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홍콩 주권 반환 22주년인 지난 1일 홍콩 시위대가 입법회를 점거해 각종 기물을 파손하는 폭력적인 장면이 전 세계에 생중계된 가운데, 당시 상황은 ‘함정’을 만들기 위한 경찰의 의도적 연출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날 홍콩시민 55만여 명은 ‘범죄인 인도 법안의 완전 철폐’와 ‘케리 람 행정장관 사퇴’ 등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날 오후 수백 명의 시위대가 입법회 건물을 습격해 점거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으며 이들은 2일 자정을 넘어 최루탄을 동원한 경찰에 의해 강제 해산됐다.
이에 대해 중문 매체 대기원은 ▲시위자가 입법회 회의장에 진입하기 전에 경찰이 입법회에서 완전히 철수한 점 ▲경찰이 회의장 점거 전부터 해당 비디오를 녹화한 것으로 의심되는 점 ▲점거 전 입법회 회의장이 아수라장이었다는 점 등 3가지 정황을 근거로 당시 일부 시위대의 입법회 청사 점거는 경찰의 계획된 함정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 홍콩 경찰, 시위자들이 입법회 청사를 점거토록 유도
2일 자정이 되자 홍콩 경찰은 시위단을 해산시키기 위해 최루탄을 쏘며 입법회 청사로 밀고 들어갔고 12시 30분경 입법회 회의장 내 시위자들이 모두 철수했다.
탄원하오(譚文豪) 공민당 의원은 경찰에게 냉정을 호소하며, 건물 밖에 있는 인사들에게도 뒤로 물러날 것을 권고했다.
20분 뒤 홍콩 경찰은 애드미럴티 일대에서 최루탄을 여러 차례 더 터뜨려 입법회 건물 밖의 시위자들을 모두 해산시켰다.
불과 한 시간 만에 홍콩 경찰은 입법회 건물 안팎의 시위자들을 모두 해산시킬 수 있었다. 이토록 막강한 경찰이 시위자들이 입법회 청사로 들어가기 전 건물에서 모두 철수했다. 이는 의도적인 ‘함정’을 만들어 시위자들을 건물 안으로 들여보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루웨이총(盧偉聰) 홍콩 경무처 처장은 2일 4시 기자회견에서 당시 시위자들이 입법회 실내조명을 일부 끄고 경찰을 향해 유독성 분말을 투척해 경찰이 어쩔 수 없이 일시 철수하고 입법회를 탈환할 전력을 배치했다“며 “건물 안에 있던 경찰관들이 전날 8시간 동안 폭행당한 뒤 오후 9시쯤 철수했다고 설명했다.
홍콩 중문대 정치행정학과 저우바오쑹(周保松) 부교수는 “루웨이충의 대답은 ‘시위자가 너무 대단해 우리가 당해낼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물러났고 입법회가 점거당하도록 할 수밖에 없었다’고 표현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저우바오쑹 교수는 지난달 12일 시위때처럼 경찰이 모든 ‘폭동’의 책임을 시위자들에게 떠넘기고 대중의 동정을 얻은 뒤 12시에 입법회로 되돌아가 시위자를 체포하려고 했다“고 주장했다.
마틴리 홍콩 민주화 운동 지도자도 월요일의 시위는 홍콩 당국이 허용한 것이라며 “시위대가 들어오자 경찰이 그냥 갑자기 흩어졌다. 입법회 청사와 같은 중요한 건물이 공격을 받아 경찰이 출동했는데 경찰이 그 사태를 저지하지 않았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어느 도시에서 이런 일을 본 적이 있는가”라고 BBC 라디오와 인터뷰에서 말했다.
로이터와 인터뷰한 현 홍콩 대테러 담당관인 22년 경력의 베테랑 경찰관 크리스 페더는 “시위대를 입법회 청사 안으로 들어오게 하다니! 그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나?”라며 “이렇게 해야 할 어떤 전술적 이유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놀라울 뿐”이라고 했다.
■ 홍콩 경찰, 입법회 시위 사전 녹화
시위대가 1일 저녁 9시 입법회 회의장에 난입한 이후 홍콩 경찰 대민부서 셰전중(謝振中) 총경사는 이날 밤 10시 20분 페이스북에 비난 영상을 올렸다.
영상에서 셰전중 총경사는 시위자를 ‘폭도’라고 규정하면서 폭력적으로 입법회 건물을 불법 진입했다고 비난했다. 또 경찰이 조만간 수습할 것이며 방해나 저항이 있으면 ‘적절하게 무력’을 사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영상을 보면 셰전중 총경사의 왼쪽 손목시계의 시간이 오후 5시쯤으로 나와 있다. 홍콩 경찰이 시위대가 입법회를 점거하기도 전에 사전 녹화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여러 홍콩 매체 및 대만 중앙 통신은 “경찰이 거짓말을 할 수 있지만 셰전중의 시계는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이는 홍콩 경찰이 입법회에서 철수해 의도적으로 시위대가 점령하도록 사전에 계획을 세웠음을 보여준다. 이는 나중에 폭동죄를 씌워 미디어 등 여러 가지 방식으로 증거를 만들어 사람을 체포하려는 것이다. 이는 명백한 함정이며 계략”이라고 보도했다.
■ 입법회, 시위대 점령 전 이미 파손된 상태
시위대를 따라 입법회 회의장에 함께 들어간 홍콩 기자 커하오란(軻浩然)은 당시 입법회 회의장 바닥이 아수라장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2일 ‘아이를 잡아먹는 정권’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자신을 지난 1일 저녁 입법회에서 취재한 기자 중 한 명이라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저녁 9시가 넘어 입법회 정문이 열렸고 계란 냄새가 코를 찔렀으며 이미 난장판인 바닥에는 유리 부스러기와 물건들이 가득했다.
네티즌들은 시위대가 입법회에 들어가기 전에 누가 입법회 회의장을 아수라판으로 만들었느냐며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다.
"모든 것이 자작극이다. 청년들을 희생양으로 이용하고 있다!”
“경찰(과 시민)이 협력해 공성계(空城計, 능력이 부족할 때 오히려 자신의 거점을 드러내 적에게 의심과 혼란을 야기하는 전략)를 연출해 큰 연극을 했다.”
"정부가 그들을 입법회로 유인해 파괴적인 행동을 하게 함으로써 대중의 시선을 돌리려 한다. 청년들이 계략에 빠졌다.“
커하오란 기자는 TV화면에서 젊은이들이 입법회 회의장 벽에 낙서하는 모습을 보겠지만, 시위대가 회의장에서 공공 기물을 의도적으로 파괴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시위자들은 “우리는 점령하는 것이지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캐비닛에 ‘파괴하지 마세요’라는 쪽지 4장을 붙여놓기도 했다
지하 레스토랑에서도 같은 상황이 일어났다. 냉장고 안의 음료를 마시면서 지폐를 남겼다. 그리고 다시 냉장고 문에 스티커로 글을 써서 훔쳐 먹은 것이 아님을 밝혔다.
홍콩인들은 인권 탄압에 악용될 소지가 있는 범죄인 인도법안을 완전히 철회하라고 대규모 시위를 통해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이 법안은 중국을 포함해, 마카오, 대만 등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나 지역으로도 범죄인을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다.
지난달 15일에 200만 명이 넘는 시위대가 법안 철회를 요구하는 시위에 참여했으며 람 장관의 사퇴도 주장하고 있다. 지난달 25일에는 홍콩 전직 관료와 입법회 의원들 32명이 이 법안에 반대하는 공개서한을 발표한 바 있다.
도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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