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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 당(黨)문화] 제2장 체계적인 사상 개조(2)

편집부  |  2021-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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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SOH 자료실]


 목차


 2. 전통관념 비판


 1) 하늘에 대한 경외 비판

 2) 운명과 선악보응 비판

 3) 유순함과 인내, 양보 비판

 4) 전통사회질서 비판

 5) 도덕을 가늠하는 주요 근거를 재산으로 삼다

 6) 저속한 당문화 선양


 **********


2. 전통관념 비판


“하늘의 운행은 강건하니 군자는 이를 보고서 자강불식한다(天行健,君子以 自强不息.)”, “땅의 세력이 곤이니 군자는 이를 보고서 덕을 두터이 하고 만물을 싣는다(地?坤,君子以厚德?物.)”『역경(易經)』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두 괘(卦)는 천지(天地)에 대한 중국인의 태도를 잘 드러낸다. 군자는 하늘의 도(天道)에 순응하여 행해야만 자강불식(自强不息)할 수 있으며 유순하고 심후(深厚)한 도덕으로 만물을 실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을 대함에 성실하고 신의가 있고 화목해야 하며 이를 확장하여 자기 집 어른에 대한 존경과 아이에 대한 애호를 모든 노인과 아이에게 넓혀야 한다. 이를 소위 “신뢰를 중시하고 화목을 도모함(講信修睦)”이며 “내 노인을 노인으로 섬겨 남의 노인에게까지 미치며, 내 아이를 사랑하여 남의 아이에까지 미친다(老吾老以及人之老,幼吾幼以及人之幼. 『맹자 양혜왕장구상』)”는 것이다.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가 이미 정해졌으니 전통 관념의 근본도 정해진다.


중국인은 하늘을 공경하고 땅을 공경하며 신을 공경하고 조상을 공경하는데 이로부터 일상 생활 중에서 처세의 도가 형성되어 대대로 전해져 왔다.


하지만 공산당은 “전통적인 관념과 가장 철저히 결별해야 한다.”(『공산당선언』) 전통 관념에 대한 그것의 비판은 중국인의 생활 속에서 전통문화와 신앙을 철저히 제거하는데 필수적인 절차였다.


중공은 정권을 세운 초기부터 「사회발전사」교육을 통해 체계적으로 전 인민을 세뇌했다. 또한 중국이 근 백년 간 열강의 침략을 받은 원인이 전통 문화가 “낙후”되고, “우매”하기 때문이라고 결론 내렸는가 하면, 전통 사회를 “부패하고 몰락한” 낡은 사회로 묘사했다. 또한 전통 관념 중의 신앙부분을 “우매와 미신”으로 표시했는가 하면, 그 중의 도덕 부분을 “사람을 잡아먹는 예교(禮敎)”라고 표시했다.


이리하여 중국 인민의 민족적 자존심과 자강(自强)의 염원을 이용해 중공은 전 사회적으로 이른바 “봉건 미신”을 타파하는 운동을 일으켰고 이른바 “낡은 풍속과 습관을 고치자(移風易俗)”는 구호를 내걸고 전통 신앙과 관련된 일체의 민간 활동을 가로막았다. 동시에 중공은 또 전통 관념을 “봉건 통치자”를 대신하여 인민을 마취시키는 정치 도구로써 “그들로 하여금 착취 받는 생활에 만족하게 했다”고 비판했고, 전통적인 사회질서를 백성을 압박하는 “봉건 종족제도”라고 비판했는데 이는 “봉건 전제(專制) 제도”와 상응하는 것이다. 그리고 전통 문화를 뿌리 뽑는 운동을 정치의 높이로 끌어 올렸는데 이리 하여 대규모 군중운동을 통해 민간에서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전통 관념의 언어와 행위를 “감독”, “검거”, “적발”할 수 있게 되어 철저히 뿌리 뽑는 목적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럼 여기에서 중공에게 비판받은 전통 관념의 예를 몇 개 들어 보자.


1) 하늘에 대한 경외(敬畏) 비판


중국인은 줄곧 하늘에 대한 경외를 유지해 왔다. 설사 명확한 신앙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하느님(老天爺)”을 믿는다. 중국인의 전통 관념 중에서 하늘은 비록 형상은 없지만 모르는 것이 없고 존재하지 않는 곳이 없다.


왕조의 말기나 혹은 보편적으로 사회도덕이 타락했을 때, 하늘은 곧 재난을 내려 보내는데 그 전에 경고가 있을 수 있다. 이른바 “하늘이 상을 드리우니 길흉이 나타나고 성인이 이를 본받는다(天垂象,見吉凶,聖人則之.)”라는 것이다. 제왕이 등극한 후에는 제천(祭天)의 예를 올린다. 매년 정월 보름과 동지에는 황제가 천단(天壇)에 가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데 이는 모두 하늘에 대한 존경을 체현한 것이다.


정치생활 중에서 ‘하늘’은 나라를 다스리는 법칙을 명시한다. 공자는 “덕으로 정치를 하는 것은 마치 북극성이 제자리에 머물러 있지만 뭇별들이 그를 향하는 것과 같다.(為政以德,譬如北辰,居其所而眾星拱之. 『논어―위정(爲政)』) 일상생활 중에서 “밀실에서 속삭이는 말도 하늘은 우레처럼 듣는다(密室私語,天聞如雷.)”라고 했다. 병법(兵法), 건축, 악기 등도 모두 하늘의 규칙을 체현하는데 설사 반란을 할지라도 ‘하늘을 대신해 도를 행한다(替天行道)’는 기치를 내걸었다.


‘하늘’에 대해, 전통 관념 중에서는 지금까지 줄곧 경외해 왔지만 오직 공산당만이 ‘하늘’과 투쟁했다.


하늘에 대한 경외는 사람의 도덕을 수호했고 ‘사람의 운명은 하늘에 달렸다(人命關天)’는 생명에 대해 소중히 여기는 관점을 수호했으며 ‘천인합일(天人合一)’의 관념은 효과적으로 자연을 보호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모두 공산당이 사람을 죽이고 환경을 훼손하는 데에 장애가 되었다. 중공이 필요로 한 것은 도리어 살인에 의지해 사람들로 하여금 공포 속에서 그것에 복종하게 하는 것이었다. 중공은 또 ‘하늘과 투쟁하고 땅과 투쟁하는’ 호언장담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을 숭배하고 자연을 파괴할 결심을 유발할 필요가 있었다.

마오쩌둥은 “나는 중이 우산을 쓴 것처럼 법도 없고 하늘도 없다(我是和尚打傘,無法無天 역주: 원래 의미는 대머리인 중이 우산을 쓰면 머리카락도 없고 하늘도 없다는 뜻인데, 머리카락을 의미하는 ‘髮’과 ‘法’의 발음이 유사해 방자하여 거리낌 없고, 제멋대로 나쁜 짓을 하며 법도 하늘도 없음을 비유한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본래 “법도 없고 하늘도 없다(無法無天)”는 말은 폄하하는 뜻이 있었지만 용감하다는 뜻으로 변했으며 아울러 사람들을 선동하여 ‘법도 없고 하늘도 없는’ 정치투쟁과 환경파괴에 참여하게 했다.


2) 운명과 선악보응 비판


중국인들은 ‘하늘’에 대한 경외에서 ‘천명(天命)’관과 ‘선악에는 보응이 있다(善惡有報)’는 것을 파생시켰다.


‘운명으로 여긴다(認命)’는 말은 중국에서 자주 쓰이는 말인데 중공은 이를 곤경에 처해 소극적으로 어찌할 방법이 없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사실상 ‘운명으로 여긴다’는 말의 진정한 뜻은 ‘사람의 일을 다 한 후에 하늘의 명을 듣는다(盡人事而聽天命)’ 혹은 ‘일을 꾀하는 것은 사람에게 달렸지만 성사는 하늘에 달렸다(謀事在人,成事在天)’는 뜻이다. 공자는 “생과 사는 명에 달려 있고 부귀는 하늘에 달려 있다(死生有命,富貴在天. 『논어―안연(顔淵)』)”라고 제출했지만, 여전히 54세 때 노나라 대사구(大司寇) 벼슬을 사직하고 14년 동안 각국을 다니며 왕도(王道)를 펼쳤다. 그는 할 수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했던 것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이 말에는 소극적으로 세상을 도피한다는 의미가 없다.


개인 생활 속에서 ‘운명으로 여기’는 사상은 결코 개인적인 분투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며 단지 인생 중에서 불가항력에 대한 해석일 뿐이다. 더 나아가 말한다면 전통 관념에서는, 사람의 운명은 전반생 더 나아가 몇 세대 전에 선을 행하거나 악을 행하여 감당한 선보(善報) 혹은 악보(惡報)에 달려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운명’은 또한 늘 ‘선악유보(善惡有報)’, ‘복보(福報)’, ‘악보(惡報)’와 연계되어 있다.


『역경(易經)』에서 이르기를 “선을 쌓은 집은 반드시 경사가 있고, 불선(不善)을 쌓은 집에는 반드시 재앙이 있다.(積善之家,必有餘慶;積不善之家,必有餘殃. 『역경―문언전』)”고 했다. 이런 관념은 사람들에게 애써 선을 행하게 하며 자신의 이후 생활이나 더 나아가 후대자손을 위해 공덕을 쌓게 한다. ‘선악유보(善惡有報)’는 또한 ‘머리 석 자 위에 신령이 있다(三尺頭上有神靈.)’, ‘인간의 사사로운 말도 하늘이 듣는 것은 우레와 같고 어두운 방 속에서 마음을 속일지라도 신의 눈에는 번개와 같다(人間私語,天聞如雷;暗室虧心,神目如電.)’ 등의 관념을 기초로 한다.


운명과 보응을 믿으면 사람들로 하여금 애써 선행을 하도록 하고 욕망을 담담하게 보게 하며 하늘에 순응하여 행하게 할 수 있어 일시적인 즐거움을 위해 후과를 따지지 않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더욱이 사람들에게 드러나지 않는 가운데에도 천의가 있으며 “사람의 한 생각도 천지는 반드시 알며 선악에 보응이 없다면 건곤에 반드시 사심이 있을 것이다(人心生一念,天地必相知,善惡若無報,乾坤必有私.)” 를 믿게 한다.


왕조(王朝)가 바뀌는 것에 대해 말한다면 중국에 문자가 존재한 이래, 후대의 역사적인 큰 사건에 대한 예언을 끊임없이 남겼는데 그 정확도는 사람을 놀라게 한다. 이런 ‘하늘을 받들고 운을 따르는(奉天承運)’ 천명관(天命觀) 역시 제왕이 집권하는 합법성의 근원이다.


중공은 ‘운명’과 ‘보응’을 ‘봉건 미신’이라고 비판했으며 아울러 이런 것을 소재로 하는 연극은 선전하지 못하게 했다. 그 근거는 실증할 수 없는 ‘진화론’과 ‘역사 유물주의’라는 가설이다. 중공은 만약 어떤 사람이 보응을 두려워한다면 절대로 줄곧 중공을 추종하여 악행을 저지르지는 않을 것임을 분명히 알고 있다.


3) 유순함과 인내, 양보 비판


“유순하며 이롭고 바르게 함이 군자가 할 바이다(柔順利貞,君子攸行.)” 『역경』에서는 「곤(坤)」괘로 대지를 묘사했다. 대지는 ‘유순’한 덕(德)이 있다. 이런 유순함은 결코 원칙 없이 외압을 참는 것이 아니라 천도(天道)에 순응해 행하는 것이다.


‘유순함(柔順)’ 속에는 ‘인내와 양보(忍讓)’의 덕(德)이 포함되어 있다. “잠시만 참으면 모든 일이 무사태평하고 한 걸음만 물러서면 가없는 세상이다(忍一時風平浪靜,退一步海闊天空.)” 한신(韓信)이 모욕을 받고도 사타구니 밑을 지나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 지 2천 년이 넘는데 이 모두는 중국인들의 ‘인(忍)’에 대해 추앙을 반영한다.


중공은 이와 반대로 투쟁을 고취시킨다. ‘공산당의 철학은 바로 투쟁의 철학이다.’, ‘남이 나를 건드리면 나도 반드시 남을 건드린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협상이나 대화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폭력과 탄압에 의지하며 아울러 보복하는 것을 용감한 것으로 묘사한다.


소동파(蘇東坡)는 일찍이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모욕을 받은 후에 즉각 검을 빼들고 일어나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것은 필부(匹夫)의 일이라, 전혀 용감하다고 할 바가 못 된다. 진정으로 용감한 사람은 갑작스런 침범에 직면했을 때 늘 진정하고 놀라지 않는 것이다. 설사 무고하게 모욕을 당하더라도 역시 자신의 분노를 통제할 수 있다. 이는 그의 흉금이 넓고 크며 수양이 깊으며 뜻이 고상하기 때문이다.”


‘인(忍)’은 전통문화 속에서 긍지, 관용, 다른 사람의 허물을 탓하지 않는 것으로 결코 나약하거나 무원칙하게 양보하는 것이 아니다.


중공이 주장하는 ‘남이 나를 건드리면 나도 반드시 남을 건드린다’는 것은 사실 흉금이 좁고 사소한 원한이라도 반드시 갚는다는 표현이다. 이는 ‘투쟁’ 정신에 매우 부합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사회적으로 사람들에게 원한을 서로 갚게 하고 사람마다 서로 적으로 대하게 하는데 이 역시 오늘날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긴장하게 된 중요한 원인 중 하나이다.


중국인들은 건(乾)을 강(强)으로 여기고 곤(坤)을 유(柔)로 여겼으며 강(强)과 유(柔)가 서로 조화를 이루면 만사가 형통한다고 보았다. 전통 관념 중에서는 ‘조화(和)’를 몹시 중시했다. 황궁에 있는 세 곳 큰 전각의 이름이 「태화전(太和殿)」, 「중화전(中和殿)」, 「보화전(保和殿)」인 것만 보아도 화해와 화목을 높이 평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공 대변인은 지금도 ‘대화’, ‘협상’, ‘협력(合作)’ 등을 입에 달고 있지만 이런 거짓말은 탄압의 다른 한 측면이다. 최근에 있었던 산웨이(汕尾) 사건, 한위안(漢源) 사건, 산베이(陝北) 유전사건과 상방(上訪) 인사, 토지를 몰수당한 농민, 강제 이주민, 실업 노동자에 대한 잔혹한 탄압은 사실 투쟁정신의 연속이며 도살을 이용해 ‘사이비 화해사회’를 만든 것이다. 다른 한편 투쟁은 이미 중공이 존재할 수 있는 주요한 기둥이 되었기 때문에 일단 대화와 화해를 찾게 되면 중공은 스스로 해체될 것이다.


4)전통사회질서 비판


중국인들은 천존지비(天尊地卑)의 자연 상태로부터 『역경(易經)』 중의 ‘건곤(乾坤)’과 ‘음양(陰陽)’의 대응을 일련의 가정과 사회윤리로 확장했고 다시 이 윤리 중에서 사회질서를 파생시켰다.


‘존비(尊卑)’는 중국 전통관념 중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정통문화에 따르면 ‘비(卑)’는 꼭 나쁜 일이 아니다. 도가에서는 줄곧 물의 미덕(美德)을 추앙해 왔다. 왜냐하면 물은 늘 ‘아래에 처하기(下處)’ 때문이다. ‘아래에 처’하는 쪽은 사랑받고 보호받는 일방이며 위에 처하는 쪽은 감당하는 일방이다. 남자는 굳세고(强) 여자는 약(弱)하며, 남자는 강(剛)하고 여자는 부드럽다(柔). 그러나 강하고 굳센(剛強) 것이 꼭 좋은 일은 아니다. 도가에서는 ‘군대가 강하면 멸망하고(兵強則滅)’, ‘나무가 강하면 부러지며(木強則折)’, ‘부드럽고 연약한 것이 굳세고 강한 것을 이긴다(柔弱勝剛強)’는 말이 있다.


중공은 줄곧 질서를 어지럽혀왔고 사람마다 평등한 사회를 만들겠다고 속여 왔지만 사회에는 중공이 의미하는 평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생활 중에서 한 국가, 기업, 사회단체, 가정에는 늘 책임을 맡아 일부 일을 협조하는 사람이 있고 계획을 제출하는 사람, 구체적으로 집행하는 사람이 있다. 이는 일종 정상적인 사회 상태이며 또한 각 사람의 지력(智力), 체력 등 종합적인 요소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나 중공은 이를 극단적으로 만들어 계급압박과 계급투쟁으로 묘사했다. 때문에 중공은 일체 존비(尊卑)와 질서를 혼란하게 했다. 이는 사실 해낼 수 없는 것으로 이런 종류의 소위 ‘해방’이란 사실 ‘혼란’을 만든 것이다.


예를 들어 말하자면,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재난, 돌림병, 굶주림, 전쟁 시기에 부녀자와 아동을 우선적으로 보호할 대상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것이 마치 부녀자도 남자와 마찬가지 대우를 받아야 하는 것이라면 이는 완전히 틀린 것이다. 예전에 타이타닉 호가 침몰할 때 부녀자와 아동을 가장 우선적으로 구명보트에 태웠다. 설사 그녀들의 남편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한 남자로서 책임을 감당하고 배와 함께 침몰할지라도 말이다. 이 결정에 대해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으며 이는 우리의 내심 깊은 곳에 남녀 간의 절대적인 평등이란 없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다.


사회생활 중으로 확장한다면 한 기업 혹은 국가에는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이 필요하며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은 집행할 사람이 필요하다. 군대라면 사령관이 있고 아래에 각급 장교와 사병들이 명령을 집행할 책임을 진다. 만약 사회 직능을 말하더라도 확실히 ‘존비(尊卑)’의 문제가 존재하지만 ‘존비’가 반드시 착취와 압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 역시 상하간의 ‘인(仁)’과 ‘충(忠)’의 미덕으로 유지될 필요가 있다.


가정에서 부자자효(父慈子孝), 형우제공(兄友弟恭)을 확장하면 전통 윤리는 자연스럽게 조화롭고 질서 있는 가정과 사회를 감당할 수 있다.


그러나 ‘평등’은 근본적으로 말해 불법(佛法) 중의 ‘중생평등(眾生平等)’이나 도가의 ‘천도무친(天道無親)’, 유가의 ‘유교무류(有教無類)’, 서양의 ‘신 앞에서 만인이 평등’한 것이요 기회의 평등이지 결코 결과의 평등이 아니다.


중공은 ‘평등’을 왜곡되게 선전하여 사회적으로 극도의 무질서와 혼란을 초래했고 ‘남녀평등’을 왜곡되게 해석하여 사실상 부녀자를 박해했으며 그녀들로 하여금 강제로 여자들이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거나 감당하기 힘든 일을 하도록 강요했다. 예를 들면, 중공이 1976년 4월에 출판한 『낡은 전통 관념과 철저히 결별하자(同舊傳統觀念徹底決裂)』는 책에서 젊은 여성 15명의 문장을 실었다. 그녀들이 종사한 일은 본래 남자들이 해야 할 석탄 운반공, 도살공, 하역공 등이며 ‘돼지 잡는 도살 칼을 단단히 움켜쥐고 반공을 떠받쳤다’며 찬송하는 대상이 되었다.


중공 치하의 사회는 동시에 또 극도로 불평등한 사회이다. 중공이 모든 자원을 독점했기 때문에 비록 그것이 인민의 공복이라고 호칭하긴 하지만 사실상 인민들은 모두 노예가 되었고 정치적인 권리와 경제적인 권리를 막론하고 관(官)과 민(民)은 전혀 평등을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5)재산을 도덕을 가늠하는 중요한 근거로 삼아


중국 정사(正史)의 첫 장을 장식하는 『오제본기(五帝本紀)』에는 오제의 덕행(德行)과 이런 덕행에 대한 백성들의 인정과 존경이 기재되어 있다. 이런 덕행은 인심(人心)에 깊이 파고 들어가 수천 년을 전해왔다. 아울러 한인지역에 소수민족 지역과 다른 나라에까지 전해졌다.


중국인의 관념 중에서 도덕과 학식은 사람들이 성망(聲望)과 지위를 얻는 근원이다. 공자는 “대도(大道)가 행해진 세상에는 천하가 만인(萬人)의 것이었으며, 어질고 유능한 사람을 골라 관직에 나아가게 하였으며, 서로 신뢰를 다지고 화목함을 누렸다(大道之行也,天下為公,選賢與能,講信修睦. 『예기(禮記)―예운(禮運)』)”라고 말했다. 즉 한 사람의 인품이 관리로 선발되는 중요한 지표였다.


한대(漢代)에 실행한 인재추천제도인 찰거제(察舉制)의 천거표준은 다음과 같았다. “덕행이 높으며 지조와 절개가 깨끗하고 학문에 능통하고 경전에 박식하며 법령에 통달해 의혹을 풀 수 있어야 하며…(德行高妙,志節清白;學通行修,經中博士;明達法令,足以決疑…….)” 이외에 또 구비해야 할 것이 ‘질박(質樸), 돈후(敦厚),겸손, 절약’의 미덕이었다. 위진(魏晉)시대에 이르러 관부에서 구품중정제(九品中正制)를 실행할 때도 도덕은 관리를 선발하는 데에 중요한 요소였다. 수당(隋唐)에 이르러 과거로 선발할 때에도 유가도덕에 대한 이해정도는 응시자들이 좋은 문장을 쓸 수 있는가 여부와 마찬가지로 과거급제의 선결조건이었다.


그러나 중공이 정권을 세우자 덕망이 높은 향신(鄉紳), 행회(行會)의 지도자와 지식인들이 탄압과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또한 한 개인의 출신성분이 사회자원을 획득하는 가장 중요한 고려사항이 되었다. 사람의 도덕이란 본래 그 개인의 사상행위에서 결정되지만 중공에 이르러서는 도덕이 한 계급의 집단적인 지표가 되었다. “누가 곤궁하면 누가 영광이고 누가 치부했으면 누가 좋지 않다.”라고 하여 가난하고 궁핍한 것이 자연히 정확함과 정의를 대표했고 피압박자를 대표했으며 ‘반란에도 도리가 있음’을 대표했고 ‘혁명’을 가장 단호하고 가장 철저히 함을 대표했다.


한 개인의 빈궁(貧窮)과 부귀는 본래 고정된 것이 아니다. 어쩌면 근면히 일하고 기회를 잡아 부자가 되었을 수도 있고 또는 제멋대로 돈을 낭비해 집안이 망했을 수도 있다. 또 어떤 사람은 본래 전답이 많이 있었음에도 몇 년 후 걸식으로 살아갈 수도 있다. 그러나 중공은 정권을 탈취한 그 순간 단칼에 계급을 구분해버렸다.


부귀한 사람에 대한 증오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중국인들로 하여금 빈궁으로 다른 사람의 자본을 오만하게 바라보게 했다. 다른 한편 중공이 어떤 사람을 타도할 때면 단지 이 사람이 지주나 혹은 자본가라고만 하면 되며 나머지 말은 많이 할 필요가 없다. 부귀는 ‘착취’를 대표하며 ‘탄압’을 대표하고 ‘죄악’을 대표했다.


수십 년 후 공산당은 자신이 스스로 세상을 뒤집어 여러 사람들에게 부자가 되라고 외치고 있다. 오늘날 사람들은 더는 부귀를 죄악시하지 않으며 도리어 빈궁을 수치로 여긴다. 이때에 한 사람의 좋고 나쁨, 성공 여부는 도덕에서 벗어나 사람의 부유한 정도로 판단한다. 누가 돈이 많으면 그가 바로 능력이 있는 것이며 그 돈을 훔쳐왔거나, 빼앗아 왔거나, 부정부패로 뇌물을 받았거나, 몸을 팔았거나 혹은 영혼을 팔았든지 상관이 없다. ‘가난은 비웃어도 창녀는 비웃지 않는다(笑貧不笑娼)’는 결과는 여러 사람들로 하여금 더욱 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재산을 모으고, 그런 후 미색에 빠진 가운데 기득권자의 신분으로 중공의 통치를 인정하게 한다.


6) 비판받은 기타 관념


중공의 비판은 늘 이성적인 비판이 아니며 사상비판에서 인신공격으로 변질된다. 그런 후에 “무릇 적들이 반대하는 것이면 우리가 옹호하고 적들이 옹호하는 것은 우리가 반대한다.”는 억지와 삿된 말로 비판받는 사람의 사상을 단번에 매도해버린다. 비판받는 사상을 가진 사람에 대한 인신공격을 말하자면 역시 아주 간단한데, ‘노예주계급’, ‘지주계급’, ‘자본가계급’, ‘수정주의’ 등의 모자를 씌우면 그만이다.


중공은 공자를 비방하는 것을 통해 유가의 ‘중용(中庸)’사상,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극기복례(克己復禮)’, ‘온량공검양(溫良恭儉讓)’ 등을 부정했다. 수많은 사람들은 이런 글자들을 보고도 생각하는 것이란 원래의 내포가 아니며 높은 톤의 방송, 천지를 뒤덮는 큰 누명, 대자보 또는 비판받은 사람의 비참한 말로이다. 이를 통해 두려움이 생겨나 자각적으로 이런 사상들과 ‘명확히 경계선을 긋는다.’


유가는 ‘인(仁)’을 주장하는데 바로 다른 사람을 배려하며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지 않는다(己所不欲,勿施於人.)” 그러나 중공은 ‘인(仁)’에 대한 비판을 통해 “자신이 하기 싫으면 남에게 강요하라(己所不欲、要施於人.)”는 것으로 변질시켜버렸다.


중국인들은 ‘중용’을 숭상한다. ‘중용’은 중공이 해석하는 것과 같이 ‘두루뭉술함’, 교활함, 양다리 걸치기가 결코 아니다. 그 본래 의미는 바로 ‘늘 중도를 지킨다(常守中道)’는 것으로 천명을 존중하고 따라서 ‘잠시도 떨어지지 않는 것’을 말한다. 그 중에는 학습박식 “널리 배우며, 자세히 물으며, 신중하게 생각하고, 분명하게 판단하며, 독실히 행함(博學之, 審問之, 慎思之, 明辨之, 篤行之.)”과 “군신(君臣), 부자(父子), 부부, 형제, 친구”간의 관계를 잘 처리하여 ‘지극한 덕(至德)’에 도달하며 수신치국(修身治國)의 도리를 완전히 함을 포함한다. 그러나 중공은 ‘중용’의 본뜻을 완전히 왜곡하여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원칙을 저버리는 견유(犬儒)로 만들어버렸다.  (계속) / 에포크타임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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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해체 당(黨)문화] 제3장 주입수단(4)
편집부
21-02-19
13 [해체 당(黨)문화] 제3장 주입수단(3)
편집부
21-02-06
12 [해체 당(黨)문화] 제3장 주입수단(2)
편집부
21-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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