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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과 리커창의 관계... 심복인가? 적인가? (1)

편집부  |  2017-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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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H] 지난 15일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와 중국 인민정치협상회의)가 폐막했다. 이와 관련해 일부 언론들은 양회에 참석한 시진핑과 리커창 사이의 ‘균열’을 보도하면서 서로 적대적인 관계인 것처럼 보도했다.


그렇다면 이들의 실제 관계는 어떤 것일까? 시사평론가 샤샤오창(夏小強)은 중국 공산당의 전제정치로 인해 ‘변이’된 형태의 중국 정치 내부에서 현 정권 지도부의 움직임과 파벌투쟁의 영향을 받고 있는 중국 내외의 중문 언론의 실태를 지적했다.


중국 제12회 전국인민대표대회 제1차 회의(2013년 3월 개최)에서 시진핑은 국가주석으로, 리커창은 국무원 총리로 각각 정식 취임했다. 그러나 이후 일부 해외 언론은 시진핑과 리커창 사이에 균열이 생겨 서로 적대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지난해 8월 개최된 비공개 베이다허(北戴河) 회의 전후로 ‘중국밀보(中國密報)’등 중국 공산당(이하 중공) 내 장쩌민 파벌이 조종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해외 중문언론은 잇따라 “시진핑이 리커창의 국무원 실권을 빼앗는 등 이들 사이에 권력투쟁이 진행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반면 지난 12일 홍콩 ‘경제일보’는 이달 3일부터 15일까지 개최됐던 양회에서 “최고인민법원과 최고인민검찰원의 보고 중 시진핑과 리커창이 친밀감을 드러내기라도 하듯 자주 손짓을 섞어가며 대화했다”고 보도했다.


그렇다면 장쩌민 파벌이 조종하는 언론은 왜 ‘균열’을 보도할까?


현재 세계 대부분의 국가는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의 두 정치제도를 채용하고 있다.


대통령제는 국가원수 또는 행정권의 주체인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정치 제도로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빨리 대통령제를 도입했다.


의원내각제는 내각의 수장인 총리가 국회에서 지명되고 내각은 국회를 모체로 성립되어 국회의 신임에 의해 존립하는 제도이다. 또 의원내각제에서는 대통령 등 국가원수는 일반적으로 의례적인 역할만 하고 실질적인 행정권은 갖지 않는다. 영국과 독일 등이 이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한편, 중국의 현 정치제도를 보면 표면적으로는 의원내각제에 해당된다. 국가 주석은 실질적인 행정권을 갖지 않고 정부의 최고 수장은 국무원 총리다. 그러나 공산당 정권하의 중국은 실제 이러한 제도를 시행하지 않고 있다.


예를 들면 현 민주 또는 헌정제도를 실시하고 있는 서방국가에서는 하나의 주(州)나 성(省)의 최고 행정장관은 주지사나 성장이다. 그러나 중국에서 성장이나 시장은 명의상 최고 행정장관이지만 성의 공산당위원회 서기 또는 시 당위원회 서기의 지시를 받는다. 그러나 성의 당위원회 서기를 포함한 각급 ‘서기’는 실제 국가정부의 직무가 아니라 중공 내 직무다.


중공의 지부 서기 제도는 1920년대 후반 마오쩌둥이 내건 ‘연대 위에 (당) 지부를 세우자’, ‘당이 총을 지휘한다’는 군이 공산당의 절대적 지배하에 있다고 하는 사상에서 비롯됐다.


1949년 중공이 정권을 잡은 후 이 사상은 한층 더 심화돼 중국 전역으로 확대됐다. 그 결과 ‘성의 최고 행정장관은 성장이 아닌 당 위원회 서기’라는 매우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현재 중국의 각 성, 시, 구, 현, 촌에는 각급 레벨의 ‘당위원회 서기’가 있다. 그러므로 중국의 현 정치제도는 정상적인 국가와 사회의 정치제도가 아니라 변이된 정치제도다. (계속)



김주혁 기자   ⓒ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soundofho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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