도 했으며 복지보장과 사회정치적 지위를 주기도 했다. 그러나 ‘개혁개방’ 이후 일부분 사람들이 먼저 부유해졌는데 이들은 태자당(太子黨), 관원, 화이트칼라, 엘리트, 골간 등이었다. 중공 자신의 관방연구기관에서 발설한 데 의하면, 금융, 해외무역, 국토개발, 대형공정, 증권 등 5대 영역 중에서 주요 직책을 담당하는 자들은 기본적으로 모두 고급관리의 자녀였다. 중국의 억만 부호 중 90퍼센트 이상은 고급관리의 자녀이며 모두 2조 위안에 달하는 자산을 소유하고 있다.


그러나 “당이 무엇을 하라고 하면 무엇을 했으며” 땀방울과 청춘을 모두 당에 바친 노동자들은 일생동안 철밥통을 소유할 줄 알았지만 무정하게도 당이 짓밟아버렸으며 또 듣기 좋은 하나의 이름―‘샤강(下岗)’을 얻었다. 국유기업의 수천만 노동자들이 실직 당했고 노동자들은 일터를 잃은 동시에 또한 직장에서 제공하는 일체의 사회보장, 예를 들면 주택, 교육, 의료보건, 퇴직금 등을 포함한 일체를 잃어버렸다. 비단 이러할 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에 대한 노동자들의 희망 역시 무정하게 짓밟혔다. 대학 학비는 노동자 가정에서 부담할 방법이 없다. 설사 겨우 졸업할 때까지 비용을 댈 수 있다하더라도 노동자의 자녀가 좋은 배경 없이 번듯한 직장을 얻기란 아주 어렵다.


군대는 중공의 생명줄이며, 당이 총대를 지휘하여 당이 어디를 가리키면 어디를 쏜다. 매 사병과 장교를 놓고 말할 때 당이 무엇을 하라고 하면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은 아예 당연한 일로 여긴다. 중공 군대의 제대군인조례와 대우규정은 모두 중공중앙군사위원회 총정치부에서 정책조례로 발표하며 수시로 변할 수 있다. 첫째는 국가 법률에 명문으로 규정된 보장이 없고 둘째는 전국 제대군인을 통일적으로 관리하는 부서나 기구가 없다.


중공은 이들을 이용해먹은 후 사회에 버리므로 사병들은 제대한 후 “어디에서 왔으면 어디로 돌아가야 한다.” 기본적으로 후속적인 복지가 없다. 부상을 입고 장애인이 된 군인들은 더욱 의지할 곳이 없다. 당 중앙을 찾아가 청원을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북경에 보낸 고소편지를 상부에서 되돌려 보내면, 지방 관리는 아니꼬운 눈초리로 “한 무더기 폐지일 뿐이다”, “유엔에 고발해도 소용이 없다”라고 말한다.


한국전쟁에 참가했던 원로군인들은 부대에 남을 수 있는 사람, 열사가 된 사람을 제외하고 가족들의 생활을 중공은 아예 관계하지 않는다. 부상을 입고 살아 돌아온 사람들은 대다수 농촌으로 되돌아갔으며 가난하기 짝이 없는 생활, 고독하기 그지없는 비참한 생활로 연명해 가고 있다. 포로가 되었던 사람들이 귀국한 후 2-30년은 고개를 들고 살아갈 수 없다.


베트남전쟁 때의 ‘영웅’이나 ‘일등공신’들은 현재 이미 알아주는 사람이 없으며 전사한 사병들과 하급 장교들이 받은 위로금은 800~1000위안 사이로 일차적으로 해결을 보았으며 가족들의 이후 생활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관계하지 않았다. 윈난(雲南)성 마쑤포(麻粟坡) 열사묘지에는 노산(老山)전쟁에서 희생당한 957명의 사병들이 묻혀 있으며 그중 300여 명 사병의 가족들은 20여 년 동안 다녀간 적이 없다. 대부분은 여비가 없어서 오지 못하며 어떤 가족들은 오기는 해도 돌아갈 여비가 없었다.


“당이 무엇을 하라고 하면 무엇을 한다”는 말의 오늘날 표현 중 하나는 바로 재물을 추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중공은 사람들이 물질이익을 추구함으로써 다른 권익을 포기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공산당 또한 예전의 ‘착취계급 소멸’ 정책을 바꾸었으며 자본가들조차도 입당을 허락했다. 평균 몸값이 22억 위안에 달하는 중국의 최상급 부호들 중에 당원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48.5%나 되며 거의 절반이 중공 당원이다. 그러나 당의 경제도구로 사용되고 당을 위해 충심을 바쳐 일을 한 후 일단 장물분배가 불합리하거나 어느 한 부분에 잘 처리해 주지 못하면 즉각 감옥살이를 해야 하는 화를 불러온다.


모우치중(牟其中), 양빈(楊斌), 저우정이(周正毅), 리징웨이(李經緯), 장하이(張海) 등이 모두 투옥되었으며 “중국의 부자리스트”는 “중국의 죄수리스트”가 되었다. 공산당을 이용하여 부유해진 사람들은 너도나도 자신의 자녀와 재산을 해외로 빼돌리고 있다. 왜냐하면 교훈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중국 속담에 “30년은 강의 동쪽이요, 30년은 강의 서쪽이다(三十年河東三十年河西)”란 말이 있다. 일찍이 공산당을 옹호했던 ‘자본가’들은 가산을 탕진했고 가족들이 죽거나 뿔뿔이 흩어졌는데 이것이 바로 증거이다.


위에서 이야기했던 내용들은 연자방아를 다 갈고 난 후 당나귀를 죽이는 형태의 예이다. 관건적 시각이 되면 중공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도구마저도 없애버린다. 문화혁명이 끝날 때 전국 군 간부 중에 17명, 경찰 793명 도합 810명이 윈난에 끌려가 비밀리에 총살당했으며 가족들을 속이기 위해서 “나라를 위해 순직했다”는 통지서를 보냈다. 이는 내막을 숨기고 살인하여 입을 막기 위함이었다.


그때 북경의 공안국 국장 류촨신(劉傳新)은 조사가 진행되기 전에 죄가 두려워 자살했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장쩌민도 미국에 친서를 보내 파룬궁의 상황을 염탐한 적이 있고 문화대혁명처럼 파룬궁 수련자를 때려죽인 일부 악경(惡警)들을 총살시킴으로써 죽은 생명을 보상하고 파룬궁이 장쩌민을 기소하지 말기를 요구했다. 아울러 문화대혁명의 처리방법보다도 더욱 엄격히 처리하되 얼마나 되는 파룬궁수련생이 죽었으면 곧 얼마나 되는 경찰을 총살시키겠다는 제안을 한 적이 있다.


매번 중대한 역사적 관두에 중공은 모두 “선을 포기하고 악에 순종하는” 행위특징을 나타냈다. 그러나 중공이 악을 행함에는 반드시 당원 개인을 이용하기에 중공이 무너진 이후에는 그 죄의 대가는 반드시 당원들 개인이 책임져야 한다. 마치 예전에 나치가 패망한 후 뉘른베르크에서 심판을 한 대상이 바로 나치 당원들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다시 말해 “당이 무엇을 하라고 하면 무엇을 하며” “명령을 집행”하고 “공무를 집행”한다는 이유로 중공을 도와 악을 행한 사람들은 아마도 현재는 가히 중공 정권의 보호막에 의지해 잠시 정의의 심판을 벗어날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중공이 무너진 이후 매 개인은 법률적 재재와 정의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그때 더는 중공의 보호막에 의지할 수 없게 된다.


단지 이뿐만이 아니다. 인간 세상의 법정 위에는 또 천리(天理)의 법정이 있다. 선(善)에는 선한 보답이 있고 악(惡)에는 악한 보답이 따르는 것으로 이는 사람들이 의지로 바꿀 수 없는 자연법칙이다. 중국의 전통문화 속에서 도가는 “화와 복에는 문이 없다, 오직 자신이 이를 초래할 뿐이다(禍福無門,惟人自召)”라는 말이 있다. 불가에서는 인과관계를 중시하며 “선악의 보답은 마치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善惡之報,如影隨形)”고 말한다.


사람이 무엇을 하면 모두 자신이 결과를 감당해야 한다. 백성들은 “선에는 선한 보답이 따르고 악에는 악한 보답이 따른다. 보답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시기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동서고금에 선악에 대한 응보의 예들은 많기가 헤아릴 수 없다. 역사에서 볼 때 중공의 도구 역할을 했던 그러한 사람들은 그때 당시는 얼마나 우쭐댔을지 몰라도 그 끝장은 매우 처참했다. 이 또한 어찌 천리의 보답이 체현된 것이 아니겠는가?


인성 중에는 선과 악이 동시에 존재하며 큰 선택에 임했을 때 마음속에서 늘 선과 악이 교전을 한다. 그러나 중공 당원들의 몸에서는 상황이 더욱 복잡하다. 왜냐하면 당원들은 모두 ‘당성’과 ‘인성’의 이중적 인격을 지녔기 때문이다. “당의 말을 듣고 당을 따라간다”와 “당이 무엇을 하라고 하면 무엇을 한다”는 명령이 부추기는 것은 인성을 억압, 소멸하고 중공의 독재이익을 위해 악을 행하라는 것이다. 공산당의 악행이 하늘에 사무치고 신속하게 복멸되고 있는 오늘에 와서 고집스럽게 “당의 말을 듣고 당을 따라가며” “당이 무엇을 하라고 하면 무엇을 하는” 것은 사실 자신에 대해 매우 책임을 지지 않는 표현이다.


인성 중의 선량한 일면을 수호하고 당(黨)이 아닌 정념(正念)으로 자신의 행위를 주재하고 중공을 탈출함으로써 자신의 몸에 있는 당문화의 흔적을 깨끗이 지워버려야만 비로소 자신을 위한 광명한 미래를 선택할 수 있다. (계속) / 에포크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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