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비(1103-1142)는 중국 역사상에서 '충(忠)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악비는 중국이 북방 여진족의 침략을 당하던 북송 말년에 태어났습니다. 조정에서 병사를 모을 때 악비의 모친은 이미 연로한 상태였습니다. 악비는 한편으로는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고 외적의 침입을 물리쳐야 했는데 이는 '충'을 위한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집에 남아 노모를 봉양해야 했으니 이는 '효'를 위한 것입니다. '충'과 '효'에서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모친은 악비의 웃옷을 벗게 하고 그의 등에 '온 힘을 다해 나라에 보답하라.'는 뜻으로 '정충보국'이란 네 글자를 새겨 주었습니다. 악비는 군대에 투신한 후 여러 차례 전공을 세웠습니다.
악비는 매사에 인자하고 선량하며 겸손했습니다. 소흥 3년에 성지를 받들어 길주와 건주의 반란을 평정했습니다. 승리 후 황제가 성의 모든 사람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지만 악비가 백성을 위해 여러 차례 청원하여 다만 우두머리만 주살하고 협박에 못 이겨 가담한 자들은 사면해 주었습니다. 이 일로 고종은 악비에게 '정충악비(악비의 높은 충성심)'라고 쓴 비단깃발을 하사했습니다.
악비는 또 휘하의 군사를 엄히 다스렸습니다. 악비가 군사에게 내린 군령에는 "얼어 죽을지언정 남의 집을 부수지 말고 굶어 죽을지언정 노략질 하지 말라"는 것이 있습니다. 악비는 전투에서 늘 선두에 섰으며, 병사가 병이 들면 손수 약을 조재해 치료해 주었습니다. 또, 병사가 사망하면 악비가 그 가족을 돌봐주었습니다. 적군조차 "산을 흔들기는 쉽지만 악비의 군대를 흔들기는 어렵다!" 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고종과 가까운 일부 신하들이 악비의 승리를 시기해 "악비의 군대가 수도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더 강성해지면 반란을 일으킬 위험이 있다." 라고 모함해 악비의 군대를 철수시켰습니다. 악비는"십년 노력이 하루아침에 끝났다."라고 탄식하며, 조정에 돌아온 후 군사지휘권을 박탈당했고, 1년 후 간신 진회의 모함으로 항주 풍파정에서 살해당했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 39세였습니다.
<송사 악비열전>은 "서한 이래 각 조대마다 훌륭한 장수들이 끊이지 않았지만 송나라의 악비처럼 문무를 겸비하고 어짊과 지혜를 두루 갖춘 사람이 한 조대에 얼마나 되겠는가!"라고 평가했습니다.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에서 보내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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