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중국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 운동이 무력 탄압되어 많은 사상자가 나온 톈안먼 민주화 운동이 발생한지 24년이 지났습니다. 사건 직후 ‘단왕(淡忘 기억이 흐려져 잊혀진다)’을 호소한 당국자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이 사건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고 생생하게 중국인들의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때문에 공산당 정부는 매년 이날을 전후해 기념활동 등의 불씨를 없애려 하고 있습니다. 언론에서 ‘6월 4일’이라는 날짜가 봉쇄된 지금, 이날은 ‘5월 35일’로 구전되고 있습니다.
봉쇄 대상은 ‘6월 4일’에 그치지 않고, ‘톈안먼’, ‘오늘’, ‘오늘 밤’, ‘촛불’ 등 사건과 관련된 모든 단어가 금지돼, ‘관련 법규・정책에 의해 ‘오늘’의 검색 결과는 표시할 수 없다’ 라고 표시되고 있습니다.
한편, 톈안먼 광장 주변과 당시 사망자가 많이 나온 지하철역 부근에는 다수의 경찰들이 예년과 같이 검문 등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인권 활동가들과 이 사건으로 자식을 잃은 ‘톈안먼 어머니회’ 등 유족들은 예년과 같이 감시, 가택연금, 전화선 절단, 강제 여행 등의 억압을 받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유족들은 시진핑 체제에 대해 ‘정치개혁에 대한 희망은 희미해지고 절망감이 덮쳐 온다’는 공개 서한을 발표했습니다.
훙레이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3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이 사건에 대해 “이미 명확한 결론이 나와 있다”면서 무력탄압의 정당성을 밀어 붙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무력탄압 명령을 내린 것으로 여겨지는 3명의 당시 지도자, 덩샤오핑 중앙군사위 주석, 리펑 총리, 천시퉁 베이징 시장은 각각 스스로 혹은 친척과 친구를 통해 자신이 탄압에 동의했거나 최종 결정자임을 부정했습니다.
시진핑 현 주석도 억압을 늦추지는 않지만, 사건과는 구분을 명확하게 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의 아내 펑리위안이 사건 당시 계엄부대 앞에서 열창하면서 군인들을 격려했던 사진은 인터넷에 유출되자마자 즉시 삭제됐습니다.
당국은 톈안먼 운동에 대한 탄압을 지난 30년 동안의 ‘평화’ 발전이 가능했다고 사건을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그렇다면 ‘6월 4일’을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내려 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톈안먼 사건 이듬해부터 홍콩에서는 계속 추모집회가 열렸습니다. 4일 천둥이 치는 빗속에서도 주최측 추산 15만명이 홍콩 빅토리아 공원에 모여 탄압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이날, 미 의회-행정부 중국위원회(CECC) 공동의장인 쉬러드 브라운 상원의원과 크리스 스미스 하원의원은 연명으로 성명을 발표하고, 중국 정부에 인권과 법치의 진전을 촉구했습니다. 이들은 ‘시진핑 주석은 개혁과 법치, 반부패를 지지한다고 말했지만, 이 말은 거짓말인 것이 증명되었다’, ‘중국은 책임있는 국가로 보여지기를 원한다면, 시 주석은 위구르인, 티베트인, 인권 활동가, 기독교 신자, 파룬궁 수련자, 기자에 대한 탄압을 중지하도록 구체적인 조치를 취하고, 24년 전 비극을 성실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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