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헝허(橫河. 대기원시보 기고문)
[SOH] 홍콩 당국이 미국 션윈(神韻.SHENYUN)예술단 단원들에 대한 비자 발급을 거부, 공연이 무산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번 사건은 ‘일국양제(一國兩制)’가 실시되고 있는 홍콩의 자유가 실제 어느 정도로 허약한지 여실히 보여줬고, 중국 공산당 정권의 중국 전통문화 파괴행위가 지금도 중단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줬다.
션윈예술단은 27일부터 중국 영토인 홍콩에서 처음으로 7회 공연을 열 예정이었다. 그러나 홍공 정부는 공연 진행을 담당한 핵심 인원 6명에 대해 비자발급을 거부했다.
이 같은 조치가 홍콩 법에 저촉되는지 여부와는 별도로 최소한 홍콩의 이익과 자유도시라는 자긍심에도 손상이 간 것만은 분명하다. 이번 사건으로 홍콩이 중국 정부의 강력한 통제를 받는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홍콩은 1997년 중국 반환이 이뤄졌을 당시 내가 예상했던 것처럼 또 다른 상하이가 될 것 같다. 1949년 이전 영국의 조차지였던 상하이는 극동지역에서 가장 번성한 도시였다.
그러나 상하이가 중공 정권으로 넘어간 후 그 매력을 잃었다. 그동안 홍콩은 사업 중심지가 되어 상하이의 역할을 대신했고 아시아의 4마리 용중 하나가 되었다. 중국의 경제 개방과 함께 상하이는 다시 상업 중심지가 되었지만 1949년 이전과 같은 자유는 없다.
나는 홍콩이 반환된 후 베이징 정권이 홍콩을 간섭해 중국 대륙의 다른 도시처럼 만들어버릴까 우려했다. 자유가 없다면 홍콩은 그저 또 다른 상하이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홍콩은 정권에 완전히 흡수되지는 않았다. 민주화된 홍콩의 명성은 중국이 외국인 투자자들과 금융 전문가들을 흡인하는데 있어 독보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또한 홍콩인들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의지와 열정을 보인 것과도 관련이 있다. 놀랍게도 그들은 매년 6.4천안문사건을 기념해 왔다. 지난 2003년 7월 1일에는 50만 홍콩인들이 국가전복과 선동을 금지하는 ‘23조법안’을 반대해 거리로 나왔고 결국 이 법의 입법은 취소됐다.
물론 베이징 당권은 홍콩의 자유에 대한 간섭을 멈추지 않았고, 23조법안 이후에도 여러 일이 일어났다. 이번 션윈 사건도 그 연장선에 있지만 다른 면에서는 공산 정권의 취약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중공은 전통 중국문화를 봉건주의로 몰고 공산 혁명의 적으로 간주하며 철저히 파괴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바로 중공 통치의 첫 30년동안, 특히 문화혁명기간에 이뤄진 일이다.
중국 문화가 파괴된 후 중공은 공산 이데올로기에 근거해 당(黨)문화를 만들었다. 그러나 문화혁명 후 공산 이데올로기가 실패하자 중공은 다시 전통문화를 끌어내 당문화를 위장했다. 장예모 감독의 영화 ‘영웅’,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행사, 공자 학원 등이 전형적인 예다.
한 때 사람들은 중공의 문화를 중국 문화로 알았으나 문화는 사람을 속일 수 없는 것이다. 가짜 중국 문화가 점점 진정한 중국 문화로 대체된다면 가짜 문화는 설 곳이 없다. 그래서 중공 정권은 ‘중국 문화’에 대한 독점권을 확보하려고 애를 쓰는 것이다.
션윈예술단이 2007년 북미에서 처음 공연한 이후 중공 정권은 공연을 중단시키려고 갖은 수단을 동원했다. 이번 달에도 미국 아칸소주 리틀록에서 공연을 방해했다. 휴스턴 주재 중국 영사가 13페이지의 서명도 없고 날짜도 없는 서신을 아칸소의 한 극장에 보내 극장대관 취소를 요구했다. 이 서신은 조사를 위해 미연방수사국(FBI)으로 보내졌다.
이번 사건의 경우, 홍콩 정부가 그 동안 독립성을 유지했더라면 베이징 정권이 방해하더라도 션윈공연을 환영했을 것이다. 그러나 홍콩은 강압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중공 정권은 션윈이 전세계에 펼쳐 보이는 진정한 전통 신전문화(神傳文化)에 위협을 느끼고 있다. 중공 정권은 션윈 공연이 홍콩에서 열리면 그동안 사람들 마음에 심어놨던 모든 것들이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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