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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쩌민 심복으로 정상에 오른 ‘그림자 보스’ 쩡칭훙 (2)

편집부  |  2017-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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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쩡칭훙(曾慶紅)

[SOH] 20년 전 한 지방의 부국장이던 쩡칭훙은 국가부주석으로 승진하는 이례적인 출세의 길을 걸었다.


쩡 씨는 1989~1993년까지 중앙 판공실 부주임을, 1993~1999년까지 중앙 판공실 주임으로 각각 지냈다. 중앙 판공실은 중난하이의 당・정부고관의 일상생활과 사무 환경, 안전 경비 등 전반적인 관리를 담당하는 기관으로, 보통 그 주임은 중앙 지도자가 가장 신뢰하는 인물이 맡게 된다.


쩡 씨는 1999~2002년에는 중앙 서기처 서기, 중앙 조직부장으로 임명되어 인사권을 장악했고, 2002년에는 정치국상무위원이 되어 권력의 중추에 진출했다. 쩡은 이듬해인 2003년, 국가부주석으로 취임함과 동시에 중앙 홍콩 마카오팀 책임자가 되어 홍콩 지역의 실질적인 수장이 되었다.


쩡칭훙이 이 같이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데에는 명·청대의 궁정 권력투쟁에서 배운 ‘특무 정치’, 즉 ‘풍부한 인맥과 특무수법의 권모술수’가 큰 도움이 됐다.


중국 관료의 부패는 덩샤오핑 시대의 개혁개방 무렵부터 이어오던 문제였다. 장쩌민 집권시기에는 이 문제를 단속하기는커녕 오히려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장쩌민 정권은 관료의 부패를 방임하는 한편 부정부패 증거를 수집해 ‘개인 비밀파일’을 작성하고, 그것을 이용해 부패 관료를 복종시켜 정치적 거래를 통해 권력을 자신에게 집중시켰다. 장쩌민은 자신을 추종하는 관료를 차례로 중요 위치에 발탁해 정치를 사유화했다.


이로 인해 방임된 부패가 당과 정치기관에 만연하면서 배금주의가 퍼졌다. 장쩌민과 쩡칭훙이 20년에 걸쳐 서로를 이용한 결과, 중국은 역사상 가장 부패가 횡행하는 참혹한 국가로 전락했다.


장쩌민은 당 총서기로 취임했지만 그가 총서기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던 데에는 안전정보시스템을 이용해 통치를 유지한 쩡칭훙의 역할이 컸다. 다시 말해 쩡은 장의 생명줄이었다.


쩡칭훙은 겉으로는 정보시스템 주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부모가 남긴 넓은 인맥을 통해 중앙판공실 주임, 조직부장 등에 있을 때의 인맥, 그리고 ‘석유방’, ‘상하이방, ‘장가방(江家閥)’, 자신의 출신인 강서방(江西閥)’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정보 스파이 계통에 전면적으로 개입해 거대한 정보제국을 구축함으로써 중국 공산당 정보 스파이 계통의 그림자 보스로 군림하게 됐다.


쩡칭훙이 정치국에 진출했을 때 정치국 상무위 통일전선은 자칭린, 공안, 국안(중화인민공화국 국가안전부)은 뤄간과 저우융캉이 담당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모두 ‘장가방’의 일원이었다.


쩡칭훙의 소꿉친구인 여성간부 류옌둥(劉延東)은 일찍이 “해외정보 수집에서 통일전선을 능가하는 것은 없다. 국안은 중국에 대한 외국의 첩보활동을 방지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라고 발언했다. 류옌둥이 통일전선 부장을 맡고 있던 2002년부터 2007년은 쩡칭훙이 정보계통을 해외까지 확장했던 시기와 일치한다.


홍콩에서 중국 공산당의 첩보활동은 이전부터 존재했고 1997년 홍콩반환 전이 최대 활동시기였으며, 이 때는 각 계통의 정보기관들이 혼재해 가장 혼란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2003년 7월, 홍콩에서 ‘기본법’ 제23조에 반대하는 시민 약 50만명이 모여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중국 공산당은 이러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18개 부문의 중앙홍콩마카오공작협조 팀을 조직하고 국가부주석인 쩡칭훙을 그 책임자로 앉혔다. 쩡칭훙은 이 때 이전의 각 정보기관을 인계한 후 재편성해 대규모 안전정보시스템을 구축했다. 쩡칭훙이 설립한 일련의 정보시스템은 그가 은퇴한 후에도 계속 유지되고 있다. (끝)

 


김주혁 기자   ⓒ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soundofho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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