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28일 아침, 수십명의 언론인들이 중국 남부 구이저우성 구이양(貴陽)시 중급법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세기의 재판’이라고 불리는 보시라이 전 충칭시 서기의 공판이 이날 이곳에서 시작된다고 홍콩 친중파 매체와 중국 대형 포털 사이트들이 전했기 때문입니다.
미국 뉴욕타임즈가 ‘베이징 이익의 대변자’라고 지칭한 홍콩 대공보(大公報)는 지난 25일 베이징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공판이 28일 개시되어 3일간 계속된다고 전했습니다. 또 보시라이에게는 사형유예판결이 내려질 것이라는 소식통의 견해도 함께 전했습니다. 이 정보는 베이징시 당위(공산당 위원회) 기관지 베이징일보와 광둥성 당위 기관지 남방일보, 경제정보 사이트 재신망(財新網) 등 중국언론들의 공식 블로그에 게재되어 확산됐습니다.
이틀 후인 27일, 중국 대형 포털 사이트 왕이, 신랑, 텅쉰은 일제히 후베이 당위 기관지 장강일보(長江日報)의 보도를 전재했습니다. 신문은 대공보와 동일한 내용을 전하고 소식통의 전언이라면서 ‘베이징 인사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고 명기했습니다.
이러한 정보는 28일까지 모두 삭제되지 않았습니다. 당국도 묵인하는 것처럼 관련보도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구이양 중급법원은 25일 ‘아직 사건을 접수하지 않았다’고 답변했지만, 이 답변도 ‘앞으로 접수할 수 있다’고 여지를 두었다고 뉴욕타임즈는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이날 ‘세기의 재판’은 환상에 불과했습니다. 구이양 중급법원 판사는 ‘여러분이 정말로 멀리 달려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여러 기자들 앞에서 탄식했습니다. 베이징 외국어대 신문학과 잔장(展江) 교수는 ‘우리는 모두 속았다’고 정리했습니다.
한편 기자들이 구이양으로 향하던 시각인 28일 아침 1시 반경,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계열의 환구시보 영문판은 ‘국가 최고 사법기관과 가까운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보시라이 공판은 오는 3월 전인대(전국인민대표대회) 후 개정해 10일간 계속될 것이라고 보도하고, ‘월요일(28일) 개정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처음으로 부정했습니다. 이 보도의 중국어판은 기자들이 법원 앞에 모인 아침 9시반경 게재됐습니다.
정보통제의 중국에서, 일찍이 공산당 최고 지도부 진입을 별렀던 실력자의 공판 관련 오보가 방치될 이유는 없습니다. 이는 보시라이에 대한 조기심의와 지방법원에서 심의를 바라는 고위층 세력이 존재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세력은 대공보와 중국 언론에 절대적인 영향력이 있는 것도 분명해 보입니다. 대공보는 이전부터 장쩌민 등 보수파에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중국 언론은 그 보수파가 지배하는 중앙선전부의 관리를 받고 있습니다. 대공보가 인용한 ‘베이징의 소식통’도, 장강일보에 등장한 ‘소식통’과 ‘베이징 인사’도 이러한 세력에 속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조기 심의와 지방 법원에서의 심의를 바라는 이유는 장쩌민 등에 있습니다. 시사평론가 저우샤오후이(周暁輝)는 보시라이의 후원자였던 장쩌민파(장파)가 보시라이의 혐의를 직권남용과 뇌물수수에 한정시키려 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신화사는 지난해 9월 보시라이의 혐의가 직권남용, 뇌물수수 외에 ‘다른 범죄혐의도 얽혀있다’라고 함축적인 말로 전했습니다. 보시라이가 주도한 정변계획 등 반역죄 혐의와 파룬궁 수련자들로부터의 장기탈취를 지시한 혐의는 지금까지 종종 지적되어 왔습니다.
저우샤오후이는 조기에 뇌물수수로 결론지으려 하는 장파에 대해 시진핑 총서기 등 새 지도부가 보시라이의 범죄를 어디까지 추궁할 것인지 아직까지 결정하기 어려워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뇌물수수로 정리하면 후에 반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고, 반역죄나 장기탈취까지 건드린다면 공산당 정권의 정당성 자체가 의심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전해진 지방법원에서의 공판도 혐의는 뇌물수수에 그칠 것을 암시했습니다. 저우샤오후이는 그 거짓 정보도, 환구시보의 ‘국가 최고 사법기관과 가까운 소식통’도 보시라이 사건은 최고인민법원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심의될 가능성이 있음을 암시했다고 분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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