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인도네시아 화교학살 사건과 당시 장쩌민의 대응

비선  |   2005-11-27 05:33:34
인도네시아 화교학살 사건과 당시 장쩌민의 대응 참고사진 http://www.peacehall.com/forum/pic/768.shtml http://www.peacehall.com/forum/pic/770.shtml 7. 인도네시아 참극 이번 홍수는 장쩌민이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목숨을 잃는지에 대해서는 조금도 마음에 두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어떠한 천재인화든지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는데 이용할 수만 있다면 모두 서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1998년의 홍수는 그나마 자연적인 원인이라도 있었지만 같은 해 중국 화교들이 인도네시아에서 당한 재해는 100% 인위적으로 빚어낸 참극이었다. 1998년 5월 13일부터 16일 사이, 인도네시아에서 중국을 배척하는 사건이 일어났는데 현지 화교들은 대규모로 재산을 약탈당하거나 파괴당하고 2천여 명이 살해되었으며 수백 명 여성이 집단 강간당하거나 강간과 동시에 살해되었다. 전 세계가 이런 야만적인 행동에 놀라움과 분노를 표시했다. 미국 국회와 유엔인권위원회는 모두 성명을 발표해 질책했고, 각국 정계 지도자와 사회단체들도 잇따라 인도네시아 정부를 강렬히 비난했으며 언론들도 이 사건을 대량으로 폭로하고 보도했다. 흥분한 전 세계 해외 화교들은 중국 정부가 이 사건에 적극 나설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그러나 장쩌민은 뜻밖에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한 사건은 인도네시아 내정이기에 언론에 보도하지 않을 것이며 정부도 간섭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지시했다. 그리하여 당시 중국 국내 언론들은 이 소식을 봉쇄했고 사건 발생 보름 후에야 비로소 한 두 개의 작은 신문에서 조그맣게 보도하게 했다. 또한 인도네시아에 대한 중국의 거액의 원조 계획도 변함없이 실행되었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자국에서 일어난 만행을 본체만체하면서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장쩌민의 이런 애매한 태도 때문이었다. 만약 장쩌민이 중국 정부를 대표해 공개적인 성명을 발표하거나 경고를 했더라면 인도네시아 화교들의 상황은 그처럼 처참하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게다가 중국 정부는 그 상황에서 그렇게 할 권리와 의무가 있었다. 그러나 장쩌민은 인도네시아와의 관계에 영향 주지 않기 위해 또 한번 국민의 생사를 초개같이 여기면서 뒷걸음 쳤다. 장쩌민의 처사는 전 세계 화교들에게 상처를 주었으며 그들의 체면이 바닥에 떨어지게 만들었다. 5천년 문명 역사를 가지고 있는 대국의 정부가 최소한의 의리도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되었다. 염황 자손에 대한 잔인한 폭행에 대해 장쩌민은 후안무치하게도 “내정을 간섭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인명을 초개같이 여기는 장쩌민의 잔인한 본성과 대범하지 못한 성격은 여기서도 충분히 알아볼 수 있다. ...(장쩌민 그 사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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