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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 당(黨)문화] 제5장 선전 중에서 흔히 보는 당문화(1)·하

편집부  |  2021-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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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SOH 자료실]


목차


들어가는 말


1. 공산당이 없으면 신(新)중국은 없다


1)노래와 거짓말


2)시기마다 껍데기만 바뀌고 내용은 그대로


3)공산당이 없으면 중국은 어떻게 하는가


4)공산당이 중국에 가져다준 것


**********


1. 공산당이 없으면 신(新)중국은 없다


3)공산당이 없으면 중국은 어떻게 하는가?




▲ 겉으로는 부패 척결과 탐관오리 숙청을 외치면서 뒤로는 탐관오리들을 비호하는 중공 [사진=에포크타임스]


“공산당이 없으면 신중국은 없다”는 말의 숨겨진 뜻은, 공산당이 중국 인민을 지도하여 휘황한 성과를 얻었고, 이런 성과는 만약 공산당의 지도가 없었다면 상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중공이 늘 허풍을 떠는 성과에는 민족의 독립을 얻고, 중국 인민으로 하여금 일어나게 했으며, 완전한 국민경제체계를 건립했고, 십몇 억 인민들이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했으며, 강대한 국방체계를 건립했고, 원자탄과 핵잠수함을 보유하고 있으며, 교육과 과학기술 및 문화 사업에서 빠른 진보를 획득했다는 것 등이다.


그러나 사실상, 중국의 진정한 민족독립, 국제 4강에 들어선 것, 불평등조약을 폐지한 것과, 대만을 회수한 것은 모두 국민당 정부가 1945년에 해낸 것이다. 정권을 세우기 전에 중공이 한 것은 분열과 내전이며, 정권을 건립한 후에는 민중을 노예처럼 부리는데 힘썼고, 정치운동을 크게 벌여 인민들을 핍박 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중국의 경제 체계는 중공이 등장하기 전에 이미 꽤 규모를 갖추고 있었다. 중국 강남의 조선소는 1918년 미국에 4척의 1만 톤 급 선박을 건조했고, 1920년 3월 진수했으며, 미국 교통부에서 검사한 결과 품질이 아주 우수했다. 1929년 랴오닝 박격포 공장은 스스로 자동차를 만들었다. 기타 성냥, 페인트, 선반, 심지어 군함, 비행기 등, 현대 공업생산품들은 대부분 국민당 정부, 북양정부 심지어 청나라 때 이미 모양을 갖추었다.


중국인들이 밥을 먹는 문제를 말하자면, 도대체 누가 농사를 짓는가? 누가 집을 짓는가? 누가 과학연구를 하는가? 그래 농민, 노동자, 지식인 등 대중백성들이 아니란 말인가? 도대체 중공이 한 일이 무엇이 있는가? 중국 인민의 입을 것과 먹을 것 및 재산은 자신이 노력하여 일한 결과이며 스스로 번 것이지 중공이 가엾게 여겨 베풀어준 것이 아니다.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인민이 중공 정권을 먹여 살린 것이지, 중공 정권이 인민을 먹여 살린 것이 아니다. 중공의 후안무치함은 바로, 인민의 재산을 전면적으로 박탈하고는 최후에 당신 자신이 창조한 재산을 조금 돌려주고는, 오히려 당신에게 고맙게 여기게 하고 당신에게 “당의 영명한 정책에 감사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경제학에 “기회비용”이라는 용어가 있다. 의미는 바로, 사람이 어떤 선택에 직면했을 때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잃게 되는 것이 바로 그가 얻은 물건의 기회비용이라는 것이다. 중공은 자신의 “위대한 성과”를 떠들어 대면서, 언제나 종적으로만 비교하지 횡적으로는 비교하지 않는다. 언제나 전란 연대와 비교하며 태평한 연대와는 비교하지 않는다. 언제나 무엇을 했다고 말하고, 무엇을 하지 않았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만약 우리가 지난 반세기 이래 비(非)공산 국가와 공산 중국이 걸어간 길을 비교해 본다면 발견할 것이다. 만약 공산당이 없었고, 중국 인민의 지혜와 근면에 의지한 자유민주의 중국이었다면 지금 상태보다 얼마나 더 휘황한 성과를 얻을 수 있었겠는가.


우선 경제를 예로 들어 보자. 중공은 늘 중국은 인구가 많고 밑바탕이 취약하다고 말한다. 그럼 우리처럼 인구가 많고 밑바탕이 취약한 공산당이 없는 일본을 보자. 일본의 인구밀도는 1Km2당 339.3명(1998년 자료)로 중국의 약 3배이다. 일본은 국토의 71%가 산지와 구릉이고 토지는 척박하며 자원이 부족하고 자연조건이 그리 좋지 않다. 2차 대전 이후, 일본은 전쟁의 폐허에서 시작했지만 겨우 30년 만에 패전으로 인한 경제의 그림자를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강국인 영국, 프랑스, 독일, 소련을 뛰어넘어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경제 강국이 되었다. 1955년부터 1973년까지, 중국에서는 공산당이 여러 차례의 정치운동을 발동하여 중국을 발칵 뒤집어놓고 있을 때, 일본의 GDP는 연속 18년 동안 평균 10%의 속도로 고속 성장했다. 사람들은 이것을 “일본경제의 기적”이라고 부른다.


인도의 인구는 중국과 비슷하기에 중국과 어느 정도 비교가 가능하다. 1980년대, 중공이 개혁개방을 시작한 거의 같은 시기에, 인도는 라지브 간디 총리의 지도하에, 온건한 자유개혁을 시작했다. 1991년부터, 인도는 개혁의 발걸음을 가속화했고, 1980년부터 2002년까지 인도경제는 연평균 6% 성장했다. 2002년부터 2006년 년 평균성장률은 7.5%에 달하는데, 이는 중공이 발표한 8%에 거의 접근한 것이다. 그러나 인도 은행의 부실채권은 전체 대출의 2%도 되지 않을 정도로 건전하며 중국과는 비교할 수 없다. 소득 불균형을 측정하는 지니계수도 0.33으로 이는 같은 시기 중국의 지니계수가 0.5~0.6에 가까운 것과 비교하면 빈부격차가 작은 편이다. 중국 경제의 성장은 주로 자원을 많이 투입한 것에서 유래했지만, 인도의 GDP성장은 주로 생산성 제고에서 온 것이지, 자본이나 노동력 투입을 증가시켜서 온 것이 아니다. 인도는 동아시아, 특히 중국과는 판이하게 다른 독특한 경제성장 모델을 만들었다. 주로 국내시장에 의지하며 수출에 의지하지 않았고, 소비에 의지하고 투자에 의지하지 않았으며, 서비스업에 의지하고 공업에 의거하지 않았으며, 하이테크에 의지하고 기술이 낮은 일반 제조업에 의지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인도경제의 성장모델이 민중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준다고 말한다.


군사와 국방 역시 중공이 늘 자랑하는 제목이다. 자고로 “군대는 흉기니, 성인은 부득이한 경우에만 사용한다(兵者?兇器,聖人不得已而用之)”고 했다. 『손자병법』에서는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다. 그러므로 최고의 병법은 적의 의도를 꺾어 놓는 것이고(上兵伐謀), 그 다음 병법은 적의 외교를 끊어 놓는 것이고(其次伐交), 그 다음 병법은 적의 군대와 전쟁을 하는 것이고(其次伐兵), 최하의 병법은 적의 성곽을 직접 공격하는 것이다(其下攻城).”라고 했다. 중공은 투쟁철학에서 출발하여 몇십 년 동안 일종 전쟁에 대해 망상하는 태도로 끊임없이, “제3차 세계대전은 불가피하다”, “중국과 미국은 필연적으로 전쟁을 치른다”고 떠들어댔다. 사실 그것은 외부의 적을 만들어 국내의 모순을 없애는 상투적인 통치수단이다. 사실 진정으로 “혁명을 수출”하는데 열중하고 도처에서 선동하면서 천하가 어지러워지기만 바라는 것이 바로 공산당 정권이다. 중공은 원자탄을 만들기 위해 41억 달러(1957년 가치)를 소모했다. 어떤 사람이 계산한 바로는, 만약 이 돈을 식량을 사는 데 썼다면 대기근에서 굶어죽은 4천만 명을 전부 구할 수 있었다고 한다! 만약 국방의 목적이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라면, 그럼 이렇게 많은 국민들을 해치는 국방이 도대체 무슨 의의가 있단 말인가? 억지로 병사를 동원하여 무력을 남용하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국민들의 생사를 고려하지 않아도 된단 말인가, 적어도 무기 개발을 국민들에게 자랑하는 밑천으로 삼을 수는 없다. 게다가 공산당이 없는 그런 국가들은 국방을 건설하지 않는단 말인가?


대만 국립대학 정치학과 교수인 밍쥐정(明居正)이 일찍이 재미있는 가설을 발표한 적이 있다. 그는, “만약 1949년 이후 중국 대륙의 정권이 손중산 선생의 가르침을 따라 삼민(三民)주의의 길을 걸었더라면 중국의 정황은 어떻게 되었을까?”를 말한 적이 있다.


“1949년부터 1952년까지 5대 운동이 없었을 것이고 미국과 전쟁하지 않았을 것이며, 미국에게 봉쇄당하지 않았을 것이고…, 대약진 운동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며…, 중간에 아주 많은 일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고, 3면 홍기(紅旗), 대약진, 인민공사가 나타나지도 않았을 것이며, 중국에서 3천만 내지 4천만의 인민이 덜 죽었을 것이고…, 물론 더욱 중요한 것은 문화대혁명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1970년대에 이르러, 경제는 계속하여 발전하고 인민은 더욱 부유해졌을 것이다….”


“만약 삼민주의를 따르는 이 정당(역주: 국민당을 말함)이 계속 집권했다면, 1980년대에 이르러, 중국 경제는 일인당 국민소득이 대략 4천 달러 내지 5천 달러가 되었을 것이다. 지금에 이르러, 중국의 일인당 국민소득은 마땅히 미국의 절반에 도달해야 하고, 경제규모는 미국의 2배가 넘었을 것이다. 중국은 의심할 바 없이, 일찍이 세계 최강대국이 되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만약 중국 대륙이 걸어간 길이 손중산의 길이고, 공산주의의 길이 아니었고 줄곧 걸어왔다면 중국은 진작에 굴기(?起)했을 것이다”.


중국 고대에, “휴양생식(休養生息)이라는 단어가 있다. 바로 정부가 형벌을 감면하고, 조세를 줄이며, 부역을 경감하여 백성들을 휴식하게 한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정부가 백성들을 들볶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국인들은 근면하고 용감하기에 오직 사회가 공정하고 운동을 하지 않으며 정부가 마음대로 지휘하지 않았다면, 백성들은 스스로 방법을 찾아 부유해졌을 것이다. 중공 스스로도, 3년 대기근 때 몇 천만 명이 굶어죽었고, 문화대혁명이 끝날 때, 국민경제는 이미 붕괴할 지경에 이르렀다고 인정했다. 만약 몇 십 년 동안 중공의 들볶음이 없었다면, 중국은 적어도 30년 전에 좋은 생활을 누렸을 것이다. 현재, 중공의 전제(專制), 부패, 낭비와 이에서 야기된 혼란한 사회질서와 부패한 사회도덕은, 이미 중국 사회발전에 거대한 장애를 조성했다.


중공 스스로 승인한 것만 해도, 매년 공금으로 먹고 마시는 데 2000억 위안, 관용차 소비에 3000억 위안, 해외출장비용 2000억 위안 등이다. 세계은행은, 중국은 “7차 5개년 계획”부터 “9차 5개년 계획”기간에, 투자정책 실수율이 30% 정도에 달하고, 낭비가 4000ㅡ5000억 위안에 달한다고 평가했다. 심지어 우방궈(吳邦國) 스스로도 “우리나라 최대의 낭비 중에 전략 정책결정 실수보다 더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 또 크고 작은 각 급(級) 당위원회 관리가 몇 백만 명에 달하니 얼마나 많은 백성들의 돈을 낭비하는지 모른다. 일반 국가의 백성들은 세금을 내 정부를 먹여 살리지만, 중국 백성들은 정부를 먹여 살리는 외에도 방대하고 탐욕스럽기 그지없는 당을 먹여 살려야 한다. 때문에 중국 백성들은 이런 무거운 부담을 견딜 수 없어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공산당이 없으면 중국은 어찌해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가? 한편으로 이것은 심리적인 문제이다. 공산당은 주입을 통해 자신이 민족과 국가와 융합되어 일체가 되었다는 가상을 만들어, 당이 망하면 나라가 없어지며, 마치 엄마 품을 떠나본 적이 없는 아이는 엄마가 없는 상황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문제는 공산당은 지금까지 우리의 어머니가 아니었고 중화 민족에게 강제로 달라붙은 부체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바로 중공이 국가의 모든 자원과 재산을 강제로 약탈하고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중공에 의지해야만 국가를 관리할 수 있다는 가상을 조성한 것이다. 사실 중공이 없어도, 중국인들은 예전처럼 여전히 중국인이고, 국가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중국사회는 몇천 년 동안 공산당이 없었어도 아주 훌륭하게 지내오지 않았는가?


다른 한편,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또 공산당이 없으면 국가가 혼란하게 된다고 걱정하기 때문이다. 동란(動亂)이 일어나는 것보단 차라리 지금 어렵게 사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보면, 이것은 동란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다. 하지만 진정으로 생각해 본다면, 중공의 통치야말로 바로 동란의 원인이고 모순을 격화시키고 있으며, 중공이 바로 사회의 불만을 압제하고 있기에, 동란의 도래는 바로 중공 통치하의 역사적인 필연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중공을 유지하는 것은, 이 동란의 도래를 피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가속화하며 동란의 파괴력을 강화할 뿐이다. 현재 중국의 각종 문제들을 해소하는 방법은 바로 중공이 가로막고 있는데, 원인은 그런 해소방법들이 중공의 통치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오직 공산당의 요소가 사라져야만, 공평하고 건강하고 뒷근심이 없이 중국 문제를 토론할 수 있으며 정상적인 궤도 위에서 전면적으로 개혁을 진행할 수 있다. 때문에, 지금 급선무는 바로 중공을 해체하여 다른 일들의 순조로운 진행을 위해 길을 닦는 것이지, “공산당이 없으면 중국은 어떻게 하는가”라는 문제에 미혹되어선 안 된다.


“공산당이 없으면 중국은 어떻게 하는가”라는 것은 문제 자체가 불합리한 것이다. 20세기말 공산주의는 전 세계에서 이미 파산되었고, 중공의 고관(高官)들조차도 공산당의 몰락은 “10년을 넘지 못한다”고 했다. 2004년 인민일보에서 사설을 발표하여 “공산당, 다시 20년을 하게 하자”라고 큰 소리로 주장했다. 여기서 볼 수 있다시피 중공 자신의 가장 낙관적인 예측도 ‘20년’뿐이다. 사람들도 늘 말하지 않는가, “20년이 지나면 중국도 어쨌든 민주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분명한 것은, 사람들도 일찍이 이미 공산당이 무너진다는 것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것이다. 그럼, “공산당이 없으면 중국은 어떻게 하는가”라는 이 문제는 전혀 필요 없는 것이 아닌가?


때문에, “공산당이 마땅히 무너져야 하는가.”는 이미 문제가 아니며, 문제는 “어떻게 공산당을 무너뜨릴 것인가.”이다. 더욱 현명한 물음은 “어떻게 해야 공산당을 무너뜨리면서도 사회 동란을 야기하지 않을 수 있는가?”이다. 혁명의 폭력수단에 의거하는 것은 분명 타당하지 않다. 폭력이 초래하는 것은 다만 새로운 폭력일 뿐이고, 공산당의 통치는 사람들의 문화와 심리적인 단절을 조성했다. 오직 사람들로 하여금 진정으로 공산당을 반성하게 하는 것만이 공산당의 전철을 피할 수 있다.


현재 중국에서 세차게 일어나고 있는 ‘탈당 열조’는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다. 탈퇴하여 중공을 무너뜨리는 과정은 바로 한 민중이 각성하는 과정이고, 바로 중공 강권이 장차 무너진다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며, 또 여러 가지 신생세력이 성장하는 과정이다. 뿐만 아니라 이것은 성장과정 중에서 자각적으로 공산당의 폭력원칙과 명백히 경계를 긋는 과정이기도 하다. 오직 중국 인민들의 심령이 진정으로 해탈되어 이성을 지닌 민중이 있다면 중국은 평온하게 넘어갈 수 있다.


적지 않은 서방 정치인들도 중공이 무너지는 것을 무서워하고, 중국에 파괴적인 동란이 나타나 세계질서를 충격할까 염려한다. 그리하여 “세계가 중공을 감싸기”를 원하고 중공을 도와 정권을 유지하게 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이것은 아주 지혜롭지 못한 것으로 근시안적인 행동이다. 왜냐하면 공산당 통치하의 중국은 필연코 문제가 나타날 것이고, 폭발할 때를 기다린다면 문제가 더욱 커지고 그때는 후회해도 늦기 때문이다.


공산당이 없다면 중국은 더욱 좋아질 것이다. 그럼 공산당이 있다면, 중국은 도대체 어떻게 되겠는가?


4)공산당이 중국에 가져다준 것




▲ 9평 공산당을 읽고 자발적으로 중공 관련 조직을 탈퇴하는 중국인들 [사진=에포크타임스]


과거 약 한 세기의 역사를 돌아보면, 우리는 “3개의 큰 산을 뒤엎고”, “인민을 이끌고 해방”한 중공이 바로 중국 인민들의 머리를 짓누르는 가장 무거운 큰 산이 되었다.


중공의 역사는 바로 한 부의 폭력투쟁, 사상투쟁과 권력투쟁이 서로 엇갈린 역사로서, 운동은 한 차례 또 한 차례씩 잇따랐다. 예를 들면 ‘진반(鎭反)’, ‘숙반(肅反)’, ‘3반(三反)’, ‘5반(五反)’ 역대의 사상비판, 사회주의 개조, ‘반우파(反右)’, ‘대약진’, ‘반우경기회주의(反右傾)’, ‘4청(四清)’, 반란을 일으켜 정권을 탈취, ‘경계선을 가르기(清階)’, 일타3반(一打三反), 린뱌오를 비판하고 공자를 비판, 문화대혁명, 덩샤오핑 비판하고 우경반란풍조를 반격, 반자유화, 6.4, 파룬궁 탄압…. 매 차례의 운동은 모두 국가와 인민의 원기를 크게 상하게 했다. 중공 정권은 중국 인민들을 전대미문의 노예상태에 처하게 했다. 그 어떤 비공산당 정권도 중화민족에 이렇게 심각한 재난을 가져올 순 없다.


▶영토 팔아먹기


1999년 12월 9일과 10일, 중공 두목 장쩌민은 북경을 방문한 러시아의 옐친 대통령과 “중화인민공화국 정부와 러시아연방 정부가 중러 국경선 동서양단의 서술협정서(中華人民共和國政府和俄羅斯聯邦政府關於中俄國界線東西兩段的敘述議定書)”를 체결했다. 외흥안령(外興安嶺) 남쪽, 흑룡강성 북쪽의 ‘외흥지역(外興地區)’, 우수리강 동쪽의 ‘우동지역(烏東地區)’, 또 탕누우량해(唐努烏梁海)지구 및 쿠릴열도를 포함하여 불법적으로 침략당한 중국 영토 적어도 백여만 Km2가 정식으로 러시아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2001년 5월, 장쩌민은 또 타지키스탄과 협약을 체결해, 분쟁지역 2만 7천 Km2 가량을 공손히 바쳤다.


장쩌민은 외부의 지지를 받아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내막이 분명하지 않은 작업을 하고, 비엔나 《조약법 공약(條約法公約)』에 따라 무효로 할 수 있었던 일련의 중러 불평등조약을 승인하고, 원래 홍콩이나 마카오처럼 회수할 수 있는 드넓은 땅을 러시아에 공손히 바쳤고 중화민족이 생존 발전할 퇴로를 끊어놓았다. 중공 고위층은, 장쩌민의 매국행각이 드러날 경우 필연코 중공 통치에 위기가 닥칠까 우려하여 장쩌민과 서로 의기투합해 이 사실을 극력 숨기고 있다.


▶환경 파괴


공산당은 극단적으로 오만방자하여 일체 자연법칙을 무시한다. 그것이 정권을 잡은 후 처음 30년 동안, 하늘과 투쟁하고 땅과 투쟁하며 사람과 투쟁하면서 경제를 발전시키지 못하면서도 도리어 자연환경은 몹시 크게 파괴했다. 개혁개방 이후에는, 단편적으로 경제의 고속성장만을 추구하면서 눈앞의 이익에 매몰되어 장기적인 이익을 해쳤다. 인년(寅年)에 묘년(卯年)의 식량을 먹는 식으로, 생태자원을 미리 앞당겨 지나치게 소모했다. 중국은 현재 세계에서 오염이 가장 심한 나라가 되었고 공산당이 남겨놓은 생태환경은 이미 오랜 세대를 이어가며 이 땅에 살아온 화하(華夏)의 자손들을 거의 담아낼 수 없게 되었다.


중공 환경보호총국에서 인정한바, 현재 중국에서 산성비 피해를 입는 지역은 국토의 3분의 1에 이른다. 대기 오염은 4억이 넘는 도시 주민들로 하여금 오염이 심각한 공기를 호흡하게 하여 1500만 명이 이로 인해 각종 기관지 질환과 호흡기 암을 얻었다. 수질 오염은 날로 부족해지는 수자원을 더욱 악화시켰고, 7대 강 수계(水系) 중 열악한 5급수가 41%나 차지한다. (주: 5급수는 이미 물의 기능을 상실한 것으로 심지어 관개와 관상용으로도 부적합하다) 3억 6천만 농촌 인구가 안전한 물을 마실 수 없고, 도시 하천의 90% 이상이 심각하게 오염되었다. 오염으로 인한 암환자 촌이 서부의 신장(新疆)에서 동부의 헤이룽장까지, 남쪽으로는 윈난, 광둥까지, 북으로는 내몽골까지 거의 전국적으로 파급되었다. 중국은 또 90%이상의 천연 초지가 퇴화되고 있으며 매년 증가하는 퇴화된 초지가 200만 헥타르에 달한다. 사막과 사막화한 면적은 이미 174만 3천㎢에 달하고, 매년 3436㎢의 속도로 확장되고 있다. 이는 1년에 큰 현(縣) 하나의 면적이 손실되는 것에 해당한다. 농경지의 점용으로 현재 중국에서 토지를 잃은 농민의 총수는 4000만 명 정도 되며 매년 200여만 명이 증가하고 있다.


일인당 평균 토지와 자연자원 점유량을 말하면, 중국은 원래 세계적으로 후미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렇게 발전해 내려간다면, 머지않은 장래에 중국은 장차 경작할 땅이 없어지고 마실 물이 없으며 호흡할 공기마저 없게 될 것이다. 이것은 결코 일부러 사람을 놀라게 하려는 말이 아니다. 중공 관방에서도 현재 ‘지속 가능한 발전’을 크게 떠들어대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전부 중공 통치를 수호하는 것을 근본 목적으로 하는 중공의 근시안적인 특징을 갖고 있기에 이것은 단지 외관을 장식하는 새로운 명사일 뿐이다. 오늘날, 중국의 수많은 생태재난이 조성한 결과는 이미 거의 돌이킬 수 없게 되었으며 이것은 전 민족의 재난이다.


▶중국 민중 살해


중공은 정권을 잡은 이래, 역대의 정치운동 중에서 4천만 명을 살해했고, 3년 기근 중에 굶어죽은 4천만 명을 합하면, 총 8천만 명의 중국인을 살해했다. 중국과 외국 학자들은 이미 발표된 역사자료에 근거하고, 반복적인 통계연구를 거쳐 최후에 위와 같은 결과를 추산해 냈다. 하지만 중공 각급 정부에서 발표하는 숫자는 대부분 축소한 것이기 때문에 실제 숫자는 이보다 더 많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중공은 핍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사람을 죽인다고 말한다. 사실 이런 말은 반박할 가치도 없다. 중공이 정권을 건립한 초기에, 여러 해 동안 계속되는 전쟁을 치렀기에 중국 백성들은 안정을 바라고, 새로운 정권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했다. 중공은 천하에 대사면을 할 수 있었고 정치협상제도와 여러 가지 법률을 완비할 수 있었으며 경제를 크게 발전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중공은 살계(殺戒)를 크게 열어 질풍노도식의 정치운동을 발동했으며, 살인으로 조성한 공포를 통해 독재제도를 건립했고 민주당파는 신속히 정치꽃병으로 전락되었다.


또 어떤 사람은 중공이 이상을 위해 살인했다고 말한다. 즉 마오쩌둥이 사람마다 평등한 사회주의제도를 건립하기 위해 살인한 것으로 일정한 대가를 치른 것은 용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설법은 더욱 황당한데, 독일의 히틀러와 일본의 전범 도조 히데키(東條英機)가 살인한 것은 그래 그들의 이른바 ‘이상’을 위한 것이 아니란 말인가?


또 어떤 사람은 이것은 모두 지나간 일이고 중공은 이제 살인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라고 말한다. 아니다. 중공은 지금껏 살인을 중단한 적이 없다. 다만 과거에는 대대적으로 죽였다면 현재는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슬며시 죽일 뿐이다. 예전에 중공이 살인한 목적은 공포분위기를 조성해 그것의 독재 권력을 수호하려던 것이었다면 현재는 살인을 복잡한 산업으로 변화시켰다. 예를 들면, 파룬궁을 박해하면서 파룬궁 수련생들의 생체에서 장기를 적출하여 고가로 중국과 외국환자들에게 팔아 거액의 이윤을 얻었다.


▶재물 약탈과 유린


현재 중공은 매년 8%의 GDP 성장을 중공 집권 합법성의 근거로 삼았다. 중국의 몇몇 도시는 특수정책과 외자 유치에 힘입어 고층빌딩이 즐비하게 밀집해 번화한 모습을 만들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대도시, 연해, 기득권층에서 시선을 옮겨 농촌, 내륙, 일반 도시민과 중국 인구의 80%를 차지하는 농민을 본다면, 사람을 놀라게 하는 빈곤이 여전히 중국의 무서운 현실임을 발견할 것이다.


중국이 원래 이렇게 가난했던 것은 결코 아니다. 청나라 중엽 이전까지, 중국경제는 늘 세계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청나라 건륭(乾隆) 연간에 중국의 GDP는 전 세계의 51%를 차지했으며 이는 현재의 비중(4%)보다 훨씬 높다. 중화민국 시기에 비록 전란이 끊이지 않았음에도, 북양(北洋)군벌정부는 그래도 25%의 경제성장을 창조했다. 그렇다면 중국의 부(富)는 도대체 어디로 갔는가?


이것은 많은 부분이 중공의 약탈과 낭비 결과이다. 중공은 정권을 잡은 이후, 상공업개조와 인민공사화를 통해 민간의 재산을 몇 년 사이에 중공권력 계층의 수중에 집중했고 이를 ‘공유제(公有制)’란 미명으로 불렀다. 교묘한 수단과 힘으로써 빼앗았는데 이보다 더 심한 경우는 없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몇십 년 동안, 중공의 극단적으로 어리석은 정책과 각급 간부의 낭비와 약탈은, 수많은 국민재산을 유린했고 중국을 철저히 가난하게 만들었다. 예를 들면 중공은 정권 건립 초기에 이른바 ‘항미원조(抗美援朝)’를 발동했다. 이때 들어간 총 비용은 500~600억 달러에 달했는데 이는 당시 국민수입의 절반을 한국전쟁에 썼다는 의미이다. 1960년대의 ‘대약진’은, 몇 천만 명을 사망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중국에 조성한 직접적인 경제손실이 1200억 위안(당시 화폐가치로 계산한 것으로 아래도 마찬가지)이었다.


10년 문화대혁명이 초래한 중국의 경제손실은 적어도 5000억 위안에 달한다(이것은 무수한 진귀한 서적문물의 손실, 사상속박으로 인한 거대한 후유증과 전반 사회도덕과 법률질서의 붕괴, 1천만 가구의 집이 약탈당하고 2천만 명이 비판당하고 심하게 구타당했으며, 수십만 명이 핍박으로 자살하는 등 돈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간접적 손실은 포함하지 않은 것이다), 이는 1949부터 1979년까지 30년 동안의 고정자산을 다 합한 것보다도 많은 것이다. 마오쩌둥의 “세계대전은 빨리 일어나는 것이 늦게 일어나는 것보다 낫다”를 지도사상으로 한 공업의 대 이전, 소위 ‘3선공정(三線工程)’이 조성한 경제적 손실은 6000억 위안에 달한다.


80년대 이후 중국경제의 발전은, 바로 중공이 통제를 늦추고 백성들이 근면하게 노동한 결과이지, 중공이 자랑하는 소위 ‘정치적 성과’가 전혀 아니다. 번영의 밑바탕에는 심각한 위기가 잠복해 있다.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는 경제 발전 방식, 떨어지지 않는 실업률, 날로 확대되는 빈부격차(전문가들의 평가에 의하면 현재 중국도시 주민의 수입격차는 ‘지니계수’로 0.5에서 0.6 사이이며 이는 유엔에서 규정한 위험 경계선을 훨씬 초과한 것이다),


대규모 국유자산의 유실(중공은 2004년 손실이 3521억 2천만 위안 이상이라고 인정)과 탐관오리들의 해외재산 도피[2004년 8월 16일 ‘법제만보(法制晚報)’의 보도, 상무부가 처음으로 발표한 자료에서 보다시피, 중국에서는 현재 탐관오리 4000여 명이 이미 외국으로 도망쳤으며 이들이 가져간 자금은 500억 달러에 달한다]은, 바로 취약한 중국경제체계를 붕괴의 임계점으로 몰아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중공은 또 국력을 기울여 파룬궁에 대한 박해를 발동했고, 천문학적인 국가재정을 무고한 주류 민중을 박해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


▶도덕 파괴


중국 사람들은 탐오와 부패, 정경유착, 경찰과 폭력조직의 결탁, 음란물, 도박, 마약의 유행, 위폐유행, 신뢰의 위기 등 도덕이 크게 타락한 표현에 대해 이미 아주 익숙해졌다. 이 외에 또 한 가지 도덕이 타락한 표현형식이 있다. 이것은 비교적 잘 드러나진 않지만 해악은 더욱 크다. 그것은 바로, 도덕표준마저 모두 함께 추락한 것으로 사람들은 이미 떨어져 내려온 도덕표준으로 자신의 행위를 가늠하고 자신이 아주 괜찮다고 여긴다. 사실, 중국사회는 이미 도덕이 붕괴하기 직전까지 왔다.


이런 상황은 바로 공산당이 일방적으로 조성한 것이다. 중공은 인민들에게 무신론, 유물론, 진화론과 약육강식의 투쟁관념을 주입했고, 유신론과 일체 정통사상을 비판했으며, 기초부터 철저히 중국인의 도덕체계를 파괴했다. 공산당은, 도덕을 상부구조의 일부분으로 결국 통치계급을 위해 봉사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보편적인 도덕법칙을 부정한다. 중공은 비록 ‘법치(法治)’를 높이 외치면서 인민들에게 현재 여러 가지 정황은 법치가 불건전하여 조성된 것이라고 오인하도록 만들었지만, 법치의 기초는 도덕이며 아무런 도덕적 단속이 없는 사람은 법이 있어도 지키지 않는다.


중공은 법 위에 군림하면서 앞장서서 법률의 실시를 파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문적으로 악법을 제정하여 선량한 백성을 박해하고 있다. 중공이 거짓말을 제도적으로 고정해 놓았기에 관원들은 말 따로 행동 따로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관료사회에서 아예 생존할 수 없다. 백성들도 이 상황을 직접 보고 깨닫고 이해하기에 먹지 않으면 손해이며 갖지 않으면 손해라고 생각하고, 네가 검으면 나는 너보다 더 검다는 식이 되어 사회풍기는 일사천리로 급속하게 타락하였다.


<관자>에서는, “예의염치는 나라의 4가지 근본도덕이고, 4가지 도덕을 잘 베풀지 않으면 나라가 멸망한다(禮義廉恥,國之四維;四維不張,國乃滅亡).”라고 했다. 무력과 돈만을 숭배하는 중공은 도덕이 사람들의 마음을 장기간 안정되게 하는 작용을 일으킴을 이해하지 못한다. 오늘날 인성 중의 악이 중국사회에서 극도로 복잡하게 표현되는 것에 직면하여, 중공은 근본적으로 아무런 대책이 없다. 만약 역사적으로, 외적이 침입하여 중화민족을 망국(亡國)과 멸종(滅種)의 위험에 처하게 했었다면, 중공에 의해 조성된 인심이 전면적으로 통제를 상실한 오늘날의 현실은 중화민족으로 하여금 역사상 전례가 없는 더욱 무서운 위기에 직면하게 했다.


▶문화 훼멸


공산당은 3교를 일제히 없애고, 한자를 간략화하여 중화문화의 허리를 잘랐으며, 발광적으로 문물을 파괴하고 지식인들을 박해했다. 문화대혁명 이후, 전통문화가 기본적으로 유린당한 후 일부 표면문화를 가지고 외관을 꾸미고 돈을 번다. 이에 대해서는 『9평 공산당』 제6평과 본서의 1,2장에서 이미 상세히 논술했기에 여기에서 다시 부언하지 않겠다.


중국은 역사적으로 여러 차례 외적의 침략을 당했다. 예를 들면 일본군이 일으킨 침략전쟁은, 2000만 명이 넘는 중국 군인과 민간인의 사망을 초래했고 600억 달러의 직접적인 경제손실을 끼쳤다. 그러나 ‘인민을 위해 봉사한다’고 자칭하고 ‘가장 광대한 인민의 근본이익’을 대표한다고 자칭하는 중공이란 이 당이 중화민족에게 조성한 심각한 상해는, 도리어 일본 군국주의를 훨씬 초과했으며, 또 역사상 그 어떠한 외적의 침입보다도 더 큰 상해를 초래했다.


아주 많은 중국인들은 한편으로 중화민족의 정통으로 자처하면서 외국인들 앞에서 될수록 대국의 풍모를 표현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또 극력 공산당의 형상을 수호하면서 남들이 조금이라도 비평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들은 아마 중화문화를 짓밟은 원흉이 바로 천지와 투쟁하고 재물을 탐하며, 나라를 팔아먹고, 온갖 나쁜 짓이란 짓은 다하는 이 공산당이라는 것을 의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이 만약 정말로 나라를 사랑한다면, 우선적으로 마땅히 해야 할 것은 바로 중공과 한패가 되는 것을 거절하는 것이다. 공산당이 없어져야만 신중국이 있을 수 있다. (계속) / 에포크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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