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적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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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26 14:34:13
출처 : 심상용목사의 기독교의 가면과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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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적은 누구인가?
‘기독교만큼 기독교에서 무서운 적(敵)도 없다.
이원론적 특징 안에 있는 기독교는 유형무형의 가상적인 적들을 대상화 시켜 그들을 공격하고 경계시킴으로 자신들의 신앙단체나 자신을 보신시켜 왔다. 그것이 소위 영적(靈的)이든, 현상적(現狀的)세계에 존재하는 이단이든, 인물들이든 또는 사탄이든 인간관계든 기독교는 자신들의 신앙을 말하며 동시에 자신들의 신앙을 위협하는 적들을 공시하고 그들에 대한 공격내내지 경계를 주지시킨다.
더구나 기독교가 현져하게 위기국면에 처한 오늘날의 상황하에서 기독교인들이 둘러대는 적에 대한 경계심은 설교강단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본메뉴 중에 하나로서 선초되어지고 잇다. 이는 자신들의 존립과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으며 사람들을 긴장케 함으로 자신들의 신앙집단의 대한 보수내지 유지를 위한 적절한 도구로 사용되어지고 있다.
우리는 기독교가 이렇게 대상화 시키고 개념화 시키고 있는 적들이 과연 무엇이며, 그들을 진정으로 위협하는 적들이 무엇인가를 사실적으로 규명해 나갈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들이 내세우고 있는 가상적인 적들은 그 정체가 지금까지 제대로 규명되지 아니했을 뿐만 아니라 왜곡된 사실이 거의 무비판적으로 수용되어 관념화 내지 적개심화 시켜 행동화 함으로 맹신적, 배타적, 독선적 행위들이 아무런 여과없이 분출되어져 나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독교를 위협하는 적들이 어떤 것들이 존재하고 있을까? 우리는 기독교가 주장하는 적들에 대하여 그 진상들을 공개해 나갈 것인데, 본 란에서는 기독교가 거의 말하지 아니하는 기독교의 가장 위협하는 심각한 적부터 생각해 나가 보도록 하자.
기독교를 가장 위협하는 적은 누구인가? 그 적들을 헤아리자면 무수히 많지만 기독교에 가장 심각한 적은 사탄도 악마도 아닌 기독교 자신이다. 기독교의 가장 치명적인 적은 기독교 자신이다.
기독교만큼 기독교를 위협하는 치명적인 적도 존재하지 않는다. 기독교를 가장 치명적인 위기상태로 몰아넣는 최대의 적은 기독교 자신이다. 바로 이 적을 볼 수 없는 기독교만큼, 기독교를 위기로 몰고 가는 위협적인 적도 없다. 기독교가 가장 시급하게 바라보아야 할 적이 기독교 자신이라는 적을 보아야만 하는데 불행하게도 기독교는 자신 밖에 있는 적은 너무도 잘 보면서 정작 가장 치명적인 자신이라는 적은 거의 보지 못한다. 항상 자신들의 하나님을 믿고 행하는 행위들은 무슨 행위를 하든 다 옳은 것이며 심지어 그 행위를 방해하는 자들은 모든 사탄의 사주를 받는 적으로 간주해 버린다.
오늘의 한국기독교를 가능케 한 서구기독교가 몰락해 버렸다. 이제는 그 회생조차 불가능 할 정도로 심각하게 괴멸적 상태에 빠졌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서구교회가 그러한 지경에 이르게 된 최대의 적이 바로 기독교 자신이라는 것을 보지 못하고 여전히 다른 적들에게 그 책임을 전가시키고 있다.
역시 그 대답이 모두 나와 있는 역사적 사실조차도 언제나 기독교는 자신이라는 적을 보지 못하고 다른 적들에게 그 책임을 둘러 대기에 여념이 없는 것이다. 이는 마치 암병에 걸린 환자가 자신의 현실과 실체를 인정치 아니하고 그 책임을 환경이나 음식등과 같은 것으로 핑계하며 문제의 현실을 직시하기보다는 다른 것으로 이유를 둘러대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기독교는 이와같이 자신들이 대상화 시킨 적에게 그 적의를 드러내고 경계시킴으로써 자신들의 신앙관이 우월하다는 자긍심을 고취시킨다. 동시에 언제나 자신들의 하나님이 이긴다는 튜턴식(공격성향의 군대로 싸우면 이긴다) 카타르시스를 충족시킴으로 전투적이고 경쟁적인 신앙관을 특징화 시켜 왔다.
교회는 이런 신앙관을 주지시킴으로 자신들의 결속력을 가져오며 긴장감을 조성함으로 마치 군사독재시절 북풍, 병풍사건들을 일으켜 국민들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세우며 자신들의 불리한 정치적 여지들을 덮어 나가는 전략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 내막을 밝혀 들어가면 수많은 궤변과 왜곡으로 채워져 있지만 역사이래 그 전모가 한번도 밝혀진 바가 없으니 그 덕에 아주 효과적인 무기로, 계속적인 위력을 발휘하는 효용적인 도구로 계속 쓰여지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기독교가 저항 받는 원인은 기독교 자신들로부터 불거져 나오기 시작하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에 저항했던 역사적 사례들을 살펴보면 예외없이 그 원초적인 원인들의 출발점은 기독교 자신들로부터 시작되었다.
社會科學原論의 저자 셀리그만(R.A.Seligman)은 서구 기독교가 패퇴하게 된 원인에 대하여 ‘그 이유의 반은 종교(기독교)가 초래한 명예실추에서 찾아야 한다’(上揭書, p.236)라고 지적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물론 셀리스만이 말한 것 이외의 이유의 또 다른 반은 기독교가 공격하는 적들이 감당해야할 몫이지만 이같은 이유들은 원인이 아니라 이미 쟁점화 되어져 전입가경 화 된 치열한 상황 하에서 전쟁과 논쟁에 따른 괴정과 결과에서 주어진 것들이다.
결과는 절대세력으로 존재하며 무소불위의 힘을 가지고 지배하던 서구 기독교는 끝내 허무하게 허물어지고 말았다. 기독교에 대해서 말 한마디 잘못하면 붙잡아다가 인간의 탈을 Tm고 자행할 수 있는 모든 악행을 자행하고, 마녀사냥에서 볼 수 있듯이 무고한 사람들을 잡아다가 통닭 굽듯이 사람들을 불태워 죽이던 기독교는 철저하게 서구인들에게 외면을 당해 죽고 말았다.
이제는 기독교가 주장하는 절대신에 의한 지배란 한낫 거추장스러운 의복정도로 간주하여 종교를 벗어 버리라는 나체족들의 빈정거림이나 하찮은 술주정뱅이들이 가진 욕설로 찌껄이며 지독하게 짓밟아도 누가하나 뒤돌아 보지 않는 서구교회로 전락되어져 버렸다.
서구교회를 이토록 무참하게 짓밟아 버린 것은 다른 적이 아니라 기독교라는 자신이라는 적이며 긍극적인 원인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아직도 그 치명적인 자신이라는 적으로 보지 못하고 ‘너 때문이라’는 가상적인 적을 내세워 그를 공격하며 때로는 아우르며 자신들의 아성을 유지시켜 나가는 것이다.
기독교는 아직까지도 기독교라는 자신이 자신을 위협하는 최대의 적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기독교의 교리신학적 생리상 그것을 인정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잇다. 그러나 기독교가 살기 위해서는 그 적부터 보지 않으면 안된다. 기독교가 그 적을 볼 수 있을 때 비로서 자신의 진정한 적을 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기독교가 나체족들이나 술주정뱅이들의 안주감으로 취급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하루라도 속히 자신이라는 적을 둘러 보지 않으면 안된다.
출처 : 심상용목사의 기독교의 가면과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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