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인을 이해해주어야 한다

ㅋㅋㅋ  |   2005-12-03 13:55:51
지나인을 이해해주어야 한다 | 중국관련 2005/02/01 23:04   http://blog.naver.com/hotijack/100009887834 지나인을 이해해주어야 한다 지나인의 저질성 그리고 미욱함을 이해해야 한다. 왜 그들이 성격이 열악하고 저질적인가 그 원인을 우선 말하련다. 한개 민족의 형성과 그 민족근성의 형성은 누구의 의지에 따르는것이 아니다. 그로서의 어쩔수 없는데가 존재한다. 세상에 필연성은 도피할수 없다. 첫째: 지리적요소 민족근성은 우선 지리적환경과 위치를 바탕으로 한다. 이를 전문적인 단어로 [지원적요소]라고 한다. 지원적으로 볼때 지나는 기원이 황하 평원지역이며 후에 남방의 평원지역까지 통합하게 되였다. 지나민족은 완정한 농경체계하에서 수천년 발전하여 현대민족으로 된 경과를 가지고 있다. 농경민족이라면 우선 토지를 중히 여기며 정착생활을 하게 된다. 또한 토지결여와 그로 인한 토지확장야심도 존재한다. 농경민족과 유목민족은 우선 체질적으로 다르게 나타난다.  장기간의 도태를 통하여 농경민족은 체질적으로 유목민족에 많이 뒤떨어지게 된다. 지원적인 요소를 볼때 지나는 넓은 대륙과 긴 해안선을 가지고 있다. 순수 대륙귝도 아니고 순수 해양국도 아니다. 이러한 지리적환경은 방어도 진공도 힘들게 한다. 프랑스와 지나의 지리환경이 거의 비슷하다.  바다로 오는 적을 막아야 하는 동시에 땅으로 오는 적도 막아야 한다.   지나족의 신체소질이 낮은것과 성격이 활달하지 못한것이 이러한 원인에서 기원한다. 그리고 장기간의 소농경제가 지나인들로하여금 소농적인 앙증스럽고 자기이익제일의 성격을 지니게 했다. 이러한 지리위치에서 지나는 주위 유목민족의 진공하에 수많은 피통치를 받으면서 생존해오는 리치를 터득하였다. 이러한 지리위치로 인하여 신체소질이 낮고 단합이 부족한 성격이 형성돠고 이러한 형세하에 주위 유목족에게 수천년 통치되여오게 되였고 그로 인하여 노예적인 근성이 민족성으로 되여버린것이다. 둘째: 량적인 인구증장과 근친결혼 지리위환경으로 인한 피통치사회의 형성. 이러한 사회에서 민족을 보존하는 생존법. 이러한 생존법이 곧 바로 인구수 량적인 증장이고, 이른바 단합을 추구하기 위하여 근친결혼이 성행하게 되였다. 이것이 곧바로 지나민족이 오늘까지 보존되여 온 비결이다. 만주를 무력으로 지나가 점령해본적은 한번도 없지만, 북양군벌시기 장작림과 장학량의 강제이민정책으로 만주에 지나족이 다수를 차지하게 되였다. 당시 매년 산동, 하북 등지에서 30만명의 속도로 만주에 강제이민을 시켰다. 물론 당시 만주에서 군벌할거를 하고 있던 장작림으로서 만주에 자기의 국민을 대폭증가하기 위한것이 목적이였지만, 결과 오늘날 만주에 지나족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게 된 기원이다. 공산당집권후 역시 이러한 정책을 진행해왔고 오늘에도 만주에 대량이민을 시키며 특히 연변지역에 집중적으로 이민시키고 있다. 왜냐면 아직까지도 이민정책하에 동화되지 않은 만주소수민족은 오직 조선족뿐이기때문이다. 량적인 인구증장이 오늘날 지나족의 지력상수와 EQ의 저하를 초래하였다. 과학적인 분석을 통하면 이러한 량적인 인구증장이 지나로 하여금 앞선던 기술이 서구에 뒤떨어지게 하였다. 서구의 산업혁명이 서구로 하여금 현대로 진입하게 하였다. 과거에도 수많은 기술혁신이 잇었으나 왜 산업혁명시기에 기술혁신이 대폭증가하게 되였는가? 과학적인 해석은 바로 그 시기에 유럽의 인구 량적증장이 질적증장으로 변하기 시작한것이다.  그 시기가 지나의 명나라시기이다. 명나라말 확실히 지나에서도 자본주의 맹아가 나타났고 [ 자본주의 맹아는 유럽보다 100년 일찍 나타났음.] 기술혁신과 문화창작이 대폭늘어났다. 지나 3대고전소설인 서유기, 수호전,삼국연의 모두 명나라때 나타났고 사상가, 지리학가, 수학가 모두 명나라때 대폭 나타낫다. 허나 이 정도의 변화가 서구와 한 층차 뒤떨어졌다. 왜? 그때까지도 지나는 량적인 인구증장을 햇지 질적인 인구증장으로 변하지 못한것이다. 명말, 매우 이해못할 역사적 사건이 동방을 개변시켰다. 바로 여진족의 후예인 만주족의 흥기인것이다. 당시 노예사회에 처해있는 만주족이 선진적인 명나라를 소멸한것이다. 청이 설립된후 수많은 사상가, 문인들이 숙청당하였고 사회가 한단계 뒤로 퇴보하였다. 청나라시절, 지나족의 량적인 인구증장이 역사적으로 고봉기에 들어섰고 명나라시절의 2천만에서 청나라말에는 4억에 도달하게 되였다. 한가지 주의해야 할것은 지나의 인구증장은 살기가 어려울수록 더욱 강승세를 이루는것이다. 정상적인 론리로는 사회가 번영할수록 인구가 증장하지만 지나는 정반대다. 사회가 불안정하고 살기가 어려울수록 인구수를 늘여야 힘이 커지고 더 잘살수 잇다고 생각하게 되는것이다. 현대지나족의 민족성은 사실 청나라때에 본질적인 변화를 일으킨것이다. 그 노예화는 전례없는 경지에 도달했다. 근친결혼은 지나에서 수천년간 지속되엿고 오늘도 많은 시골에서 근친결혼을 하며 대학생들이라 할지라도 친척끼리 결혼하기가 일쑤이다. 지나에 오면, 리가툰, 장가계, 곽가촌, 왕가장 등등 이름의 지명이 매우 보편적으로 존재한다. 옛날 지나에서는 근친결혼으로 마을을 형성하였던것이다. 이러한 전통이 청나라까지 지속되였다. 지나 4대고전소설의 하나인 [홍루몽]을 보면 완전히 친척끼리 연애하고 결혼한것이다. 지나의 민국시절에 있는 [뢰우]라는 이름난 소설에서도 사랑이야기가 친척끼리사이에 벌여진다. 수천년간 근친결혼을 해온 지나족은 신체적소질과 지능적소질방면에서 모두 상당하게 저하되였다. 근친결혼의 후대가 병신이 되기가 일쑤라는 생물학적인 염색체조합원리는 여기에서 말하지 않겠다. 섯째: 역사적인 요소 고대지나인과 현대지나인은 본질적인 다른점이 있다. 춘추전국시대의 지나는 무를 숭상하며 사상성을 강조하는 시대이다. 그 시절에 유가 도가, 지어 서구에서는 근대에야 나타난 법가의 사상도 나타났었다. 진시황의 6국통일후 지나족이 한개민족으로 통합되여 한족을 형성하였으며 이때부터 무를 포기하고 문을 숭상하게 되였다. 그후부터 호전성이 강하던 지나족이 문의 민족으로 질적인 전변을 하게 되였다. 지나족의 대국주의 사상은 수나라,당나라를 거치면서 근본성격으로 되였다. 이 두 조대에 지나는 역사에서 처음으로 주위의 민족을 거의 전부 격파하게 되였다. 또한 이 시대는 지나의 전성기이다. 그후부터 지나는 줄곳 외래민족에게 정복되여왔다. 이러는 과정에 오늘날에도 지나족은 소수민족을 두려워하는 보편적인 심리특점을 형성한 동시에 자신은 대국이라는 사상 역시 보유하고 있는것이다. 이러한 사상이 나라가 약하적에는 두려움으로 나타나고 강할적에는 대국으로서 자신이 종주국국민이라는 생각하게 된다. 그후 최대로 전변이 생긴것이 위에서 서술한 만주족의 진입이다. 지나는 6국통일, 수당시대, 만주입관 3개의 특별한 역사적인 시대를 통하여 질적인 변화를 했으며 근대에 와서 식민지화 되고 나중에 일본에게 당하는 일을 격으면서 현대민족으로 되였다. 장기간의 역사적인 피정복환경에서 인민이란 자신을 믿는외에 다른 누구를 믿을데가 없게 된다. 이러면서 형성된것이 지나족의 자아중심 자사자리, 개인주의이다. 자아만을 생각하는 지나인의 성격은 역사가 만들어낸것이다. 넷째: 공산당정권 현대지나인[홍콩,대만,마카오,싱가포르를 포함하지않는다]은 공산당정권의 사상통제하에 형성된것이다. 공산당독재는 이러하다. 모든 선전물을 통제하고 교육, 매체, 출판 등등 모든걸 홀로 독점통제한다. 그러면서 사상을 하나로만 수입시키고 왜곡을 한것이다. 공산당은 종래로 틀린적이 없다. 공산당은 오직 좋다. 이러한 사상의 수입으로 인하여 현대지나인은 그에 상응한 성격과 사유방식을 형성한다. 즉, 나는 다 옳고 대방은 다 틀렸다. 내 잘못이 아니라 대방의 잘못이다. 바로 이러한 사상이다. 그리고 태어나서부터 공산당의 선전만 보면서 자랐기에 공산당의 뉴스보도거나 선전을 그대로 받아드리고 믿는다. 새가 금방 태어났을적에 처음으로 본 움직이는 물건을 자기의 엄마로 생각하고 따라다닌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태어나서부터 하나의 사상수입에서 자랐기에 그것을 그대로 믿는다. 그래서 하나를 보면 하나만 생각하지 그 이상 생각을 못하는 사유틀이 형성된다. 왜 13억 지나인들이 , 세계에사 제일많은 대학생을 보유하면서 노벨상 하나 타지 못하고 발동기 하나 자기절로 만들지 못하는가? 바로 하나밖에 생각못하는 사유방식때문이다. 지나인과 대화하든지 뭘 토론하든지 같이 활동하든지 쉽게 발견할수 있는점은, 이들이 EQ가 너무 낮다는 점이다. 우리를 놓고 보면 소확교때의 사유방식이나 다름없다. 그 정도로 유치하다. 대화를 할라치면 자기가 다 알고 자기가 다 맞고 대방은 틀린다는 사유스타일이다. 지나인 둘이서 한국영화를 보다가 영화속의 엘지폰을 가리키며 하는 말[저게 우리 중국의 레노보핸드폰이잖어!] 박지윤이 성형했다는 사실이 지나에 보도되자 그후부터 지나인들은 한국여자들은 다 성형했다고 생각한다. 지나족의 사유방식은 이정도로 낮다. 신체소질도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약하다. 달리지도 못하는 애도 수두룩하다. 체육하다 쓰러지는건 너무나 정상적이다... 근육을 보면 암만 헬스장 다녀도 몽골몽골하다. 그리고 빨리 움직이고 불시에 움직이는 물건을 지나인들은 매우 두려워한다. 사람들속에 매우 행동이 잽싼 사람이 있다면 지나인들은 매우 불쾌해한다. 월드컵때 한국의 대~한민국 이라는 응원장면을 보고 몹시 불안해하던것이다. 그때 북경에서도 한국인 거주지에서 수많은 한국인들이 떠나갈듯이 발광했는데 , 그 광경을 보고 그 지역에 사는 지나족들은 무슨 일이 일어날것 같아서 걱정되여 경찰에게 전화치기도 했단다. 언성이 높은 사람을 보면 괜히 불안해하는것이 지나인들의 보편적인 성격이다. 이러한 복잡한 심리특점과 저질적인 사유방식은 장기간의 복잡한 역사와 타고난 지리환경, 그에 상응한 잘못된 생존방식이 종합적으로 작용하여 형성된것이다. 지나인민이 사악하다고 여길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들의 이러한 사상의 형성을 이해해야 한다. 그들은 어쩔수 없는 우민들이다. 먼저 민족이 나라를 형성하고 나라가 다시 민족을 형성한다. 한개 나라가 자체의 내부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적에 오직 외부에서 해결할수밖에 없다. 그래서 당시 여러 나라들이 합쳐서 지나의 문을 열여제끼고 지나도 봉페적인 환경에서 밧어나 현대화로 나가게 된것이다. 지나는 오늘날 국제화로 나가는 동시에 아직도 사상공제와 인권, 민주 등 분야에서 독재적이고 암흑하다. 지나내부의 인민들이 이 모든걸 개변할려고도 각성도 못하고 만족하여 사는 현실에서 오직 외부에서 그들의 문을 열어제끼고 그들을 개화해야 한다. 우리가 찾아야 할 고려땅도 되찾고. 간도지역을 수복하고. 그러기 위하여 지나인들을 우선 이해해야 한다. 그드을 이해해야만 지나의 문을 더욱 훌륭하게 쉽게 열어제낄수 있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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