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루이쉐(何瑞雪)
[SOH] 나는 중국 강남의 작은 마을 출신이다. 그곳은 예부터 풍요롭고 문화적인 분위기가 농후한 곳이었다. 비록 문화혁명기간에 10년 겁난(劫難)을 거치면서 적지 않은 고대건축물들이 사라지고 수많은 문물(文物)이 잿더미로 변하거나 사라져버리긴 했지만 중화 5천년문명의 흔적은, 바위를 깎아 만든 비문(碑文)이나 숲속의 산사(山寺) 또는 강남 문인들의 기억 등 곳곳에 남아 있었다.
하지만 미국에 온 후 내게 마지막 남아 있던 고국 문명의 끈마저 마치 잘려버린 것 같았다. 나는 하루종일 미국 음식을 먹고 미국에서 유행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어떻게 하면 미국 주류사회에 들어가고 낯선 타국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러다 올 1월 뉴욕 링컨센터에서 션윈예술단의 공연을 보았다. 단원들의 순결하고 아름다운 무용은 중국인들이 의외로 아주 정교하고 우아할 뿐만 아니라 중국문화는 마치 오래 묵힌 좋은 술처럼 은은한 향을 뿜어낸다는 것을 발견하게 했다. 3시간 가까운 공연에서 나는 중화 5천년 문명의 창립에서부터 역대 왕조의 영웅호걸과 풍운인물 및 현대의 중국에 이르기까지 깊이 빨려들어갔다. 션윈은 마치 나를 싣고 거대한 공간과 시간을 초월해 마치 한권의 컬러판 역사서처럼 중화 5천년의 역사를 순식간에 펼쳐 보이며 내게 잠재해 있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션윈의 무대는 기세가 굉장했다. 단원들의 뛰어난 중국무용과 물 흐르듯이 자연스런 조화, 웅장한 교향악단 및 뛰어난 디지털 프로젝션이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잘 짜여져 있었다. 강력한 군사력으로 중원을 통일한 진(秦)나라의 병마용에서 아름다운 여인들이 너풀너풀 춤추는 대당(大唐)에 이르기까지, 온통 바다 일색인 민남(閩南)에서 사나이들이 말 달리며 호방하게 노래하는 몽골초원에 이르기까지, 정충보국(精忠報國)의 악비(岳飛)와 부친을 위해 대신 종군(從軍)한 뮬란에 이르기까지, 션윈공연의 한 막 한 막은 나로 하여금 중국인의 우수함과 열정, 중국인의 우아함과 선량하고 순결한 미덕을 깊이 느낄 수 있게 했다.
공연 중에서 내게 가장 인상 깊었던 프로그램은 중국고전소설 ‘서유기’의 한 대목인 ‘손오공이 지혜로 저팔계를 굴복시키다’였다. 나는 본래 중국 사람인 까닭에 저팔계의 우스꽝스런 동작이나 손오공의 숙련된 봉술만 본 게 아니라 당승(唐僧 현장법사)이 서천으로 가는 길에 온갖 고생을 겪은 후 마침내 불경을 얻어 중원에 돌아오는 것을 생각하고는 마음속으로 경의(敬意)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서유기’를 특히 좋아했는데 손오공의 출현은 늘 나를 흥분케 했다. 그러나 당승이 미색에 흔들리지 않고 이익과 욕망에 대해 아주 단호하며 또 늘 밤새 가부좌를 하며 고생을 겪는 것을 보면서 스스로에게 대체 무엇이 부처인가? 하고 자문하곤 했다. 이런 것은 학교 교과서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또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손오공이 천궁(天宮)에 가서 소란을 피운 내용을 배운 것이 기억난다. 교과서 해설에 보면 이것은 일반 대중과 통치계급간의 계급투쟁이란 설명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가소롭기 짝이 없다.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늘 돈과 명예에 집착하면서 예술의 가치를 망각하곤 한다. 예술이란 단지 사람에게 아름다움의 향수만을 주는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니며 인류의 보편적 가치관을 전달한다. 션윈의 무대는 마치 신기한 힘을 방사하는 것처럼 내게 앞으로만 달려나가지 말고 뒤돌아 내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고 역사의 흔적을 바라보면서 인류를 번영케 할 수 있었던 그런 미덕(美德)을 망각하지 말라고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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