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중국에서 한국 교민이 ‘반간첩법’ 위반 혐의로 당국에 구금돼 1년 가까이 기약과 정보가 없는 '깜깜이 수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외 언론에 따르면 삼성전자 출신으로 중국 중국 동부 안후이성 허페이시에 거주하며 중국 반도체 업체에 다니던 50대 남성 A씨가 지난해 12월 자택에서 연행됐고, 지난 5월 정식 구속돼 허페이의 구치소에 갇혔다.
A씨는 삼성전자에서 오랜 기간 근무한 뒤 2016년 중국 반도체 업체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로 이직했다. 이곳에서 3년여간 근무한 그는 다시 이직해 현지 반도체 회사 2곳을 더 다녔다.
그동안 일부 외국인들이 체포되는 일은 있었지만 한국인이 개정된 반간첩법으로 구속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만 체포에 적용된 구체적인 혐의가 무엇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 잠옷 바람에 끌려가 수개월 연락 두절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에서 20년 넘게 일한 A씨는 과장 직함으로 퇴사했다. 이후 구직에 어려움울 겪다가 2016년 10월 지인의 소개로 CXMT에 입사했다.
그는 이 업체에서 4년여 동안 일한 뒤 2020년 많은 한국 직원과 함께 권고사직을 당했다. 그 뒤로는 중국 내 다른 반도체 회사 2곳에서 일했다. 그러다가 A씨는 작년 12월 허페이시 자택에서 잠옷 바람으로 중국 국가안전부 직원에 연행됐다.
가족은 A씨가 체포된 후 호텔에서 조사받고 있다는 통보만 들었을 뿐 그외 자세한 정황은 알 수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A씨가 5월 정식 구속돼 구치소에 수감된 뒤로도 드문드문 편지로 연락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 당국은 A씨가 CXMT 기술을 한국으로 유출했다는 혐의를 적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작 가족은 수사기관으로부터 A씨의 구체적인 혐의를 듣지 못했다. 사건 자료를 열람한 중국 변호사는 "중국 법상 사건 내용을 가족을 포함한 제3자에게 알릴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가족들은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A씨는) 회사에서 기밀에 접근할 위치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첨단기술을 빼돌리는 등의 간첩 행위를 했을 가능성은 사실상 전무하다”고 밝혔다. 한국의 반도체 기술이 중국보다 훨씬 앞선 점에서 보더라도 그런 행위를 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A씨는 10년 넘게 제2형 당뇨병을 앓고 있지만 구치소에 들어간 뒤 약 복용은 물론 매일 필요한 혈당 체크도 못 하는 상황이라고 가족은 전했다.
중국 구치소 측은 "한달에 두세 차례 혈당 측정을 한 결과 혈당 수치가 정상이어서 약 지급이 어렵다"고 답했다고 한다.
■ 인질외교?
이번 사건으로 중국서 활동하는 한국 기술 산업 종사자 등의 활동이 크게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한·미·일 밀착을 경계해 온 중국이 한국을 대상으로 ‘간첩 몰이’라는 새 협상 카드를 악용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중국은 그동안 주로 일본에 반간첩법을 적극적으로 적용하면서 외교 지렛대로 활용해 왔다. 중국에서 2014년 반간첩법이 처음 시행된 이후 일본인 최소 17명이 법에 따라 처벌됐다. 대부분 학자와 기업인이었다. 일본인에 대한 간첩죄 적용은 동중국해·대만 문제로 양국 관계가 악화하는 시기에 집중됐다.
중국에서 반간첩법 위반으로 구속된 외국인은 무죄 판결로 석방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반간첩법을 적용받은 일본인들은 기소 이후 예외 없이 유죄 판결을 받았고, 외교 협상을 통해서만 석방될 수 있었다.
■ 법 적용 범위 모호... 중국 내 활동·여행 위험
중국 정부는 2014년 반간첩법을 제정한 뒤 지난해 7월 간첩 행위의 정의와 적용 범위를 대폭 확대한 개정안을 시행했다.
여기엔 ‘반간첩법’ 위반 범위에 △중국 국가안보 및 이익과 관련된 통계자료나 지도 등을 인터넷으로 검색하거나 스마트폰·노트북 등 전자기기에 저장하는 행위 △군사시설과 주요 국가기관, 방산업체 등 보안통제구역 인접 지역에서의 촬영 행위 △시위 현장 방문 및 시위대 촬영 행위 △중국인에 대한 포교, 선교 등의 종교 활동 등이 포함됐다.
간첩 대상도 대만이나 미국뿐만 아니라 제3국으로 확대했다. 또한 공안이나 무장경찰 등이 간첩 행위 혐의자의 문서·데이터·자료·물품을 열람하고 수거할 수 있으며, 신체·물품·장소에 대한 검사를 할 수 있게 했다. 검사를 받는 개인과 조직은 외국인이라도 당국에 협조해야 한다.
반간첩법 개정안 시행으로 중국에서의 활동, 여행 등은 매우 큰 위험이 따른다. 적용 범위가 모호하고 광범위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고리’ 식으로 당국이 자의적 판단에 따라 누구나 체포당할 수 있는 상황이다.
예를 들어 한국인 관광객이 중국에서 △공공 관서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거나 △‘백지시위’ 같은 장면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거나 처음 가는 곳이어서 △스마트폰 등으로 정부 기관 등을 검색하다가 중국 당국이 ‘간첩’으로 몰면 처벌받을 수 있다.
디지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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