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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 당(黨)문화] 제3장 주입수단(3)

편집부  |  2021-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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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SOH 자료실]


목차


3. 사악한 당 문언을 인용한 악당 찬양


1) 문학작품을 이용해 중공의 이론과 정책 설명


2) 중공의 세계관, 역사관과 인생관 주입


(1) 신에 대한 신앙을 비판하고 무신론 주입

(2) 전통 관념을 타파하고 계급 증오 주입

(3) 역사상의 폭군, 소인배, 도적떼와 폭도들을 미화

(4) 인성 폄하 당성 찬양


3) 당 문학을 이용한 중공 주입의 몇가지 특징


(1) 민족문화 형식을 전면적으로 도용

(2) 문학적 기교 활용

(3) 금서를 이용해 문화에 대한 갈증 강폭

(4) 반복으로 중독 효과 강화


4) ‘보이는 흑수’에서 ‘보이지 않는 흑수’에 이르기 까지


**********


3. 사악한 당 문인을 이용한 악당(惡黨) 찬양


<9평 공산당> 제1평에서는 “공산당 정권과는 달리 다른 모든 사회에는 그 사회가 비록 아무리 전제적이고 독재정치를 하더라도 모두 일부 자발적인 조직과 자주적인 성분이 존재한다. …중략…. 그러나 공산당 정권은 이러한 자발적인 조직과 자주적인 성분을 철저하게 제거했으며, 위에서부터 아래에 이르기까지 철저한 중앙집권적인 구조로 대체하였다.”라고 지적하였다.


공산당의 극단적으로 삼엄한 사회 통제가 조성한 좋지 않은 결과 중 하나는 바로 독립적인 지식인 계층의 소실이다. 중공은 일부 지식인들에 대해서는 육체적으로 소멸시켰고 다른 지식인들은 여러 가지 “조직(單位)”에 소속되게 했다. 이런 조직은 사실상 중공이 도시에서 인민에 대해 전면적인 통제를 실시하는 기본적인 조직형식이다. 이처럼 정권 통제의 제한을 받지 않는 생존 공간과 자유 언론의 공간을 잃어버린 지식인들은 어쩔 수 없이 중공에 예속될 수밖에 없었으며 커다란 압력을 받는 동시에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없는 상황에서 대부분 자신의 전문 지식을 이용해 여러 각도에서 각종 방식으로 사악한 당을 찬양하며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는 동시에 가족을 부양해야 했다.


중국 사회에는 예로부터 “스승을 공경하고 도를 중시(尊師重道)”하는 전통이 있다. 중공 정권은 지식인(文化人)에 대한 민중의 신임과 존중을 이용해 문인들의 저작과 언론을 통해 민중에게 간접적으로 당문화를 주입하고 중국인의 선악 표준을 개변시켰다. 동시에 “사이비 지식인” 계층을 유지하여 한편으로는 중공으로 하여금 “청의(淸議, 역주: 공정한 평론)”와 여론의 제약을 피하게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언제 어디서나 겉으로는 공정해 보이는 “과학연구성과”와 “사회여론”을 날조해 낼 수 있게 하여 그 사악한 통치를 위해 변호하게 했다.


중공이 문인들을 재편하는 방식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직접 흡수하여 입당시키는 동시에 정권(정부, 인민대표대회, 정치협상회의)에 참여하게 하는 방법. 예를 들어, 궈모뤄(郭沫若 역주: 중국 문학가, 역사학자)는 중공 국무원 부총리를 역임했고, 역사학자 우한(吳晗)은 베이징 시 정치협상회의 부주석, 베이징 시 부시장을 역임했다.


▲민주당파에 배치하는 방법


▲과학원(사회과학원), 대학 또는 문학과 역사 관련 부문에 소속시키거나 작가협회, 연극협회, 문학예술계연합회(文聯) 등에 배치하는 방법. 문화혁명 기간에 부인과 함께 자살한 번역가 푸레이(傅雷)는 중공이 정권을 잡은 뒤, 어떠한 조직에도 소속되지 않고 자유로운 직업을 가진 소수 지식인들 중 한 명이었다.


사상 통제의 편리를 위해 중공은 50년대부터 대학에서 “학부 조정”을 진행하여, 많은 학교의 철학계열을 하나로 합병했다. 정치학, 사회학, 심리학, 인류학 등은 자산계급 학과로 분류하여, 모두 없애버렸다가 80년대에 이르러서야 점차 회복시켰다. 중앙에서부터 지방의 당교(黨校), 사회과학원, 대학, 전문대학 등 기구는 방대하고 인원도 매우 많았다. 이들은 “과학연구”의 기치를 들고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 중공의 합법성을 논증했다.


조직 재편, 사상개조, 폭력적인 위협, 이익의 유혹, 반대자에 대한 도태(“반우파 투쟁” 기간에 용감하게 진실을 말한 지식인 백만이 유배됨) 등 절차를 거쳐 중공은 모든 지식인들을 수중에 장악할 수 있게 되었다. 소수의 정직하고 깨어있는 지식인들은 기껏해야 분노를 표시할 수 있었을 뿐 감히 발언은 하지 못했으며 담이 작고 나약한 지식인들은 담장 위의 풀처럼 바람 부는 대로 넘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 밖에 간사하고 아첨하기 좋아하는 지식인들은 자발적으로 사악한 당의 앞잡이, 나팔수가 되었다.


중공은 철학계, 역사학계, 문학계, 과학계, 종교계 내부에 모두 일부 주요 대리인과 나팔수들을 배양했다. 이들은 평소에 그럴듯하게 많은 문장과 “저작”들을 잇달아 발표하면서 “마르크스주의는 진정한 과학”, “사회발전 5단계는 보편적인 진리”, “자연과학은 계급성을 띠고”, “종교는 진리이며 사회주의도 진리”라는 등을 논증하여 당문화의 기본적인 무기고를 충실히 하는 역할을 했다. 이들은 매번 정치운동이 일어날 때마다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이 형세를 바짝 따라 “당”에 충성을 표시했고, 엉터리 문장들로 악당을 찬양하고 단장취의(斷章取義), 의미왜곡, 정치적 해석 등의 방식으로 중공의 “적”을 타격했으며 인격을 팔아 당의 노예가 되는 대가로 약간의 떡고물을 챙겼다. 문화혁명 과정에 명성을 날린 량샤오(梁效, 베이징대와 칭화대 학자들이 조직한 작가팀), 89년 6.4 천안문 민주화운동으로 유명해진 허신(何新 역주: 6.4천안문 사건 전후, 중공을 위해 대변하는 문장들을 발표하면서 각광을 받음. 대졸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중국사회과학원 연구원으로 초빙됨), 파룬궁 탄압 과정에 유명해진 허쭤슈(何祚?), 위관위안(於光遠), 판자정(潘家錚) 등 인물들이 모두 이런 유형에 속한다.

사악한 당의 대표문인으로 예전에 궈모뤄(郭沫若)를 꼽았다면 지금은 허쭤슈(何祚?)를 꼽을 수 있다.


중공이 “문화의 기수(旗手)”로 부른 풍파(風派 역주: 문혁 후, 자신의 입장이 없이 세력 따라 움직이고 말을 한 기회주의자를 가리킴) 문인 궈모뤄는 카멜레온보다 더 변화무쌍한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는 중공이 반성하라고 하면 반성했고 우쉰(武訓 역주: 영화 “우쉰전”은 청말 거지 출신 인물인 우쉰이 학교를 창설한 스토리를 다룬 역사 다큐멘터리로 중공 역사상 최초로 상영이 금지된 영화이기도 하다), 후스(胡適), 후펑(胡風)을 비판하라고 하면 누구보다 신나게 비판했으며 어느 한 역사 인물에 대한 반대 학설을 내놓으라고 하면 두말없이 바로 그렇게 했다.


그러나 천하의 궈모뤄도 원칙과 입장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중공 앞에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문화혁명 초기, 궈모뤄는 풍향이 바뀐 것을 눈치해고 즉시 “지금의 표준으로 보면 내가 이전에 발표했던 문장들은 엄격히 말해 일고의 가치도 없으며 전부 태워 버려야 한다. 내가 잘못한 주요 원인은, 마오쩌둥 사상을 제대로 학습하지 못했고 마오쩌둥 사상으로 자신을 무장하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반성했다.


과학원의 “정치원사(政治院士)” 허쭤슈는 문화혁명 기간에 마오쩌둥과 공산당에 아부를 일삼았으며 심지어 모자(毛子, 역주 : 물리에서 물질 입자를 무한히 나눌 수 있다는 원리에 근거해 추측으로 어느 한 층 입자를 마오쩌둥의 성씨를 따다 원자나 전자처럼 모자라고 불렀다), 무자(無子 역주: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무산계급의 “무”자를 따다가 추측으로 어느 한 층 입자를 무자라고 불렀다)라는 개념까지 내놓았다. 또한 2001년에는 엉뚱하게도 “양자 역학의 법칙은 장쩌민의 3개 대표이론에 부합된다”라는 학설까지 내놓았다. 이러한 과학건달이 바로 중공이 파룬궁을 타격하는데 이용할 주요 “이론근거”를 제공했다.


바른 믿음(正信), 진리와 인류의 전통적인 도덕 체계는 모두 안정적이며 고정불변한 특징을 지닌다. 세속의 권력에 따라 흔들리는 도덕은 도덕이라고 불릴 자격이 아예 없으며, 시대 발전에 따라 변화하는 진리는 진리라고 불릴 자격이 아예 없다. 또한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들에 대한 신념 역시 신념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다. 사악한 당 문인들의 변덕스러움은 사람들에게 그나마 남아 있는 인성과 미덕에 대한 자신감을 파괴했으며 사람들에게 일체 도덕 표준을 포기하도록 부추겼다. 아울러 중공의 좋고 나쁨을 좋고 나쁨의 표준으로 삼아 중공 정권의 존재를 수호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위치에 놓았다.


본서의 1장과 2장에서 우리는 이미 학술계, 종교계, 과학계의 당(黨) 문인들에 대해 상당히 많이 분석하고 폭로했다. 우리는 본 절에서 문학 영역에서 사악한 당 문인들이 어떻게 악당을 찬양하고 중국인들의 선악 표준을 변모시켰는지 중점적으로 분석해 보고자 한다.

광의의 문학에는 각종 문헌, 저술과 협의의 문학 작품을 포함한다. 언어는 인류 문화 체계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각종 전통 문화에서는 모두 언어와 언어 예술에 해당하는 문학을 역대로 매우 중시해 왔다.


중국 문화는 일종의 반신(半神)문화이다. 옛사람들은 문장이 지고무상(至高無上)한 천도(天道)에서 내원했다고 믿었기 때문에 “문장은 도를 싣는 것(文以載道)”라고 말했다. 또한 문학은 도덕을 제고하고 성정을 함양할 수 있다고 여겨 “수사에는 진심이 담겨야 한다(修辭立其誠)”, “시란 사람의 감정이 담긴 것이다(詩者持也, 持人情性)”라고 했다. 역대의 문인 묵객들은 문학 창작을 “나라를 경영하는 대업이며 불후의 성대한 일(經國之大業, 不朽之盛事)”로 생각하고 장중하고 성실한 태도로 많은 우수한 문학 작품들을 창작해 냈다. 이러한 작품들은 사실 바로 그들의 청정(淸淨)하고 고상한 내심 세계를 반영한다.


중공은 사람들의 사상을 통제하는 일종의 사교(邪敎)로서, 동서고금의 그 어떤 정권보다도 이데올로기를 중시했다. 중공 사령(邪靈)이 침입한 후, 문학은 불행히도 중공이 당문화를 제조하고 당문화를 주입하는 도구로 전락하고 말았다. 중공의 노예가 되길 꺼리지 않는 엉터리 문인들은 잇달아 이름을 날릴 수 있었지만, 자신의 인격 존엄을 포기하지 않는 작가와 시인들은 다행히 박해를 피해가더라도 창작과 발표의 기회를 박탈당해 사회 변두리에서 우울하게 생을 마칠 수밖에 없었다.


공산당의 문예(文藝)사상은 마르크스-엥겔스에서 시작되어 레닌을 거쳐 마오쩌둥에 이르러 본격적인 형태를 드러냈다. 마오쩌둥은 《옌안(延安) 문예 좌담회 강화(講話)》에서 공산당은 “문예를 전반 혁명기계의 한 부분으로 만들어야 하며 인민을 단결시키고 교육하며 적을 타격하고 적을 소멸하는 강력한 무기로 만들어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말했다. 살기등등한 이 강화는 중공이 문인을 이용해 당문화를 건립하고 중국인들의 정신세계를 통제하는 서막을 열어놓았다. 이때부터 “정치 표준이 제1위이고 문학 표준이 제2위”, “계급투쟁을 위해 복무하는 문학”, “전 당이 문예에 참여해야 하며 전 인민이 문예에 참여해야 한다”, “주제가 우선이다” 등이 중공 어용작가들의 창작 지도원칙이 되었다.




▲ [사진=에포크타임스]


1) 문학작품을 이용해 중공의 이론과 정책 설명


중국 현대사를 살펴보면 중공이 발동한 거의 매 차례 정치운동은 모두 어느 한 문예작품 혹은 문예사상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됐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40년대의 정풍(整風)운동은 왕스웨이(王實味)의 《야생 백합(野百合花)》에 화살을 겨누면서부터 시작되었고, 50년대 일련의 사상개조 운동은 영화 《우쉰전(武訓傳)》, “홍루몽연구”와 “후펑(胡風 역주 : 유명한 시인, 번역가, 논평가)집단”을 비판하면서 시작됐으며, 문화대혁명은 우한(吳?)이 새로 만든 사극 《해서파관(海瑞罷官)》이 발단이 되었다. 또한 TV 다큐멘터리 “허상(河? 역주: 서방민주에 대한 동경을 표현함으로써 청년 학생들의 환영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자오쯔양 전 총서기의 칭찬을 받은 작품)”에 대한 비판은 6.4 천안문 민주화 운동 탄압 후, 사상 통제를 강화하는 중요한 일환이 되었다.


다른 한 방면에서 보자면, 중공 휘하의 문인들은 중공의 지휘봉에 따라 움직이면서 문예작품으로 중공의 이론과 정책을 알기 쉽게 설명하여 서로 다른 시기에 중공의 정치 요구를 만족시켰다.


중공의 “토지개혁(지주의 토지 박탈)”과 “합작화 운동(농민들의 모든 토지 박탈)”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문인들은 《폭풍취우(暴風驟雨)》, 《삼리만(三里灣)》, 《창업사(創業史)》 등의 작품을 써냈다. 이들 문학 작품들은 정치운동 과정에 중공이 자행했던 잔혹한 살인과 박해, 공공연한 불법 재산몰수와 약탈 행위를 덮어 감춰주었다. 국민당을 추하게 만들고 중공이 일으킨 내전을 “해방전쟁”으로 꾸미기 위해 문인들은 또한 《임해설원(林海雪原)》, 《보위연안(保衛延安)》, 《홍암(紅岩)》과 같은 작품을 써냈으며, 중공이 “항미원조(抗美援朝 역주: 한국전쟁)”를 미화하려 하자 문인들은 서둘러 《누가 가장 사랑스런 사람인가(誰是最可愛的人)》를 써냈다.


중공이 자본가를 “평화”적으로 개조한 과정을 상세히 설명하고자 하자 문인들은 《상하이의 아침(上海的早晨)》을 써냈고, 중공이 중국인민들이 공산당을 선택한 것임을 세뇌하려 하자 문인들은 《홍기보(紅旗譜)》를 창작했으며, 중공이 “소자산계급 지식인”을 인도하여 “견정한 마르크스주의자”로 만들려고 하자 문인들은 《청춘의 노래(?春之歌)》를 창작했다. 이 밖에 중공이 “대약진(大躍進)”운동을 미화하려 하자 전국적으로 약진하여 백만 개도 넘는 거짓 민요들을 창작했다.


어떤 사람은 중공이 파룬궁을 모함하는 드라마를 시청하고는 오히려 “이 드라마를 보고 나서야 중공이 왜 파룬궁을 금지했는지 알겠다.”라고 했다. 말 밖의 뜻이란 이런 드라마를 보지 않고서는 그 역시 왜 파룬궁을 금지해야 하는지 몰랐다는 것이다. 중공의 문예 날조는 놀랍게도 “파룬궁 탄압 정책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근거로 되었다. 이는 여론 주입이 최근에 발생한 탄압운동에서도 중요한 작용을 일으켰다는 것을 설명한다. 사실 역사적으로 중공이 “착취계급” 소멸을 선동할 때 사용한 것도 마찬가지 수법이었다.


사람들은 실생활 속에서 지주(사실 그들은 평범한 토지 소유자에 불과하다)들이 대부분 근면성실하고 공익활동에 적극적인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중공의 주입을 통해 지주라고 하면 사람들이 떠올리는 것은 예술 수단을 통해 왜곡된 저우바피(周?皮), 류원차이(劉文彩), 황스런(黃世仁), 난바톈(南覇天) 등 악덕 지주들의 이미지였다. 정권을 탈취하기 전에 중공은 점령지에서 가무와 연극으로 병사들을 교육했는데 많은 병사들은 《백모녀(白毛女)》 등의 극을 관람한 후, “계급의 적에 대한 적개심이 일어났고 복수의 불길이 타올랐다.”고 말했으며 중공에 의해 “각성한 무산계급의 전사”가 되었다.




▲ [사진=에포크타임스]


2) 중공의 세계관, 역사관과 인생관 주입


(1) 신에 대한 신앙을 비판하고 무신론 주입


무신론은 중공 사상의 기초이다. 하지만 각각의 커다란 정통문화에는 모두 신의 존재를 믿으며 깊이 있고 걸출한 많은 문학작품들에서도 모두 신을 묘사하고 찬양하였다. 그리스 신화나 단테의 《신곡(神曲)》, 밀턴의 《실낙원》, 존 버니언의 《천로역정》, 중국의 《서유기》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때문에 중공은 한편으로는 문인들을 통제해 물질을 숭배하고 폭력을 숭배하는 문학작품을 쓰게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어용학자들을 동원해 유신론 문학을 뜯어 고치고 의미를 왜곡했다. 그리하여 종교는 “정신적인 아편”으로, 천당과 지옥은 “봉건미신”으로 변질되었으며 신화와 전설은 생산력이 발달하지 않은 원시사회에서 자연에 대해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형상과 반응으로 해석되었고 손오공(孫悟空)과 《실낙원》의 사탄은 무산계급과 피압박자들의 대표로 변형되었다.


(2) 전통 관념을 타파하고 계급 증오 주입


중국의 전통적인 시(詩) 교육은 “원한이 있되 분노하지 않으며 슬프되 상심하지 않음(怨而不怒,哀而不傷)”을 강조했고, 아무리 억울하고 슬플지라도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여 평온한 상태를 유지할 것을 요구했다. 중국 고전문학 속에는 충효절의(忠孝節義)를 묘사하고 가족 간의 정이나 우정에 대한 아름다운 묘사로 가득하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의 작용이 감정을 발산하고 정화(淨化)하는 데 있다고 했고, 고대 로마의 문학가 호라티우스는 문학의 작용은 교육과 오락이라고 했다. 세계 각국 문학작품은 설사 증오를 쓰더라도 대부분 권선징악(勸善懲惡)의 각도에서 썼다. 때문에 증오를 묘사하고 선동하는 것은 전통문학의 특징과는 서로 화합할 수 없다.


그러나 중공의 이해에 따르면 “일부 계급이 승리하고 일부 계급이 소멸되는 것이 바로 역사이다”, “계급투쟁이 역사 발전의 진정한 원동력이다”, “누가 우리의 적인가? 누가 우리의 벗인가? 이 문제는 혁명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라고 주장했다. 때문에 계급적 증오를 주입하고 선동하는 것은 중공 당 문예(黨文藝)의 가장 중요한 임무로 되었다. 이렇게 하여 증오는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좋은 의미를 지닌 단어가 되었다.


“그 18세 여자 노비의 검고 이글거리는 커다란 두 눈에는 뼈에 사무치는 원한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이는 영화 《홍색낭자군(紅色娘子軍)》 시나리오의 처음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창작된 오페라는 더 극단적으로 증오를 찬송했다. “꿋꿋이 서 있는 그녀의 두 눈에서는 증오의 불꽃이 뿜어 나왔다”, “그녀는 치솟아 오르는 원한으로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마음속에서는 강렬한 계급적 증오가 불타올랐다”, “군사 훈련은 계급적 원한이 넘치는 함성으로 마무리되었다”, “고통이 클수록 원한이 깊다”, “하늘에 사무치는 원한”, “원한을 풀기위해 복수를 결심했다” 등등. 오페라 주인공은 대개 20세가 채 안 된 꽃다운 소녀들이었지만 이처럼 인간성이라곤 전혀 없는 살인 기계로 묘사되었다.


더 두려운 것은, 중국인들은 상당히 오랜동안 정신적으로 극히 궁핍한 시기를 거쳤기에 이런 청춘 남녀들을 쉽게 우상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문화혁명 시기, 중학교 여학생들이 교사를 가죽 벨트로 때려 사망케 할 수 있었던 것도, 광시(廣西)에서 사람들이 “계급의 적”으로 분류된 사람들의 심장과 간을 파먹으면서도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상당 부분 증오를 선전하는 이런 문학을 숭배한 것과 관련이 있다.


(3) 역사상의 폭군, 소인배, 도적떼와 폭도들을 미화


공산당은 자신을 “역사발전의 필연적인 산물”, “중국 인민의 필연적인 선택”이라고 포장하기 위해 역사를 전면적으로 뜯어고칠 수밖에 없었고 역사상의 폭군, 소인배, 도적떼와 폭도들을 “역사전진의 동력”이라고 분칠했다. 그리하여 중공은 중국 역사상 소문난 간신배, 악인들을 공손하게 “신단(神壇)”에 모셨다. 폭군의 대명사 상(商)나라 주왕(紂王), 진시황, 각박하고 인정이 없었던 상앙(商? 역주: 전국시대 정치가로 법을 엄격히 적용해 진나라를 강국으로 만드는 데는 공헌했으나 결국 자신이 만든 법에 의해 희생됨)은 모두 중공이 공덕을 찬양하는 인물이 되었다. 중공은 농민전쟁 두령을 선구자로 떠받들어, 잔인한 살인광 황소(黃巢), 장헌충(張獻忠), 홍수전(洪秀全)도 중공 문학의 전당에서는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다. 여기에서는 작은 예를 하나 들어본다.


명나라 말기, 도적떼들의 우두머리 중 한 사람이었던 장헌충은 살인을 밥 먹듯 했는데, 그는 당시 쓰촨(四川)성에 거주하고 있던 사람들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도륙하다시피 했고 “천부지국(天府之國)”이라 부를 정도로 풍요로웠던 쓰촨성은 인간지옥으로 변했다.


1982년 마오둔(茅盾) 문학상을 수상한 장편 역사소설 《이자성(李自成)》은 제1권 하편 서두에서 전원시와도 같은 우아한 필치로 다음과 같이 썼다. “전란이 끊임없었던 곡성(谷城) 일대는 장헌충의 농민군이 주둔하면서부터 비로소 태평을 되찾기 시작했다.”


물론 중공의 목적은 이들 역사 인물들을 분칠하려는 것이 아니다. 중공의 진정한 목적은 그들을 미화함으로써 그럴듯하게 자신을 미화하려는 것이었다.


(4) 인성(人性) 폄하 당성(黨性) 찬양


중공의 문예 이론 저작들을 읽어보면 한 가지 괴상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는데 바로 “인성(人性)”이란 단어가 부정적인 의미를 지닌 단어로 쓰인다는 점이다. 한 부의 문학 작품이 만약 “인성”을 표현한다면 그것은 실패한 작품, 심지어 반동적인 작품으로 평가받으며, 그렇지 않고 한 문학 작품이 만약 계급성(계급의 적에 대한 증오, 계급의 형제에 대한 우애)을 표현하면 좋은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부자(父子) 혹은 모자(母子) 사이의 정, 남녀 간의 사랑, 우정, 동정심 등 인류의 가장 보편적인 감정을 표현한 문예 작품들은 모두 비판 받았으며, 당성이 인성을 이기는 등 “무산계급 각성”을 표현한 작품들은 찬사를 받았다.


이런 논리에 근거해 탄생한 영웅인물들은 보편적으로 “높고(高)”, “크고(大)”, “완전(全)”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주인공의 이름을 “가오다취안(高大泉)”이라고 지은 문학 작품도 있음. 역주:全과 泉은 중국어 발음이 같다] 그 뜻인즉, 훌륭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고 지혜와 용기를 겸비하고 있으며 세속적이지 않고 당에 충성하며 적에 대해서는 뼈에 사무치는 원한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되는 인물은 비겁하고 흉악하며 교활한 이미지로 부각되었다.


긍정적인 인물은 성(姓)이 “가오(高)”나 “량(梁 역주: 선량하고 좋다는 의미)”이고 반면적인 인물은 성도 “댜오(? 역주: 교활하다는 의미가 있음)”이다.


단편소설을 하나 예로 들겠다. 모 지역에 소금 부족이 매우 심각했는데, 한 젊은 엄마는 지하당에 “당비(黨費)”를 바치기 위해 어린 딸이 손에 쥐고 있던 한 가닥 콩꼬투리(소금에 절인 반찬)마저 빼앗는다. 식량부족으로 비쩍 마른 여자 아이는 반찬을 빼앗기자 서럽게 울음을 터뜨린다. 이 작품은 젊은 엄마를 가정과 자식에 대한 정보다 당을 우선 생각하는 인물로 만들었기에 당 문학에서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 받았다.


중공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여성의 모습은 종종 여성적인 특징이 전혀 없으며 큰 고생을 겪어 마음에는 증오가 넘치고 강철 같은 의지를 지닌 것으로 나타난다. 애정에는 자산계급이라는 딱지가 붙어 중공 문학작품에서는 전혀 나타나지 않거나 “혁명사업”의 “위대함”을 부각시키기 위해 보조적으로 나타나곤 한다. 남(여) 주인공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흔히 적들에게 희생되고 이 때문에 주인공은 슬픔을 이기고 혁명에 뛰어든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주인공이 사랑의 결실을 맺는 것은 혁명문학 작품에서 커다란 금기였다. 왜냐하면 일단 가정을 이루게 되면 자질구레한 일상생활이 “혁명가의 투지를 부식”시키고 중공 역시 “계속혁명”과 “끊임없는 혁명”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공의 어용문인들은 “주제 우선”의 창작 원칙을 신봉하기에 중공이 새로 필요로 하는 것이 있을 때마다 그것을 만족시켜주는 문학작품들이 대량으로 쏟아냈다. 이상은 단지 몇 가지 사소한 예에 불과하다.




▲ [사진=에포크타임스]


3)당(黨)문학을 이용한 중공 주입의 몇 가지 특징


당문화는 중국 문화 위에 달라붙은 일종의 부체(附體) 문화이다. 전통문화, 민간문화의 형식과 요소를 이용하는데 능숙한 중공은 이를 통해 선전 효과를 극대화하는 목적에 도달했다.


(1) 민족문화형식을 전면적으로 도용


인류문화에 대한 중공의 태도는 지금까지 자신의 통치에 유리한 부분이 있다면 모두 가져다가 주저 없이 쓰는 것이다. 문학 방면에서, 고체시(舊體詩詞), 현대시, 각종 민요, 중단편소설, 장편소설, 장회(章回)소설, 산문, 화극(話劇 역주: 대화와 동작으로 이루어진 연극), 전통 희극 등은 모두 당문화의 내용을 싣는 매개체로 되었다. 중공은 그것을 “낡은 병에 새 술 담기”, “민족 형식에 사회주의 내용을 가미한 것”으로 미화했다.


이렇게 하는 데는 당연히 이유가 있다. 미(美)에 대한 사람들의 가치 판단은 어느 정도 안정성이 있는 것으로, 장기간 형성된 습관은 쉽사리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새롭게 시작하여 “새 병에 새 술을 담는 것”보다 사람들이 가진 미에 대한 고유의 가치 판단 습관을 이용해 당문화를 슬쩍 끼워 넣는 것이 오히려 더 좋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민족적인 형식에 당문화의 내용을 담은 결과, 사람들에게 신선하고 신기한 느낌을 주면서도 중공을 선전하는 최대의 효과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시, 민요, 소설, 화극(話劇) 등을 감상하는 과정에 자신도 모르게 당문화의 포로가 되고 만다.


(2) 문학적 기교 활용


비록 “당”은 문화(文化)의 반대어에 가깝고 “무력화”, “저속과 야만화”, “반(反) 문화”와 동의어나 마찬가지지만 “당”은 또 문화를 활용하는데 아주 능숙해 문화를 이용해 문화에 반대했다.


중공의 어용 문인들은 당문학의 선전효과를 높이기 위해 그야말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백묘(白描 역주: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 수사를 가하지 않은 묘사), 대조(?托 역주: 어떤 것을 두드러지게 하기 위해 다른 것과 비교하는 것), 반전, 긴장감 조성, 공감대 형성, 기복, 심리묘사, 전형적인 성격, 개성적인 언어 등 동서양 고전문학 중의 성공적인 테크닉을 거의 전부 가져다 이용했다.


중공은 문예에서 “보급”을 중시했다. 그들의 손에서 나온 문학작품은 수준이 높지는 않았지만 주로 문화수준이 높지 않은 노동자, 농민 대중들을 상대했기 때문에 당문화를 주입하는 목적에 성공적으로 도달할 수 있었다.


(3) 금서(禁書)를 이용해 문화에 대한 갈증 강폭


배고픈 사람은 무엇을 줘도 모두 맛있다고 느낀다. 중공은 어용 문인들의 손에서 나온 이른바 문학작품이라는 것들이 수준 높은 세계 문학작품들과는 전혀 비교할 바가 못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질투심이 강한 여자가 백설공주를 죽이려 했던 것처럼 중공도 정권을 탈취한 뒤, 계획적으로 좋은 서적들을 불태워 없애거나 읽지 못하도록 금지했다.


문화혁명 시기에는, 무릇 미(美)와 관련된 것이기만 하면 모두 “자산계급”의 딱지가 붙었기 때문에 문화에 대한 중국인들의 갈증은 극에 달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독주(毒酒)라도 마시려 했으며 당문화는 바로 이 틈을 타고 들어갔다.


(4) 반복을 통한 중독


술은 사람의 생명을 유지함에 필수품이 아니다. 때문에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들은 술맛이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왜 어떤 사람은 술을 그토록 좋아해 술이 없으면 살지 못하는가? 그것은 바로 중독 때문이다. 장기간 한 가지 문화 속에 잠겨있다 보면 사람들은 일종 기대심리를 갖게 되고 어느 한 문예작품이 이런 기대를 만족시켜 주면 마치 가려운 곳을 긁어준 것처럼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도 대부분의 경우 중독에 대한 만족감이다. 이 점을 안다면 미적 감각(美感)이란 것이 어떤 때는 비이성적이고 인위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으며 사람들의 미에 관한 가치판단 역시 조종될 수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중공 역시 이 점을 이용했다. “당”의 교조(敎條)는 자신들이 만든 구호나 노래, 그림, 비유, 이미지를 잘 포장한 후 각종 방식을 이용해 끊임없이 반복하고 강화하여 중국인들에게 일종 변이된 “미적 감각”을 억지로 만들어 주었다. “산적 두목의 시”라고 불리는 “마오쩌둥의 시”, 거칠고 천박한 “마오쩌둥 문체”, 제멋대로 갈겨 쓴 “마오쩌둥 서법(書法)”은 반복적으로 모방되고 숭배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들이 20세기 중국 예술의 최고봉이라고 했다. 오늘날 소위 “홍색 경전(紅色經典)”은 아직도 중국에서 크게 유행하고 있으며 이는 중공이 장기간 고심하여 육성한 사악한 당 문예에 대한 민중들의 심리적 의존이 아직 다 없어지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 [사진=에포크타임스]


4) “보이는 흑수(黑手)”에서 “보이지 않는 흑수”에 이르기까지


중공 당문학(黨文學)을 투시해 보면 또 한 가지 해결할 문제가 있다. 중공이 정권을 잡은 후의 당문학은 문화혁명을 경계로 해서 두 단계로 나눌 수 있다. 1단계는 1949년부터 문화혁명까지이며 2단계는 문화혁명이 끝난 후부터 현재까지다. 1단계는 “당”이 태엽을 조이고 죽자사자 문화의 명줄을 끊어놓았고 문예를 전횡하는 정치를 했으며 올가미를 단단히 조여 갈수록 범위가 좁아지는 일종 “수렴”의 과정이었다. 하지만 문화혁명이 끝난 후에는 “문학은 계급투쟁에 복무해야 한다”는 구호가 방치되었고 “금지구역을 돌파”하고 “사상을 해방”시켰으며 작가들의 창작조건에 대한 속박도 갈수록 느슨해져 마치 풀어주는 과정처럼 보인다. 현재 중국 문단은 미녀작가, “깡패문학(?子文學)”, “하반신 작가” 등 정말이지 “해방”된 것처럼 보인다. 그럼 이런 상황 하에서 중공이 문학을 조종하고 이용한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인구학에서는 일반적으로 25년을 한 세대로 본다. 1949년부터 1978년(중공 제11차 3중 전회)까지 29년이다. 1920년대 이전에 출생한 사람은 1949년 중공이 정권을 잡기 전에 이미 30이 넘어 세계관이 이미 형성된 상태였고 1978년에는 이미 60이 넘어 퇴직 연령이 지났다. 그때 각 분야에서 활약했던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중공의 독즙(毒汁)을 먹고 자랐다. 바꿔 말하자면 1970년대 말에 이르러 당문화는 이미 기본적으로 확립되었다. 이에 중공은 책략을 바꿔 일부 영역에서 제한적이나마 뒤로 물러났다. 종전의 “보이는 흑수”에서 배후에서 “보이지 않는 흑수”로 변해 전체적으로 민중들에 대한 당문화를 “거시적으로 조정”하고 있다(물론 필요할 경우에는 “흑수”가 언제든 손을 뻗친다).


당문화가 확립된 증거는 “당”의 직접적인 지도를 기다리지 않고도 “사상 해방”을 겪고 “풀려난” 문학이 여전히 중공의 정치적인 필요와 완전 부합한다는 점이다. 문화혁명 이후의 유명한 상처문학과 반성문학도 문화혁명에 대한 해석은 중공의 정책과 궤를 같이 한다. 잘못을 범한 것은 린뱌오(林彪)와 사인방, “극좌사조”이고 “당”은 여전히 위대하고 광명하며 정확하며 용감하게 잘못을 시인했을 뿐만 아니라 잘못을 개선했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의 뿌리를 캐보면 “당”이 진화론을 이용해 사람들에게 “당의 잘못”은 “봉건 유독(流毒)의 찌꺼기가 일어난 것”이라고 유도한 것이다. “의식의 흐름”에서 유동적으로 흘러가는 것을 흩뜨린 후 재편하여 “당에게 마음을 털어놓고” 과거의 고통을 회상하며 오늘의 행복을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소시민들의 고달픈 생활이지만 이는 “당”을 대신해 사람들에게 “인생이란 원래 번뇌이며 운명이란 알 수 없는 것”임을 알려 더는 “당”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허물을 말하지 말라는 것이다. 즉, 모두 사는 것이 쉽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이 확실히 쉽지 않으며”, “살아있기만 해도 좋고”, “쉽게 오지 않을 이런 좋은 시절을 소중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소와 풍자를 위주로 하는 문학작품은 사실상 다른 일종의 쓰레기 언어로 당의 쓰레기 언어에 반대하는 것으로 만약 “당”과 함께하지 않으면 세상에 불만을 품은 채 냉소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암시한다. 각종 음란물로 중국의 성윤리를 통제할 수 없게 만든 색정(色情)문학은 “당천하(黨天下)”에 사는 사람들에게 언론이 자유롭다는 가상을 준다.


오늘날 중국의 문화 환경은 극단적으로 복잡한 면모를 보인다. 때문에 오직 중공의 진면목을 진정 똑똑히 구별할 수 있어야만 복잡다단한 각종 가상에 미혹되지 않을 수 있다. 중공은 자신의 생존을 수호하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짓이라도 할 수 있으며 여기에는 최저한계선이 없다. 중공은 “무릇 적이 옹호하는 것은 우리가 반대하고 적이 반대하는 것이면 우리가 옹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중공은 적이 반대하는 것도 반대할 수 있고 적이 옹호하는 것도 옹호할 수 있다. 적이 중공의 생존을 반대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중공은 호언장담, 거칠고 악랄한 말을 할 수 있고 온화하고 부드러운 말이나 달콤한 말도 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주선율을 연주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다양화할 수 있고, 한편으로는 “4개를 견지[역주: 4개를 견지한다는 것은 중공의 4가지 기본원칙으로 1)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마오쩌둥 사상 견지, 2) 사회주의의 길 견지, 3) 무산계급독재(나중에 인민민주주의 독재로 변경) 견지, 4) 중국공산당의 지도 견지를 말한다.]”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백화제방 백가쟁명”을 주장할 수 있다. “모든 것은 시간, 장소, 조건에 따라 변화할 수 있다.”(레닌) 권력의 정상에 오른 후 그것은 “승자는 비난받지 않는다.”(스탈린)라고 말했다. 불안에 떨며 구차한 목숨을 부지할 때도 “강대한 적을 마주하고 적수가 되지 않음을 알면서도 의연히 검을 뽑아들며 설사 쓰러지더라도 산이 되고 고개가 되겠다.”라고 하면서 자신이 마치 숭고한 동기를 지닌 비극의 영웅인 양 가장했다.


“나는 반드시 역사에 대해 책임질 것이다.…. 나는 상대가 나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적이 이미 보검을 뽑았는데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나는 시험 삼아 운기(運氣)하고자 하며 곧 나의 그 시대는 끝날 것이다. 아무래도 내가 마침표를 찍어야 하지 않을까?”(《양검(亮劍)》)


“생존이란 무엇인가? 생존이란 바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남는 것이다. 당신이 아무리 비루하거나 뻔뻔하거나, 비열하더라도.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좋다.…. 풀을 먹는다고 인자하지 않은 것이 아니며 고기를 먹는다고 꼭 잔인한 것은 아니다. 나는 한 마리 늑대이며 반드시 늑대가 될 것이다. 나는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늑대이며 선혈과 죽음은 내 생명의 원천이다.”(《늑대(狼)》)


어느 시대의 문학이든 직접적이든 아니면 간접적인 방식으로든 그 시대를 반영한다. 위에 인용한 중국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통해 우리는 당문화가 단지 역사의 무대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다양한 종류의 작품 속에 확산되어 이전보다 더욱 구별하기 어렵고 저지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수십 년 동안 중공 악당이 통제하는 문인들의 주입을 거친 후 중국인들은 중공의 가치관들을 받아들였고 증오를 숭고하게 여겼으며 살인방화가 정의로 변했고 폭군, 소인배, 도적떼와 폭도가 숭배 대상이 되었다. 잔인한 당성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서로 관심을 갖고 사랑하는 선량한 본성을 대체했고 하늘을 공경하고 신을 믿는 것이 우매한 미신으로 변했다. 선악의 표준이 거꾸로 뒤집혔고 문학은 정서를 도야하는 기능을 상실하고 중공이 제멋대로 자신의 죄를 미화하고 죄악을 덮어 감추는 보호막으로 변질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말한다면 사악한 당의 문인들은 분명 중공 살인의 공범이자 방조범이다. (계속) / 에포크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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