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양쯔강 유역에서 지난 6월부터 계속된 폭우로, 중국 27개 성은 심각한 수재와 사상 최고 수위(水位)의 홍수가 발생했다.
싼샤댐 측은 지난 지난 8월 20일 자기방어를 위해 11개의 수문을 개방했는데, 방류량이 초당 49,200㎥에 달해 역사적 신기록을 수립했다.
이로 인해 하류의 쓰촨성, 장시성, 후베이성 등 지역은 드넓은 물바다가 되어 백성들은 큰 고통과 괴로움에 시달렸다. 현재의 싼샤댐은 수년 전에 했던 말 한마디에 딱 들어맞는 것으로 ‘국가와 민족을 해치는(禍國殃民) 토목공사’이다.
황허와 양쯔강은 중국 민족 용맥의 상징으로 여겨져, 중국인을 용의 후손이라고도 한다. 싼샤댐 건설은 1994년 12월에 착공하고 2009년 말 완공되어 15년 동안 지속됐다. 양쯔강 한가운데에 댐을 건설한 것은 용의 허리를 끊어 죽이는 것과 다름없으며, 백성에게 해를 끼치고 자연을 파괴하는 등 헤아릴 수 없는 천고의 죄업을 짓는 것이다.
■ 천고의 죄악으로 점철된 싼샤댐 공정
싼샤댐의 수석 설계자이자 중공 양원(중국과학원과 중국공정원) 원사(院士)인 판쟈정(潘家铮) 역시 싼샤 프로젝트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일찍이 싼샤 프로젝트의 ‘20가지 죄상’을 열거했는데, △엄청난 양의 땅과 숲 매몰, △인권을 침해하는 강제 이주, △지진 유발, △문화 유적 매몰, △수질 악화, △항행 방해, △댐의 붕괴 위험 등으로 건설해서는 안 된다고 믿었다.
판쟈정은 싼샤 프로젝트 건설에 참여한 후 이주민 상황을 직접 겪었다. 그는 “그야말로 전염병과 큰 전투의 전야처럼, 곳곳이 어질러져 있고, 혼란스럽고 처량한 곳이었다.”고 회고하며, 이에 대해 주민들에게 “매우 죄송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죄업은 이뿐만이 아니다. 싼샤 프로젝트가 시작되자, 내부에서는 더러운 정치 투쟁과 은밀한 금권거래가 오갔다. 댐 건설로 예견된 재난피해는 양쯔강 유역 주민들의 머리 위에 걸린 예리한 칼과 같았다.
그러나 판쟈정은 그 해 싼샤 평가 보고서에서 기존의 주장과 달리 싼샤 프로젝트에 대해 “양쯔강의 강철 만리장성이며 품질이 매우 좋아서, 만 년 동안은 붕괴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2012년 7월 13일 사망한 판쟈정은 일찍이 『싼샤의 꿈』에서 자신이 꾼 악몽을 이야기했다.
그에 따르면, 국제생태환경재판소에서 자신이 재판을 받는 꿈을 꾸었는데, 그는 싼샤댐 설계, 건설을 주도함으로써, "인적(人籍) 제명, 마도(魔道) 추락, 지옥(地獄) 추방, 능지(凌遲)처참을 선고받았다.
불가(佛家)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육도윤회(六道輪回)가 있으며, 사람이 생전에 지은 죄와 업은 사후에 모두 갚아야 한다. 판쟈정의 악몽은 하늘이 그의 사후 운명을 사전에 명백하게 알린 것으로 볼 수 있다.
판쟈정이 응보를 두려워하고 죄업이 심중함을 깊이 느꼈기 때문에, 이 악몽을 공개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지난 7월 24일, 싼샤댐 설계사 정소우런(鄭守仁)이 우한에서 병으로 사망했다. 관영매체는 그가 어떤 병을 앓았는지 등 구체적 사인은 밝히지 않았다.
정소우런은 중국공학원의 원사(院士·academician)로, 양쯔강 수리위원회 수석기술자로 일했으며, 우강(烏江) 도선장, 꺼조우댐(葛洲壩) 물길의 돌림(導流), 막이(截流) 공사를 잇달아 설계했고, 꺼허옌(隔河岩 수력발전소) 현장 전 과정의 설계를 맡았다.
그는 또 1994년 12월, 싼샤댐 건설이 시작되자, 이 프로젝트 설계를 담당했으며, 건설 현장에 오랫동안 머물렀다.
당시 학자이자 전문가였던 판쟈정은 처음에 올바른 판단을 내렸고, 심지어 싼샤 프로젝트의 20가지 위험에 대해서도 밝혔다. 그러나 그의 양심은 안타깝게도 당원이라는 지위로 인해 오래가지 않았다.
중국에서 많은 사람은 당의 일관적이고 현명하고 올바른 정책 혼조로 인해 피가 끓어오르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객관적 법규와 도덕적 이념이 우리에게 통용되지 않는다고 말할 때, 다음과 같은 전형적 당 논리가 기괴하게 나타날 것이다.
첫째, 과학은 전능하므로 인간은 반드시 하늘을 정복한다. 둘째, ‘20가지 죄상’이 있다고 댐을 건설하지 않을 수는 없다. 셋째, 싼샤댐 반대 세력은 주로 서방의 반대 세력에 의존한다.
따라서 판쟈정은 기존의 양심적인 입장을 바꿔 ‘중국인을 대표하여’ “강은 결코 자유롭고 도도하게 흐르도록 허용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판쟈정(潘家錚), 치앤정잉(錢正英) 등은 싼샤댐 건설의 완고한 핵심 지지자가 되었고, 심지어 싼샤댐을 반대하는 이들에게 대단히 화를 냈다.
2007년, 판은 리루이(李銳) 원자력·수력발전부(原水電部) 부부장에게 싼샤 프로젝트에 대한 반대의견을 더는 내놓지 말라고 통지했다.
■ ‘지옥에서 형벌 받는 꿈’을 꾼 싼샤댐 권력자 장쩌민
장쩌민 전 중국 국가주석은 1989년 ‘6·4 톈안먼 학살’로 세력을 키운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베이징에 도착한 후, 권력을 굳히기 위해 싼샤댐 착수를 지지하도록 당원 전원을 강요했다.
장쩌민은 황완리(黃萬里)와 리루이(李銳)가 글을 올려 싼샤댐 건설을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을 위협하여 입을 막았다.
장쩌민은 자신이 무간지옥에 떨어져 그곳에서 형벌을 받는 꿈을 꾸었다고 실토했다. 그는 6·4 톈안먼 학생 대학살과 파룬궁을 박해한 끔찍한 범죄로 판쟈정보다 더 일찍 지옥에 떨어지는 악몽의 계시를 받았다.
2004년 6월 5일 오전 8시 반경, 장쩌민은 안후이 구화산(九華山) 전단림사(旃檀林寺)로 급히 갔다. 내부 폭로에 의하면, 전날 출발한 장은 안절부절하며 심기가 불안했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하루에 이틀 길 가듯이 구화산으로 달려갔다.
나중에 장쩌민은 그 전날, 자신이 무간지옥에 떨어져 형벌을 받는 매우 두려운 꿈을 꿨다고 밝혔다.
민간에서는, 장쩌민은 톈안먼 학살과 파룬궁 박해 죄로 이미 지옥에 떨어졌고, 싼샤댐에 대한 죄가 더해졌다고 추측한다. 불교에 따르면, 죄가 무거워 구도할 수 없는 자는 형신전멸(形神全滅)한다.
■ 싼샤댐은 과학 문제가 아니라 중공의 문제
리루이(李銳)와 황완리(黃萬里)는 싼샤 프로젝트 반대파의 양대 원로다. 마침내 그들은 싼샤 문제가 실제로는 과학, 민생 및 경제 문제가 아니라, 중공 자체의 문제임을 심각하게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리루이는 “(중공 체제에서는) 올바른 의견은 거부되고 잘못된 의견이 환영 받는다”라고 말했다. 인재의 사용에 대해 말하자면, 좋은 사람은 도태시키고 나쁜 사람은 기용한다는 것이다.
싼샤 프로젝트 반대자로 알려진 전문가들은 다수가 해외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어느 정도 엄정하고 객관적이며 서구화된 인식을 가지고 있다.
황완리는 미국 일리노이 대학교 공학 박사이자 간쑤성(甘肅省) 수자원국 국장 겸 수석 엔지니어다. 그는 80년대에 이미 “국가와 민족의 재앙인 싼샤댐 건설 중단 정책 결정을 요청함”이라는 댐 건설 반대 보고서를 제출했다.
황완리는 또한 그해 정책 결정자에게 싼샤댐 건설이 절대로 불가하다는 이유를 진술하기 위해 30분간의 면담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황완리는 댐을 건설하면 결국 붕괴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는 싼샤댐 건설이 가져 올 △이상기후, △지진빈발, △생태악화, △심각한 수재 등 엄중한 12종의 재난을 예고했는데, 그중 현재 11개 항목이 들어맞았다. 마지막 남은 항목은 ‘댐 붕괴’인데, 아마도 기일이 멀지 않을 것이다.
허우쉬에위(侯學煜)는 미국 펜실베니아 주립대학 박사, 중국과학원 원사(院士, academician)다. 그는 싼샤 프로젝트 생태환경 평가팀의 멤버이지만, 이 팀의 평가 보고서에는 그의 서명이 없다.
"생태 환경과 자원에 미치는 영향을 관찰해보면, 나는 싼샤 프로젝트가 아침, 저녁의 문제가 아니고, 댐의 높낮이 문제도 아니며, 근본적으로 필요한가, 불필요한가의 문제라고 본다." 이것이 그가 서명하지 않은 이유다.
저우페이위앤(周培源)은 미국 캘리포니아 공과대학 박사이자 중국과학원 원사, 과학원 부원장이다. 그의 의견은 두 가지 요점이 있다. 첫째는 ”준설 문제로, ........ 댐의 꼬리인 충칭 일대의 토사 문제에 대한 좋은 해결책이 없다“는 것이다. 둘째는 ”배가 댐을 지나는 데만 다섯 단계의 수문을 지나야 하는데...... 그 중 어느 한 단계에 문제가 생기면 이 황금수로(黄金水道: 양쯔강을 지칭)에서 항행이 중단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루친칸(陸欽侃)은 콜로라도대학 수리학 석사이자 전국 정협위원, 싼샤 프로젝트 평가위원회 홍수방지팀 고문이었으나, 보고서에 그의 서명은 없다. 그의 견해는 이렇다. “싼샤 프로젝트 건설은 ... <머리 위에 물 대야를 이고 있는> 것과 같이 우한(武漢)을 보면 이미 홍수 수위를 낮출 수 없으며, 그 부근 유수지의 저장량을 줄일 수도 없다. 하류 지역인 장시(江西)와 안후이(安徽)는 더욱 어떻게 해 볼 방법이 없다.”
싼샤 프로젝트에 관해 실질적 평가, 분석을 거친 후, 진실을 말하는 체제 내 인사들이 반대 의견 제출을 고수하기도 했다.
원자력·수력 발전부(原水電部) 부부장이자 중앙조직부 상무 부부장인 리루이(李銳)는 줄곧 싼샤 프로젝트를 확고하게 반대했다. 인민대표대회가 싼샤댐 방안을 통과시킨 후 중국공산당(중공) 최고정책 결정 기관에 이의서를 제출했다.
상무부(商业部) 전임 부부장 왕싱랑(王興讓)은 싼샤댐 건설로 인한 주민 이주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싼샤 프로젝트로 이주민 후유증이 발생했다. 그것은 이전의 어떤 건설공사 (이주민 문제)와도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매우 심각하다.”
『중국청년보』 편집장 양랑(杨浪)은 일찍이 ‘다모클레스의 칼’이라는 글을 써, 국방 관점에서 싼샤 프로젝트에 대한 질의를 제출했다. 또 싼샤 프로젝트에 반대한 저명한 경제학자 마오위스(茅於軾)도 있다.
* ‘다모클레스의 칼’은 ‘신변에 언제 닥칠지 모를 위험’을 뜻한다. 고대 시칠리아섬 도시국가 시라쿠사의 왕 ‘디오니시오스’가 국왕의 영화를 질시하는 다모클레스를 왕좌에 앉히고 그의 머리 위에 머리카락 하나로 칼을 매달아 놓아 왕에게는 항상 위험이 따른다는 것을 가르쳤다는 고사에서 유래됐다.
■ 싼샤댐은 나라와 민족의 재앙
2012년 4월, 중국 재정경제 웹사이트는 『나라 안정 컨설팅 : 싼샤 프로젝트는 밑 빠진 독』이라는 공문을 발송해 ‘싼샤댐은 중국 역사상 가장 큰 초특급 공정 중 하나인데, 투자 규모가 거대할 뿐만 아니라 남겨진 문제 또한 엄청나다’고 지적했다.
수리(水利) 전문가 왕웨이뤄(王維洛) 박사는 『싼샤그룹에 대한 반격 : 수익 과장, 손실 회피』라는 글에서, 싼샤 프로젝트 투자금 중 1,800억 위안은 국민이 납입한 기금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민중들은 현재까지 기금에 대한 원금과 이자를 전혀 받지 못했고, 중공은 근본적으로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
2014년 5월, 중국 언론은 또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1994년 싼샤댐 건조 시작 후 20여 년이 되기까지 전국 민중은 공사비로 누계 5천억 위안이 넘는 인민폐를 냈지만, 전력 사용의 편리함조차 누리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매년 한발과 고온, 홍수, 지진 등 각종 재난에 시달리고 있다.”
중공 심계서(審計署: 국무원 소속 회계 감사기관)의 2013년 6월 발표에 따르면, 싼샤댐 건설과정에서 모두 76건의 위법행위와 경제사범이 적발됐다. 연루자는 113명, 규정 위반 금액은 인민폐 34억 4천 5백만 위안에 달한다.
소식통은 싼샤 프로젝트 팀이 횡령한 거액의 자금은 부동산 개발에 유용됐고, 불법 모금 자금 대부분은 장쩌민 그룹으로 들어갔다고 폭로했다.
중공 순찰반과 심계서도 싼샤 프로젝트는 이미 개인 위주로 이루어지는 이익 창출 기구로 퇴락했고, 국유자산 점유, 공공자원 농단, 탐욕과 부패는 거의 통제가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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