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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낙태와 어린이 박해

관리자  |  2005-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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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임신중에 있거나 아기를 이미 낳았거나를 막론하고, 어머니와 자식간의 유대관계는 신성한 것이며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것이다. 중국 강제노동수용소는 이 유대관계를 무시할 뿐만 아니라, 이를 임산부나 어머니들이 파룬궁에 대한 신념을 포기시키는 교묘한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한 사례를 들어보자. 노동수용소 한 중국 관리가 왕리솬(王麗萱, 27)의 갓난 아들을 고문으로 죽였다. 그 때 어머니 왕리솬의 고통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다. 이후 왕리솬 역시 고문치사 당했다.


임산부를 감금하는 것은 중국노동수용소의 방침에 어긋나는 것이기 때문에 임산부에게 강제낙태를 시키는 것은 흔한 일이다. 한 사례를 들면, 한 파룬궁 수련생의 아기는 8개월이후 그녀의 뱃속에서 강제로 꺼내졌으며 당시 아기는 의식이 있으며 울고 있었다. 하지만 이후 어디론가 데려가졌고 산모는 아기를 다시는 볼 수 없었다. 중국 강제노동수용소에서는 임산부와 산후조리 중인 여성에게도 강제노동을 시키며, 이는 종종 임신과 건강에 극히 나쁜 영향을 주거나 유산을 부르는 결과를 가져왔다.


다수의 어린이들은 그들의 부모가 감금된 이후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친척들과 함께 언제 집으로 올지 모르는 부모가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일부 어린 아이들은 혼자 살아가야 하는 상황에 닥치게 되었고, 일부는 고아가 되었다.


어머니와 8개월된 아들이 고문치사 당하다


 

2000년 10월 21일, 파룬궁 수련생 왕리솬(王麗萱)과 아들 멍하오(孟昊, 8개월)가 체포되어 베이징 퇀허(團河) 노동수용소에 감금되었다. 그들은 이곳에서 2000년 11월 7일에 고문치사 당했다. 가족들이 사망 통지서를 받고 베이징에 도착하였을 때, 왕씨와 그녀의 아들 시체는 냉동되어 있었다. 검시관의 조사에 따르면, 그녀의 목과 손가락 관절의 뼈가 골절된 상태였고 두개골이 주저 앉아있었으며 몸에는 바늘이 꽂혀있었다고 하였다.

그녀 아들의 발목에는 두 개의 심한 타박상이 있었으며, 머리에는 검고 푸른 반점이 두개 있었고, 코에 피가 고여 있었다고 했다. 타박상은 아마도 간수들이 멍하오의 발목에 족쇄를 채우고 거꾸로 매달아서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담당기관은 사망 증명서에서 이들의 상처와 검시관의 부검결과와 일치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건물에서 떨어져 자살했다"고 기록했다.

만삭에 강제낙태 당해

 

장한윈(張漢雲, 33)는 산시성 한중시 주민이다. 2000년 3월, 장씨가 출산을 앞둔 임산부임에도 불구하고 파룬궁 수련을 한다는 이유로 한중시 "610사무실(역주 - 파룬궁 탄압기구)"이 조직한 반(反)파룬궁 세뇌교육반에 강제로 참석해야 했다. 탄압을 피하기 위해 장씨는 친척과 도피를 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건축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한중시 "610사무실"은 직원을 시켜 장씨의 아버지와 오빠가 맡고 있는 건축현장을 폐쇄시켜 장씨를 찾으려 했다. 또한 그들은 장씨의 남편을 자링강(江) 다리에 수갑을 채워 모욕을 주었다.

결국 장씨는 체포되어 세뇌교육반으로 보내졌다. 한중시 "610사무실"의 직원은 장씨가 곧 출산할 것이라는 것을 알게되자 세뇌교육반에 계속 감금하기 위해 만삭인 그녀를 병원으로 데려가 강제낙태를 시켰다. 이 끔찍한 상황은 정말 상상하기 힘들다.

노동수용소의 불결한 환경과 중노동으로 인한 유산

더우젠화(竇建華, 28)는 헤이룽장성 미산(密山)시의 유치원 선생이다. 그녀는 2000년 6월 파룬궁 탄압중지호소를 위해 베이징에 두번째로 갔다. 그녀는 눙컨(農墾) 경찰국에 의해 롄주산 마을에 있는 베이산 감금소로 보내졌다. 감금소에 있던 모든 수련생들은 강제노동을 해야했다. 특히 그녀가 임신 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수용소 간수들은 무거운 벽돌을 계속 나르게 했고 결국 그녀는 과다 출혈로 유산하게 되었다.

장중리(蔣忠利, 25)는 후난성 헝양(衡陽) 혈액은행의 직원이다. 임신부였던 그녀는 마약중독자와 마약거래자들과 같은 방에 감금되었다. 당시, 그녀의 남편은 군복무 중이었다. 그녀는 불결한 환경과 중도동으로 인하여 2000년 2월에 감금소에서 유산을 했고 과다 출혈로 위중한 상태가 되었다. 그녀는 생사를 헤메고 있을 때 일자리를 빼앗겼으며 또한 1,500 위안의 벌금이 과해졌고 3,000 위안의 임금을 받지 못했다.

만삭에 강제낙태된 또 다른 사례들

중처(中策)제약회사의 직원인 류추훙(劉秋紅, 여, 39)은 산둥성 옌타이시 수련생이다. 경찰은 임신 8개월 째 그녀를 집에서 체포했고 강제낙태를 시켰다. 아기가 강제로 나왔을 때는 살아있는 상태였으나 다른 곳으로 보내졌고 누구도 아기의 행방을 모른다. 또한 경찰은 강제낙태이후 류씨에게 산후조리기간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녀는 펑황타이(鳳凰臺) 사무실에 감금되어 1개월간 세뇌교육을 당했고 불법적으로 강제 노동수용소로 보내졌다.

허난성 멍저우시 악독한 경찰들은 파룬궁 수련생 겅쥐잉(耿菊英)을 강제노역시키기 위해 강제로 낙태 주사를 놓았다. 겅쥐잉이 아픔으로 고통스러워 할 때 남성 경찰들은 음흉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이쁜 네가 낙태하는 것을 보겠다." 이렇게 그녀는 몇몇 경찰들의 눈앞에서 인공유산을 당했으며 그 후에 자오쭤(焦作) 세뇌센터에 보내졌다.

임산부와 젖먹이 엄마를 학대

쓰촨(四川)성의 파룬궁 수련생 량메이(梁妹- 가명, 29)에게는 젖먹이 아기가 있었는데 그녀는 몇몇 다른 수련생들과 함께 지역 농업학교에 감금되었다. 고문과정 중에 몇몇 경찰들은 그녀의 팔과 다리를 잡고 공중으로 들어 올렸다가 몇 번씩이나 땅바닥에 떨어뜨렸다.

경찰들은 그녀에게 “우리는 최고위층 관리들로부터 파룬궁 수련생들에 대해서는 이유 불문하고 탄압해도 된다는 지시를 받았다. 우리는 법률과 합법적인 절차 따위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우리는 당신에게 어떤 짓이든 할 수 있다.” 라고 말했다.

그녀는 경찰들에게 집에 젖먹이 딸이 있다고 호소했지만 그들은 전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경찰들은 이번에는 그녀의 두 팔을 등 뒤로 나무를 두르게 하고 손에 수갑을 채웠으며 그녀의 입을 테이프로 봉해버렸다. 젖이 흘러 그녀의 셔츠와 바지가 젖었고 같은 시간 집에 있는 아기는 굶주리고 있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수갑이 채워진 손이 부어오르고 통증이 참을 수 없을 만큼 심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집에서 굶주리고 있는 아기가 생각나 아기가 어떻게 배고픔을 버티고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경찰들에게 풀어달라고 또 다시 부탁했지만 그들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 * *


저우징(周晶, 여)은 베이징에 살고 있었다. 베이징시 경찰국의 사복 경찰들은 그녀가 파룬궁 수련생이라는 이유로 그녀의 집에 들이닥쳐 그녀를 체포했다. 그녀는 경찰들과 동행하기를 완강히 거부했다. 그녀가 임신 중인데도 불구하고 경찰은 그녀의 손을 등 뒤로 하여 수갑을 채우고 바닥으로 쓰러뜨린 다음 그녀를 밖으로 끌고 나갔다. 경찰들은 그녀의 옷을 찢어 발가 벗겨놓았다. 시멘트 바닥에 끌려가는 동안 그녀는 눈, 무릎, 다리에 상처를 입었다.

* * *

량페이잉(梁培英, 여)은 후베이성 스옌(十堰)시에 살고 있다. 2000년 10월 어느 오후, 그녀가 집에서 7개월 된 아기에게 모유를 먹이고 있었는데 스옌시 산옌경찰서에서 나온 경찰 두 명이 그녀를 체포했다. 생후 1년 이하의 아기가 있는 여성을 구금하는 것이 불법인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녀를 경찰서로 끌고 간 후 심하게 구타했다. 그녀의 남편이 그녀를 만나러 경찰서로 갔을 때 경찰들은 그녀의 남편이 파룬궁 수련생이 아닌데도 그의 손에 수갑을 채워 창틀에 매달아 놓았다. 경찰들은 역시 그를 심하게 구타했다. 그런 후에 그들은 그녀의 손을 등 뒤로 하여 수갑을 채워놓고 밤새 바닥에 앉혀놓았다. 7개월 된 그녀의 아들은 젖을 못 먹고 너무 심하게 울어서 목이 쉬어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량 여사는 12월 15일에 스옌 제 1구치소로 송치되었다. 10일 후에 악독한 경찰 차이 샤오준은 그녀를 심문할 때 취조실 문을 닫아 놓고 그녀를 또다시 잔인하게 구타했다. 생후 1년 이하의 아기가 있는 여성에 대한 구금 사실을 은폐하기 위하여 산옌 경찰당국은 량 여사의 구금 날짜를 2000년 12월 15일에서 아기의 첫 생일 다음 날인 2001년 2월 17일로 고쳐 그녀에 대한 기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이런 위조를 뒷받침하기 위하여 그들은 2001년 1월 15일에 그녀를 구치소에서 외부 주둔지로 보냈다가 다시 2월 17일에 구치소로 데려왔다.

엄마와 아빠를 모두 잃은 룽룽

룽룽(融融, 여, 4세)는 1999년 11월에 태어났다. 그 당시에 룽룽의 아빠 쩌우숭타오(鄒松濤)는 파룬궁 박해를 중단해 줄 것을 청원하러 베이징에 갔다는 이유로 구치소에 감금되었다. 룽룽의 아빠는 1999년 12월 말에도 풀려나지 못했다. 2000년 7월에 그는 칭다오(靑島)시 노동수용소로 송치된 후 다시 2000년 9월 말에 쯔보시 왕춘 노동수용소에 보내졌다. 2000년 11월 3일 아침, 경찰들이 고압 전기봉으로 그에게 충격을 주어 2시간도 안되어 그는 사망했다.

결국 룽룽는 생후 1년 만에 아빠를 잃었다. 룽룽의 아빠가 사망하자 경찰은 룽룽의 엄마 장윈허(張雲鶴)를 계속 괴롭히며 시작했다. 2002년 2월에 경찰은 룽룽의 엄마를 체포하여 다산 구치소에 감금했다. 경찰은 그녀의 친정 가족에게 그녀에 대한 어떤 정보도 제공해주기를 거부했다. 결국 룽룽은 엄마와 헤어져 당시 연세가 60세인 외할머니와 함께 지내야만 했다. 그러나 룽룽의 외할머니는 사위를 잃고 딸과 헤어진 슬픔으로 인해 병이 나서 결국 2001년 8월에 어린 룽룽를 혼자 남겨놓고 눈을 감고 말았다. 룽룽는 이렇게 가장 사랑하는 세 사람 즉, 아빠, 엄마 그리고 할머니를 잃었다.

엄마가 보고 싶은 황잉

 

 

황잉(黃穎, 3세)의 부모님은 파룬궁 수련생들이었다. 황잉의 엄마 뤄즈샹(羅織湘)은 둘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는데 29세에 광저우에 있는 황푸 마약사범 갱생반(역주: 중국에서는 파룬궁 수련생들을 정신병자나 마약중독자로 몰아 박해하는 경우가 흔함)에서 고문을 받아 2001년 사망했다. 황잉의 아빠는 노동수용소에 불법으로 구금되었다가 풀려난 후 다시 체포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집을 나와 일정한 거처 없이 생활하고 있다. 황잉은 현재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데 그들의 생활 여건은 몹시 좋지 않다. 집은 흙벽돌로 만들어졌고 천장에는 1m 길이의 균열이 있다. 황잉은 엄마의 사진에 늘 뽀뽀를 하며 “나는 엄마를 봤어요. 엄마는 아주 예뻐요. 엄마는 나를 보러 와요.” 라고 말한다.

가족들이 경찰에게 구타 당하는 것을 보고 충격 받아 사망한 4세 여아

 

2000년 7월 19일, 경찰들이 왕수제(王淑傑, 여, 4세)의 삼촌 집에 들이닥쳐 수제가 보는 앞에서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당시 집안에 있던 가족 모두를 체포했다. 몇 개월 후에 수제와 아빠가 경찰서에 끌려갔는데 그녀는 경찰들이 아빠를 심하게 구타하고 모욕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수제는 충격을 받아 기절했고 잠시 후에 깨어났을 때 땀을 흘리며 열이 심하게 났다. 그녀는 반복하여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고 머리에 심한 통증을 느껴 몸부림치는 것 같았다. 그 사건이 있은 후에 수제는 매우 불안해했고 때때로 벽에 머리를 대고 쾅쾅 찧기도 했다. 경찰서에서 돌아온 후 수제는 혼수상태에 빠져 하루 종일 잠만 잤다.

경찰들은 수제의 가족들을 체포하러 여러 번 반복하여 수제의 집을 드나들었다. 한동안 가족들은 불법적인 체포를 당하지 않기 위하여 집을 떠나기도 했다. 이렇게 오랫동안 두려움과 불안에 시달려 온 수제는 잘 먹지도 않아 건강이 나빠졌다.

2002년 2월 1일 새벽에 약 20여명의 경찰들이 수제의 집을 포위했다. 그들은 그녀의 아빠를 납치하기 위해 집안으로 들이닥쳤다. 수제는 너무도 겁에 질려 침대에 그만 오줌을 쌌다. 경찰들은 이런 수제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녀의 아빠를 세뇌반으로 끌고 갔다.

2002년 2월 14일, 수제는 숙모님과 함께 아빠를 면회하러 세뇌반에 갔다 왔다. 집에 돌아 온 수제는 엄마에게 “아빠가 그러는데 오늘이 내 생일이래요. 근데 아빠는 나와 같이 있을 수 없대요.”라고 말했다. 수제의 엄마는 쇠약해진 딸을 보고는 눈물을 흘렸다. 수제는 당시 피부와 뼈만 앙상하게 남았다. 수제는 2년 동안 정신적인 고통을 받는 중에 거의 자라지 못했으며 잘 자지도, 먹지도 못했다. 수제의 부모는 그녀를 병원에 데리고 갔다. 진찰 결과 수제의 뇌 속에 수액이 차 있어 뇌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수제는 수술을 받은 후에 경련을 일으키고 열이 심하게 났다. 결국 수제는 수술을 받은 지 4일 만에 사망하였다.

출처: http://www.faluninfo.net/torturemethods2/children


배경설명

파룬궁(法輪功-Falun Gong, 法輪大法-FalunDafa: 파룬따파로 불려짐)은 우주의 특성 진(眞), 선(善), 인(忍)을 근본으로 하는 심신수련법이다. 연공동작은 동공(動功)과 정공(靜功)으로 이루어진 5장 공법(功法)이 있으며 수련지침서, 『전법륜(轉法輪)』을 바탕으로한 심성수련을 중요시한다. 파룬궁은 중국 전통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전세계 60여개국에서 수련하고 있다. 중국정부통계에 의하면 1999년 당시 1억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중국에서 수련하고 있었으며 중국 공산당과 국가주석 장쩌민은 1999년 7월 파룬궁 수련을 금지시켰다.(자료) 그로부터 장쩌민과 공산당 추종자들은 파룬궁 수련생들을 투옥하고 고문, 살해하면서 국민들 사이에 수련을 반대하는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서 파룬궁 비방선전을 강화하였다. 파룬따파 정보센터(FDI)는 1999년 중국에서 파룬궁 탄압을 시작한 이래 1379명의 사망자 신원을 확인했다.(자료) 전문가 자료에 의하면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수십만 명이 투옥되고 10만 명 이상이 재판도 없이 강제노동소로 보내졌다.(자료) 파룬궁 탄압의 대한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알고 싶다면 다음 자료를 이용하기 바란다.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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