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쩡칭훙(曾慶紅)은 중국 국가안전정보시스템을 좌지우지하는 인물이었지만, 해당 정보시스템과 첩보활동을 장악한 지위에까지 오른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쩡칭훙은 어떻게 국가안전정보시스템을 좌우지할 수 있었을까?
쩡칭훙의 부친 쩡산(曽山)은 중국 공산당 첩보 시스템의 내무부장을 지냈다. 중국 본토에서 발매 금지된 쭝하이런(宗海仁)의 ‘제4대(중국 현 지도부의 성장과정, 특징, 사회배경, 인간관계, 정치관 등이 정리된 책)’에는 쩡산이 내무부장 재직 당시 명나라와 청나라 자료를 깊이 탐독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부친의 영향을 깊게 받은 쩡칭훙은 명과 청의 궁중 비사에 관심을 가졌는데, 그 중 특히 적대적 인물에게 어떻게 손해를 입힐지와 권력투쟁에서 자신의 입지를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에 관심이 많았다. 어릴 때부터 궁중 비사에 관심이 많았던 쩡은 아마 ‘특무의 보스’가 되는 것을 숙명으로 여겼던 것 같다.
마오쩌둥의 심복 캉성(康生)처럼 쩡칭훙은 장쩌민의 심복이 되었다. 그는 어떻게 그 자리에까지 올랐을까?
1984년 석유 외부사국 부국장을 맡고 있던 쩡칭훙은 아버지 쩡산의 옛 부하였던 천궈둥(陳國棟) 상하이시 서기와 왕한다오(汪涵道) 상하이시위 서기의 도움으로 상하이 조직부(인사부) 부부장으로 전직했고, 그 후 불과 수개월 만에 부장으로 승진했다.
1년 후 천 서기와 왕 서기는 은퇴했고 루이싱원(芮杏文)과 장쩌민이 각각 상하이시 서기와 상하이 시장으로 취임했다. 쩡칭훙은 당시 상하이의 인사조직에 대한 대담한 개혁을 실시했는데, 루이싱원은 쩡의 정치 수완을 인정해 그를 시위 부서기로 승진시켰다.
루이싱원과 장쩌민은 견원지간이었다. 87년 말 상하이 출신의 장쩌민은 타 지역출신이던 루이싱원을 상하이에서 내쫓고 그가 맡았던 상하이시 서기 자리를 차지했다. 당시 시 부서기는 우방궈, 황쥐, 쩡칭훙이었는데, 장쩌민은 그들 중 상하이 출신의 황쥐를 신임했지만 장쩌민이 후에 중난하이로 입성할 때는 쩡칭훙을 데리고 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덩샤오핑에게 갑자기 발탁된 장쩌민은 불안한 마음으로 베이징에 입성했다. 그것은 자신이 후야오방이나 자오쯔양에 비해 자격도, 실력도 전혀 미치지 못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다 할 실적이 없다면 후야오방이나 자오쯔양처럼 실각할까봐 두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장쩌민은 황쥐를 마음에 들어했지만 황쥐는 베이징에서는 아무런 힘도 되지 않는다. 이때 장쩌민의 눈에 띤 것이 쩡칭훙이었다.
상하이에서 쩡칭훙이 기발한 정치수완을 발휘한 것도 있지만 장쩌민에게 더 중요했던 것은 쩡칭훙의 태자당(중국 공산당 혁명 원로의 자제와 친인척들로 구성된 정치 계파) 인맥이었다. 이것은 장쩌민이 갖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쩡칭훙의 인맥은 실로 폭넓다. 부친인 쩡산은 중공 동남국, 화중국 조직부장을 역임한 후, 방적부장, 상업부장, 교통부장, 내무부장을 역임해 쩡칭훙에게 강력한 인맥을 남겼다. 모친인 덩류진(鄧六金)은 일찍이 중국 공산당 화동국 기관 보육원 설립 준비 책임자와 원장이었고, 여기서 정부 고관의 자제 1000여명이 덩류진의 도움으로 자립해갔다. 이른바 ‘태자당의 요람’이라는 이름을 얻었던 이 보육원을 통해 쩡은 어머니에게서도 태자당 인맥을 승계했다.
마오쩌둥의 심복 캉성은 자신의 인맥이 아닌 마오쩌둥의 위신을 이용해 특무 보스로 군림했다. 중국 공산당은 1935년 즈음 상하이에서 길거리에 헤매고 있던 마오쩌둥의 두 아들을 찾아냈다. 그들을 프랑스를 통해 모스크바로 보내기 위해 상하이발 마르세유행 배에 태웠다. 통지를 받은 캉성은 마르세유항까지 일부러 마중을 나가 마오의 아들을 모스크바로 데려다 주었다.
캉성은 이와 같은 마오쩌둥의 가족에 대한 세심한 배려를 통해 신뢰를 얻었다. 그 후 캉성은 이렇게 얻은 권력에 힘입어 제멋대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쩡칭훙의 경우는 이와 전혀 다르다. 쩡의 주군인 장쩌민은 털끝만큼의 권위도 없었기 때문에 장은 쩡이 가진 인맥이 무엇보다 필요했다. 그 때문에 장쩌민과 맺어진 쩡칭훙도 이후 거침없이 출세할 기회를 잡았다.
장쩌민은 그에게 후원자가 되어줄 인물도 배경도 없었지만 인맥이 풍부한 쩡칭훙이 그의 손발이 되어 자신의 발판을 굳혀 권력을 잡을 수 있었다. 쩡칭훙으로 보면 장쩌민의 권력을 다지는 것이 자신의 정치 자본을 축적하는 면도 있었다. (계속)
김주혁 기자 ⓒ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soundofhop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