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16주년을 맞이하게 되었지만 당시 민주화운동에 참가했던 사람들의 기억 속에 피비린내 나는 탄압장면은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 있다. 중국인들은 유혈진압을 명령했던 덩샤오핑이 죽으면 6.4사건을 재평가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학생들의 피를 딛고 덩샤오핑의 후계자로 발탁된 장쩌민은 덩샤오핑보다 더 사악한 독재자였다. 그리하여 중국 국민들은 또 장쩌민이 퇴임하기를 기다리면서 새 황제 후진타오에게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후진타오가 장쩌민보다도 더 심한 폭군일 줄은 누구도 상상 못했다. 후진타오는 중국 최고지도자 자리에 앉은 뒤, 민주인사, 파룬궁, 기독교를 탄압하고 언론 통제를 강화했으며 북한과 쿠바를 따라 배워야 한다고 하면서 ‘중국의 김정일’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리하여 6.4를 재평가 받으려던 중국인들의 기대는 또다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6.4천안문사건 당시 중국공산당 정부에 환상을 품었던 지식인과 학생들은 ‘애국’과 ‘개혁’이라는 두 가지 구호를 외쳤다. 이른바 개혁이란 공산당의 집권을 유지하는 상황에서 부분적인 변화를 일으키자는 것이며 애국은 더구나 공산당이 정권유지 방패로 이용하고 있는 구호이므로 이 두 가지 구호에는 모두 공산당 통치의 합법성을 승인하는 요소가 들어 있었다.
6.4민주화운동은 왜 실패했는가? 독재자들의 피비린 진압은 더 말할 것도 없는 원인이지만 희생자들의 각도에서 말하면 중국공산당의 사악한 본질을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학생들은 공산당 독재정권을 뒤엎어야만 민주와 자유를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르고 인민대회당 앞에 꿇고 앉아 간언하며 황제가 은혜를 베풀어 주기를 기다렸다.
중국 문제 전문가 뉴욕주립대 마크 셀든 교수는 이에 대해 “1989년 민주화 운동 인사들은 신하가 조정에 간언하는 보수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동유럽의 민주운동과 비교하면 중국 학생들은 중국공산당 통치의 합법성에 의심을 가지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폴란드, 체코, 헝가리 등 국가의 민주운동은 공산당과 대치하여 최종적으로 공산당 정권을 뒤엎는데 성공했다”라고 평가했다.
당시 학생들은 아직 어렸으므로 공산당의 사악함을 잘 모른다고 해도 이해가 가지만 1949년 중공이 정권을 잡은 뒤, 직접 보고 듣고 몸으로 겪은 선배 지식인들도 여전히 공산당에 환상을 품고 있었다는 것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중국 1세대 지식인들은 여전히 공산당에 충성해야 한다는 노예 관념을 가지고 있으며 현재 2세대 지식인들도 공산당과 충분히 대화하는 관용 정신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셀든 교수는 “다당제를 요구하고 공산당 일당 독재를 반대한 동유럽국가 국민들에 비해 중국 국민들은 너무 온순하다”고 했는데 사실은 중국공산당에 환상을 품고 있는 중국인들을 비평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환상은 결과적으로 탄압과 대학살이 발생하게 했다.
6.4사건은 올해로 16주년을 맞고 있지만 중공에 대한 중국인들의 환상은 여전하며 ‘공산당이 없으며 중국이 혼란해질 것’이라는 황당한 이론과 ‘공산당이 없으면 새중국이 없다’는 관점을 보유하고 있다. 때문에 후진타오가 중국 공산당을 수호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우둔한 지식인들이 공산당 정권을 수호하고 있다고 해도 과분하지 않다.
늑대가 양으로 변하길 기대하는 동곽선생은 끝내는 늑대의 밥이 되고 만다는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간단한 이치가 아직도 중국인들의 보편적인 인식이 되지 못하고 있다면 6.4에서 희생된 민주인사들에게 미안하지 않을 수 없다.
글/ 차오창칭(曹長靑, RFA)
對중국 단파방송 - SOH 희망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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