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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신화통신 홍콩 지사장, 생전 귀향의 꿈 이루지 못하고 유골 고향에 묻혀

편집부  |  2016-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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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쉬자툰(许家屯) 전 신화통신 홍콩 지사장

[SOH] 쉬자툰(许家屯) 전 신화통신 홍콩 지사장의 유골이 지난 2일 중국에 도착, 그의 고향인 장쑤성 리바오(李堡)진에 안장됐습니다. 쉬 전 지사장은 톈안먼 사건 이후 미국에서 망명생활을 해오다 지난 6월 29일 로스앤젤레스에서 지병으로 사망했습니다. 향년 100세로 생을 마친 그는 ‘죽기 전 고향 땅을 밟고 싶다’던 소원을 결국 이루지 못했습니다.


쉬 지사장은 톈안먼 사건 후 국외로 탈출한 중국 고관 중 최고위 인물로, 사건 당시 중국 공산당 홍콩・마카오 공작 위원회 서기와 신화통신 홍콩 지사장을 겸임한 홍콩 당 간부의 수장이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중앙 인민정부 홍콩특별행정구 주재 연락판공실 주임에 해당합니다.


1989년 학생들의 민주화 운동이 고조됐을 때, 쉬 지사장의 생각은 당시 중국 공산당 최고 지도자였던 자오쯔양의 의견과 일치했습니다. 그들 두 사람은, 학생 운동이 애국 운동이며 대화로 해결해야 한다며, 무력진압을 반대했습니다. 때문에 그는 중앙정부의 학생운동 탄압에 대한 베이징 주재 홍콩 기관의 반대의견 표명을 묵인했습니다.


1989년 5월 20일 베이징에 계엄령이 선포됐을 당시, 쉬 지사장은 홍콩 문회보가 ‘개천창(開天窓)’으로 중국 당국에 비난을 표명하고, 21일 지면에서 단지 ‘깊게 후회하고 비분한다(深悔悲憤)’라는 제목의 공란 기사를 게재한 것도 묵인했습니다. ‘개천창’이란 당국의 검열로 신문기사가 삭제되어 해당 부분이 공백으로 남겨진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그는 자신의 회고록에 “당시 홍콩인들이 중국 당국에 청원하기 위해 신화사 사무실 아래에 모여 큰 소리로 구호를 외치던 것을 듣고 감격한 나머지 흐느껴 울었다”고 기록했습니다.


1989년 6월 4일, 베이징 당국의 학생운동 무력 진압으로 ‘64 톈안먼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쉬 지사장은 ‘침통한 호소(沈痛的呼吁)’라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그는 성명에서 “우리는 수도에서 발생한 유혈탄압, 애국자인 학생과 인민을 살해한 폭력행위에 대해 매우 분개하고 있다! 우리는 애국자인 동포의 죽음에 대해, 6월 5일 하루 온갖 형태로 애도의 뜻을 표할 것을 호소한다”고 밝혔습니다.


톈안먼 사건 후, 중국 당국은 학생운동을 지지한 인물을 차례로 처분했습니다. 90년 초, 쉬 지사장 역시 신화통신에서 파면됐고 4월말에는 미국으로 탈출했습니다. 91년 그는 당적을 박탈당했고 인민대회 상임 위원직에서도 해임됐습니다.


그는 자신의 망명에 대해 “만약 그 때 출국하지 않았으면, 장쩌민과 리펑에 의해 구속되어 조사를 받았을 것이고, 자오쯔양처럼 죽을 때까지 연금됐을 것이다. 어쩌면 자오쯔양보다 더 큰 곤욕을 치렀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쉬 전 지사장은 지난 20여 년의 망명생활 동안 항상 귀향을 소망해왔습니다.


후진타오 시대에 그는 ‘살아 있는 동안 꼭 고향땅을 밟고 싶다’는 희망을 전했지만, 중국 측은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는 대답으로 일관했습니다. 2004년 그의 아내가 난징에서 사망했을 때 그의 딸은 당국에 부친의 귀국을 신청했지만, ‘당분간 보류’라는 이유로 불허됐습니다.


지난해 3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99세의 생일을 맞았을 때도 그는 여전히 중국에 돌아갈 희망을 버리지 않았고, 지난 5월에는 다시 베이징 지도층과 협상했지만, 결국 그는 사후에 중국에 묻히는 것만 허락됐습니다.


쉬 지사장은 지난해 초 해외 중국어 매체 명경망(明镜网)과의 인터뷰에서 “18대(중국 공산당 제 18회 전국대표대회) 전에는 중국에서 내란이 일어날 것을 우려했지만, 시진핑 시대가 된 후 중국 정세에 상당히 낙관적이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장쩌민 시대에는 위에서 아래까지 ‘호랑이(거물급 부패관료)’와 ‘파리(말단 부패 공무원)’가 도처에 나타났지만, 시진핑 정권의 반부패 정책으로 보시라이, 저우융캉, 쉬차이허우 등 거물급 고관이 잇따라 법의 심판을 받자, 추후 ‘더 거대한 호랑이’ 사냥시에는 귀국할 수 있다는 소망을 피력하기도 했습니다.

 

[ⓒ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soundofho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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