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OH] 중국인은 전통적으로 ‘도(道)’를 아주 중시한다. 고대의 포악한 제왕을 가리켜 ‘무도하고 아둔한 군주[無道昏君]’라고 했으며, 일을 함에 있어서 누구나 다 인정하는 ‘도덕’ 표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심지어 농민들이 반란을 일으킬 때 조차도 “하늘을 대신하여 도를 행한다[替天行道]”고 했다.
노자(老子)는 “혼성(混成)하는 것이 하나 있으니 그 하나는 천지보다 먼저 있었다. 너무 고요해 들을 수 없고 너무 아득해 그 모습이 보이지 않는구나! 다른 것에 의지하지 않고 홀로 독립해 있으므로 바뀌지 않고 두루두루 작용해도 위태롭지 않으니 가히 만물의 어머니라고 할 만하다. 나는 그 이름을 알 수 없으나 억지로 이름을 말한다면 도(道)이다(원문)”라고 말하였다. 다시 말하면 ‘도’에서 천지가 생겨났다는 뜻이다.
최근 백 년 동안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갑자기 침입한 후, 자연을 위배하고 반인간적인 역량을 이루어 무수한 고통과 비극을 초래하여 인류 문명이 소멸될 지경에 이르렀다. ‘도’를 거역하는 모든 폭행은 자연히 하늘과 땅을 반대하는 것이기에 일종의 반(反)우주적인 아주 사악한 세력이 된다.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으며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人法地,地法天,天法道,道法自然『도덕경』 제25장)”
중국 사람은 자고이래로 천인합일(天人合一)을 믿고 준수했으며, 사람과 천지가 융합하여 서로 의지해 살아야 함을 알고 있었다. 하늘의 도[天道]는 불변하여 규칙적으로 순환할 수 있고, 땅이 천시(天時)를 따르면 사계절이 분명하며, 사람은 천지를 존중해야 은혜에 감사하고 분수에 맞게 처신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천시(天時), 지리(地利), 인화(人和)’(『맹자』제2권)라는 것이다. 중국인의 개념 속에는 천문, 지리, 역법(曆法), 의학, 문학 심지어 사회 구조에까지 이 이념을 관통시키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나 공산당은 “사람은 반드시 하늘을 이길 수 있다[人定勝天]”는 ‘투쟁 철학’을 선양하여 천지와 자연을 멸시했다. 마오쩌둥은 “하늘과 싸우니 그 즐거움 끝이 없고, 땅과 싸우니 그 즐거움 끝이 없으며, 사람과 싸우니 그 즐거움 끝이 없도다”라고 말했다. 공산당은 그 중에서 진실한 기쁨을 얻었는지 몰라도 국민들은 오히려 참담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사람과 싸워 인성(人性)을 말살
(1) 선악(善惡)을 뒤집어 인성 말살
사람은 우선 자연속의 사람이며 그 후에야 비로소 사회적인 사람이다. “사람은 애초에 성품이 선했다(人之初,性本善『三字經』)” “측은지심(惻隱之心)은 사람마다 모두 있다.(惻隱之心, 人皆有之.『맹자』제6권)” 사람에게 존재하는 선악과 시비를 분별하는 기준은 대개 타고나는 것이다. 그러나 공산당은 사람을 동물, 심지어 기계로 간주하며 자본가계급, 프롤레타리아 계급 여하를 막론하고 그들을 모두 물질 역량으로 본다.
공산당의 목적은 사람을 조종하여 점차 반란을 일으키는 혁명 폭도로 개조시키는 데 있다. 마르크스는 “물질 역량은 반드시 물질 역량으로 소멸시켜야 한다. 이론이 군중들에게 장악되기만 하면 물질 역량으로 변한다.”, “인류의 전반 역사는 바로 인간성을 끊임없이 개변하는 것.(칼 마르크스. 『헤겔 법철학 비판을 위하여, 서설(序說)』)”, “인간성이란 바로 계급성”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일체에는 내재적이거나 선천적인 것이 존재하지 않으며, 모두 환경의 산물이고 모두 ‘사회인’이라고 여기면서 포이에르바하가 제기한 ‘자연인’을 반대했다.
레닌은 “마르크스주의는 노동자계급 내부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할 수 없기에 반드시 외부에서 주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레닌은 어떤 방법으로도 노동자들을 유도하여 경제투쟁과정에서 정권 탈취를 위한 정치투쟁으로 이끌 수 없었다. 그는 이때부터 노벨상 수상자인 파블로프의 ‘조건반사 학설’에 희망을 걸었고 이것은 “전 세계 노동자계급에 대해 중대한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트로츠키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조건반사는 심리적인 것 뿐만이 아니라 생리적으로도 사람을 개변시킬 수 있다고 망상하면서, 점심을 알리는 종소리만 들으면 침을 흘리는 개처럼 병사들이 총소리만 들으면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가 공산당을 위해 헌신하기를 바랐다.
예부터 사람들은 노력과 노동을 통해 보상 받을 수 있다고 여겼으며, 부지런히 노동하여 풍요로운 생활을 하는 것이 동경의 대상이었다. 먹는 것만 좋아하고 게으르며, 일하지 않고 이익을 얻는다면 사람들은 아주 나쁘다고 보았다. 공산당이 급성 전염병처럼 중국에 퍼진 이후 중국 사회에서 무위도식하는 난봉꾼들은 공산당의 고무격려 하에 토지를 나누고 재산을 빼앗고 약자를 괴롭히며 남의 여자를 빼앗았으나 황당하게도 이런 것들이 모두 합법적인 행위로 인정받았다.
사람들은 모두 웃어른을 공경하고 어린이를 사랑해야 하며 안하무인(眼下無人)이 되면 안 된다고 알고 있다. 고대 유가(儒家)의 교육은 대학(大學)과 소학(小學)으로 나뉜다. 15세 이전까지의 소학교육에서 배우는 내용은 바로 청소, 출입 및 사람으로서 마땅히 갖춰야 할 작은 예절(요즘 말로 하자면 바로 위생, 행동거지, 언행 등 방면의 교양에 해당)이었다. 그 후의 대학교육은 덕성(德性)을 중시하고 학문을 말하는 쪽에 치중했다. 그러나 린뱌오(林彪)와 공자를 비판하고 사도존엄(師道尊嚴)을 비판하는 운동 중에서 중국 공산당은 청소년들의 머릿속에서 이런 도덕규범을 철저히 제거해 버렸다.
옛사람들은 “하루 스승이라도 평생 아버지와 같다(一日爲師,終生爲父)”라고 했다. 1966년 8월 5일, 베이징사범대학 부속 여자중학교의 여학생들은 볜중윈(卞仲耘) 선생에게 고깔모자를 씌우고 몸에 먹을 뿌렸으며, 키를 두드리며 거리를 돌게 했다. 또한 검은 패(牌)를 목에 걸고 강제로 무릎꿇게 했으며 못이 박힌 몽둥이로 때리고 끓는 물을 붓는 등의 방법으로 산채로 때려 죽였다. 학생들은 베이징대학 부속 중학교의 여자 교장선생님을 강요하여 헌 세수대야를 두드리면서 “나는 잡귀신[牛鬼蛇神]이다”라고 외치게 했다. 학생들은 또한 교장선생님의 머리카락을 마구 잘라버렸으며, 출혈할 정도로 머리를 구타했으며 땅에 넘어뜨려 기어다니게 했다.
사람들은 깨끗한 것을 좋아하고 더러운 것을 싫어한다. 그러나 공산당은 “온몸이 흙투성이가 되고 손에는 굳은 살이 박혀야 하고”, “손은 시커멓고 발에는 쇠똥이 묻어 있어야 한다”고 선전했다. 이런 사람만이 사상이 건전하므로 대학에 진학할 수 있고 입당(入黨)할 수 있으며, 승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당의 훌륭한 계승자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인류의 진보는 지식의 진보이다. 그러나 공산당 통치 하에서 지식은 오히려 나쁜 것으로 취급되었다. 지식인은 오히려 “구린내 나는 아홉 번 째[臭老九]”로 몰렸고,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은 무식한 사람한테 배워야 했으며, 빈농(貧農)들에게 재교육을 받아야만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여겼다. 지식인들에게 재교육을 실시하기 위해 베이징 칭화대학(淸華大學)의 교수들은 장시성 난창(江西南昌)의 리위저우(鯉魚洲)로 보내졌다. 그곳은 흡혈충이 유행하고 있어서, 원래 그곳에 있던 노동수용소도 할 수 없이 다른 곳으로 이전한 상태였다. 강물이 몸에 닿기만 해도 곧바로 병에 걸렸으며 많은 사람들이 간경화(肝硬化), 복수(腹水)에 걸려 생활력과 노동력을 상실했다.
캄보디아의 크메르루주(캄보디아 공산당)는 저우언라이(周恩來)의 사주를 받아 지식인들을 혹독하게 박해했다. 독립적인 사상이 존재하기만 하면 곧바로 개조의 대상이 됐으며, 정신적인 훼멸뿐만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훼멸시켰다. 1975년부터 1978년 사이 동안 캄보디아 전 인구의 4분의 1이 살해되었다. 어떤 사람은 심지어 얼굴에 안경을 낀 흔적이 남아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액운을 피하지 못했다.
크메르루주가 1975년에 승리한 후 공산당 지도자 풀 포트(Pol Pot)는 전례 없는 사회주의 건설을 시작했다. 바로 계급 차별이 없고 도시와 농촌의 차별이 없으며 화폐가 없고 상품교역이 없는 ‘인간 천당’을 만들려고 했다. 나중에는 가정도 해체하고 남자 노동대와 여자 노동대를 조직하여 일률적으로 강제 노동을 시켰으며, 함께 큰 가마솥 밥을 먹어야 했고 통일된 검은색 혁명복장과 군복을 입어야 했다. 부부도 허가를 받아서 일주일에 한번 씩만 만날 수 있었다.
공산당은 하늘도 땅도 두렵지 않다고 하면서 하늘과 땅을 개조하려고 하였다. 사실은 우주 중의 일체 바른 요소와 역량을 철저히 부정하려 한 것이다. 마오쩌둥은 “각 세기(世紀) 중 여러 민족으로부터 다양한 대혁명이 일어나 수시로 낡은 것을 쓸어 버리고 새 것에 물들게 하는 것은 모두 생사성훼(生死成毁)의 큰 변화다. 우주의 훼멸도 마찬가지인데 여기에서 훼멸되면 저쪽에서 만들어지는 이것은 의심할 바 없다. 나는 오히려 훼멸되기를 기대하는데 낡은 우주가 훼멸되고 새로운 우주를 얻는다면 더욱 좋은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혈육의 정(親情)은 불변의 진리다. 부부, 자녀, 부모, 친구, 사람과 사람들의 정상적인 관계가 인류사회를 구성했다. 중국 공산당은 끊임없는 각종 정치활동을 통해 사람을 늑대처럼 만들었고 심지어 호랑이나 이리보다 더 흉악하고 잔인하게 만들었다. 호랑이가 아무리 독해도 자기 새끼를 잡아먹지는 않는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의 통치 하에서는 부모, 자녀, 부부 사이에서도 서로 적발하고 친족 관계를 단절하는 것은 보통일이었다.
1960년대 베이징의 한 초등학교의 어느 여성 교사가 새로 나온 글자를 받아쓰기 할 때 ‘사회주의’와 ‘와해’라는 단어를 같이 쓰게 하였다. 결국 학생들에게 적발되어 날마다 투쟁을 당해야 했으며 남학생들에게 따귀를 맞기도 했다. 그녀의 딸은 그녀와 모녀관계를 끊고 어머니에게 조그마한 변화만 있어도 반에서 어머니의 ‘계급투쟁 새로운 동향’ 을 적발했다. 이 교사는 그 후 몇 년간 학교 화장실 청소를 해야 했다.
문화대혁명을 겪은 사람들은 모두 장즈신(張志新)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녀가 감옥에 투옥된 후, 인간성을 상실한 감옥 경찰은 몇 번이나 그녀의 옷을 발가벗겨 두 손을 뒤로 묶은 채 남자 감방에 집어넣었으며, 아무나 그녀를 마음대로 윤간하게 하여 끝내 정신분열증에 걸리게 하였다. 그런데도 감옥에서는 그녀를 사형에 처할 때 그녀가 구호를 외칠까 두려워 머리를 벽돌로 누른 후 마취제도 사용하지 않고 칼로 그녀의 기도를 잘랐다.
중국 공산당은 최근 몇 년 동안 파룬궁 탄압에 대해서도 여전히 증오심 조장과 폭력 선동이라는 상투적인 수법을 취했다. 공산당은 사람의 선량한 본성을 억제하고 인성(人性)의 사악한 일면을 선동 방임하며 이를 이용해 통치를 강화했다. 매 차례 운동 중에서 양심적인 사람들도 폭력이 두려워 침묵을 지켰다. 공산당은 체계적으로 우주 중에 형성된 도덕관념을 거의 다 파괴하고 소멸시켜 인류가 천만년을 유지해온 선악과 양심을 철저히 뒤엎으려 시도했다.
(2)상생상극(相生相克)을 초월한 사악함
노자는 “사람들이 모두 아름답다 하니 아름다운 줄 알지만 이는 추악한 것이 있기 때문이며, 모두 선(善)하다고 하니 선한 줄 알지만 이는 선하지 않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있음(有)과 없음(無)은 상생(相生)하고, 어렵고 쉬운 것이 서로 이루며(相成), 길고 짧은 것이 서로 비교되고(相形), 높고 낮은 것은 서로 기울어지며(相傾), 음(音)과 성(聲)은 서로 조화를 이루고(相和), 전(前)과 후(後)는 서로 따르는 것이다(相隨)(원문)”라고 했다.
명백히 말하면 인간 세상에는 상생상극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사람 역시 좋고 나쁜 사람으로 가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한 사람을 놓고 보더라도 선악이 동시에 존재한다.
강도의 대명사인 도척(盜跖)도 부하들에게 “도둑질에도 도(道)가 있다”면서 강도라 할지라도 “성(聖), 용(勇), 의(義), 지(智), 인(仁)”을 다 해야 한다고 했다. 다시 말해서 비록 강도라 할지라도 제멋대로 해서는 안 되며 기본적인 인간의 도리는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투기와 반역이 가득하고 아무런 규칙이 없었다. 예를 들면 강도들은 ‘의리’를 아주 중히 여기는데 장물을 나누는 장소도 ‘의리를 모으고 장물을 나누는 방[聚義分贓廳]’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은 설령 동지라고 할지라도 일단 위기에 처하면 하면 곧 서로 적발하고 우물에 빠진 사람에게 돌을 던지듯이 하는데, 심지어 없는 죄를 날조하여 뒤집어 씌우고 모함하기까지 한다.
펑더화이(彭德懷)의 예를 들어 보자. 마오쩌둥은 농민 출신이라 당연히 한 무(畝)에서 13만근의 식량을 수확할 수 없다는 펑더화이의 말이 사실이며 그가 자신의 권력을 빼앗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하물며 이전 국민당군과의 내전에서 펑더화이가 2만 명의 부대를 거느리고 후쭝난(胡宗南)의 20만 대군과 악전고투하여 몇 번이나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사실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펑더화이가 마오쩌둥을 두어 마디 비평하자 마오는 금방 자신이 친필로 쓴 “누가 감히 말 등에 서서 칼을 들고 적을 막을 소냐, 오직 나의 펑 대장군뿐이로다!”라는 시를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면서 기어코 펑을 사지(死地)로 몰아넣으려 했다. 정말이지 은혜와 의리를 저버린 배은망덕한 태도였다.
이처럼 공산당은 참혹하게 사람을 죽이고 어진 정치를 실행하지 않았으며 내부 투쟁만을 일삼고 의리라곤 찾아 볼 수 없다. 국토를 팔아먹을 뿐 용기도 없고, 올바른 믿음[正信]을 원수로 여기고 지혜가 부족하며, 군중 운동을 할 때도 성인(聖人)들이 나라를 다스리던 방법이 아니었다. 공산당은 “도둑질에도 도(道)가 있다”는 최소한의 도리마저 포기했으니 그 사악함이야 말로 이미 우주 상생상극의 도리를 완전히 벗어난 것이었다. 공산당이 자연적인 인간성을 철저히 뒤엎은 목적은 바로 선악의 표준을 뒤엎고 우주의 법칙을 뒤엎으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방자하고 오만함이 극도에 달하여 자연히 멸망이라는 결과를 벗어나기 어렵다.
땅과 싸워 자연을 거스르고 끝없는 재앙을 초래
(1) 계급투쟁을 자연에 까지 확장
진쉰화(金訓華)는 1968년에 상하이시 우쑹(吳淞) 제2중학교를 졸업했으며 상하이시 중학교 홍위병 대의원회 상무위원이었다. 1969년 3월 헤이룽장성으로 내려갔으며, 1969년 8월 15일 산에 홍수가 터져 솽하(雙河) 양안이 온통 바닷물로 덮었을 때 생산대(生産隊)의 전신주 2개를 구하려고 급류에 뛰어들었다가 목숨을 잃었다. 아래에 진쉰화의 생전(生前) 일기를 통해 그의 내면을 들여다 보도록 하자.
7월 4일
‘나는 지금 농촌 계급투쟁의 첨예함과 격렬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마오 주석의 홍위병으로서 이미 모든 준비를 끝냈다. 필승불패의 마오쩌둥 사상으로 반동세력을 맞받아치며 설령 희생되더라도 그것은 내가 기꺼이 원하던 것이다. 프롤레타리아 독재정치를 굳건히 하기 위해 노력하여 전투하고 전투 또 전투하자!’
7월 19일
“`XX대대(大隊)의 계급의 적(敵)은 아직도 기염을 토하고 있다. 지식 청년들이 농촌으로 온 것은 농촌의 3대 혁명투쟁에 참가하기 위한 것이며 우선 계급투쟁에 참가해야 한다. 우리는 반드시 빈농(貧農)과 중농(中農)에 의지하고 군중들을 동원하여 적들의 기염을 눌러버려야 한다. 우리 지식 청년들은 마땅히 마오쩌둥 사상의 위대한 붉은 깃발을 높이 치켜들고, 언제나 계급투쟁과 프롤레타리아독재를 잊지 말아야 한다.”
진쉰화는 자연과 인류를 개조하려는 이상을 품고 농촌으로 내려갔던 것이다. 그의 일기를 통해 볼 때 그의 머릿속은 온통 ‘투쟁’사상으로 가득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사람과 투쟁한다’는 사고방식을 하늘땅까지 관철시켜 실행했는데 결국 이로 인해 끝내 목숨을 잃었다. 진쉰화는 투쟁철학의 한 사례인 동시에 또 의심할 바 없는 희생양이다.
엥겔스는 “자유는 필연에 대한 인식이다”라고 말했다. 마오쩌둥은 여기에 “그리고 세계에 대한 개조이다”라는 한마디를 보충했다. 이 화룡점정(畵龍點睛)의 보충은 사실상 자연에 대한 공산당의 태도를 충분하고도 명확하게 밝혀 놓았다. 그것은 바로 자연을 개조하는 것이다. 공산당이 인식하는 ‘필연’은 맹목적인 물질이며, 그 근원은 해석할 방법이 없는 ‘법칙’으로서, 사람이 주체성과 능동성을 발휘하여 객관적인 법칙을 인식하면 바로 대자연과 인류를 ‘정복’할 수 있다고 여겼다. 공산당은 자연을 개조한다는 명분 하에 러시아와 중국이라는 두 개의 ‘시험용 전답’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렸다.
다음의 대약진 노래는 바로 중국 공산당의 무모하고 어리석은 형상을 잘 표현하고 있다. “높은 산 머리 숙이게 하고 바다물 길 비키게 하리라”, “하늘에는 옥황상제가 없고 땅에는 용왕이 없도다. 내가 바로 옥황상제요, 내가 바로 용왕이다. 큰 소리로 명령하노니 삼산(三山) 오령(五嶺)은 길을 비켜라, 내가 왔노라!(원문보기)” 공산당이 왔다! 공산당은 원래 조화롭던 세계과 자연의 평형을 파괴했다.
(2) 자연파괴와 자업자득
중국 공산당은 식량 중심의 농업정책을 널리 시행하여 경작과 파종에 부적합한 산지와 초원을 대대적으로 개간했고, 중국의 강과 하천, 호수와 바다를 매립했다.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중국 공산당은 1952년의 식량 생산량이 국민당 정권시기를 초과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이 밝히지 않은 것 중, 중국의 식량 총생산량이 청나라 건륭(乾隆) 년대를 초과한 것은 1972년에 와서야 비로소 가능했다는 사실이다. 그때까지 중국인의 평균 식량 생산량은 여전히 청나라 때보다도 한참 뒤쳐져 있었으며 중국 농업이 가장 흥성한 시기였던 송나라 때와 비교하면 3분의 1에 불과했다.
숲을 남벌(濫伐)하고 강과 바다를 함부로 매립한 결과 중국의 자연생태계는 크게 파괴되었다. 중국의 생태계는 지금 이미 붕괴할 지경에 이르렀다. 해하(海河)와 황하(黃河)의 물이 끊기고, 회하(淮河)와 장강(長江)이 오염되었으며 중화민족이 삶을 의지해 왔던 혈맥은 철저히 끊어져 버렸다. 간쑤(甘肅), 칭하이(靑海), 네이멍(內蒙), 신장(新疆)의 초원은 소실되었고 밀려오는 황사(黃砂)는 중원 대지를 뒤덮었다.
1950년 대, 중국 공산당은 소련 전문가의 지도 하에 황하에 싼먼샤(三門峽) 수력발전소를 건설했으나 발전량은 지금까지도 중급 규모 강(江)의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도리어 댐 상류에 흙과 모래가 침적되면서 하천 바닥이 높아져 조금이라도 홍수가 나면 곧 강변 주민들에게는 커다란 생명과 재산 손실을 초래했다. 이 때문에 2003년 위하(渭河)가 최고 수위(水位)에 도달했을 때 최고유량은 초당 3700입방미터로 3~5년에 한번 정도 발생하는 크지 않은 홍수였음에도 불구하고 50년 만에 찾아오는 큰 물난리를 겪어야 했다.
허난성(河南省) 주마뎬(駐馬店) 지역에는 많은 대형 저수지를 건설했다. 1975년 제방이 연속으로 무너지면서 겨우 2시간 만에 6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총 사망자 수는 20여만 명에 달했다.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중국 공산당 정권의 중국 대지에 대한 방자한 수탈은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장강(長江)에 제방 쌓기, 남쪽의 풍부한 물을 물이 부족한 화베이(華北)지방으로 끌어들이는 일 등은 모두 조(兆)에 달하는 자금을 투입하여 생태계를 바꾸려는 것이다. 그리고 중, 소규모의 ‘땅과 투쟁하는’사례들은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다. 심지어 어떤 자는 청장고원(靑藏高原)에 원자탄을 터뜨려 길을 만들어서 중국 서부지역의 자연환경을 개변해야한다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대지에 대한 그들의 멸시와 무모함이 세인들의 미움을 받게 된 것도 결코 우연한 일은 아니다.
『주역』팔괘에서 선조들은 하늘을 건(乾)이라고 칭하되 존경하는 의미에서 천도(天道)라고 불렀으며, 또 땅을 곤(坤)이라고 칭하되 그것을 높여 곤덕(坤德)이라고 했다.
『주역』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땅의 형세가 곤(坤)이니 군자는 이로써 덕을 두텁게 하여 만물을 싣는구나(地勢坤,君子以厚德载物)”라고 했다. 공자(孔子)의 주석에서는 “지극하구나! 곤의 원(元)이여! 만물이 이로부터 생겨나는 구나(至哉坤元,萬物資生)”라고 했다.
「곤괘(坤卦) 문언전(文言傳)」에는 “곤괘는 지극히 부드럽지만 움직임은 강하며, 지극히 고요하지만 그 덕은 방정하다. 천도를 쫓아 행하지만 일정한 궤도가 있고, 만물을 포용하여 빛을 이룬다. 곤의 도는 참으로 유순하다. 천도를 이어 받아 수시로 행한다.(원문)”라는 구절이 있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대지의 곤덕(坤德)은 지극히 부드럽고 고요하며 늘 변하지 않는 규율이 있어 하늘을 받듬에 가히 덕(德)을 두터이 하여 만물을 실을 수 있고 만물을 생겨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천지 자연의 도리인 건도(乾道)와 곤덕(坤德)에 대한 인류의 태도를 제기하여 천지를 따르고 자연을 존중할 것을 강조했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은 천지와 싸우려는 전투적인 자세로 대지를 함부로 약탈하고 압박하고 착취하면서 천지를 거역해 왔으니, 최후에는 필연코 천지와 자연법칙의 징벌을 받게 될 것이다.
하늘과 싸워 신앙을 박해하고 신에 대한 바른 믿음을 부정
(1) 유한한 생명이 어떻게 무한한 시공(時空)을 인식할 수 있는가?
아인슈타인의 아들 에드워드가 “아빠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유명해지셨어요?”하고 묻자 아인슈타인은 “네가 보다시피 이 큰 고무풍선 위에 있는 눈이 먼 저 딱정벌레를 봐라. 딱정벌레는 자기가 기어가고 있는 길이 구불구불하다는 것을 모르고 있단다. 그러나 아빠는 알고 있지”라고 대답했다.
이 한마디 말은 실제로 아주 깊은 함의가 있다. 중국 사람들은 “여산(廬山)의 진면목을 모르는 것은, 몸이 그 산속에 있기 때문이라네(不識廬山眞面目,只緣身在此山中)”라고 말했다. 만약 사람이 어느 한 체계를 인식하려고 한다면 반드시 그 체계 밖에서 관찰해야만 한다. 그러나 유한한 사람의 생명으로 무한한 우주의 시공을 관찰하려고 한다면 인류는 영원히 그 전모(全貌)를 알 수 없으며 우주 또한 인류의 영원한 수수께끼가 될 것이다.
과학이 넘을 수 없는 장애는 자연히 형이상학(形而上學)적인 것으로 이것은 자연스럽게 ‘신앙’의 범주에 속한다. 신앙이란 인간의 내면에 관한 활동으로 생명, 시공, 우주에 대한 체험과 사고(思考)는 한 정당(政黨)에서 관리할 대상이 아니다. 『성경(聖經)』 「마태복음」의 유명한 한 구절처럼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이 관할해야 하고 케사르의 것은 케사르가 관할해야 한다.” 그러나 공산당은 도리어 우주와 생명에 대한 자신들의 가련하고 가소로운 인식에 따라 그들 이론 이외의 일체를 모두 ‘미신(迷信)’이라고 하면서 유심론자를 세뇌(洗腦), 전향, 비판하고 명예를 더럽혔으며 심지어 육체를 소멸하고 있다.
진정한 과학자의 우주관은 넓고도 넓은 것으로, 자신의 유한(有限)한 기존 지식으로 무한한 미지(未知)의 세계를 부정하지 않는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유명한 과학자 아이작 뉴턴은 1678년에 자신의 역작『프린키피아(수학의 원리)』를 출판했다. 이 책에서는 역학(力學)의 원리를 자세하게 서술했고, 밀물과 썰물을 해석했으며, 행성의 운동 및 태양계의 운행 방식을 추산했다. 그러나 거대한 성공과 영예를 얻은 뉴턴조차도 자신의 책은 일종 현상을 묘사한 것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는 지고무상(至高無上)한 하느님이 우주를 창조한 진정한 의의는 감히 담론하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프린키피아』 제2판을 출간할 때 뉴턴은 책 속에 다음과 같은 말을 써 넣어 자신의 신념을 표현했다.
“태양, 행성, 혜성을 포함한 이 완벽한 큰 체계는 오직 전지전능하신 신(神)만이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마치 한 맹인(盲人)이 색깔에 대해 아무런 개념이 없는 것과 같이, 우리도 신(神)이 만사만물을 이해하는 방법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 여기서 잠시 시공을 초월한 천국 세계가 있는지 없는지, 수련하는 사람이 반본귀진(返本歸眞)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따지지 말기로 하자. 진정으로 정교(正敎)를 믿는 사람들은 모두 선악에는 보응(報應)이 있다는 인과(因果)의 원리를 믿고 있다. 정통 신앙은 능히 인류의 도덕을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시킬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아인슈타인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모두 우주 중에는 하나의 보편적인 법칙이 존재하고 있음을 믿었다. 사람들은 각종 방식을 통해 우주의 진리를 끊임없이 탐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학으로 탐구하는 것 외에도 종교와 신앙, 수련을 통해서도 진리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2) 중국 공산당은 인류의 바른 믿음을 훼멸
세계 어느 민족이나 역사상 모두 신(神)을 믿었다. 바로 신(神)에 대한 신앙과 선악에는 보응이 있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내심으로부터 자신을 단속할 수 있었고 사회의 도덕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다. 동서고금(東西古今)의 서양 정교(正敎), 동양의 유가(儒家), 불가(佛家), 도가(道家)는 모두 사람들에게 경고했다. 신을 믿고 하늘을 공경하며, 선(善)을 향하고 복을 소중히 여기면서 은혜에 보답할 줄 알아야만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공산주의의 중심지도사상은 바로 신(神)도 부처도 도(道)도 없으며, 전생(前生)도 없고 내세도 없으며, 인과응보도 없다는 것을 고취시킨다. 이로 인해 각국의 모든 공산당은 가난한 사람과 룸펜 프롤레타리아들에게 신은 믿을 필요가 없으며 업력도 갚을 필요가 없고 분수도 지킬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마땅히 온갖 수단을 다 해 남의 것을 빼앗고 반란하여 부자가 되라고 고무 격려했다.
중국 고대의 황제들은 비록 제왕이라는 고귀한 신분이었음에도 여전히 자신을 하늘의 아들[天子]이라고 자칭하면서, 하늘의 뜻[天意]에 따른 제약을 받았다. 또 때때로 조서를 내려 자신의 죄를 묻고 하늘을 향해 참회하기도 했다. 그러나 공산당은 자신들이 하늘의 뜻을 대표한다고 하면서, 이른바 법(法)도 없고 하늘도 없으니 그 어떤 제한도 받지 않는다고 한다. 그 결과 공산당은 수많은 인간 지옥을 만들어냈다.
공산당의 비조(鼻祖) 칼 마르크스는, 종교는 인민의 정신을 마비시키는 아편이라고 여겼다. 그는 국민들이 신과 하느님을 믿고 공산주의를 믿지 않을까 두려워 했다. 엥겔스의 『자연변증법』제1편은 바로 멘델레예프(Mendeleyev)와 그 그룹의 신학연구를 비판한 것이다.
엥겔스는 “중세기 및 이전의 일체는 모두 인류 이성(理性)의 심판대 앞에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변호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말을 하는 동시에 그는 자신과 마르크스가 심판대의 법관이라고 여겼다. 마르크스의 친구인 무정부주의자 바쿠닌은 마르크스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그는 마치 사람들의 신(神)과도 같은데, 그는 자신 외에 다른 사람이 신으로 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이 신을 숭배하는 것처럼 자기를 숭배하고 우상을 모시듯 자기 앞에 무릎 꿇기를 바랐다. 그렇지 않으면 비판하여 징벌하거나 혹은 음모를 꾸며 박해했다.”
그러나 전통적인 올바른 믿음[正信]은 공산주의자들의 이런 시도에 원천적인 장애가 되었다. 종교에 대한 중국 공산당의 박해는 제정신을 잃을 정도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화대혁명 중에 무수한 사찰들이 파괴되었으며, 승려들은 사람들에게 끌려 나가 거리에서 비판을 받았다. 티베트 사원의 90%가 파괴당했으며 중국에는 지금도 수많은 가정 기독교회 신자들이 감금되어 있다.
상하이의 천주교 신부 궁핀메이는 중공에 의해 30여 년 간 감금되어 있었으며 1980년대 말에야 미국으로 갈 수 있었다. 그가 90여 세에 임종할 때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중국 공산당이 더 이상 중국을 통치하지 않을 때 내 무덤을 상하이로 옮겨라.” 한 사람이 신앙 때문에 잔혹하고 사악한 세력에 의해 단독으로 비밀리에 30년을 감금당했던 것이다.
중국 공산당은 여러 차례 그를 핍박하여, 오직 중공의 『3자 애국위원회(三自愛國委員會)』의 지도자 직무를 수행하겠다고 동의만 하면 바로 석방시켜 주겠다고 말했다. 최근 몇 년 동안 진선인(眞善忍)을 믿는 파룬궁(法輪功) 수련자들에 대한 중국 공산당의 탄압은, 바로 중국 공산당이 ‘하늘과 싸우는’ 것의 연속이자 또한 중국 공산당이 사람들의 뜻을 거스르며 강요한 필연적인 결과이다.
무신론을 믿는 공산당은 사람들의 신(神)에 대한 신앙을 지도하고 통제하려 하면서, “하늘과 싸우니 그 즐거움이 끝이 없다”고 했다. 그 가소로운 정도는 몇 마디 말로는 이루 형용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결 론
공산주의는 실천을 통해 이미 전 세계적으로 철저히 실패했음이 증명되었다. 세계 최후의 공산 대국(大國), 중국 공산당의 전(前) 국가주석 장쩌민은 2002년 3월 미국『워싱턴포스트』지 기자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청년시절에 공산주의가 매우 빨리 도래하리라 믿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현재 아직도 진정으로 공산주의를 믿는 사람은 이미 얼마 남지 않았다.
공산주의 운동의 실패는 필연적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주의 법칙을 위반하고 하늘을 거역하며 우주를 반대하는 하나의 세력이기에 필연적으로 하늘의 징벌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은 매번 태도를 바꾸면서 그때마다 지푸라기를 잡고 위기를 넘겼다. 그러나 최후의 결과는 세계가 모두 알고 있다. 비록 중국 공산당이 한 벌 한 벌씩 아름다운 외투를 벗어 던지고 탐욕스럽고 흉악하며 유치하고 폭력적인 반(反)우주적 본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여전히 사람들의 사상을 억압하고 인류의 윤리도덕을 압살하고 있으며 또한 인류의 도덕문명과 인류의 평화적인 행보에도 커다란 해악을 끼치고 있다.
망망한 우주는 거역할 수 없는 하늘의 뜻[天意]을 지니고 있다. 이를 가리켜 신(神)의 의지, 혹은 자연 법칙, 혹은 대자연의 힘이라고도 한다. 오로지 하늘의 뜻을 존경하고 자연에 따르며 우주 법칙을 존중하고 천하의 생명을 사랑해야만 비로소 인류의 미래가 있을 수 있다.
(2005년 5월 8일 수정판 올림)
對중국 단파방송 - SOH 희망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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