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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 당(黨)문화] 제5장 선전 중에서 흔히 보는 당문화(2)

편집부  |  2021-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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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SOH 자료실]


목차


2. 엄마아빠보다 당이 더 친근


1) 선전 중의 다양한 표현형식


2) 당이 엄마라는 정서 주입


3) 도적을 아버지로 여기는 심리적 원인

(1) 진짜와 가짜, 두 개의 공산당

(2) 자신이 속았다고 인정하는 것을 거절

(3) 스톡홀름 증후군


**********


2. 엄마아빠보다 당이 더 친근해


오늘날 많은 중국인들로 말한다면, “엄마아빠가 친근해도 당보다는 못하다”는 이 구호를, 이미 아주 가소롭게 생각할 것이다. 중공이 오늘날 이 구호를 직접 선전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것은 사람들이 이런 적나라한 주입에 반감을 느끼기 때문만은 아니며, 아직도 장기적으로 명시적이거나 혹은 은밀한 선전을 통해 사람들이 이미 이 구호의 배후에 있는 내포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이미 비자각적으로 중공을 조국과 동일시할 때, 중공은 단지 애국주의를 선전하고 ‘장강의 노래(長江之歌)’를 부르기만 하면, 사람들로 하여금 무의식적으로 ‘당’을 생각하게 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엄마아빠가 친근해도 당보다는 못하다”는 선전은, 여전히 오늘날 사람들의 사유 속에 깊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엄마아빠가 친근해도 당보다는 못하다”는 이 구호를 공산당이 어떻게 말했고 또 어떻게 그것의 선전목적에 도달했는지 분석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1) 선전 중의 다양한 표현형식




▲ [사진=에포크타임스]


거의 모든 ‘혁명’ 영화 속에, 모두 이런 장면이 있다. 영웅 인물이 몸에 큰 상처를 입고 숨을 거두기 직전에 아직도 가슴속에서 무언가를 한참 뒤적이다가 옆에 있던 사람에게 자신을 대신해 마지막 당비 혹은 입당신청서를 제출해 달라는 장면이다. 이와 유사한 상황은 여러 차례 반복되는데, 목적은 바로 “엄마아빠가 친근해도 당보다는 못하다”는 주제를 강화하려는 것이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숨을 거두기 전에 생각하는 것은 자신의 부모, 처자식이지만, 당문화의 선전 중에서 사람들이 임종 전에 생각하는 것은 육친정이 아니라 엄마아빠보다 더 친근한 ‘당’이며 자신이 가진 최후 물건까지도 당에 바쳐야만 눈을 감을 수 있다.


군대와 관련된 작품 속에서는, 종종 지도원과 정치위원(政委)이 어떻게 사병들에게 관심을 갖는가 하는 것이 있는데, 따뜻이 보살펴주고, 가정의 곤경을 돌봐주는 등 세부적인 이야기가 나온다. 마지막으로 사병의 입을 통해 부대는 ‘큰 가정’이자 큰 용광로이며 자신은 ‘큰 가정’속에서 ‘성장’하고 ‘진보’했다고 말하는데, ‘큰 가정’의 아빠엄마는 자연스럽게 바로 ‘당조직’이 된다. 지방생활을 반영한 것도, 좋은 일은 늘 ‘우수당원’이 한 것이고 당위원회 서기는 생활, 결혼, 가정, 주택 분배, 출산, 사람들 사이의 모순에 관심을 갖고 마지막에는 모두 ‘당지부 서기’가 ‘대국을 주재’하고 공정하게 처리한다. 일이 있으면 조직을 찾고, 조직을 믿으며, 당의 사유방식을 믿으라고, 자신도 모르게 감화시키고 주입하며, 사람의 잠재의식을 “엄마아빠가 친근해도 당보다는 못하다”는 주제로 이끈다.


또 선율이 아름다운 많은 가곡에서도, 그 속에 관통된 것은 바로 노골적이든 은밀하든 “엄마아빠가 친근해도 당보다는 못하다”는 주제이다. “파란 하늘엔 흰 구름이 떠가고, 흰 구름 아래엔 말들이 달리네, 채찍 소리 사방에 울리며, 흰 새가 날고….”(‘초원 위로 떠오르는 지지 않는 태양’) 사람들이 민족적인 색채가 농후한 이 노래를 부를 때,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은 “바람 부는 풀밭 아래 소와 양이 보이”는 초원의 아름다운 풍경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서론에 불과할 뿐이며 이 노래의 최후 구절은 진정한 주제로 귀결된다.


바로 “마오 주석의 공산당이 우리를 키워 초원위로 떠오르는 지지 않는 태양으로 성장시켰다.”는 것이다. ‘우리 함께 노를 젓자(讓我們蕩起雙槳)’라는 이 노래는 선율이 아름다워 심지어 많은 성인들도 다시 음미하는 곡이다. “작은 배는 파도를 밀고, 바다에는 아름다운 백탑이 거꾸로 비치며, 주위에는 녹색나무로 된 붉은 담장이 감돈다.” 사람들이 시와 그림처럼 아름다운 정서에 잠기게 한 후, 잘 드러나지 않는 가사 한 구절에서 명확하게 주제를 밝혔다. “나는 사랑하는 친구한테 물어본다. 누가 우리에게 행복한 생활을 마련해 주었는가” 어느 아이가 자신의 생활을 안배해 준 것이 부모란 것을 모르겠는가? 이 의미심장한 한마디 질문을 통해 나타내고자 한 것은 더욱 깊은 한 층의 주제인 “부모보다도 더욱 친한 당이 우리의 행복한 생활을 안배했다”는 것이다.


중공은 선전 중에서 전형적인 모범을 수립하는 것을 아주 즐겼는데, 물론 이때 좋은 일을 하는 인물은 다 당원(黨員)과 단원(團員)이었다. 어떠한 사회에도 모두 마음이 선량하고 남을 먼저 생각하는 좋은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중공은 이런 좋은 사람들을 ‘당조직’에 끌어들이는데 아주 능숙하고, 또 선전수법을 이용하여 당원 속에서 “좋은 사람과 좋은 일을 찾아내는”데 능숙하다. 그들이 인성 중에서 선량한 일면의 작용 하에서 백성들의 고통에 관심을 갖는 일을 한 데 대해 중공은 이를 크게 선전하면서 공산당에 가입했기 때문에 당성이 작용을 일으킨 것이라고 한다.


이런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당의 배양과 교육 때문이라고 하면서, “한 공산당원으로서 사랑의 최고경지는 인민을 사랑하는 것이다”는 등을 말한다. 그리고 또 당에서 ‘관심’을 갖는 사람에게는, “신중국에서 태어나 홍기 아래에서 자라고 시시각각 사회주의 대가정의 따스함을 느낄 수 있었다”라고 태도를 표시하게 했다. 선전 중에서 이런 행위를 고취하는 것은 모두 사람들에게 오직 공산당원만이 진정으로 당신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고 이렇게 대가를 치르는 것은 당신의 친부모를 초과하며, “엄마아빠가 친근해도 당보다는 못하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중공은 사회자원의 각 방면을 약탈하고 독점했다. 사람들이 학교에 다니고 일을 하고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의식주와 행동 및 생로병사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은 중공이 엄밀하게 통제하는 사회 속에서 진행해야 한다. 그래서 중공은 선전 중에서 사람들의 개념을 뒤섞고, 정상사회 중에서 사람들이 너무나도 당연히 구비해야 할 생활환경을 모두 ‘당’ 혹은 ‘정부’가 준 복지라고 말해, 사람들로 하여금 부모가 자신을 낳았다는 것마저 잊게 하고, 돈은 자신이 벌어온 것임을 잊게 했으며, 시비를 뒤섞는 당문화 사유를 만들었다.


예를 들면, “우리 당이 없다면, 어디 지금처럼 좋은 생활이 있겠는가!”, “그래도 당의 부민(富民)정책이 좋다.”, “개혁의 봄바람이 온 땅에 불어온다.” 등이다. 조금이라도 좋은 일이 있고 생활이 제고된 것은 모두 당이 준 것이며 그 속에서 뚜렷하게 나타내는 것은 “엄마아빠가 친근해도 당보다는 못하다”는 것이다.


선전 중에서, 당의 공덕을 찬양할 뿐만 아니라, 좋지 못한 방면, 예를 들면 빈부격차, 탐오와 부패, 사회의 각종 난잡한 현상, 자연재해 등도 모두 중공에 의해 문장으로 만들어진다. 예를 들면, 텔레비전에는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다”, “지도가 내려오다”, “따뜻함을 전하다”는 등이며 인터넷에는 매일 톱기사로 ‘반부패’ 결심, ‘홍수방지 투쟁의 승리’를 지도, ‘사스’ 공격에 대한 저항 성공 등이다. 모두 백성들의 고난을 이용해 중공 자신의 영광을 만드는 것이다.


“초점탐방” 프로그램에서는 매일 사회의 어두운 면과 여러 가지 불공정을 제기한다. 이렇게 폭로한 다음 사람들이 사회현실에 대해 불만을 털어 놓은 후 국면을 수습하는 것은 꼭 당과 정부의 ‘각급 관련부서’이다. 선전 중에서 좋은 일만 말하고 나쁜 일을 말하지 않는 것도 더욱 숙련되어, 사건이 얼마나 나쁘던지 상관없이, 문제는 최후에 모두 “오직 착실하게 당의 ××정책을 따르기만 하면 꼭 해결될 것이다.”로 귀결된다. 이런 선전의 주제는 바로 당은 어느 곳이든 없는 곳이 없고, 어떤 일이든 하지 못할 것이 없으며, 중국인들의 생활 속의 각종 문제들에 관심을 갖고 해결해 주려고 한다는 것이다. 부모도 이런 재간이 없으니 정말로 “엄마아빠가 친근해도 당보다는 못하다.”


2) 당이 엄마라는 정서 주입




▲ [사진=에포크타임스]


“산(山) 노래를 불러 당에게 들려주네, 나는 당을 모친에 비유한다. 어머니는 단지 내 몸을 낳았지만, 당의 영광은 내 마음을 비춘다.”


“어머니, 어머니, 사랑하는 어머니. 당신은 그 감미로운 모유로 나를 양육하고 키웠습니다…. 당이여, 당이여, 당신은 마치 어머니처럼 나를 배양해 키웠고 조국을 사랑하도록 교육했으며 문화를 배우도록 격려했으며….”


이 두 곡은, 오늘날의 중국인들도 귀에 익숙하다. 그렇다면 중공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의인화한 선전수법에 열중하는가?


왜냐하면 어머니란 호칭은 사람들로 하여금 정감이 충만하게 하는 신성한 것이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우리를 낳아 길렀고 우리에게 은혜가 있다. 어머니는 우리를 몹시 사랑하며 우리에게 정이 있다. 어릴 때, 우리는 어머니에게 의지해 자란다. 성년이 된 후에, 우리는 어머니에게 효도하며 어머니를 모시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중국 전통사회는 효도를 중히 여기는데, 설령 지고무상(至高無上)한 권력을 쥔 제왕(帝王)이나 장상(將相)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서는 아주 존경했다.


공산당은 이런 심리를 이용해 자기를 어머니로 분장했고 이를 통해 중국인들이 당에 의지하고 순종하며 봉양하도록 기만한 것이다. 지난 몇십 년 동안의 선전을 통해, 아주 많은 사람들은 정말로 공산당을 한 가족으로 여기게 되었다. 공산당이 나쁜 일을 한 후, 사람들은 ‘당엄마’의 애초 의도는 좋은 것이라거나 혹은 방식이 잘못되었을 뿐이거나 혹은 개별적인 사람에게 이용당했다고 믿는 것을 좋아한다. 전체적으로 ‘당’은 틀리지 않았고, 설령 ‘당’이 틀렸다 해도 용서할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한 가지는 당이 엄마라는 정서와 관련되는데, 그것은 바로 “집안의 허물은 밖으로 소문내지 않는 법이다”는 것이다. 만약 누가 공산당이 중국 백성들에게 한 나쁜 일을 폭로하면, 특히 국제사회에 폭로할 경우, 바로 ‘당과 정부’의 이미지를 손상시킨 것이라고 여기는 ‘애국 인사’들이 마치 자신의 치부가 드러난 것처럼 느끼면서 즉시 일어나 그를 비난한다.


공산당이 우리의 어머니가 아니라는 것은 잠시 차치해 두자. 설사 그것이 우리의 어머니라고 가정한다해도, 만약 한 어머니가 식칼을 들고 아이들을 대한다면 이웃들은 단지 상관해야 할 뿐만 아니라, 또 마땅히 경찰을 불러야 한다. 설령 백보를 양보해, 중공이 좋은 마음으로 나쁜 일을 했다손 치더라도, 인민들은 마땅히 폭로해야 하며 강대한 여론 압력으로 중공이 계속적으로 감히 악을 저지르지 못하게 해야 한다.


다른 한편, 더욱 많은 역사사실과 내막이 폭로됨에 따라, 우리는 이미 알게 되었다. 공산당의 살인, 부패, 기만과 중국 백성에 대한 잔혹한 탄압은, 그것들이 공개적으로 선양하는 이론원칙이자 일관적인 정책방침이라는 것이다. 정풍, 반우파, 문화대혁명에서 줄곧 파룬궁 박해에 이르기까지, 모두 절대 공산당의 ‘실수’가 아니며, 그것의 엄밀한 획책이자 체계적으로 실시한 통치술의 일부이다. 이를 통해 볼 수 있다시피, 중공은 절대로 엄마아빠보다 더 친근한 친인이 아니며, “좋은 사람” “친인”의 외투를 걸친 강도이자 깡패이다.


3) 도적을 아버지로 여기는 심리적 원인




▲ [사진=에포크타임스]


80년대 초에 유행했던 영화 “말을 방목하는 사람(牧馬人)”의 주인공인 쉬링쥔(許靈均)은 우파로 몰린 후, 내몽골에 20년 동안 유배되어 있었다. 일찍이 미국으로 이민 갔던 아버지가 귀국하여 그를 보러왔고, 그에게 미국에 가서 같이 살자고 했지만 그는 아버지에게 완곡하지만 단호하게 거절한다. 이유는 자신과 천백만 중국 인민들의 고난은, ‘한바탕 역사적인 오해’로, ‘어머니가 아이를 오해한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가 어머니를 원망하진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어머니는 아이를 사랑하기에 아이가 잘되기를 바란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어떤 때는 방법이 틀렸지만 말이다.


쉬링쥔의 생각은 아주 보편성을 띠고 있다. “엄마가 아이를 때리는 것”과 “엄마가 아이를 오해한 것”은 7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의 문예작품 속에서 늘 사용된 비유였고, 또 아주 많은 중공의 역대 정치운동 중에서 걸어 나온 지식인들과 당원 간부들의 심태였다. 우리는 이런 정서의 진실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분석해 보고자 하는 것은 공산당에게 이렇게 거듭 농락당하고, 잔혹하게 탄압당하며, 감옥과 노교소, 농촌과 변방 유배지에서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청춘시기를 낭비하거나 심지어 공산당의 핍박에 의해 가족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집안이 망한 피해자들이, 무엇 때문에 이렇게 쉽게 중공의 거짓 ‘참회’를 받아들이는가?


중공이 “엄마아빠가 친근해도 당보다는 못하다.”를 선전하는 진실한 함의는 사람들로 하여금 최종적으로 “엄마아빠보다 더 친한” 중공을 믿고 따르라는 것이다. 그러나 효도를 숭상하는 중국인들은 줄곧 아무나 부모로 삼는 것을 커다란 수치와 모욕으로 여겨왔다. “원수를 아비로 섬긴다”는 욕설은 욕 중에서도 가장 심한 것이다. 그러나 무엇 때문에 중공통치하에서 그렇게 많은 중국인들이 80년밖에 되지 않는 중공이 자신을 5천년 역사를 지닌 중화민족의 어머니로 비유해도 묵인하고 있는가? 이 배후의 심리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여기에서 중점적으로 분석한 세 가지 주요원인은, 첫째 중공의 기만선전과 관련되고, 다른 두 가지는 기만당하는 사람들의 심리와 관련된다.


(1) 진짜와 가짜, 두 개의 공산당


공산당은 일관적으로 ‘도덕’이란 큰 깃발을 잘 치켜든다. 그러나 그런 도덕구호의 내포는 완전히 중공을 위해 봉사하는 것을 최종적인 목적으로 한다. 예를 들면, “전심전력을 다해 인민을 위해 봉사하자”는 말 속의 인민은 당이 정의를 내린 인민을 위해 봉사하는 것으로 당이 정의를 내린 적에 대해서는 도리어 추풍이 낙엽을 쓸어버리듯 잔혹하고 무정한 것이다. ‘대공무사(大公無私)’는 마음속까지 전부 당에 바치라는 것이고, “뇌봉(雷鋒)의 좋은 본보기를 학습하자”는 것의 중점은 그의 선명한 계급적 입장과 나사못 같은 당에 대한 충성을 배우라는 것이다. “5강 4미 3열애(五講四美三熱愛)”는 “공산당을 열애하고 사회주의를 열애하자”는 것을 떠나지 못한다. “심령의 아름다움(心靈美)”은 반드시 공산당 지도하의 사회주의를 열애하는 것이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이다. ‘정신문명’이 말하는 것은 마르크스주의 사상으로 사상문화와 여론 진지를 점령해야 한다는 것이다. “덕으로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은 마르크스레닌주의, 마오쩌둥 사상과 덩샤오핑 이론을 ‘덕’의 최고 경지로 삼으라는 것이다. ‘조화사회’가 강조하는 것은 당과 일치를 유지하는 ‘사회주의 조화사회’이고, 당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조화이다. ‘8영8치(八榮八恥)’는 당이 입장에서 무엇이 영광이고 무엇이 치욕인가를 갈랐다.


바로 중공의 도덕운동은 모두 공산당을 위해 봉사하는 것을 도덕의 최고경지로 삼았기 때문에, 도덕교화를 장려하는 것에는 근본적으로 아무런 의미도 없으며, 다만 한 시기 운동할 뿐이다. 이것은 도리어 중국의 사회도덕이 날로 타락하는 것을 조성했으며, 도덕의 위기는 현재 이미 중국에서 공인하는 사회적 위기로 되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이런 ‘도덕운동’은 중공에 한 층의 ‘도덕’이란 외투를 걸치게 하여 민중들을 미혹시킨다. 동시에 중공은 일관적으로 역사적으로 자신들이 범한 일체 잘못을 모두 소수 희생양에게 덮어씌웠다. 언론의 선전은 더욱 중공을 “외적을 막아내고 중국을 진흥”시킨 화신으로 묘사했다. 그럼 이렇게 장기적으로 내려간다면, 민중들이 역사적으로 얼마나 많은 공산당의 쓴맛을 보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는 하나의 가상적인 공산당을 수립하게 되며, 이 ‘가상’이야말로 공산당의 ‘본질’이자 ‘주류’라고 여긴다. 그리하여 설사 자신이 막대한 상해와 억울함을 당했다 해도, 여전히 선의적으로 중공을 가늠하고 ‘당’의 출발점은 좋은 것이라고 여긴다.


(2) 자신이 속았다고 인정하는 것을 거절


대개 기만당한 사람들은 늘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원인은 기만당했다고 인정하는 것은 자신이 당시 유치하고 쉽게 믿었으며 경험이 없고 세상물정을 몰랐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주 많은 청년들은 이전에 나라를 구하고 백성을 구하려는 이상을 품고 중공의 선전을 믿었으며 그것이 정말로, “한마음으로 민족을 위하는 것”으로 여겼다. 그리하여 혹은 중공에 가입했고, 혹은 중공의 동반자가 되었으며, 그것에 대해 일종 동정하고 찬양하는 태도를 지녔다. 중공의 ‘사업’ 중에서, 그들은 대량의 심혈을 지불했고, 아주 많은 정을 투입했다. 끝내 어느 날, 그들은 자기의 순진한 이상이 중공에게 무정하게 희롱당한 것을 발견한다.


중공 내부의 알력과 타락은 역사상 그 어떤 소위 ‘착취계급’ 정권을 능가하며, 중공정권이 인민과 국가에 가져온 재난도 역사상 그 어떤 외적의 침입을 능가한다. 이때, 그들은 마땅히 불현듯 잘못을 뉘우치고 깨달아 자신의 인식에서 잘못된 영역과 인격적인 약점을 반성하며, 자기가 어떻게 중공에게 이용당했고, 중국을 어지럽히는 중공의 도구로 되었는가를 반성하며, 더 나아가 행동을 취해 그것을 폭로하며, 그것을 제압하고, 혹은 적어도 그것을 이탈하여 다시는 계속해서 악당의 앞잡이가 되지는 말아야 한다.


그러나 변명하고, 체면을 중시하며, 자아에 강렬하게 집착하는 이런 심리상의 약점은 그들이 청성(淸醒)하게 위와 같은 선택을 하는 것을 방해한다. 그들은 잠재의식에서, 공산당을 부정하는 것은 마치 자신의 이상추구를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여기고, 자기는 애초 가득한 열정과 좋은 염원을 품고 ‘혁명에 참가’한 것이라고 느낀다. 자신의 이상 추구를 부정하는 결론을 얻어내지 않기 위해 그들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공산당의 죄악을 보고도 못 본 척하거나 혹은 축소하기 위해 고심한다. 그들은 행위의 동기와 효과가 종종 위배된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며, 더욱 중요한 것은 당원 개체의 동기는 절대로 중공의 전체적인 동기와 같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며, 당원의 개체 행위도 절대 중공의 전체행위와 같지 않으며, 후자야말로 중공이란 조직의 성질을 판단하는 근거가 된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다.


우리는 누구를 질책하려는 의도가 없다. 중공이라는 이 동서고금의 사악을 집대성한 조직은, 좋은 말은 다 하면서 온갖 나쁜 일을 다 저질렀는데, 그 사악과 위선은 인류의 경험과 상상을 초과했다. 공산당이 중국에서 일어설 때는 또 중국의 국력이 계속 아래로 떨어질 때였고, 내우외환이 절박한 위기에 빠졌을 때였다. 그런 상황 하에서 냉정하게 사고하고 이지적으로 판단한다는 것은 사실 쉽지 않다. 몇십 년이 지난 오늘, 반평생 심지어 더욱 오랜 시간 기만당한 사람들은, 처음으로 중공의 본래면목을 알 기회가 있게 되었고, 이 거대한 심리적인 차이에 적응하자면, 철저하게 자신의 생애와 사업을 반성해 보아야 한다. 이렇게 하자면 특히 비범한 성실과 거대한 도덕용기가 필요하다.


(3) 스톡홀름 증후군


1973년 8월 23일,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의 한 은행에 완전무장한 강도들이 뛰어들었다. 그들은 한편으로는 미친 듯이 총을 난사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파티가 시작되었다”고 말했다. 두 명의 강도는 남자 세 명과 여직원 1명을 납치했다. 경찰이 현장을 포위하여 대치하다가, 28일 공격에 성공해 인질을 구하고 강도를 사로잡았다. 경찰과 대치하던 6일 동안, 인질들은 의외로 외부의 구원을 거절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구하러 온 경찰이 자신들을 해치려 한다고 여겼고 자신들을 납치한 사람들이 그들을 보호한다고 여겼다. 더욱 놀라운 것은, 몇몇 인질들은 구출된 후에도 강도들을 고소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언론과 법관에게 강도를 찬양하면서 강도가 자신들을 죽이지 않고 선량하게 대해준 은혜에 감사한다고 했다. 그 중 여자 인질은 강도 중 한 명과 약혼까지 했고, 다른 한 사람은 기금을 만들어 전 세계적으로 강도를 위한 자금을 모았다.


생명을 위협당할 때, 살고 싶은 강렬한 욕망은 이 몇 명 인질들로 하여금 그들을 납치한 사람들을 인정하게 했고 그들의 이런 인정은 위협이 해소된 후까지 지속되었다. 이런 증상을 나중에 ‘스톡홀름증후군’이라고 불렀다.


스톡홀름증후군이 생기기 위해서는, 4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조건은 사람으로 하여금 확실하게 자신의 생명이 위협받는다는 것을 느끼게 해야 하고, 이 폭행을 저지르는 사람은 수시로 서슴없이 그들을 해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조건은 폭행을 하는 사람이 피해자에게 작은 은혜를 주어 피해자로 하여금 폭행자가 그들 생명의 구세주라는 것을 믿게 하는 것이다. 셋째 조건은 피해자의 정보환경을 통제하여, 그가 세상과 동떨어지게 하여 폭행자가 피해자에게 얻지 못하게 하는 어떠한 정보도 얻을 수 없어야 한다. 네 번째 조건은 피해자로 하여금 도망할 길이 없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다.


독자 여러분들이 쉽게 발견할 수 있다시피, 중공은 스톡홀름 증후군을 만들어낼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구비했다. 중공은 중국인들을 매우 성공적으로 세뇌했고 그 메커니즘과 스톡홀름 증후군의 메커니즘은 놀랄 정도로 유사한 점이 있다.


중공은 비교적 규모 있게 스톡홀름 증후군을 만들어냈다. 40년대의 옌안정풍, 간부심사, 간첩제거운동부터 시작하였다. 당원의 반성자료는 일반적으로 모두 3번 내지 5번 수정했는데, 어떤 사람은 무려 13차례 이상 수정하기도 했다. 그들이 생각한 것은 오로지 자신의 문제가 심각하지 않을까 두려워했고 고비를 넘지 못할까 두려워했다. 운동이 진행되던 나날에, 간부들은 보편적으로 긴장하고 초조해했으며 음식을 먹어도 맛을 몰랐고 밤에는 편하게 자지도 못했다.


당원 간부들은 강대한 폭력 위협과 이론 주입 하에 기나긴 정신적 지옥을 거쳐, 최종적으로는 육체에서 영혼까지 모두 떨면서 ‘당’의 권위 아래 굴복했다. 작가 류바이위(劉白羽)는 이 시기를 기억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는 간부를 심사하는 운동의 충격을 거친 후, “만장 높은 하늘에 고립되어 있던 데에서 진정으로 평탄한 지면에 내려왔다.”라고. 여기서 말하는 소위 ‘평탄한 지면’이란 것이 바로 스톡홀름 증후군에 걸린 것이며 자신이 건강할 때의 상태를 망각한 것이다.


중공은 정치운동 중에서 흔히 은혜와 위엄을 병용하여 한쪽 편을 끌어당기면서 다른 한 편을 타도한다. 매 당원마다 모두 자신이 ‘당’의 신임을 얻기를 희망하고, ‘당’이 자신을 자기사람으로 보고 적으로 간주하지 말기를 바라며, ‘투쟁의 신뢰하는 대상’이 되고 타격대상이 되지 말기를 희망한다.


또 한 가지 중공이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수단은 “10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이다. 매 차례의 운동이 지난 후 모두 “확대되었다”고 성명하고는, ‘선별’, ‘개정’, ‘누명을 벗겨주다’를 시작한다. 운동 중에서 운 좋게 관을 넘지 못한 사람들은 흔히 누명을 벗겨주길 희망하며, 갑자기 닥쳐온 작은 은혜에 기뻐 놀라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약간의 불안감을 느끼는데 이 때문에 ‘조직’에 대해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여류 작가 딩링(丁玲)은 장편소설 『태양이 상간하 위를 비추다(太陽照在桑干河上)』로 1951년 “스탈린문학상”을 받았고, 1949년 이후 문단에서 한때 이름을 날렸다. 1932년에 중공에 가입했고, ‘국민당 반동파’에 의해 남경(南京)에서 3년 동안 연금되었던 딩링은, 그녀가 무한히 충성하는 ‘당’에 의해 20년 동안 유배되고 감금당하였으며, 그 사이에 비인간적인 시달림을 받았다. 그러나 “당이 그녀를 사랑하지 않아도 그녀는 당을 사랑했다.” “누명을 벗은” 후, 『태양이 상간하 위를 비추다(太陽照在桑干河上)』를 다시 출판했고, 자신은 여전히 “전사(戰士)처럼 마오 주석을 부르며 전쟁터로 나간다”고 했다.


1984년,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에, 딩링은 중공 중앙에 편지를 써서, “52년 동안, 나는 많은 따뜻함과 영예, 행복을 얻었고 또 계발을 얻었다. 나로 하여금 더욱 당에 가깝게 접근하게 하였고 인민을 더욱 이해하게 되었으며 공산주의가 필승할 신심을 더욱 강화하였다.”고 했다. 이때 딩링의 나이는 80이었고, 인생의 4분의 1을 중공 감옥에서 보냈으며, 중공의 도리에 역행하고 잔혹하며 무정한 것을 여러 차례 목격하였지만, 의연히 “전사처럼 마오 주석을 부르며 전쟁터로 나간다”고 했으니 실로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중공의 역대 정치운동을 겪고, 중공의 독재기구인 ‘소탕’, ‘파괴’, ‘박살’, ‘때려 부수’는 야만적인 역량을 목격하여 중공에게 놀라 혼이 빠져서, 설사 자기 집에 있어도 감히 큰소리로 말도 하지 못하고, 해외에 있으면서도 중공이 정의내린 ‘반동서적’을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는 그런 가련한 중국 동포들, 그들이 “엄마아빠가 친근해도 당보다는 못하다.”, “당이여, 친애하는 어머니여.”, “나는 당을 어머니에 비한다.”를 말하거나 혹은 노래를 흥얼거릴 때, 우리가 듣는 것은 바로 스톡홀름증후군에 걸린 뒤틀린 심령의 신음소리이다.


위에서 분석한 3가지 정황―중공에게 기만당하고, 자아에 집착, 스톡홀름증후군―은 모두 사람들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중공이 외치게 한 구호를 부르게 했다. 그 외에, 오늘날 더욱 많은 사람들이 중공의 장기적인 훈련을 거쳐,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고 두 개의 얼굴을 드러내고 두 가지 어조를 바꿀 수 있다. 그들은 한 얼굴과 한 가지 어조로 중공 관원, 회의에서 태도를 표시하고 사상회보에 응하지만, 다른 한 얼굴은 한가하게 휴식하는 시간과 가족이나 친구사이에 사용한다. 몇 년 전 대륙에서 유행하던 순구류(順口溜)가 있었는데, 전형적으로 이런 심태를 반영하고 있다.


“반찬을 많이 먹고, 술을 적게 먹으며, 아내의 말을 듣고, 당을 따라가라.”고. 무엇 때문에 아내의 말을 들어야 하는가? 원인은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모두 가족(친구)의 관심이 진심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당’이 비록 “전심전력을 다해 인민을 위해 봉사한다”고 하지만, 도리어 종래로 사람의 생사에 무관심했다. 하지만 태도를 표시하지 않으면 또 안 되기에 단지 몇 마디 구호를 외치고 적당히 얼버무릴 뿐인데 바로 이른바 “진지하게 적당히 일을 얼버무린다.”는 것이다. (계속) / 에포크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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