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중공정부가 유물론에 집착하는 이유는..

왜남인가  |   2005-11-21 12:18:20
중국의 역사를 보면 됩니다. 태평교 : 중평 원년(184) 봄. 태평도 신도들은 교주 장각의 지시에 따리 일제히 봉기하여 관청을 불태우고 마을들을 공략하였다. 신도들은 모두 황색의 두건을 쓰고 있엇기 때문에 황건의 난이라고 한다. 태평도는 거록(하북성) 출신 장각이 창립했으며 그는 스스로 황천신의 사자인 대현양사라 칭했다.부와 영수의 주술을 통한 질병치료를 목적으로 했으며 태평청령서가 경전이었다. 산동지방 중심으로 전파되어 산동에서남쪽을 거쳐 연해지역까지 확산 되었다. 오두미교 : 같은 시기 한수방면(호북)에 새력을 펼치고 있었다. 삼관수서하여 병자에게 쌀 5두를 공출했기 때문데 오두미교라 한다. 백의장발회 : 7세기말 현종 개원 3년 (715)에 상주(지금 안양시로서 개봉 북쪽)에서 백의장발회란 단체의 반란이 일어났다. 종교반란임. 백련교 : 원 말기종교적 비밀결사. 천사에 큰 난리가 일어나면 미륵불이 이 세상에 내려와 중생을 구제 한다는 미륵신앙에 의거하여 강한 단결을 유지하며 농민들에게 그 신앙을 선전하였다.대락 그 기원은 남송대의 승려 모자원이 결성한 염불의 결사인 백련채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현재 가장 유력하다. 후세가 되면서 백련교에는 현세부정의 색채가 강한 미륵신앙이 혼입되었으며, 또 페르시아 기원의 마니교적 영향이 가미되어. 마침내 미륵하생 이외에 명왕출세란 신앙까지 지니게 되었다. 후에 벽련교의 반란군은 홍건군으로 불리게 된다. 중국역사내에 여타 유교,도교.불교등 그리고 샤머니즘적 사상.제자백가등의 사상들은 통치권자의 편리에 의해 이민제민 정책에 쓰여지기도 하였지만 기근과 강압적인 핍박에 시달리던 농민, 하층민들이 현세불만족의 표시를 응집해 내는것은 역시 종교였다. 위 몇가지 예를 들얼 말하자면 중국역대 왕조(정권)가 전복되는 이유는 썩은부패로 인한 반란.이민족의 침입.이 주류를 이루나. 내부로부터의 썩은부패로 인한 반란중 종교적 농민 민란만큼이나 중앙정권과 중국민에 큰 피해를 준것이 없다. 종교적 농민 민란이 일어난후에 왕조의 전복이나 초장봉기지세의 군웅들이 각각 세력다툼을 하였고 힘없는 민초들은 전란에 휩쌓여야 만 했다. 현재 중공정부가 가장 우려하는것은 미국및 제3국의 경제.정치.군사적압박보다도 중공내 빈민에 속하는 하층민의 불만이 종교적 응집으로 표출되지 않기를 바라며 그부분에 아주 예민한편이다. 티벳불교도들의 독립요구나 각 민족적 성향의 믿음이 응집된 독립운동을 주시하고 있으며, 중공내부의 신앙적형태의 빈민들이 응집후 중앙정부에 요구를 하게된다면 중공정부는 크나큰 부담을 떠 안게 된다. 현재 기독교나 가톨릭 등에 대한 부정적인 중공정부의 견해는 중공공산사상 외에 일절 다른 사상적(종교적)부분으로 중공인민이 결집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고 법륜궁(파룬궁)또한 이에 속한다. 종교적 민란은 중공정부의 해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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